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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점포 입지 선정의 실증적 연구 : 서울지역의 떡볶이 전문점 중심
배홍철 세종대학교 도시부동산대학원 2012 국내석사
외식업점포 입지 선정 의 실증적 연구 서울지역의 떡볶이 전문점 중심 외식산업에 있어서 입지 선정은 경영의 성공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창업하는 경우에 있어 입지는 해당 점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그래서 외식산업에서는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외식산업은 입지 산업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부동산의 산업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외식산업에 있어서만큼은 매출액이 해당 입지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매출 형성 요소는 점포가 위치하는 입지 상권의 특성에 따라 정해지는 입지의 가시성 (시계성), 군집성, 위치성, 접근용이성, 도로, 상권규모, 상권의 질, 교통과 통행량, 유동인구 등이 있다. 이중에서 점포입지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판단되는 입지 요인을 점포 접근 용이성, 군집성, 시계성, 위치성 4가지로 구분 지였으며 4가지 요인 별 떡볶이 전문점의 입지 중요 요인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증적 분석 하였다. 접근용이성에 대한 분석 결과 학교, 회사가 어떤 곳에 잇던지 상관없이 집에서 가까운 곳을 이용하며 접근 용이한 것 과 무관하게 맛있는 단골집만 찾아 이용하거나 횡단보도 인근, 사거리 코너, 지하철역 출구에 있는 떡볶이 점포를 자주 이용한다. 군집성에 관한 분석 결과 특별히 여러 종류의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에 있는 떡볶이 전문점 이용 선호가 높지 않았다. 위치성에 관한 분석 결과 2층, 3층 보다는 1층에 있는 떡볶이 전문점을 이용한다는 문항의 평균치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맛이 있으면 지하 1층, 지상 2층, 3층에 있어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떡볶이 전문점이 방문이 편리한 곳에서 구매하는 편의품(충동형) 만의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닌 목적구매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계성에 관한 분석결과 에서는 점포 전면이 크게 보이는 곳이 찾기 편하다가 가장 높게 낱아 났으며 렌드마크 건물 안에 위치한 떡볶이 집을 인식하기 편하여 자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연구의 한계점은 3가지이다. 첫째, 설문지를 이용한 실증적 연구에서 강북에 위치한 신당동의 떡볶이 타운을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여 떡볶이 전문점 독립점포들만의 입지 특성을 보려 하였다는 것에서 입지 선정 의 중요 요인 중 하나인 군집성 부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하였다는 것. 둘째, 외식산업 점포의 상권 및 입지 선정의 중요 요소를 조사함에 있어 맛, 서비스, 청결 등 외식산업에서 중요시 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단지 점포의 입지 선정의 중요 요인만을 연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 점포의 입지선정에 있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항인 임대료와 권리금 부분을 제외하고 순수 점포의 선호 입지만을 조사 분석 하였다는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하여 떡볶이 전문점 점포만의 입지 선정 요인을 확인하고, 다른 업종의 외식산업 입지 선정 시 중요 요인과 차별 점을 찾고 싶었다. 이를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나 외식경영자들에게 떡볶이 전문점만의 특화된 입지 선정 요인을 조언함과 동시에 세계 속의 한식 메뉴 중 ‘떡볶이’를 이용한 전문 점포의 입지선정에 있어 본 연구가 초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痲藥類事犯 保護觀察 介入類型의 實태와 介入效果에 관한 硏究
배홍철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국문초록 2001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마약류 사범 수는 전체 보호관찰대상자 중 4.6%를 차지하고, 재범률은 10.5%로 절도(46.3%), 폭력(26.8%)의 뒤를 이어 세 번째를 기록하였다. 또한 보호관찰대상자 중 약물사범 재범자의 70%는 다시 약물범죄를 저질러 약물 중독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2003년에는 마약류 사범의 수가 전체 보호관찰대상자의 2.54%를 차지했으며, 이 중 재범자가 228명으로 13.4%에 이르고 동종의 재범률은 81.5%로 나타났다. 전체 보호관찰대상자 평균 재범률(2003년 7.1%, 2004년 8.1%, 2005년 7.5%)을 감안할 때 마약류 사범은 일반 사범에 비해 재범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인을 알아보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마약류 사범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에 대하여 현장에서 보호관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개입유형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개입유형과 재범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실태파악 및 재범률 분석을 통해 개입효과를 알아봄으로서 마약류 사범 보호관찰대상자에 대한 재범의 유인요인을 밝혀내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다. 아울러 마약류 사범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관찰을 실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마약류와 마약류 남용의 개념, 마약류 사범의 사법처리현황과 문제점, 마약류 사범 처우 제도 등에 대하여 기존의 문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보호관찰 개입유형의 실태 및 개입효과를 알아보기 위하여 마약류 사범 집행유예 대상자 중 2005년 1월 1일부터 2006년 6월 30일 사이 서울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을 받다가 종료된 대상자 180명에 대한 보호관찰 상황기록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마약류 사범의 경우 검찰에 단속된 마약류 사범에 비해 재범률이 현저히 낮았다. 