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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냉응고 시킨 Al-Pb 합금의 응고조직에 관한 연구

        김용길,김동훈 ( Yong Kil Kim,Tong Hoon Kim ) 한국주조공학회 1982 한국주조공학회지 Vol.2 No.1

        N/A The present investigation was made to abtain a fine distribution of Pb Particles in AL - Pb binary alloys , which have a broad miscibility gap and large specific difference, by means of rapid Cooling of the molten alloys, Al-2.4% Pb, Al-5.5wt% Pb and Al-8.0wt % Pb alloy were used. The rapid cooling operation was performed by free falling of homogeneous liquid Al-Ph alloys into the water-cooled copper mold, and thermal analysis was made. Microstructures were observed, and variations of size and number of Pb particles were analysicle analyzer. By the result of examination with the varing cooling rates 100 to 210℃/sec fine distributions of Pb particles were obtained with high cooling rate. Under same cooling condition, the best rapid cooling effect was recognized in Al-5.5wt% Pb alloy.

      • 신라시대의 법률과 효사상에 관한 고찰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8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1 No.-

        오늘날 남·북한간의 70여 년간의 숙명적인 관계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급속히 해빙되는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 북한의 일부 핵시설의 폐기 선언 등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효와 경애의 사상을 잘 이해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미래를 보다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사상을 앞세워 주변의 세력을 정복하거나 연맹을 맺으면서 큰 나라로 발전하였다.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존속하였는데 세계적으로 오래존속한 왕조들 중 하나이다. 신라의 건국은 민주적인 점이 상당히 많았다. 인간의 선천성을 중시하여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는 서로 합의에 의하여 원만하게 처리함으로써 삼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이룩하였다. 신라의 국호는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국가의 틀을 갖추는 데는 가장 늦었다. 6세기경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들여 왕권 강화와 백성의 단결을 꾀하였으며, 진흥왕 대에 전성기를 맞아 6세기중엽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중국을 통일한 당(唐)과 동맹을 맺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 후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당나라를 한반도 밖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전통적인 효와 경애의 사상이 한층 더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라시대의 효사상과 당시의 법률들을 살핌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s we all know, Korea is the nation with the longest history in the Northeast Asia and its own ideas and philosophy. This history developed with the foundation of Korea's unique scriptures and it can be considered as the fundamental element of human education. Historic view is borne from historic records. Historic records from Dangun Chosun need reclassification of the ancient history. Subsisted from 57 BC to 935 AD, the kingdom of Silla is one of the longest dynasties ever survived in the world. The foundation of the country retained many elements of democracy. Through placing value in apriority, acting in mutual respect, honoring the heavens, and legitimately handling important issues, Silla was able to build the foundation for unifying the Three States. The name of Silla suggests ‘the virtuous achievements of the king extent in all directions’. Although it was the first of the Three States, it took Silla the longest to shape the frameworks of a nation. In late sixth century under the rule of King Beopheung, Silla took in Buddhism to promote strengthened regal power and union of its people, and by mid-sixth century under the rule of King Jinheung, Silla reached its prime and occupied the Han River valley. In coalition with the Tang dynasty of China, it overthrow Baekje in 660 and Goguryeo in 668. Later, Silla defeated Tang and drove them out from the Korean Peninsula. We need the thoughts of traditional filial piety and love and respect more than ever in this country. By exploring the law and the thoughts of filial piety in the Silla dynasty, we will be able to obtain the wisdom to live today.

      • 유교의 정좌법에 대한 고찰 - 청소년 수양을 위한 기본 체계 -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20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6 No.-

