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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사고와 시민 사회

        김도식(Doe Sik Kim) 철학연구회 2002 哲學硏究 Vol.58 No.-

        우리는 흔히 논리나 비판적 사고는 철학가(특히 분석철학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을 통해서 그러한 선입견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우리는 `논리`가 형식적인 측명과, `비판적 사고`는 내용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으나, `논리`와 `비판적 사고`가 이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정확히 구분되기 어려움을 보임으로써 이러한 통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비판적 사고가 일상적으로 유용할 뿐 아니라 건전한 시민 사회의 건설에 필수적임을 여러 예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바람직한 가치관의 형성에도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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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인문학’의 개념 분석

        김도식(Kim Doe Sik)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2011 통일인문학 Vol.51 No.-

        통일인문학 연구단이 수행하게 될 과제의 방향성은 ‘통일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 통일인문학이라는 영역은 새롭게 출범되는 것이기에 ‘통일인문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통일인문학’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뜻을 살펴보는 것이 주목적이며, 이러한 다양한 의미에 따라서 통일인문학 연구단이 나아갈 방향도 함께 제시될 것이다. 먼저 통일인문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려면 “통일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정치, 경제 및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통일의 필요성과는 다른 측면, 즉 문학, 역사 그리고 철학적 관점에서의 통일에 대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통일을 위해서 인문학이 준비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남북한의 분단이 가지고 온 언어, 역사, 사상, 문화 등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통일이라는 과업에 도움이 되려면 남북한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공통점이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교두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인문학의 연구는 통일을 위한 준비에 머무르지 않는다. 통일이 된 이후에 통합된 우리 나라에서의 인문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밑그림도 필요하다. 특히 분단이 가지고 온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는가도 통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주제이며 이에 대한 인문학적인 대안으로 문학치료를 제시할 수 있다. 이 역시 통일인문학 연구단이 수행할 수 있는 과제라고 여겨진다. 통일인문학의 영역은 남북한의 분단과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는 인문학의 영역을 통합하는 과제 또한 통일인문학 연구단이 수행할 수 있다. 문학, 역사 및 철학을 통합하고 이를 토대로 포괄적인 의미의 인문학을 새롭게 그려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이 끝나면, 남북한의 통일과 관련하여 진정한 의미의 한국학이 새롭게 출범하게 될 것이며 이 역시 통일인문학에 대한 연구가 맡을 수 있는 중요한 학문 영역이 될 것이다. The tasks of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depend on how to interpret the word ‘Tongil-Inmunhak’. Since Tongil-Inmunhak is a newly started academic research, we need to know the meaning of ‘Tongil-Inmunhak’. So, in this paper, I try to define various meanings of ‘Tongil-Inmunhak’, which, in turn, will provide a direction for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First of all, in order to begin the research for Tongil-Inmunhak, we need to ask ourselves from a humanities perspective whether the unification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is really a good thing for us. An answer to the question will shed light for a positive aspect of the unification, which is quite different from an answer by politics, economics or sociology. The answer naturally leads to how to prepare the unification from a humanities perspective. To help the unification in Korean peninsula, it is necessary to begin with identifying the difference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in the respect of language, history, philosophy and culture. But it is also desirable to focus on the common elements both Koreas share, because these common elements will be an important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Next step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can take is to draw an outline on how to proceed the research of humanities after the unification is achieved. Especially the topic of how to cure the psychological wound the division of Korean peninsula brought about is very important for those whose interest is unification. Literature therapy can be an alternative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can offer. Lastly, the interest of Tongil-Inmunhak should not be restricted to the division of South and North Korea. Humanities nowadays is too much divided into small pieces.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can contribute by combining these divided area, such as language,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After the project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in humanities, a new era of ‘Korean Studies’ which include both South and North Korea will begin. That is also what the Research Center for Tongil-Inmunhak can take as their main project in the future.

      • KCI등재후보

        왜 우리는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가?

        김도식(Kim Doe Sik)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0 통일인문학 Vol.50 No.-

        환경윤리학의 주된 문제 중 하나는 “왜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만 하는가?”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서구의 윤리학자들이 자연이나 동물과 같은 인간이 아닌 대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철학자들이 그 당시 자원 고갈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이유는 과학의 발달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석유의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이 석유의 대체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자원 중에는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공기의 오염이나 오존층의 파괴는 과학이 극단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환경 문제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은 환경의 파괴가 해를 끼치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환경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환경의 문제가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음에도 우리는 왜 환경을 지켜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우리가 환경이나 자연에 대해서 가졌던 기회를 우리의 후손들도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공리주의에 따르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경우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의 수보다 미래를 살게 될 후손의 수가 더 많을 것이므로 환경의 파괴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현재 우리에게 얻어지는 이득보다 더 크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입장은 우리가 자원을 모두 소비하고 오염된 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옹호하지 않는다. 칸트의 윤리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자원을 소모하는 것은 보편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후손들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이익을 취하는 것을 우리의 이성이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적용하여 환경을 보호하는 하나의 방법은 ‘나’라는 개념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즉 ‘나’의 개념을 현대의 타인들 뿐 아니라 미래에 태어나게 될 후손들까지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지나친 요구일 수는 있으나, 이것이 우리의 환경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One of the main issues in environmental ethics is "Why should we care about environment?" Before 1970s, western ethicists did not pay attention to non-human beings such as nature and animals. A reason why philosophers did not ask the question is that we assumed industrial progress is fast enough to cover all of our needs. For example, we know that petroleum is not unlimited. Still people firmly believe that scientists will make a substitute when petroleum is exhausted. Among our environment, however, there is something which cannot be easily substituted. Air pollution, the destruction of ozone layer and so on cannot be replaced by something else even if our science is extremely developed. An interesting fact about environment is that it is not we that are affected by these bad side effects. Rather it is our descendents who will be harmed. Then our question becomes, "Why should we care about the environment even if harming our nature would not affect us?" My claim is that it is our obligation to give the same opportunity to our descendents for their right to the nature. I assert this claim on the basis of utilitarianism. According to utilitarianism, an act is morally right if and only if it produces the best possible utility compared to the alternative actions I could choose. My assumption is that the number of our descendents must be bigger than the number of people living now. Then the utility produced by our descendents must be bigger than the utility when we used up our resources. Also Kant will agree with my claim since using up our resources cannot be universalized. Our reason cannot will a state in which everyone is trying to achieve one's own profit at the cost of one's descendent's harm. This is the reason why we should preserve our environment. I think one of the ways to preserve our environment is to enlarge the concept of 'I'. And we have to expand the concept of 'I' not only to the other people living together with us, but also to the people who are yet to be born. This might be asking too much to a selfish person. But it seems to be the best solution to save our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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