검찰에 단속된 마약류 사범 재범률은 2004년 7,747명중 30.2%(2,338명), 2005년 7,154명 중 42.8%(3,059명)로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 비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마약류 사범의 경우 보호관찰 개시자 기준 2003년 837명중 106명(12.7%), 2004년 856명중 45명(5.3%)이 재범한 것으로 보아 낮은 재범률을 보였다.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법처리 절차와 과정에서 보호관찰제도의 적극적 활용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둘째, 마약류 사범에 대한 보호관찰 개입의 빈도가 낮고 기간별 차별화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2년 동안의 반기별 대상자 1인당 개입유형 실태의 평균을 살펴보면, 통신지도 평균 1.6회, 출석지도 평균 3.7회, 현지출장 평균 0.5회, 약물검사(소변검사) 평균 1.1회를 보였으나 각 반기별 차별화된 개입 양상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마약류 사범의 특성을 고려하여 약물사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초기·중기·말기로 나누어 시기별 차별화된 개입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본다. 셋째, 보호관찰의 일반적인 개입유형 가운데 출석지도의 빈도가 재범방지에 유의(有意)하다는 비교적 일관적인 경향을 확인하였다. 대상자의 출석지도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통신지도와 현지출장을 통해 준수사항 이행을 감독하고 독려하며 출석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도록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마약류 사범에 대한 법원의 처분유형 중 단독 보호관찰을 부과 받은 대상자의 재범률(21.1%)이 가장 높았음이 확인되었다. 마약류 사범에 대해서는 보호관찰·수강명령·사회봉사명령(재범률 : 7.7%)을 동시에 병과하거나 보호관찰과 수강명령(재범률 : 9.2%)을 병과하는 처분이 재범방지에 유익함을 보여주었다. 다섯째, 보호관찰이 부과된 기간에 따른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 부과기간이 1년인 대상자가 가장 높은 재범률(24.0%)을 보였다. 또한 전체 재범자(24명) 가운데 보호관찰 기간이 1년이내에 재범한 대상자가 66.7%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는 마약류 사범에 대한 보호관찰의 실시가 보호관찰 초기부터 12개월간이 보호관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간이므로 단계별 계획적인 처우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보호관찰의 실시를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약류 사범에 대한 형사사법상 치료적 관점에서의 조기개입과 다양한 중간처우제도가 필요하다. 사법기관에 입건된 시점에서부터 공판절차, 그리고 보호관찰을 받는 과정까지 치료·재활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과 동종의 재범을 억제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둘째, 대상자의 관리방식에 있어, 지역구 단위의 관리에서 벗어나 특성이 유사한 사범별 관리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보호관찰의 개입을 위해서는 사범별 관리방식을 바탕으로 제재보다는 처우중심의 보호관찰이 실시되어야 한다. 셋째, 마약류 사범에 대한 기소전 또는 판결전 시점에서 판결전조사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마약류 사범에 대해 조기개입을 위한 사정(査定)의 단계에 해당할 수 있겠으며, 사법적 처우에 있어 치료·재활적 접근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넷째, 마약류 사범의 치료·재활을 위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과의 네트워크 구성과 활용이 중요하다. 마약류 사범 대상자에 대한 건전한 사회적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담 수준을 벗어나 의료, 직업훈련, 경제적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발굴하여 활용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관찰 실시인력의 증원과 시설의 확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 각국의 보호관찰조직과 인력에 비해 대단히 열악한 실정이다. 체계적이고 밀도 있는 보호관찰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업무실정에 맞는 적합한 인력과 시설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검열이 예술의 제도화에 미치는 영향 : 한국 1920년대 여성나체화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배홍철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2013 국내석사
'Nachehwa(裸體畵)', all the pictures to draw naked woman in modern Korea, appeared with the influx of western art and the growth of publication. Nude painting, a sort of Nachehwa, got much public attention and was not free from censorship by reason of public morals corruption.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cceptance of various naked woman drawing and to address the censorship effects i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nude painting. Previous researches have stated nude controversy was caused by a lack of understanding about western art and the atmosphere of Confucian society. And they argued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s censorship treated some of nudes as the obscenity so tha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art was delayed. But various naked woman drawings were allowed under governmental censorship in the 1920s. Many