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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과 탈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전쟁과 평화, 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김도민 강원사학회 2019 江原史學 Vol.0 No.32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Korean nationalism in the period of the Cold War and the Post-Cold War era, and aims to present the direction of Korean nationalism around the issue of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Korean nationalism has sometimes pursued horizontal solidarity among the minorities as a resistance nationalism, but it has also functioned as a vertical discrimination power of a strong and superior nationalism. As the South-North Korea relations and North Korea-America relations change in 2018, the issue of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attracting attention. Korean nationalism should be reconstructed for horizontal solidarity while reflecting on the history of vertical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And the value of the horizontal solidarity must be peace and human rights. 본 논문은 한국 민족주의가 냉전과 탈냉전 시기 어떠한 형태로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민족주의가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자 했다. 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1960년대박정희 정권 시기를 살펴보았다. 첫째 이승만정권은 한국 민족주의의 반공적 성격을 혈연적, 폐쇄적인 단일 민족주의 특성과 연결 시켰다. 그러나 한국 지식인들은 냉전의 한복판을 살았음에도 약소민족에 대한 연대와 반식민, 반전 사상을 노래하기도 했다. 둘째 1960년대 박정희정권은 민족 주체성, 한국적 민족주의를 주장했으며 반면 저항세력은 한일협정반대를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은 가짜 민족주의이며 자신들이 진정한 민족주의 세력임을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일협정 반대 세력들은 1965년 베트남파병에 대해침묵함으로써 약소민족과의 연대성을 상실했다. 탈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는 1990년대와 2000년 전후를 중심으로살펴보았다. 첫째 1990년 전후 탈냉전의 도래와 함께 한국 민족주의는 고양됐는데, 특히 반미(反美)와 반일(反日)의 형태를 보였는데 이는 모두 ‘가부장’ 성격을 지니고있었다. 즉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는 등장했음에도 그들은 남성적, 반일 혹은 반미 민족주의라는 맥락에서 주목받았을 뿐, ‘위안부’ 시스템을 낳은전쟁체제와 여성인권은 한국 민족주의의 고양 속에서 외려 배제되었다. 둘째 2000년을 전후하여 평화와 인권을 중심에 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아래로부터의 평화를 향한 새로운 흐름은 문재인 정권이 이전 정권과 달리2018년 평화와 번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즉 평화와 인권, 차별없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기존의 가부장적, 발전주의적, 혈연적, 폐쇄적이던 한국 민족주의를 아래에서부터 변화시키고 있었다. 2018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변화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가 주목받는 현재, 한국 민족주의는 수직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수평적 연대를 위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평적 연대의 가치는 평화와 인권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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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의 초기 서독 군사유학 경험과 그 영향

