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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시의 낭만성 연구 : 국민의식과 관련하여

        양도웅 서강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석사

        RANK : 247807

        This study looks at romantic art view(romanticism) of Kim Soo-young, a Korean poet, and his nation in his poetry in a diachronic perspective. The below is the summary of the result. As the driver of Romanticism was the failed French Revolution (or Reason in the age of Enlightenment,) what led Kim Soo-young to Romanticism in the 1950s was hatred against socialist North Korea, state violence (his experiences with the Korean War and prison camps), and his wife's breakup (they got back together after the War). Because of a series of these events, Kim lived a simple life in Seongbuk-gu and Mapo-gu, the outskirts of Seoul. He despised the city which went through state-led post-war restoration projects and repeated inner-self revealing and self-soothing. Interestingly, his physical move from the downtown (state = capital) to the outskirts was in line with his move of the poetry theme from certain subjects to inner side. However, he focused on external side after he witnessed the April Revolution. He felt sympathy and empathy for students who sacrificed in the crackdown and had 'companionship (love)' which is an emotional turning point to form a national consciousness. This love gives an important signal to interpret his poetry written in the 1960s. For example, his poem, Variations on the Theme of Love in 1967 showed utopian (revolutionary) love, meaning as he witnessed the April Revolution in the 1960s, he found a feeling of love as an alternative to the reality. If that is true, then he put focus on inner side in the 1950s, because he could not find the alternative. He lived such a simple life far away from the reality of state-led industrialization he does not want to face without finding any alternative. Looking at the Modes of Exchange of Kojin Karatani, interestingly, people and the rural community are communities based on his 'reciprocation'. In the modern era, capitalism has expanded and the rural community has collapsed or reduced. And this rural community was restored imaginarily. This 'imaginary community' is people. Unlike the rural community, people is imaginary community. However, people being imaginary community is reciprocation of exchanging gift and counter-gift. Given that this exchange is related with a feeling of love, Romantic poets found people as the alternative. Considering the Modes of Exchange of Kojin Karatani, Kim Soo-young's poetry in both periods of the 1950s and 1960s is explained in a consistent manner. Like Kim Soo-young in the 1950s, Kim Soo-young in the 1960s did not do political actions or remarks pro-actively which should be paid attention. Rather, he repeatedly reproached himself for doing not political actions or remarks. What's hidden by this self-depreciation is his excessive self-consciousness that excludes others. He could not stand with his reduced self-consciousness he had to face in the reality. That is why he stayed in the imaginary and ideal world and was immersed in imagining his own utopia. In this sense, his self-depreciation can be seen as just 'gesture' he hated, because his self-depreciation did not cause any changes in his action. As a result of this research, the April Revolution was the main cause behind Kim Soo-young's change as seen in prior studies, but Kim is basically Romantic in the 1950s and 1960s. In other words, his changes in the 1960s were possible because he had Romantic tendencies. This gives a signal that can consistently solve various questions as mentioned before. He is 'political Romantic Poet' who focused on inner struggles rather than real-life struggles. 본고는 김수영 시의 낭만성을 그의 국민의식(네이션)과 관련하여 통시적으로 고찰해보았다. 이를 위해 본고는 가라타니 고진의 내셔널리즘론을 참고하였다. 가라타니 고진은 현재의 근대세계시스템을 자본=국민=국가가 보로매오의 매듭처럼 연결된 체계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근대세계시스템은 교환양식에 근거한 것인데, 자본은 ‘화폐와 상품의 교환’, 국민은 ‘호수적reciprocal 교환’, 국가는 ‘수탈과 분배의 교환’이다. 본고는 이 중에서 국민과 김수영의 관계를 고찰해본 것이다. 범주를 넓혀 말하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김수영의 입장과 대응을 고찰해본 것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낭만주의적인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국민=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를 인용하며, 이러한 상상물인 국민을 실체적으로 인식한 이들이 낭만주의자라고 말하였다. 