        유교에서 정좌(靜坐)는 건전한 육체를 유지하며, 고요히 앉아서 정신 집중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좌는 본래 인간 존재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하고 심신의 건강과 안정을 찾기 위해서도 행하여져 왔다. 12세기에서 13세기 중국 송나라 시대에는 불교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당시에 유교도 종교적이나 학술적으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좌라는 말은 이 시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로서, 그 이전에는 없었던 말이다. 이러한 정좌는 학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되었다. 정좌법은 개인의 취향이나 학파 등에 따라 정좌를 취하는 자세와 방법, 정좌의 이치 및 효과, 정좌의 현상 및 궁극의 경지까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정좌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하는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정좌는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실천해야 하며, 정좌할 때에는 고요한 가운데서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자세로 스스로의 본성을 찾아야 한다. 유학의 성격 그 자체로도 치료적(therapeutic)이며 치유적이라고 보는데 더하여 심신(心身)의 자기수양법으로서의 정좌법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심신과 관련하여 심리학, 뇌과학, 명상학 등의 연구로도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정좌를 명상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여, 건강한 일상생활과 마음의 안정 그리고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 등을 추구하는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아직 미성숙하여 정신이 혼란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정좌법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면 정신적 자존감을 높이고, 동시에 스스로 행동에 자신감을 갖게 됨으로써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방황이나 비행, 학교폭력 또는 폭행 등의 문제점을 잘 해결할 수 있는 한편 범죄예방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n Confucianism, ‘Jeong-jwa’(Sitting Quiet) is one way to maintain a healthy body and to sit quietly and focus to find one’s inner self. Jeong-jwa was originally used to identify the basis of human existence and as a way to find physical and mental health and peace. During the 12th and 13th centuries in Song China, Buddhist was at its pinnacle, and during this time, Confucianism was also highly affected by Buddhism in terms of both religion and academics. The word Jeong-jwa was a new word that appeared during this period, and this word could not be found in earlier ages. Such Jeong-jwa method transformed in various ways depending on the sect and times. The Jeong-jwa method has different postures, methods, effects, etc. depending on personal preference, sects, etc. However, Jeong-jwa is the same in that it is for meditating the mind and body in everyday life. Jeong-jwa should be practiced in everyday life and while performing Jeong-jwa, one must search for their true self in a quiet space and being completely still. The character of Confucianism in itself is therapeutic and has a healing nature, and the Jeong-jwa method in terms of self-meditation for the mind and body has been proven to be effective in research related to psychology, brain science, meditation science, etc. pertaining to the human mind and body. Most people view Jeong-jwa as one way of meditation and therefore use it as the pursuit for the source of existence, not to mention healthy everyday life and inner peace.

      • 고구려시대의 법률과 효사상에 관한 고찰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6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28 No.-

        고구려는 건국 초기에 미미한 법제도를 갖추었으나 주변의 제 국가들과 격돌하여 지배영역을 확대 복속시키고, 지배 권력을 자주적으로 조직화함으로써 상층권자들에 의한 하층민들의 지배관계가 더욱 공고히 되었다. 그 배후에는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하여 중국에서 전래된 제도를 토착화하면서 발전의 기틀이 되었으며, 당시에 중국과 대적할 만큼 커다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성공하였다. 고구려는 영토 확장의 격변기를 통하여 내치외교의 중추적인 통치 구조를 자주적으로 개편하고 율령반포를 통해서 지배질서의 강화와 내부적 정리를 완성하였다. 특히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에 중국의 유학을 받아들여 태학을 설립함으로 써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세우게 되었다. 고구려에는 본래부터 우리나라의 고 유사상과 제천사상이 있었고 삼성조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토착신앙이 있었으나 공자의 유학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지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학문에 있어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조류가 형성되고 전문적인 식견이 높아지면서 민족의식도 상승되었고, 유학정신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문명의식이 크게 향상되었다. 유학은 본래 환웅시대인 배달국에서 창제된 문자를 통하여 중국에서 먼저 학문이 발달하였는데 공자가 이를 완성한 것이다. 고구려는 태학을 중앙에 설립하여 인효(仁孝)를 원리로 한 인성교육에 역점을 두었고, 지방에는 사립학교인 경당(?堂)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지방에 거주하는 천민의 자제에게도 입학자격을 주었으며 교과목은 태학과 거의 대동소이했다. 특히 국가유사시를 대비하여 활쏘기, 칼 쓰기, 말 타기 등 무술을 익히는 무술교육은 공통과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효사상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부모에 대한 봉양은 도덕적 관념 내지는 자연적 의무로 관념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효에 대 한 사상의 시원은 환국시대, 배달국시대, 단군시대인 삼성조시대(三聖祖時代) 부터 있었다. 이처럼 효충사상은 수천년동안 우리나라에서 민주공동체를 유지해온 전통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정보화시대와 핵가족 시대를 맞이하여 학력과 외국어 위주의 교육 및 급변하는 산업화로 인하여 종래의 전통 적인 효사상이 많이 퇴색하고 있는 오늘날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효문화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 As we all know, Korea is the nation with the longest history in the Northeast Asia and its own ideas and philosophy. About two thousand years ago, the Gogureo established a great empire on the field of the northeast Asia, succeeding to the ancient Dangun dynasty. Gogureo constructed the centralized authoritarian rule, democratic aristocracy and a rigid punishment but safeguarding human rights under the King. Taehak and Geongdang of Gogureo is the oldest known school in the history of Korea. The major curriculum of Taehak and Geongdang in Gogureo probably contained both military instruction and training, in addition to the teaching of Confucianism. In Korea, thoughts of filial piety and esteem to respect and support their parents have continued from Hanguk Dynasty. We have to overcome today`s difficult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s through revitalization of traditional filial piety.