illustrations to describe naked woman as eroticism and publications of sexology from Japan appear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And western nude paintings showed through Joseon Art Exhibition. In this time nude paintings functioned as western art and erotic icon and the boundary of art and obscenity was equivocal. In the late 1920s, customs censorship became strict so that naked woman drawings were strongly regulated. Censorship concretized a range of the obscenity and led to differentiation of the art and the obscenity. In this process, governmental censorship was the mechanism of not suppression but discipline of produce and appreciation. The boundary of the art and the obscenity lasted after relaxation of censorship and the convention to recognize a nude painting as the art was settled in modern Korea. Foucault illustrated a Power with productive perspective. From the way of his examination, custom censorship produced the new 'Knowledge(savoir)' called art and obscenity and instigated discourses on all naked drawings. Especially, censorship was the main criterion to differentiate art and obscenity in a situation that high educational institution and influential associations did not exist. 근대 조선사회에서 ‘나체화(裸體畵)’는 여성의 알몸을 그린 그림을 지칭하는 용어로, 서양미술의 유입과 인쇄출판의 성장 속에서 등장하였다. 나체화 중에서도 누드화는 서양예술의 하나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동시에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본 연구는 1920년대 다양한 나체화의 수용 과정을 살펴보고 이 중 서양 누드화가 예술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열의 생산적 역할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기존 연구들은 누드화 논란이 서양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과 당대 유교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총독부 검열이 일부 누드화를 외설로 간주하고 통제하여 누드화가 예술로 정착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다양한 여성의 알몸을 그린 나체화가 사회적 허용아래 범람하였다. 신문·잡지에는 성애(eroticism)와 연관된 여성 나체 삽화와 일본의 성(性)서적 광고가 수록되었다. 한편 1922년 총독부가 주도한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면서 서양 누드화가 대중 앞에 등장하였다. 나체화가 범람하던 시기, 누드화는 서양미술이자 동시에 성애의 도상(圖像)이었으며,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불분명하였다. 1920년대 후반 풍속 검열이 강화되면서 누드화를 비롯한 많은 나체화들이 제재를 받았다. 검열은 외설(obscenity)의 범위를 구체화하였으며 외설과 예술의 분화를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검열은 예술을 억압하는 장치였다기보다는 나체화 생산과 감상의 규율이었다. 이후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1930년 풍속 검열의 완화 이후로도 지속되었으며 누드화를 예술로 간주하고 감상하는 생활양식이 정착하였다. 푸코(M.Foucault)는 권력을 단순한 억압적 장치가 아닌 생산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설명처럼 풍속 검열은 예술과 외설이라는 새로운 지식(savoir)을 생산하고 나체화를 둘러싼 담론을 선동하였다. 특히 상급 교육기관과 영향력 있는 미술협회가 부재했던 당시 조선사회에서 검열은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일제강점기 성욕 관리의 담론 -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배홍철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2021 국내박사
본 연구는 1920~30년대를 중심으로 성욕과 그 관리의 담론이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성욕(性欲, sexual desire)을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다룬 연구는 많지 않다. 성(sexuality) 혹은 젠더를 사회적 구성물로 다루는 것과 달리 성욕은 인류 보편의 본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 근대기 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성욕은 결혼·가족 제도나 제국의 통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적 변수로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성’과 ‘성욕’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일본의 지식인들이 영어의 ‘sex’와 ‘sexual desir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근대적 개념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성욕이 사회적 발명품이자 특정한 지식이 만들어낸 담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1900년을 전후로 일본은 서구 성과학(sexology)을 수용하면서 성욕을 과학과 의학의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성욕학(性慾學)’이라는 자생적 지식이 등장했다. 성욕학은 생식기와 위생, 결혼과 출산에 관한 지식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쓴 성의 교과서를 표방했다. 하부토 에이지(羽太鋭治)와 사와다 준지로(澤田順次郎)와 같은 성욕학자들은 수십여 권의 저서를 발표하면서 성욕 담론을 이끌었다. 이들은 특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욕의 자기 “절제(節制)”를 권고했다. 