즉 내셔널리즘=낭만주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낭만주의는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근대를 완성시킨 하나의 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고가 주목한 낭만주의의 특성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낭만주의는 이성을 감성화 하였다. 이것은 낭만주의가 일원론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칸트는 이성과 감성은 상상력을 통해 종합된다고 하였는데, 칸트 이후에 등장한 낭만주의자들은 상상력에 의한 이성과 감성의 종합을 실체적인 종합으로 간주하였다. 그것은 상상적인 것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사고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존재할 수 있다’는 사고가 만들어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칸트적으로 말하면 낭만주의는 일종의 형이상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를 단순히 감성으로만 설명해서는 곤란하다. 낭만주의는 감성으로의 일원화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 ‘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낭만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이 갖고 있던 사회주의적인 면모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으로 종결되자 프랑스혁명을 계몽주의적 이성의 실패로 간주하였고, 감성으로 프랑스혁명이 추구하였던 것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성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이성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국가와 대비되는 국민을 실체화 하고 기대를 건 것이다. 이를테면 피히테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 초기 낭만주의자인 슐레겔의 ‘낭만적 아이러니’에 대한 헤겔의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낭만주의는 곧 ‘자아(주관)의 절대화’이다. 때문에 낭만주의에서 타자는 배제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것을 ‘과잉된 자의식’이라고 불렀다. 자아는, 예측 불가능한 타자를 조우할 수밖에 없는 경험론적인 자기(대상화 되는 자기)를 경멸하고 초월론적 자기(대상화 하는 자기)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낭만주의에서의 반성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 입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고는 이상의 낭만주의의 특성들을 염두에 두고 김수영의 낭만성을 통시적으로 고찰해본 것이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대를 걸었던 프랑스혁명(계몽주의적 이성)의 실패가 낭만주의의 주요한 원인이었듯이, 1950년대의 김수영을 낭만주의적으로 이끈 원인은 기대를 걸었던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 한국전쟁과 포로수용소에서의 국가에 의한 폭력, 그리고 아내에게 당한 실연(전쟁 이후 재회한다) 등이었다. 이로 인해 김수영은 서울의 외곽 지대인 성북구와 마포구에서 시골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는데, 여기서 김수영은 국가 주도의 전후 복구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국가)를 경멸하며 내면 탐닉과 자기 위로를 반복하였다. 김수영이 국가=자본의 도심에서 시골로 이동한 것이 시에서 내면으로 이동한 것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은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을 목도한 뒤 외면적으로 변화하는데, 혁명 진압 과정에서 희생당한 학생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국민의식이 형성되는 데 주요한 감정적 계기인 ‘우애(사랑)’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1960년대 김수영을 읽는 데 주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1967년에 김수영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사랑에 기초한 유토피아적인(혁명적인) 상상을 보여준다. 즉 1960년대에 김수영은 4·19혁명을 목도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현실의 대안으로서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대에 김수영이 내면적이었던 것은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마땅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국가주도의 산업화 현장으로부터 떨어져 농촌 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으로 보았을 때, 국민과 농촌공동체는 모두 ‘호수적 교환’에 근거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자본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해체되고 축소된 농경공동체를 상상적으로 회복한 공동체가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공동체와 달리 국민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점, 증여와 답례의 호수적 교환이라는 점, 이 교환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점 때문에 낭만주의자들은 국민을 대안으로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으로 보았을 때 1950년대의 김수영과 1960년대의 김수영은 일관성 있게 해명되는 것이다. 하지만 1950년대의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1960년대의 김수영은 정치적인 발언이나 정치적인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인 발언이나 정치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자신을 책망하였는데, 이러한 자기비하에 가려진 것은 그의 ‘과잉된 자의식’이다. 그는 현실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자아의 축소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상상의 영역에서, 관념의 영역에서 머무르면 자신의 유토피아를 상상하는 데 열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자기비하는 그가 극도로 경멸하였던 ‘제스쳐(gesture)’에 불과했던 것이다. 과격한 자기비하 이후에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없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주관적인 반성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선행 연구들이 밝혔듯이 4·19혁명이 김수영을 변화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김수영은 기본적으로 낭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즉 1960년대의 변화도 그가 기본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김수영에 대한 여러 난제들을 ‘일관성 있게’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현실적 투쟁보다 내면적 투쟁에 집중했던 ‘정치적 낭만가’에 해당하는 시인이었다. 그에게 현실은 시(詩)의 계기로서 중요한 것이었다.