      • 세종시대의 법률과 세종의 효사상에 관한 고찰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9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4 No.-

        1392년에 탄생한 조선왕조는 고려시대의 경제적 불평등과 신분적 갈등을 완화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토를 보호하고 부국강병의 나라를 세우려는 문인과 무인들이 서로 힘을 합해 하층민의 지지를 얻어 개국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조선시대는 통일법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정법의 기본은 왕의 명령인데 이는 그 내용의 경중에 따라 교지와 전지로 구분하였다. 조선 초기에 있어서 입법자들의 법사상 내지 법률관은 조종성헌의 존중, 법의 영원성, 법령개정의 경직성 등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법령은 천지사시(天地四時)의 자연질서와 일그러짐이 없어야 하며, 법령은 민심에 합치된 것이라야 한다는 사상적, 철학적 바탕을 두고 있다. 태종시대까지는 기본적인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기틀이 조성되었다. 세종시대까지는 전제개혁(田制改革)과 수리관개시설의 정비, 조세부담의 경감을 위한 조치, 제반 법률의 제정 등을 통하여 제도적인 정비를 완성하였다. 조선조는 유교국가를 지향하였는데 세종시대에는 삼강(三綱), 오상(五常) 등의 윤리가 필연적으로 중요시되었다. 국가의 정치적인 안정과 왕권을 강화하는 등 집권초기의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교의 이념 하에 실천원리로서 삼강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세종실록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소학이나 삼강행실도와 같은 유교적 윤리의 교화정책과 병행하여 법적 처벌을 강력하게 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백성의 억울함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강조하면서 크고 작은 형벌을 애써 삼가하고, 형벌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특히 세종은 어릴 적부터 왕자로서의 도덕적으로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고뇌하였고, 왕실에서 효도와 우애의 길을 상실하면 곧 왕조의 앞날이 위태롭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었다. 세종의 효사상은 도덕적 의미의 구현과 선구자적 교화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하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윤리가 필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Joseon Dynasty founded in 1392 was established to reduce the economic inequality and resolve the status conflicts in Goryeo Dynasty by literary people and martial artists having the support of lower classes to protect the nation from foreign invasion and found the strong and prosperous nation. Until King Taejong, the basic institution was prepared to create the basis for running the country. King Sejong had completed the reform of farmland system and the institutional organization such as organizing irrigation system, reducing tax burden and enactment of the general laws. The Joseon Dynasty had pursued Confucianism. As entering the King Sejong Period, the three fundamental bonds in human relationships and the five constant virtues were considered important. To build the government system in the beginning for political stability of the country and strengthening the royal authority, the three fundamental bonds were emphasized as practical principles under the ideology of Confucianism. To govern the country and implement the policies for citizens, laws and ethics should inevitably be harmonized.

      • 일제 강점기의 법률과 효사상에 관한 고찰 - 매헌 윤봉길 의사를 중심으로 -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8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2 No.-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법령을 우리나라에 강제로 적용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식민통치의 기반을 획책하였다. 조선총독은 행정, 입법, 사법권을 장악하고 국가 사회를 법령보다는 행정 및 경찰력을 위주로 질서를 유지하였다. 특히 1908년에 ‘법전조사국(法典調査局)’을 통하여 민상사관습을 조사하고, 1912년에 ‘관습조사보고서’를 발행하였는데 이는 그 내용이 상당히 부정확한 것이었지만 그 후에는 관습법의 법원(法源)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참담한 시절에 윤봉길의사는 1908년 6월 21일에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윤봉길은 담대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부터 매우 독립적인 교육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님과 아버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이 자작시와 편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농촌계몽운동만으로는 근본적으로 조선 농촌의 생활이 나아질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 윤봉길 의사는 일제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 참여하기 위하여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에 대한 반제국주의적인 사상을 굳건하게 가진 윤봉길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홍구공원 의거를 일으켜 한국독립 운동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온 인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보다 앞당기기 위해 실행한 거사였던 것이다. During its annexation, Japan forcefully applied its rules and enacted special laws for Korea to plan its foundation for colonization of Korea. The Government-General gained control over Korea’s executive, legislative and judicial power and maintained order through executive and police force rather than legislation. In 1912, Japan issued ‘Customs Survey Report’. Most of it was incorrect, but it did serve as the source of the Common Law. In such miserable times, Yun was born on Jun. 21, 1908 in Yesan, Chungnam. He was rather dauntless in disposition and received a very independent education at home. His filial affection for his parents was high since he was little and his love for his parents is apparent in his poetries and letters. Yun felt that Rural Enlightenment Movement had certain limitations to improve the rural life in Joseon. He came to realize that freeing Korea from Japanese grasp required armed struggle and defected to China in 1930 to join the Independence Movement. On Apr. 29, 1932, Yun started Hongkou Park Heroic Deed in Shanghai, China and changed the course of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This movement was arranged to let the world know of colonization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o put forward a just world with freedom and equality.