성욕의 자기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 온 성욕학은 점차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성(욕)교육, 성(욕)범죄, 산아조절(제한)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현안에 참여하면서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한 가운데 1927년 일본 정부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성욕학은 점차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일본 성욕학은 국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부터 성욕학의 논의가 국내 대중 매체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개념과 지식이 당대인들의 의식을 일순간에 뒤바꾼 것은 아니었다. 성욕의 담론은 사적인 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현안을 끌어안으면서 점차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성욕 문제를 거론한 신문 및 잡지의 기사·논설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성욕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성욕을 올바르게 관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들은 일본 성욕학과 마찬가지로 성욕의 관리와 통제를 권장했다. 인간은 성욕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성욕이 변질하거나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식을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하고자 했다. 한편 성욕의 담론들은 우리 사회의 논의에 발맞추어가며 논의의 경계를 넓혀갔다. 타인의 성욕을 자극하거나 반대로 타인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문제, 그리고 성욕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각종 사회 문제들이 새로운 성욕 담론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공창, 산아조절을 비롯해 절도나 방화, 살인 등의 범죄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성욕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성욕의 담론은 공공장소에서 불거지는 성욕 문제 또한 비중 있게 다루었다. 불특정 남녀가 교차하는 열차나 극장을 비롯해 신체 일부가 드러나는 화장실, 수영장, 목욕탕 등이 새로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불온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이처럼 성욕의 담론들은 대중이 일상생활 언제 어디에서나 성욕의 문제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더불어 해소되지 않은 성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으며 개개인의 성욕을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이제 성욕은 개별 주체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절제해야 하는 것이자,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관리·감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한편 1927년을 전후로 일본에서 성욕학 서적이 금지되자 국내에서도 관련 서적을 접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국내 대중매체에서는 여전히 성욕의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1930년대 초, 결혼율의 급격한 하락 속에서 미혼 남녀의 성욕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현안으로 다루어졌다.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남성과 오랜 금욕주의로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젊은 여성에 대한 우려는 ‘결혼적령기’라는 신조어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193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성욕의 담론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내 인구를 해외로 이주시켜 영토 확장에 힘쓰고자 한 당국은 더 많은 인구 생산을 위해 결혼과 출산, 피임과 성욕에 대한 지식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제 결혼의 논의에서 성욕은 출산율 증대와 인구증식이라는 시대적 과업에 점차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며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상식이 특정한 지식의 경계 안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담론이라는 점을 시사하고자 하였다. 성욕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의 근간을 살펴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acceptance and settlement process of discourses on sexual desire and its regulation in our society, focusing on the 1920-1930s. Until now, the scope of research on sexuality and gender in the field of social history has been greatly expanded. On the other hand, the study on ‘sexual desire(性慾/性欲)’ has never been fully illuminated. Unlike treating sexuality or gender as a social construct, sexual desire tends to be viewed as a universal human instinct. Even in modern Korean studies, sexual desire has been treated as an auxiliary variable to explain the system of marriage and family or the governing structure of the empire. However, the term '性慾(sexual desire)' was a modern concept created by Japanese intellectuals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sexual desire' into English. This