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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한문학과 일본 고문사파(古文辭派) 문학 연구의 접점과 방향

        노경희 근역한문학회 2017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Vol.47 No.-

        본고는 명대 전후칠자 문학의 수용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 양국 학계의 연구사를 검토하여 그 성격을 비교하고 양자간의 접점을 찾고자 시도한 것이다. 16세기 후반 이후 조선의 복고적․의고적․상고적 문학과 18세기 에도의 고문사파 문학이 그 주요한 비교 연구 대상이며, 조선통신사와 소라이파 문인들의 교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양국 고문사파 문학의 ‘관계’를 함께 고찰하였다. 한일 학계 모두 초기의 연구는 중국문학과 자국문학의 영향 관계에 집중하였으니, 중국 전후칠자 문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차이점을 야기한 자국 문단의 독자적 특성에 주목하였다. 본고에서는 조선문단의 경우 작가의 개성과 내면의 표현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문단의 경우 작품의 격조와 형식, 문사(文辭)의 재현을 중시하는 점이 가장 차별화된다고 정리하였다. 18세기 들어와 일본 고문사파 문인들과 조선통신사의 직접적인 만남이 성사되면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던 양국의 고문사파 문학에 드디어 접점이 생긴다. 조선통신사와 고문사파 문인들은 전후칠자 문학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다. 이들의 직접적인 접촉이 양국 문단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향후 더욱 발굴하고 주목해야 할 연구 주제이다. This study integrates and compares the ongoing researches in Korea and Japan on how the literature of the Seven Masters of Ming Dynasty was accepted in both countries. Major focus is on the retrospective literature of later Chosun and the Kobunjiha literature of Edo and also on the literary interaction between Chosun Tongsinsa and the students of Ogu Sorai. The early research focused on what differentiates from the works of the Seven Ming Masters. It has been summarized that Chosun literature emphasized the expression of the writer's character, while Edo literature focused more on the structure and rhetorics. In the 18th century, Chosun Tongsinsa and the students of Ogyu Sorai began to make diplomatic encounters which provided contact points between two literary societies that had remained isolated. This encourages continuing research on how the encounters affected the literature in both countries.

      • KCI등재
      • KCI등재

        일제강점기 일본인 제작 다산 저술의 필사본과 신식활자본

        노경희 진단학회 2015 진단학보 Vol.- No.124

        This study aims to organize Tasan's works published by Japanese scholars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reveal the historical implications in such publishing activities by analyzing the bibliographical and elemental features of the publications. Japanese publications of Tasan's works divide into public and private activities. Public ones include the mimeographs made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while the private ones include the modern types print of the Chosun classic series by Joseon Classic Publication(朝鮮古書刊行會), Joseon Society(朝鮮硏究會), and Jayoo-Togusa(自由討究社). Publishing activities by private parties were also supported by the public organizations and thus can be considered as being part of the colonization policies. Manuscript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was intended to document and preserve old literature while the private publications were intended to distribute the Chosun classics and knowledge. Therefore, the private publications kept transforming to more legible forms in the following times. In following studies, it is imperative to reveal the implications of Tasan's works within the colonization-driven publication and how they were recognized differently through the eras.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주도로 간행된 다산 저술들을 정리하고, 그 서지적․내용적 특징을 분석하여 일본인들의 다산 저술 제작에 담긴 문화사적 의미를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인 다산 저술 제작 사업은 관과 민간의 작업으로 구분된다. 관의 작업으로는 총독부 참사관분실의 등사본 제작이 있으며, 민간의 작업에는 조선고서간행회․조선연구회․자유토구사의 조선고서총서 신식활자본 간행이 있다. 다만, 민간의 작업 또한 통감부와 총독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결국 조선의 식민지 정책의 한 방편으로 함께 논의될 수 있다. 참사관분실 필사본은 고문헌의 ‘보존’에, 민간의 간행본들은 조선 전통 지식의 ‘유포’에 제작 목적이 있다. 이에 민간의 간행본은 후대로 갈수록 원문본에서 훈점본․훈독본․번역본 등 일반인들이 읽기 쉬운 형태로 변화하였다. 추후의 과제로 식민지 정책의 하나로 간행된 조선고서총서의 성격 속에서 다산의 저술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간행 대상 저술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

      • KCI등재후보

        『燕彙』의 이본 검토를 통한 조선후기 연행록의 유통과 전승

        노경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2 규장각 Vol.41 No.-

        조선문인들의 연행 체험은 ‘연행록’이라는 특정한 양식의 문학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서로 소통되면서 향유되어 왔다. 즉, 연행록을 통해 당대의 조선문인들은 연행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으며, 후대의 문인들은 전대 문인의 연행록을 참고하여 자신들의 연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중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1712~3), 홍대용의 『담헌연기』(1765~6), 박지원의 『열하일기』(1780)는 수백 편에 이르는 연행록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들 작품은 조선시대에 이미 『연휘(燕彙)』라는 제명으로 묶이어 전승되고 있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현전하는 『연휘』와 그 관련 자료들에 대해 각 연행록의 필사본/활자본, 한문본/한글본의 전승 상황을 고찰하여, 조선후기 이들 연행록이 유통되고 전승된 구체적인 실상을 살피었다. 그리고 이들 자료 전승에 있어 특징적 사항으로 ① 조선후기 필사본 유통, ② 한글본 편찬, ③ 근대 연활자본 간행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조선후기 출판문화사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 논의하였다.

      • KCI등재
      • KCI등재

        17세기초 조선시의 중국 전파에 대한 조선 문단의 이중적 태도 - 文才 과시 욕구와 詩文 유출에 대한 경계 -

        노경희 진단학회 2008 진단학보 Vol.- No.105

        본 논문은 17세기초에 ‘조선한시가 중국에 전파된 현상’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 문단에서 보인 반응을 살피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7세기초는 전쟁을 계기로 하여 양국 문인들이 ‘직접적’으로 접촉할 통로가 유례없이 확대되었던 시기였다. 조선의 시문 또한 중국인들의 관심을 끌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 문단에 전파되었다. 조선시의 전파는 전란 시기 조선에 파병된 중국의 장수들이 역대 시문을 수집하여 시선집을 편찬한 활동과, 조선의 문인들이 자신들과 교유했던 중국문인들에게 조선의 시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던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조선의 시문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했던 조선문인들의 태도는, 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에 민감했던 정부의 태도와 서로 상충하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 본고에서는 먼저 『海東詩賦選』편찬에 나타난 이중기준을 살피었다. 중국 장수의 요청으로 편찬되기 시작한 『해동시부선』은 진행과정에서 전란 이후 역대 조선시를 총정리하는 작업으로 전환되고, 결국 중국문인에게 전하기위한 시선집으로는 大家의 작품들만 뽑아 새롭게 만드는 이중적 편찬태도를 드러냈다. 다음으로 이정구의 『조천록』 중국간행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살피었다. 중국 사행길에서 자신의 문재를 과시하고자 『조천록』의 출판을 감행한 이정구는 귀국길에 함부로 조선의 시문을 중국 문단에 유출시켰다는 죄명으로 탄핵을 받는다. 여기서 문장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개별 문인의 입장과 시문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이 상충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사례들을 통해서 당시 전쟁으로 인한 ‘교류 확대’의 장을 맞아 나타난 조선문단의 다양한 대응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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