      • 사계 김장생의 법사상과 효사상에 관한 고찰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 2021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7 No.-

        사계 김장생은 송구봉에게서 학문적 바탕과 예학을, 이율곡으로부터 이학과 경세를 배웠고, 여기에 토정의 애민의식과 위민의식, 우계 성혼의 몸가짐을 하나로 융화시켜 일원화하여 자신의 예학과 경학으로 귀결시킴으로써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조선 예학을 완성하였다. 조선조는 16, 7세기에 매우 중요한 변화기를 맞게 되는데, 사상적으로는 사림파에 의하여 주자사상에 대한 학문적 가치를 재발견하여 그 성과를 이루게 된다. 정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그리고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인조반정(1623),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겪었으며, 신진사류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함으로써 훈구·척신들을 물리치고 도학정치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사계 김장생(1548-1631)이 생존하였던 당시의 조선은 이처럼 내우외환으로 인하여 정치와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인 궁핍이 가장 극심하였던 시기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시기에 사계 김장생은 율곡학맥의 계승자로서 학문적 사상과 아울러 정치 사회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사계학이라는 뿌리 깊은 전통 학맥을 형성하게 된다. 한편, 통일법전의 시대를 맞은 조선조에는 기본적으로 대명률을 계수하여 적용하였다. 조선 초기에 입법자들은 법령이란 자연질서와 어그러짐이 없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민심에 합치된 것이라야 바람직하다는 철학적, 사상적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를 전면적으로 지향하였으며,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유교의 실천원리로서 삼강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 사계 김장생의 법사상은 공법사상, 사법사상, 사회법사상, 세법사상, 형법사상, 법철학사상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법철학사상은 다시 예학사상, 홍범사상, 변법사상, 자연법사상, 향약법사상, 정좌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계는 전례문답, 상례비요, 가례집람, 의례문해 등 누구든지 늘 마땅히 지켜야 할 관혼상제에 관한 일상의 예제(禮制)를 만들어 널리 보급함으로써 인심을 맑고 바르게 하는 동시에 행동을 바르게 하여 국가의 기강은 물론 사회질서가 잘 유지되도록 하는 공법사상을 주창, 실행하였다. 특히 공사(公私)의 구별을 엄하게 하여 사의(私意)와 요행을 막도록 하고 탐욕을 가진 민심을 맑게 하여 이기심을 바로 잡을 것 등을 밝혔다. 이러한 사계의 애민(愛民), 위민(爲民)의 법사상은 그의 문집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약자를 위해서 폐막(弊瘼)과 폐법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한편 사계의 효사상은 도덕적 의미의 구현과 선구자적 교화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하겠다. 조선의 예학자들은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다는 것은 그 고유한 본성을 잃지 않음에 있으며, 본성을 행하는 것이 예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가정의 가례와 일상생활에서의 각종 동작의 예행으로 부자자효와 형제자매 사이의 돈목의 도모는 물론 수기를 통해서 학문과 예행으로 신독 수양을 강화하였다. 부자지간과 사제지간에 자효(慈孝)와 경애를 넘어서 상호 상장의 관계를 이루어 서로 지기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면 이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인데, 김장생은 생애를 통하여 진정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를 넘어 부자(父慈)의 새로운 전향을 보여주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률과 윤리가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Sagye Kim Jangsaeng came across various disciplines and completed the Chosun Ritual Theory.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of Chosun Dynasty was underwent a great change, and ideologically rediscovered the academic value beyond the Zhu Xi theory and got achievements. In terms of politics and society, he experienced Chosun-Japan War, Chosun-Qing War and a massacre of scholars, and Shinjin Saryu tried to introduce ethical politics by forming new political forces. The time Sagye Kim Jangsaeng(1548~1631) lives, was in a period when political and social confusion and economic poverty were extreme due to internal and external problems. In this historical period, Sagye Kim Jangsaeng is the successor to Yulgok academic genealogy, which plays an important role in both academic and political society, and forms a deep-rooted academic genealogy called Sagye. In the early Chosun Dynasty, which was in the era of the Unification Law, the Grand Ming Code was basically counted and applied. The legislators had a philosophical and ideological basis that the laws should be harmonized with the natural order and should be matched with the public mind. For this, the Chosun Dynasty aimed to establish a Confucian state in full and emphasized Samgang ethics as a practice principle of Confucianism in order to establish a governing system. The Legal Thought of Sagye Kim Jangsaeng is divided into Public Legal Thought, Judicial Legal Thought, Society Legal Thought, Tax Legal Thought, Criminal Legal Thought, Philosophy Legal Thought. The Philosophy Legal Thought can be summarized as Ritual Theory, Hongbeom Theory, Byunbub Theory, Natural Legal Theory, and Hyangyak Legal Theory. Sagye asserted Public Legal Thought by making and spreading everyday ethical examples of the four ceremonial occasions of coming of age that anyone should always keep, while at the same time making public sentiment clear and correct and acting, so that the discipline of the nation and social order are maintained well. Sagye's Love the People, For the People's Judiciary Thoughts can be found all over his literary collection, and he said that various laws should be boldly arranged for the weak. On the other hand, Sagye's filial piety has the character of the realization of moral meaning and the pioneer sense of enlightenment. The ethicalist of Chosun thought that human beings can be human is not to lose their unique nature, and that it is ethics to perform nature. Therefore, the harmony between the parents and the children was strengthened by family ethics in everyday life. Kim Jang-saeng showed true parental generosity and child's filial piety through his life, and showed a new appearance of generosity beyond this. In order to govern the country and to implement politics for the people properly, the law and ethics should be harmonized.