          김도민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20 군사 Vol.- No.115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experiences of the early Korean military officers who went to study in West Germany in the 1960s and the impact of their experiences on the Korean military. Under the agreement between Korea and Germany in 1964, from 1965, the 2 cadets of Korea military academy sent to West German Army Academy as a status of military cadet, and at the same time, officers attended the West German Command and Staff college. Looking at the related research papers, there is only research on the study of Korean military to the United States. In the situation where there was little literature on Korean military's study abroad in West Germany, this article revealed the specific types and experiences of military study in West Germany by analyzing the oral records related to the Korean military collected by the Contemporary Korean Oral History Research Group of the Institute of Korean Studies, Kyujanggak Korean Studies Institute,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the early days, 10 ROK military officers were dispatched to three locations, including a military academy, a commanding and staff college, and a general university in West Germany. Furthermore, this article revealed how ROK military West German students tried to apply the German military system within the Korean military since the 1980s, when military officers or officers at the level of military officers experienced military study abroad in West Germany and promoted up to become a Korean military general. For example, the German mission-based tactics were included as an FM(Field Manual) and the German decree on military service were not only translated and but applied to some ROKA units. Not only did some of the Korean military officers who had experienced studying in West Germany studied American military at the same time, they were also able to confirm som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e American military system and German one. It is expected that the concrete situation of West German military study by the Korean military will be restored through the voices of experienced peoples, as well as fill the gap of histor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Germany 본고는 1960년대 서독으로 군사유학을 갔던 초창기 한국군 장교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이 한국군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1964년 한국과 독일 간 협정에 따라 1965년 한국군은 처음으로 서독에 육군사관학교 생도 2명을 파겼했으며, 이후 한국군의 위관급 및 영관급 장교들도 서독 지휘참모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동안 한국군의 해외 군사유학에 관련한 연구는 미국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본고는 처음으로 한국군의 초기 서독 군사유학의 양상과 실태를 밝히고자 했다. 특히 본고는 한국군의 서독 군사유학 관련한 문헌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단이 수집한 한국군 관련 구술자료를 활용하여 구체적인 서독 군사유학의 유형 및 경험을 밝힐 수 있었다. 초창기 한국군 장교들의 서독 군사유학은 육군사관학교·지휘참모대학·일반대학 등 세 곳에 10명 남짓 파견되는 형태를 보였다. 특히 한국군의 사관생도이거나 위관급 수준의 장교들이 초기 서독 군사유학을 경험한 후, 1980년 전후부터 한국군 내에서 장성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들은 한국군 내에 독일식 군사 시스템을 적용하려고 했다. 특히 독일식 임무형 전술이 교범 내용으로 중요하게 포함되거나 독일군의 복무규율이 그대로 번역되어 한국군 일부 부대에서 적용되는 사례 등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독일 군사유학을 경험한 한국군 장교들 중 일부는 미국 군사유학도 동시에 했다. 따라서 미국과 서독의 군사유학을 모두 경험한 인물들은 미국식 시스템과 독일식 시스템의 비교 및 평가하는 구술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본 연구는 기존에 전혀 밝혀지지 못했던 한국군의 초창기 독일 군사유학의 구체적인 실태를 실제 경험한 구술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복원했을 뿐 아니라, 군사적 차원의 한독관계사의 양상을 밝힘으로써 기존 한독관계사 연구의 공백도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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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고갈, 자기정당화 및 해석수준이 섭식행동에 미치는 영향

          김도민,이민규 한국심리학회 2021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Vol.2021 No.8

          연구목적 본 연구는 과도한 섭식행동의 위험 및 보호 요인을 자기통제의 관점에서 알아보기 위해 자아고갈, 자기정당화 및 해석수준이 섭식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확인하였다. 연구방법 경남지역 20대 여성 119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은 2(자아고갈: 고/저) x 2(자기정당화: 유/무) x 2(해석수준: 상위/하위)로 3개의 독립변인이 모두 집단 간 변인인 삼원요인설계로 계획되었다. 섭식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서, 배고픔, BMI 등의 공변인이 실험 전에 측정되었다. 자아고갈 조작을 위해 “e-crossing”과제를 활용하여 자아고갈 고조건에게 자동적 반응을 억제하도록 하였다. 자기정당화 조작을 위해 자기정당화 유조건에게 자신의 과제에 대한 기여와 노력을 크게 지각하도록 유도하였으며, 해석수준 조작을 위해 구체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점화과제를 활용하였다. 과제 실시 후, 참가자들은 10분간 음식을 섭취하고, 조작점검 문항이 포함된 설문지를 작성하였다. 연구결과 첫째, 배고픔을 제외한 모든 공변인들은 섭식행동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배고픔 역시 상관계수가 낮게 나타나 공변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둘째, 자아고갈, 자기정당화 및 해석수준의 삼원상호작용효과는 유의하였으며 (F(1,111)=4.25, p<.05).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단순 상호작용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하위해석수준에서는 자아고갈과 자기정당화의 상호작용효과가 유의하였으나(F(1,111)=10.34, p<.01), 상위해석수준에서는 두 변인 간 상호작용효과가 유의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F(1,111)=.05, p>.05). 이에 따라, 단순단순주효과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하위해석수준에서 자기정당화를 하면 자아고갈 고집단이 저집단 보다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였으나 자기정당화를 하지 않으면 자아고갈 수준에 따른 음식섭취량의 차이가 없었다. 반면, 상위해석수준에서는 자기정당화 유/무 조건 모두에서 자아고갈 수준에 따른 집단 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결과는 자아고갈과 자기정당화의 상호작용으로 섭식조절에 취약한 상태가 되더라도 상위해석수준을 통해 적절한 섭식조절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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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닛 모듈러 공법의 특성요인 분석 및 시장진출전략

          김도민,이정석,주형,재준,Kim, Domin,Lee, Jeongseok,Kim, Juhyung,Kim, Jaejun 한국건설관리학회 2014 한국건설관리학회 논문집 Vol.15 No.1