      • 김수영 시의 나르시스적 주체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연구

        박성광 서강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박사

        RANK : 247807

        본고는 김수영(金洙暎)의 시를 자유주의와 나르시시즘에 관련하여 고찰함으로써 시적 주체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이스토프가 제시한 사회적 판타지의 입장에서 김수영의 시를 분석했는데 텍스트에 드러난 형식적 특성을 추적하여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적 판타지가 상호 교섭하는 양상을 고찰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본고에서는 김수영의 시를 통시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시형(詩形)의 변화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의 3 시기로 구분하고 초기와 후기는 각각 이분(二分)하여 전체 5 시기로 세분하여 분석했다. Ⅱ장에서는 김수영 초기시에 드러난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특성으로는 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병치 기법이 부각되었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자유주의에 터한 근대적 주체의 정립과 결부되며 이를 반영하여 김수영이 추구했던 주체는 개인의 자족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성격을 지녔다. 판타지적 기의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주체, 곧 초월적 주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그런데 초월적 주체의 출현은 자유주의와 연관을 맺고 있다. 자유주의의 토대인 개인이 주체의 사유 행위를 통해 자기동일성, 자기중심성을 형성하며 작동되듯 초월적 주체는 타자를 배제하고 절대성을 추구하는 자신에 매료되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초월적 주체는 나르시시즘적이다. 그런데 주체는 원래 분열되고 결여된 존재이다. 불안정한 초월적 주체의 판타지는 서구적 근대라는 타자에 자신의 존재근거를 묻는 히스테리증자, 전후의 상실감 속에서 발생한 우울증의 양상으로 그 허약성을 드러냈다. Ⅲ장에서는 김수영의 중기시에 나타난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투명한 문체가 도드라지게 사용되었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4 ‧ 19 혁명을 무대로 민주주의의 쟁취를 통한 자유주의 구현을 대의로 혁명에 헌신하는 강력한 주체를 드러냈으며 이를 반영하여 판타지적 기의는 초월적 주체의 변이형(變異形)인 오이디푸스적 주체를 투영했다. 혁명은 기존의 상징계를 파괴하고 또 다른 상징계를 구축하는 행위이며 이는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따라서 혁명 상황에서 김수영의 시가 보여주는 산문에 가까운 문체적 특징은 그의 자아가 세계를 무대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계, 곧 사회적 장면에서 재현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표상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양상은 토템향연과 마키아벨리즘을 특징으로 텍스트에서 구체화되었다. Ⅳ장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의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의 특징인 반(反)투명한 문체가 부각되어 나타났다. 이데올로기적 기의는 4 ․ 19 혁명이 좌초되고 생활을 무대로 국가주의가 틈입하면서 전개되는 미시적 권력 체계, 곧 순응주의와 물신주의에 저항하는 양상에서 구현되는데 국가주의에 맞서 개인의 가치를 보존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유주의와 결부된다. 판타지적 기의는 위협에 직면한 주체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주체를 은폐, 강화하는 과정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극단적인 경우에 이르렀을 때는 강박증적 주체가 발생했다. 강박증은 자기 부정과 타자 배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적대를 특징으로 하며 그것의 이면에는 국가주의에 의해 타자로 매몰된 허약한 남성 주체의 위상이 존재했다. Ⅴ장에서는 김수영 후기시에서 강박증적 경향과 혼재(混在)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경향의 사회적 판타지를 살펴보았다. 저항적 자유주의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나르시시즘은 강박증적 주체가 지닌 타자 배제, 자기 폐쇄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전망으로 기능했다. 그것은 주체의 초월성으로부터 탈피하여 결여를 인정하고 타자와 타자의 욕망을 수용하려는 시도로 전개되었으며 단독자로서 초월성을 주장하는 근대적 주체, 곧 나르시스적 주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타자와 타자의 욕망을 포용하면서 나르시스적 주체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포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역이 개방된다. 그것은 이질적이며 비가시적인 성격을 띤 타자성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들뢰즈의 용어로 잠재성에 상응한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역사는 타자들로 넘쳐나는 잠재성의 영역으로 재해석되며 지엽적이고 특수한 시대 현실에서 벗어나 초역사라는 보편성과 잠재성의 무대로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수영의 시는 자유주의를 한 축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나르시시즘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판타지적 측면이 결합된 사회적 판타지를 구성한다. 또한 김수영 텍스트에서 주체는 서구적 근대와 자신에 종속된 나르시스적 주체에서 탈피하여 이질적인 타자를 수용함으로써 확장된 주체, 곧 서로주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나’를 극복하고 보다 큰 ‘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여전히 나르시스적 주체이다. 그러나 나르시시즘 없이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타자에 대한 사랑도 불가능하다. 문제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 방식이다. 김수영은 변방인의 결핍과 결여를 온몸으로 밀고나갔으며 상처의 흔적 속에서 타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 타자로서의 삶을 수락하는 것, 그것이 김수영의 미덕이었다.