      • 백제시대의 법률과 효사상에 관한 고찰

        김용길 ( Kim Yong-kil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7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30 No.-

        오늘날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물질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이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으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전통적인 효와 경애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가까이 분포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데 이것은 당시에 계급과 권력이 발생하여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를 강제 동원할 수 있었던 청동기시대의 사회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사상을 앞세워 주변의 세력을 정복하거나 연맹을 맺으면서 큰 나라로 발전하였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효에 대한 사상의 시원은 환국시대, 배달국시대, 단군시대인 삼성조 시대부터 있었다고 보인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교육의 보급이었으므로, 백제도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백성들을 교화하고자 하였다. 백제의 교육기관과 관련된 것은 삼국사기의 근초고왕조에 나오는 박사 고흥(高興)과 일본서기에서 무령왕과 성왕시대에 왜국에 파견되었다고 기록된 오경박사(五經博士) 등이다. 태학과 박사제도는 사비천도 이후 성왕시대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때 중앙 관부의 개편과 맞물려 태학은 사도부(司徒部)로 편성되었다. 백제의 제8대 고이왕(260년)대에는 중앙관제를 혁신적으로 정비하였다. 이 때 육좌평(六佐平)은 국가의 중추적인 기관으로서 각각의 중요한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였다. 백제의 정청은 남당(南堂)인데 남당에서 왕과 신하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을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히 처리하였다. 백제는 부족국가 시대에 유교를 받아들여 매우 부강하고 강력한 나라의 기틀을 다졌는데 백제인들은 예법을 생활화함으로써 일반사회에서 효사상을 널리 정착시켰다. 즉 백제인들은 예법을 두루 익히고 있었는데 예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 형식적인 요소가 필요하여 기혼자와 미혼자를 구별하여 모발 모양을 내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례의 대상에서도 백제인들은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제사를 지냈으며, 혼례, 상례(喪禮), 제례 등의 예를 중시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전통적인 효와 경애의 사상이 한층 더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효사상의 순기능적인 면을 살펴보는 동시에 백제를 유지했던 법률들을 살핌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As we all know, Korea is the nation with the longest history in the Northeast Asia and its own ideas and philosophy. This history developed with the foundation of Korea's unique scriptures and it can be considered as the fundamental element of human education. Historic view is borne from historic records. Historic records from Dangun Chosun need reclassification of the ancient history. Facing with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oday, mental aspect becomes more important than physical aspect and it can be said that the core things therein are traditional thoughts of filial piety, respect and affection. The most important thing to make an ancient country rich and powerful is the spread of education and therefore, the Baekje Dynasty installed education institutions to cultivate people of ability and to civilize the people. Education institutions of Baekje were Taehak and Baksa(doctor)system, and Wang In Baksa as well as Ajiki baksa passed down Ogyeong Baksa(Doctor of Five Confucian Classics) to Japan. Government office of the Baekje Dynasty was Namdang where a king and subjects put their heads together to make discussions about the country's important affairs and properly settled the affairs according to the result. Today, our country more needs traditional thoughts of filial piety, respect and affection than ever.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not only proper function of thoughts of filial piety existing from the Baekje Dynasty but also laws maintained by Baekje so that we can get wisdom to live our future life.