          Modular system is a construction method which installs factory-manufactured units on site. It enables to reduce the duration and improve the quality of the construction. Nevertheless, the unit modular system is restrictively applied to domestic market such as barracks, education facilities, low-rise housing. To motivate the application of unit modular system, this study figures out important attributes of the unit modular system in a domestic construction market. Finally this study suggest marketing strategies and influential factors by Importance-Performance Analysis(IPA) based on those attributes focusing on the apartment housing. As a result, Unit modular System in the domestic market has strength on constructability, but it show weakness on usability and economic aspects which are more important in apartment housing market. Thus an improved technology in usability and economic aspects are required to activate the market. 유닛 모듈러 공법은 공장생산에 의한 공기단축, 품질관리, 친환경성 등 기존공법과 다른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는 군 병영시설, 학교, 소형주택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모듈러 공법의 시장 확대 및 활성화를 위해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특성요인들에 대한 중요도 및 기술수준을 IPA 기법을 통해 분석하여, 모듈러 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분석결과 유닛 모듈러 공법을 공동주택 시장에 적용함에 있어 사용성 및 경제성 측면의 특성요인들이 중요하게 평가되었으나, 현재 기술수준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시공성 측면의 특성요인들이 높게 나타났다. 유닛 모듈러 공법을 공동주택 시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시공성 측면의 높은 기술수준을 바탕으로 사용성, 경제성 측면의 특성요인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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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중후반 남·북한의 ‘중립국’ 외교의 전개와 성격: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김도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0 아시아리뷰 Vol.10 No.1

          This research is a study on the diplomacy of South and North Korea towards ‘neutral countries’ during 1950’s. The findings of this research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rom 1954, the Third Forces emerged, advocating anti-colonialism, peace and neutralism, and refusing to belong to the two camps of the Cold War. In 1957, North Korea entered into trade agreements with major Asian and African neutral countries (India, Indonesia, Burma, Egypt, Iraq, etc.). By contras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busy criticizing neutral countries that were leading neutralism and peace movement, because it regarded neutralism and peace movement that arose from 1954 as offensives by the communist camp.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owever, had to face a considerable drop in the percentage of votes in its favor in the 1957 UN General Assembly vote on the Korea issue. Many of the abstentions were caused by the so-called new independent nations entering the United Nations, claiming ‘neutralism.’ As a resul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ent the first friendly delegation to Asia and Africa to resolve the voting ‘crisis’ on the Korea issue at the UN General Assembly. In this wa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passive in its diplomacy towards neutral countries, acting under pressure from the UN diplomatic crisis. 본고는 1950년대 냉전의 최전선이자 ‘주변부’이던 남·북한이 또 다른 냉전의 주변부이자 탈식민 신생국이던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의 ‘중립국’들에 대해 어떠한 대외정책을 펼쳤는지를 밝혔다. 1956년 국내외의 복잡한 상황이 정리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한 북한 지도부는 1957년부터 비사회주의 ‘중립국’들에 대한 ‘양자외교’를 펼쳐 나갔다. 그 결과 1957년 북한은 처음으로 비사회주의 ‘중립국’ 인도네시아·인도·버마·이집트 등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남한 정부는 1957년 커져가는 유엔발 외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친선사절단을 ‘중립국’이 포함된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에 처음으로 파견했다. 흥미롭게도 남·북한 모두 1957년 방문한 동남아시아 및 중동 지역의 탈식민 중립국들에서 식민경험에 주목했다. 이처럼 1957년 실행된 남·북한 ‘중립국’ 외교의 시작은 북한이 무역협정 및 문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반면 남한은 유엔에서 발생한 위기에 대응하는 수동적 성격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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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ckling analysis of thin-walled box beams under arbitrary loads with general boundary conditions using higher-order beam theory

          김도민,최수민,장강원,윤영 대한기계학회 2019 JOURNAL OF MECHANICAL SCIENCE AND TECHNOLOGY Vol.33 No.5

          When a higher-order or generalized beam theory is used for the buckling analysis of thin-walled beams, the analysis accuracy critically depends on the number and shapes of the cross-sectional modes associated with warping and distortion. In the study, we propose to use the hierarchically-derived cross-sectional modes consistent with the higher-order beam theory for the analysis of pre-buckling stress and buckling load. The proposed formulation is applicable to any box beams subjected to arbitrary loads and general boundary conditions. We demonstrate the effectiveness of the proposed method by performing buckling analyses for axial, bending, torsional, and general loadings. Length-to-height ratios of the beams are also varied from 1 to 100. If up to fifty cross-sectional and rigid-body modes are employed, the calculated buckling loads are found to match favorably those predicted by the shell finite element analysis. In that a unified buckling analysis under general loads is developed for box beams, the present study is expected to contribute towards new possibilities for the efficient buckling analysis of more general box beam structures involving several joints.