study focused on the fact that sexual desire was a social invention and discourses created by specific knowledge. Around 1900, Japan began to treat sexual desire from the point of view of modern science and medicine while accepting Western sexology. After that, a spontaneous knowledge called ‘Japanese sexology(性慾學)’ emerged. Japanese sexology claimed to be a textbook on sexual desire that puts knowledge about genitalia, hygiene, marriage and childbirth at the level of the public. Japanese sexologists like Habuto and Sawada led discourses on sexual desire by publishing dozens of books. They especially recommended self-regulation(節制) of sexual desire to lead a healthy and happy life. Japanese sexology, which have focused on self-management of sexual desire, gradually began to engage in social discussions. They also participated in various social issues such as sex education, sex crimes, and birth control. However, in 1927, as censorship intensifi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Japanese sexology gradually lost its place. Japanese sexology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in Korea as well. Around 1920, the discussion of sexual desire and sexology began to appear in the domestic mass media. However, new concepts and knowledge did not immediately change the consciousness of our society. The discourse of sexual desire has gradually established itself as a social common sense as it embraces contemporary issues as well as private issues. Articles insisted on the need to constantly monitor and manage sexual desire. The intellectuals of the time, who were the contributors to the editorial, emphasized that only when one can manage one's own sexual desires correctly can one become the master of one's life. On the other hand, discourses on sexual desire have expanded the boundaries of discussion by keeping pace with the discussion in our society. Various social problems caused by sexual desire have emerged as an issue in the new sexual desire discourse. For example, sexual desire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subject that could not be overlooked in discussions of crime, fraternity, and birth control. On the other hand, the discourse on sexual desire dealt with the issue of sexual desire in public places with great importance. It appealed to the public that trains, theaters, restrooms where body parts are exposed, swimming pools, and public baths can become hot spaces that cause new social problems. As such, these discourses on sexual desire led the public to recognize the problem of sexual desire anytime and anywhere in their daily life. Now, sexual desire has become something that individual subjects must control in order to become the protagonist of their life, and an object that must be regulated and monitored for a safe society. After 1927, when books on sexual desire were banned in Japan, it became difficult to access related books in Korea. However, the discussion of sexual desire continued in the domestic mass media. In particular, in the early 1930s, the issue of sexual desire for unmarried men and women was treated as an important social issue. Beginning in the mid-1930s, discourses of sexual desire reached a turning point. Colonial Government-General tried to fill the expanded territory after the Manchurian Incident by producing more population and moving them abroad. In the discussion of marriage, sexual desire has gradually given way to the tasks of the times, such as increasing the fertility rate and population growth. The idea that sexual desire is a human instinct and should be properly regulated is considered common sense in modern Korean society. On the contrary, this study tried to suggest that common sense is a social discourse created within the boundaries of specific knowledge. The meaning of this study is to be found in that it tried to examine the foundation of the consciousness on sexual desire and regulation.
