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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협약 직전(1908) 청국의 백두산 국경 날조사건에 관한 연구

        서길수(徐吉洙) 백산학회 2009 白山學報 Vol.- N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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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年淸政府对长白山和鴨綠江ㆍ图们江展开了大规模的活动。当时劉建封接到东三省总督徐世昌的命令,协同張鳳臺、李廷玉等二十多名调查人员率领军队对长白山和鴨綠江ㆍ图们江行了为期三个月的徹底调查。并且给长白山的多处山峰以及其他众多山峰和河流重新命名,对国境问题进行了广泛的调查,完成了《長白山江崗志略》、《長白征存錄》等重要的专门境资料。 1908年开展的这次调查清政府带有很明确的目的性,明显是为解决日本之间的间岛而寻找新的对策。 第一, “穆克登的白头山定界碑是从小白山处迁来的,以处在小白山下方的胞胎山为分水岭,从鸭绿江到图们江沿途另外还有十个十字界碑”,他们虽然提出这一主张,但是却不能出示任何佐证。清政府就这样按照自己的意愿把国境线从长白山移到了胞胎山,颠倒了黑白。 第二, 他们又主张了“从白头山定界碑到图们江沿途的土堆、石堆是‘穆克登'以前 ‘覺羅吳木訥'留下的”,这个说法简直荒唐到令人发笑的地步。只要读过‘覺羅吳木訥'的《封長白山記)》就能轻易识破这个谎言。清政府调查官员泰然地提出这种主张的态度甚至让人可怜。 第三, 重新给車嶺山脈周邊的山峰和河流命名, 歪曲历史,这也是清政府侵犯周边国家领土的典型做法。即,把韩国境内已经有名字的山峰和河流改名,比如胭脂峰→鶴頂峯,三池淵→七星湖, 胞胎山→葡萄山, 劍川→葡萄河, 愛滹江→曖江, 天山→將軍峯. 大角峯→龍山等,并把清国的人口迁往那里。这个问题在1907年第一次开始国境调查时的注意事项中曾经被提及过: “⑥调查國境碑遗址,迅速迁移百姓,增加守备是最重要的事情。” 可见这在顺序上是相互吻合的。 并且给两处地名(天山, 劍山)赋予1000多年前唐朝薛仁貴的傳說, 这也是清政府的别有用心。在满洲地区到处能听到不少关于薛仁貴的傳說,長白縣的渤海靈光塔前、大連大黑山山城等这些薛仁貴根本不可能到达的地方都流传着他勇猛善战地击退高句麗的传说。薛仁貴到 过长白山这一故事是清政府歪曲历史而编造的一出手法低级的历史闹剧。 第四, 在1885年和1887年的國境會談上,捏造紅土山和元池(后来的圓池)是清朝皇帝祖先诞生的发源地这一做法某种程度上是能够让人理解的。清朝建立国家以后,历经300年的统治,直到灭亡的前四年仍然没有找到自己的发祥地。清朝皇帝这种努力寻找自己祖先诞生地的精神是相当可嘉的,但是为了占有别国的山河领土,没有任何根据地说其是自己祖先发祥地,这种连自己祖宗都出卖的行为真是令人玩味。 以上所述1908年清政府设定剧本的核心就是以胞胎山为分水岭, 制造出“西为鴨綠,東为图们”的分界线。西爲鴨綠 ‘南胞胎山的水向西南方向流至三江(胞胎河ㆍ南溪水ㆍ北溪水)→劍川江→ 鸭绿江',東爲图们 ‘北胞胎山的水向东流至三江(紅丹河, 糾雲水, 半橋水)→大浪河→圖們江'。这样当时作为最大问题的江问题就解决了,原来 ‘鴨綠江-长白山-图们江' 这一國境线就变为了 ‘鴨綠江-胞胎山-图们江',把长白山完全划分在韩国领土之外。如果拿着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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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高句麗 인물화에 나타난 닭깃털관(鷄羽冠)과 高句麗의 위상

        서길수(徐吉洙) 고구려발해학회 2015 고구려발해연구 Vol.51 No.-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연구를 더 심화시키는 연속 논문이다. ① 「高句麗?高麗의 나라이름(國名)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검토한 ‘- 서녘(西方)에서 부르는 ‘계귀(鷄貴)'를 중심으로 -」, 『高句麗渤海硏究』(50), 2014. ② 「춤무덤(舞踊塚)의 사신도와 조우관(鳥羽冠)에 대한 재검토 - 고구리(高句麗)의 닭 숭배 사상을 바탕으로-」, 『역사민속학』(46), 2014. 글쓴이는 ②의 논문에서 다음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지금까지 춤무덤에서 그려진 수탉 두 마리가 주작이라는 설이 일반화되었지만 그 수탉은 주작이 아니고 高句麗 사람들이 신으로 우러러 보는 닭의 신(鷄神)이라는 것을 3가지 사료를 새로 밝혀 증명하였다. 둘째, 지금까지 高句麗 사람들이 절풍에 꽂고 다닌 이른바 새 깃털로 만든 관(鳥羽冠)은 새 깃털이 아니라 닭 깃털로 만든 관(鷄羽冠)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가지고 여러 곳의 高句麗 무덤 벽화에 그려진 깃털관이 사실은 닭 깃털로 만든 관鷄(羽冠)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고구리(高句麗)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 그린 그림들을 분석 검토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연구목적이다. 이 논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대적으로는 양나라에서 당나라 이후까지, 지역으로는 일본에서 실크로드를 걸쳐 중아시아의 아프라시압까지 존재하는 절풍을 쓴 高句麗 인물화들을 가능한 한 모두 분석하였다. 그 결과 양나라 직공도, 당나라의 유물과 시, 일본에서 발견된 사신 그림, 둔황 벽화에 그려진 그림,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에서 발견된 高句麗 사람들은 모두 닭의 깃털을 꽂은 절풍, 곧 닭깃털관(鷄羽冠)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 이런 닭깃털관(鷄羽冠)이 없었다면 高句麗 사람이라는 것 자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高句麗 사람의 특징이고 이미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高句麗 사람의 닭깃털관(鷄羽冠) 이미지를 통해서 高句麗의 활동무대는 공간적으로 서역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한나라 이후 당나라, 그리고 일본까지 크넓은 국제사회 무대에서 활동하였고, 시간적으로는 668년 왕실이 당나라에 항복한 뒤로도 수 백 년 동안 그 명성이 이어진 高句麗의 높은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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