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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최씨 무인정권과 국왕

        서각수 숭실사학회 2012 숭실사학 Vol.0 No.29

        본고에서는 최씨 무인정권이 왕조 권력을 흡수해나가는 과정과 그를 통해 국왕과 比肩되는 권위를 확립해나가는 모습을 살펴보고, 이어서 고려시대 국왕의 권위가 어떠한 장치ㆍ意識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검토하였다. 최씨 무인정권은 지배층의 분열과 농민 반란 문제 등 당시 고려 왕조가 직면해 있던 정치 현안을 해결하면서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해 나갔다. 그리고 관료의 인사권과 국가 의사 결정권을 수중에 장악하여 세속적인 국왕권의 발동을 봉쇄하고 관료사회 위에 군림하였다. 그에 따라 무인 집권자는 국왕과 비견되는 권위도 갖추었다. 宰相과 重房이라는 고려의 최고 문무관까지 扈從하게 되었으며 令公이라는 칭호도 독점하게 되었다. 영공은 스스로 국왕처럼 연출하여 행동했고, 왕조의 의례체계에서 벗어나 영공을 정점으로 하는 의례를 거행하는 場까지 마련하였다. 그리고 국왕의 제사권도 침탈하여, 국왕의 의례적, 종교적 권위도 거의 무력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고려 초기의 八關會는 天神 등에 대한 제사로서 민중통합의례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궁중제사로서의 팔관회는 창업군주 태조 왕건에 대한 제사로 변질되어 있었다. 팔관회는 태조의 靈과 접촉한 국왕이 국왕으로 탄생하는 ‘국왕탄생의례’이자, 그렇게 탄생한 국왕에 대해 신하들이 ‘稱臣’하는 군신관계 확인 의례, 즉 ‘君臣大會’였다. 팔관회에는 고려 국왕의 정통성의 근원으로서의 태조에 대한 신앙이 거듭 확인되는 탁월한 구조가 숨겨져 있었다. 고려 국왕의 권위를 지탱해주는 사상이나 意識은 다양하지만, 창업군주로부터 전해오는 혈통 의식도 강력한 권위 중 하나였다. 고려 국왕의 혈통의식, 즉 ‘太祖信仰’을 보존하고 조장하는 장치가 다름 아닌 팔관회였다. 최씨 무인정권기에도 팔관회는 고려의 가장 권위 있는 의례, 국가 존립과 직결되는 제사로서 계속 개설되었다. 최씨 무인정권과의 연고로 승진을 거듭한 관료들도 팔관회가 규정대로 嚴守되는 것에 집착했고, 불교 세력은 노골적으로 태조신앙을 고취하며 최씨 무인정권에 저항하였다. This paper aimed to examine the system and consciousness that could sustain the authority of kings, as well as the course that the military power absorbed the dynastic power and established the authority comparable with that of kings. The military power of the Chois resolved the political issues faced by the Goryeo dynasty, such as the division of ruling classes and the peasant uprisings, and so acquired the legitimacy. As the military power of the Chois seized the authority over human resources of bureaucrats and right to decide the national proceedings, it dominated the power of kings and reigned over the society of bureaucrats. Accordingly, the ruler of military power became to have authority comparable with that of kings. He attended on the supreme organisation of the civil and military officers, Minister and Jungbang and monopolized the title of Younggong. The Younggong himself acted like king and performed the ceremony which deviated from the ceremonial system of dynasty and focused on the Younggong. And Younggong dispossessed of the king’s right of memorial ceremony for ancestors and almost incapacitated the king’s ceremonial and religious authority. In the early Goryeo era, as ceremony for the heavenly gods, Palgwanhoe managed to unify the people. As a royal ritual, the Palgwanhoe, however, degenerated into the ceremony for Taejo, the Goryeo’s first king. The Palgwanhoe was the ritual that the king possessed of a spirit of Taejo became the true king, and the confirmation ceremony for relationship between kings and subjects who rendered liege service and homage to kings. Through Palgwanhoe, the faith in Taejo as the spring of legitimacy of Goryeo kings repeatedly was confirmed. There are many of thought and consciousness that supported the authority of kings, but the sense of lineage from the first king was one of the powerful authorities. It was the Palgwanhoe that preserved and promoted the ‘faith in the first king of the dynasty’. In the period of military power of the Chois, the Palgwanhoe continued to be hold as the authoritative ceremony and ritual concerning the existence of state. The bureaucrats promoted by relation with the military power of Chois want to strict obserbance of Palgwanhoe in conformity with the rules, and the part of Buddhists inspiring explicitly the faith in the first king of the dynasty resisted to the military power of the Ch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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