        • KCI등재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규와 미성년자노동보호법

          김도민(Domin Kim) 역사비평사 2020 역사비평 Vol.- No.132

          This research is a study on the Child Labor Law in the South Korea from 1945 to 1947. Frist, this study revealed the recognition of child labor by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nd the concrete enactment process of enacting and implementing the Child Labor Law in September 1946. In addition, this study demonstrates the historical and institutional process of enactment and a series of discussions and enactment of the “Child Labor Law” in 1947 by South Korean Interim Legislative Assembly. The U.S. military government put forward ‘the theory of civilization’ as the purpose of the Child Labor Law, and the South Korean lawmakers proposed ‘the theory of reconstruction of an independent state.’ Each of them had different goals and objectives, but both enacted and implemented the Child Labor Law, conscious of the “most advanced” labor legislation implemented in North Korea. In the end, it was the Child Labor Law that was the ‘composite product’ created by Eastern and Western civilization, the regime competition of the Cold War and division, and the economic situation during the US military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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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저 : 진정수면제 중독 환자의 처방과에 따른 처방 및 임상양상 비교

          김도민 ( Do Min Kim ),박원빈 ( Won Bin Park ),임용수 ( Yong Su Lim ),진주 ( Jin Joo Kim ),장재호 ( Jae Ho Jang ),장지용 ( Jee Yong Jang ),양혁준 ( Hyuk Jun Yang ),이근 ( Geun Lee ) 대한임상독성학회 2014 대한임상독성학회지 Vol.12 No.2

          Purpos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compare prescription patterns and clinical features according to clinical departments in sedative-hypnotic intoxication. Methods: This was a retrospective study of histories, substances of poisoning, acquisition routes, clinical courses, and outcomes of patients treated for acute intoxication in a single emergency medical center from January, 2011 to December, 2013. Results: A total of 769 patients were treated for acute intoxication, 281 patients ingested sedative hypnotics during the study period. Among 281 patients, 155 patients were prescribed by psychiatric department and 80 patients were prescribed by non-psychiatric department. Benzodiazepines were more likely to be prescribed by psychiatrists, and zolpidem was preferred by non-psychiatrists (p<0.001). Non-psychiatrists were more likely to prescribe short acting benzodiazepines than psychiatrists (p<0.001). However, there was no statistically significant difference in the clinical outcomes, including prevalence of admission to ICU, ventilator care, and length of stay in ICU. In patients prescribed by non-psychiatrists, there were more patients prescribed without psychiatric diagnosis and diagnosed as major depression disorder after hospitalization. Conclusion: To promote rational prescribing of sedative hypnotics, proper psychiatric evaluation should be performed before prescribing, and educational programs including the contents of interactions and side effects of sedative hypnotics are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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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헝가리 사태에 대한 남한의 인식과 대응

          김도민(Do-min Kim) 역사비평사 2017 역사비평 Vol.- No.119

          South Korea, at the forefront of the Cold War, wanted to directly intervene in the anti-Soviet uprising that began in Hungary in October 1956 even though it was geographically remote. 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the newspapers wanted to expand the ‘anti-communist free-world’, starting with the anti-Soviet uprising in Hungary. So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ctively sought to raise funds for the Hungarian people and to support Hungary’s stance. Furthermore, the Hungarian situation had a direct impact on the Korean peninsula.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newspapers wanted the people of North Korea also to rise in revolt. Interestingly, they searched for the reason why North Korean compatriots could rise from the ethnicity of the Korean people who had struggl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On November 4, 1956, the Soviet invasion of Hungary brought about the crisis of war in the Korean peninsula. While the free world was stymied by the Soviet invasion, there was a fear that North Korea might resume the Korean War. is crisis triggered o the attempt by the ruling party in South Korea to enact ‘a law on the provision of state protection’ for social control. On the other hand, the opposition party appropriated the same Hungarian situation as a demonstration of people’s resistance against dictatorship and anti-democratization and lack of freedom. e 1956 Hungarian revolution can be seen as a dynamic demonstration of the process of cross-exchange between the Cold War, post-colonialism and division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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