      • 제2부 한국의 효사상과 효문화 : 상고시대 이래 효사상과 분쟁발생의 해결에 관한 고찰 -중재를 중심으로-

        김용길 ( Yong-kil Kim )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016 韓國의 靑少年文化 Vol.27 No.-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효도계약서와 불효자방지법에 대하여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서 효도계약서가 불효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불효자방지법은 사후적인 제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졌던 효를 법률의 제정 등으로 강제성을 띄게 될 경우 그 진정성이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대법원도 부모를 잘 모시는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다면 재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산 상속과 증여를 둘러싼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우리 땅에서 여전히 사회문제화가 되고 있다. 노부모의 부양에 대한 기초는 우리나라에서 효사상에 의하여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며, 부모에 대한 봉양은 도덕적 관념 내지는 자연적 의무로 관념화되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씨족집단이 그 생활을 보장하였고, 가부장제에서는 가장이 재산을 독점하고 아울러 그 책임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효사상의 시원은 환국시대, 배달국시대, 단군시대인 삼성조시대(三聖祖時代)부터 있었으며, 효사상은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 황제 순으로 온전히 계승, 발전됨으로써 그 역사적이고 실질적인 기초가 확고히 세워졌다. 이처럼 충효사상은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민주공동체를 유지해 온 전통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부 중심이나 친자를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만연으로 가족 및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작용했던 효사상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가족관계가 한꺼번에 와해되고, 또 노인의 학대 범죄가 증가하면서 불효자방지법의 제정에 대한 추진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아울러 민법 개정안도 발의되고 있는데 민법 제556조의 수증자의 행위와 증여의 해제에 대한 문제점도 있다. 또한 민법 제558조는 증여계약 해제와 이행완료부분에 대한 문제점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정보화시대와 핵가족 시대를 맞이하여 학력과 외국어 위주의 교육 및 급변하는 산업화로 종래의 전통적인 효사상이 많이 퇴색하고 있다. 효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간 본연의 도리이다. 즉 효는 웃어른을 모실 줄 알고, 아랫사람을 이끌어주고 불쌍하고 외로운사람을 보살피고, 서로 간에 믿을 수 있는 신뢰사회를 만들 수 있는 요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효문화를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교육시켜서 가정과 학교 교육 나아가 사회적 운동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효에 대한 실천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이다. 자녀의 가정교육에서는 일방적으로 효도가 강요된 훈육보다도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율적 효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효도하여 부모와의 관계가 좋으면 자녀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그 정신적 안정감은 사회적 안정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 은혜에 대한 보답은 비단 부모뿐만 아니라 국가 또는 전 인류에 대한 보은의 박애정신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족 간의 불화 등 사적 분쟁을 조기에 잠재우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중재를 이용해 볼만하다. As we all know, Korea is the nation with the longest history in the Northeast Asia and its own ideas and philosophy. While mankind is born and forms a society to live, great and small disputes indispensably happen due to differences in their way of thought or living environment. In Korea, thoughts of filial piety and esteem to respect and support their parents have continued from Hanguk Dynasty. Also, a tradition has been established to autonomically regulate settlement of private disputes by arbitration or mediation pursuant to moral sanctions naturally formed through respect of custom of tribes or communities from before Gochosun(Dangun Chosun) Dynasty, As such a dispute settlement system became standard of village in Chosun Dynasty, it was encouraged by the government. However, there was no clear distinction between arbitration, mediation, intercession and reconciliation at that time. We have to overcome today``s difficult internal and external situations through revitalization of traditional filial p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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