배홍철 Graduate School, Yonsei University 2021 국내박사
Background: Suicide is one of the leading causes of death worldwide. In 2019, the suicide mortality rate in Korea was 26.9 per 100,000 people, making it the fifth leading cause of death, and the highest rate among OECD countries. Suicidal ideation is considered a major risk factor for suicide with depression, as is low income for suicide and suicidal ideation. However, most of the research conducted so far involved cross-sectional studies, and there have been limited studies on the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Objectives: This study seeks to assess the impact of income level changes on the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and identify the differences in these effects by population. Method: The study used data from the Korea Welfare Panel (2011–2015). To examine the prevalence of suicidal thoughts, subjects who did not have suicidal thoughts in the last few years were selected, and 43,827 of the 52,843 subjects were included. To measure the changes in income levels, we calculated the income tertile of the previous and the current years and estimated income level change. A generalized estimating equation analysis was conducted to examine the effect of income level changes on the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Results: Among the 43,827 subjects, 1,297 (3.0%) reported developing suicidal ideation. The prevalence of suicidal ideation was 2.5% in the group with increased income level, 3.0% in the maintained, and 3.5% in the decreased income group. When the income level decreased, the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was high at OR 1.29 (95% CI: 1.08–1.53). Additionally, when the subjects were female, had low educational levels, were unmarried or married but not living with spouse, and had low health status, the OR values for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were higher. Sub-group analysis showed that the OR for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in the 18–49 age group was 1.82 (95% CI: 1.35–2.46), higher than in the age group 50–59, 1.82 (95% CI: 1.28-2.60). The effect was also higher in females, those with low educational levels, did not follow any religion, and lived in urban areas. Conclusion: Changes in income levels influence the development of suicidal ideation, and this effect is more pronounced in ①females than in males, and ②younger than in older people. Although the suicide mortality rate in Korea has been steadily declining, it continues to be a major social problem. While implementing policies related to suicide, it is imperative to recognize the effects of changes in income and consider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pulation. 서론: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주요 사망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2015년 한국 에서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8.7명으로 사망 원인 중 5위를 차지하며,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이 가장 높다. 자살 생각은 우울증과 함께 자살의 주요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으며, 낮은 소득 또한 자살 및 자살 생각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들은 단면 연구를 통해 진 행되었으며, 자살 생각의 발생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연구목적: 이 연구의 목적은 소득 수준의 변화가 자살 생각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인구 집단 별로 이러한 영향이 나타나는 차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방법: 이 연구는 한국 복지패널 (2011-2015) 자료를 이용하였다. 자살 생각 의 발생을 보기 위해 각각 연속된 2개년 중 이 전년도에 자살 생각이 없었던 경우로 연구 대상자들을 선정하였고, 전체 52,843명 중 43,827명이 해당되었다. 소득의 변화는 연속된 2개년의 전년도와 해당 년도의 소득 3분위수를 구하여 상중하로 소득 수준을 구분하였고, 수득 수준의 변화를 특정하였다. 소득 수준 의 변화가 자살 생각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generalized estimating equation 분석을 실시하였고, 각 인구 집단별 영향의 차이를 보기 위해 각 그 룹 별 분석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연구 대상자 43,827명 중 자살 생각이 발생한 사람은 1,297명(3.0%) 이었다. 자살 생각의 발생은 소득 수준이 증가한 군에서 2.5%, 유지된 군에서 3.0%, 감소한 군에서 3.5%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감소할 경우 자살 생각의 발생은 OR 1.29 (95% CI: 1.08-1.53)으로 높게 나왔고, 여성, 교육수준이 낮을 경 우, 미혼이거나 배우자와 동거하지 않을 경우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자 살 생각 발생에 대한 OR 값이 높게 나왔다. Sub-group 분석 결과 소득 수준의 감소에 따른 자살 발생은 18-49세에서 OR 1.82(95% CI: 1.35-2.46), 50-59세에서 OR 1.82(95% CI: 1.28-2.60)으로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한 여성, 학력이 낮을 경우, 종교가 없 을 경우, 도시 지역에서 거주할 경우 소득 수준이 감소했을 때 자살 생각 발 생이 증가하였다. 결론: 소득 수준의 변화는 자살 생각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며, 이 영향은 남 성 층 보다는 여성 층, 그리고 노인층 보다는 젊은 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한민국에서 자살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자살과 관련된 정책 시행에서는 소득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인구 집단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시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