      • 金洙暎 詩의 모더니즘 硏究

        김수영 漢陽大學校 敎育大學院 1999 국내석사

        RANK : 247759

        본고는 김수영 시의 모더니즘에 관한 연구이다. 그의 시의 모더니티를 밝히기 위하여 기존의 모더니즘과의 비교 연구와 그의 작품 분석을 통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김수영은 30년대와 50년대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은 단순히 문예사조나 기법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보는 정신적 태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수영은 모더니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현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모더니즘과 관련한 김수영 모더니즘의 변별성으로서, 첫째는 현실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모더니즘을 문학적 조류보다는 정신적 태도로 수용한 점이며, 셋째는 모더니즘을 시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의 시학을 추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작품 분석을 통해 도출된 김수영의 모더니티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그가 현실을 비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이 당대의 뒤떨어진 현실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 ‘바로보기’나 ‘멀리보기’, 또는 ‘숨어보기’의 형태로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다. 둘째는 그가 이 비극적 세계관에 대하여 설움과 비애같은 비극적 정조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인식은 아이러니한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인식에 바탕을 둔 반응이다. 또 김수영은 비극적 현실을 극복할 방법으로 정직성을 내세우고 있다. 정직성은 윤리적 삶의 실천이나 행동에의 의지보다 먼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요구하는 태도이다. 셋째는 그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자기갱신의 삶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 속에서 현실극복을 위한 운동성이 발견되는 것은 자신과 현실을 영원히 고쳐 나가려는 자기갱신의 정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모더니티 획득을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인 셈이다. 넷째는 그의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궁극적으로 ‘새로움’의 시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언어의식과 소재나 기법상의 새로움은 기존의 가치에 대한 회의에 바탕을 둔 정신적 태도이다. 특히 그의 시의 산문성과 열린 형식의 추구는 모더니즘의 반전통주의와 관련된다 김수영은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이다. 또 그는 이전의 모더니스트들의 ‘포오즈’로서의 모더니즘의 폐해를 극복한 사람이다. 그는 모더니즘의 본질을 가장 잘 파악한 시인으로서 한국 모더니즘을 한 단계 올려놓은 시인이라 할 수 있다.

      • 金洙暎 詩 硏究

        김수영 漢陽大學校 敎育大學院 1997 국내석사

        RANK : 247695

        金洙暎은 사회와 역사, 시대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 정신으로 한국 현대시의 한 지향점을 보여준 시인이었다. 그는 해방 직후 문단에 나와 사회적 격동기 속에서 어두운 시대적 운명과 사회적 현실에 맞서 치열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겪는다. 그의 문학적 출발기로 볼 수 있는 1940년대 중반부터 50년까지의 제 1기에서는 현실적 삶을 조건 지우는 일체의 사물을 ‘바로 본다’ 라는 의식를 통해 대상이나 현실을 기정화된 척도로 파악하지 않고 시인의 주체적 사고에 의해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을 파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50년대 초반부터 4. 19 전까지의 제 2기의 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삶을 이끌어가는 생활인으로서의 자각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기의 시편들은 삶의 비애와 설움이 주조를 이루는데 이는 ‘깨어 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제 3기는 4. 19 이후부터 타계할 때까지의 시로, 김수영은 4. 19라는 역사적 현실을 기점으로 그의 시편들은 새로움을 모색하는 현실 인식 속에서 ‘자유’를 노래하게 된다. 또한 그의 시의식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갈 주체가 곧 ‘민중’ 임을 알게 되고, 그것을 ‘거대한 뿌리’라는 민중의 실체를 형상화내기에 이른다. 김수영은 사랑과 혁명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문학을 통한 사회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였으며, 온몸으로 사회 현실에 맞서 정직하게 시의 길을 찾아간 시인이었다.

      • 사회복지학 전공대학생들의 전공 선택 동기와 진로에 관한 연구 : 전북지역 3개 대학 사회복지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김수영 원광대학교 2008 국내석사

        RANK : 247647

        대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공 선택 과정은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분야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부합되는 전공을 자율적으로 선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입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할 전공에 대한 구체 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자신의 입학시험 성적과 고등학교 내신 성적에 맞추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맞 는 전공을 선택하고 명확한 진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청년기의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 중 하나이다. 이 연구는 전북지역(전북대, 전주대, 원광대)에 재학 중인 사회 복지학 전공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선택 동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대한 조사 분 석을 통해, 그 요인들이 졸업 후 진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한 가장 큰 동기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가 가장 높게 나타났 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회복지 전공에 대해 만족하냐는 질문에 과반수이상이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학교 졸업 후 진로방향을 살펴보면 기관 및 시설 취업이 가장 높게 나 타났으며, 사회복지전담공무원시험 준비 ,일반 공무원시험 준비 ,아직 결정 못함, 학업 연장, 전공과 관련 없는 취업, 기타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과반 수 이상이 졸업 후 전공을 살린 취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기관 및 시설 취업의 경우 1학년에 비해 2, 3, 4학년으로 갈수록 더 높게 나타났다. 학교생활 만족도를 보면 학교생활에 만족할수록 기관 및 시설에 취업하고자 하는 비 율이 높았으며 학교생활의 만족도가 낮을수록 일반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응답 률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학교생활의 만족도가 높은 학생이 전공을 살려 현장에서 일 하고자 하며, 만족도가 낮은 학생은 전공과 상관없이 일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여 안 정된 직업을 갖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 선택 동기를 보면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흥미에 맞을 것 같아서처럼 자발적 으로 전공을 선택한 경우는 기관 및 시설에 취업하고자 하는 학생이 많았으며, 수능점 수에 맞춰서, 부모 주위의 권유처럼 비자발적으로 전공을 선택한 경우는 일반 공무원 시험 준비, 사회복지전담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전공만족도와 학과만족도가 높을수록 기관 및 시설에 취업하고자 하는 응답자가 많 았으며, 그 이유는 전공을 살려 현장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답변 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업가치관 만족도가 높을수록 기관 및 시설 취업이나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의 만족도 에 따라 전공을 살려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갖겠다는 의지기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 인다. 진로선택 만족도가 높을수록 전공 관련하여 기관 및 시설 취업을 희망하는 응답 자가 많았으며, 그 이유는 본인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전공을 살려 현장에서 사회복 지사로 일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진로문제를 살펴보면 대학의 사회복지교육에 있어 ‘사회복지 사는 무엇을 하는 전문직이며 어떠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관해 정체성을 분 명히 확립하고 학생 스스로가 전문가로서 역할을 부족함 없이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이직률이 높은 것을 감안하여 볼 때 낮 은 보수규정, 인사정체 등 사회복지사의 근로의욕 감퇴와 정체성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인사문제와 적정보수 지급을 위한 국가의 지원과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College students can make the best choice of their major by being exposed to diverse fields of learning. They are able to make the right decision in consideration of their own interest and aptitude by experiencing various academic fields. But Korean students who enter college are bound to make the most important choice just based on their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scores and high school grades without knowing well about different major fields of study. One of the most vital developmental tasks for individuals in adolescence is making the right choice of major and mapping out specific career plan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what affected the major selection of social welfare majors in three different universities in north Jeolla province, including Jeonbuk National University, Jeonju University and Wonkwang University, in a bid to find out how the motivation factors influenced their post-graduation career. The major findings of the study were as follows: As for motivation of major choice, the largest number of the students chose social welfare since that seemed to be appropriate to their aptitude. More than half the students were satisfied with their major. Concerning post-graduation career, the greatest group planned to find a job in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The second largest group made a preparation to tale an examination to become government workers in social welfare posts, and the third greatest group was going to take an examination to be civil servants in general posts. The fourth largest group was undecided yet, and the fifth greatest group planned to study more. The sixth largest group was going to get a job unrelated to their major. More than half wanted to find a job related to their major, and the students who were in the upper academic year hoped to work at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In terms of satisfaction level with school life, those who were better satisfied wanted more to be employed by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and the students who found their school lives less satisfactory were more going to take an examination to be government workers in general posts. The satisfied students wanted to stay in the field by utilizing their major, and the unsatisfied students hoped to get a stable job within the government regardless of their major. Concerning the influence of the motivation of major selection, those who made the decision at their own option in light of their aptitude or interest wanted more to work in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and the others who chose the major unvoluntarily due to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scores or through the advice of others including parents were more going to take an examination to become government workers in general or social welfare posts. The students who were better satisfied with their major and department wanted more to work at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because they hoped to contribute to social welfare by taking advantage of their major. Those who were more contented with their work values wanted more to work at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or to become civil servants in social welfare posts. It seemed because their work values urged them to get an occupation related to their major. The students who were more gratified with their career choice hoped more to be hired by social welfare agencies or facilities, because they wanted to serve as social workers according to their major. The findings of the study illustrated that in terms of career, social welfare majors should be educated to build their identity as social workers by waking up to what social workers are and what sense of calling they should have. At the same time, they should strive to perform their expected roles perfectly. Given the high turnover rate in the social welfare sector, the government should try to improve current personnel administration and pay regulations that actually demotivate social workers and shake their identity.

      • 디지털마인드맵을 활용한 컴퓨터수업이 초등학생의 학습흥미도와 초인지에 미치는 효과

        김수영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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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초등 컴퓨터교육에서 디지털마인드맵을 활용한 컴퓨터 수업이 학습자의 학습흥미도와 초인지 향상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원시에 소재한 S초등학교 6학년 1개 학급 26명을 실험집단으로 선정하였다. 실험은 매주 1차시 정보재량시간을 이용하여 4차시에 걸쳐서 진행하였으며, 실험 사전․사후에 학습자들의 학습흥미도와 초인지 검사도구를 통하여 조사하였다. 디지털마인드맵을 활용한 수업이 실제로 학습자의 학습흥미도와 초인지 향상에 효과를 미쳤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면담을 통한 질적평가도 실시하였다. 검사도구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가지고 사전-사후 학습흥미도와 초인지의 평균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확인하기 위해 두종속표본 t검정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디지털마인드맵을 활용한 컴퓨터수업은 초등학생의 학습흥미도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초인지 향상 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면담결과로 미루어 보아 일정부분 초인지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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