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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翊聖의 金剛山 遊記를 통해 본朝鮮 後期 遊記의 文體的 多變化

        김광년 한국한문학회 2020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77

        In this article, I analyzed Shin Ik-sung(申翊聖)'s travel essays to Mt. Geumgang to identify its stylistic features, and described in relation to the stylistic diversification of travel essays. After visiting Mt. Geumgang, Shin Ik-sung created a collection of poems, Dongyurok(東遊錄), and travel essays, Geumgangsan naewoegi(金剛山內外記) and YuGeumgang sogi(遊金剛小記). Geumgangsan naewoegi summed up the geographical facts about Mt. Kumgang. YuGeumgang sogi expressed Shin Ik-sung's feelings and experience of traveling to Mt. Geumgang in the form of a Biji(筆記). The two works have distinct personalities. His creative attitude is based on a new of style, and it was the result of various acts such as the succession of the academic tradition of the family, the taste of reading, and the influence of literature in the Song(宋) and Ming(明) Dynasties. As a result, I think the literary experiment of Shin Ik-sung was succeeded to later generations and served as the basis for the variations of the travel essays. 이 논문은 樂全堂 申翊聖(1588-1644)이 金剛山을 유람하고 남긴 산문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文體的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遊記 문체의 多變化 양상과 연관지어 설명하였다. 신익성은 금강산 유람을 통해 시집 東遊錄과 기문 「金剛山內外記」, 「遊金剛小記」를 창작하였다. 「금강산내외기」는 금강산에 대한 인문지리적 사실들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고, 「유금강소기」는 筆記體의 형식을 통해 금강산 유람 체험과 그에 따른 정감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서, 두 작품은 그 성격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러한 창작 태도는 신익성의 뚜렷한 문체 의식에 기반하는 것이며, 그것은 가학의 계승에 따른 문체 의식과 독서 취향, 宋代 및 明代 등 중국 문예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신익성이 감행하였던 문체 실험과 그 결과는 후대에까지 계승되어 17-18세기 산수유기의 다양한 변주의 근간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된다.

      • 성남시 드론 열화상 카메라 관측 자료를 이용한 기온 추정 사례 연구

        김광년,조용한,이윤곤 한국기상학회 2021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21 No.10

        최근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발생이 급증한 폭염과 고층건물, 아스팔트로 인한 도시 열섬현상 등으로 도심지의 기온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지상기상관측망을 통해서 기온, 습도 등의 기상요소를 관측하여 제공하고 있으며, 지상기상관측망은 종관기상관측장비(ASOS)와 방재기상관측장비(AWS)를 이용하여 전국 590개소의 관측소로 구성되어있다. 지상기상관측망은 지점기반의 관측자료를 제공하며 관측소 간의 거리가 약 13km이기 때문에, 도심지 대기 온도의 분포를 파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드론은 처음에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지금은 환경, 기상, 농업,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기상 분야에서 드론은 다른 기상관측 장비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관측지점에서 정밀한 관측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성남시에서 2021년 7월 30일부터 8월 27일 사이에 15일간 관측한 열화상, 지표면 온도 자료를 사용하여 기온을 추정하고자 한다. 성남시 현장 관측 통해 얻어진 81개 지점의 열화상 자료를 지표면 온도로 변환하여 이용하였다. 변환된 지표면온도와 드론으로 2m 고도에서 관측한 기온을 통해서 지표면 온도-기온 선형회귀 경험식을 도출하였다. 또한 드론관측 기반 경험식과 비교를 위하여 위성관측 기반 성남시 지표면 온도-기온 경험식을 도출하였다. 위성자료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낮 시간동안 VIIRS L2 750m 해상도 지표면 온도자료를 사용하였다. 위성관측 기반에서는 성남시 AWS 자료를 이용하여서 드론관측 자료를 제외한 위성관측 기반 성남시 지표면 온도-기온 경험식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공간해상도에 있어서 드론관측 기반 자료가 성능이 높음을 보였으며, 건물이 밀집한 도심지의 온도 변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이점을 보였다. 추후 자료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면 정확한 분석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며, 본 연구를 통해서 도심지에서의 드론 열화상 관측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향후 다양한 방면에서 드론 운용이 늘어난다면 열화상카메라를 통해 도심지의 지속적인 기온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KCI등재
      • KCI등재

        奎章閣의 1781년 ― 『內閣日曆』을 통해 본 抄啓文臣 應製의 실상 ―

        김광년 동양고전학회 2021 東洋古典硏究 Vol.- No.85

        이 논문은 奎章閣의 일지인 『內閣日曆』의 기사 중 1781년(정조 5 신축) 기사를 사례로, 1년 동안 규장각 抄啟文臣의 제술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졌는지 그 실상을 확인하고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초계문신의 計劃에 대해서도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관련 사실들을 새롭게 밝혀내고자 하였다. 1781년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는 이 해가 초계문신 제도가 설치되어 시행된 기념비적인 첫 번째 해이며, 이 해에 지어진 초계문신의 제술 작품들이 13년 후인 1794년(정조 18 갑인)에 『奎華名選』으로 묶여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초계문신 제도 자체는 사가독서 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성립되었지만 제술 규정은 文臣 月課 제도에 토대를 두었다. 초계문신은 매달 2차례 제술을 하고 평가받는 강도 높은 수련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는 연말에 분야별로 합산하여 論賞하였다. 성적 부여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준용하되 次上에도 점수를 주는 등 일부 차이를 보였다. 초계문신 과시에서 시행된 계획은 성적 우수자에게 그에 합당한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초계문신들의 학습 의욕을 고취 및 유지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향후 내각일력에 수록된 다양한 초계문신 제술의 내용들을 좀더 체계적, 심층적으로 분석한다면 초계문신 제도 및 조선후기 문신 課試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article, I analyzed the reality and clarified the meaning of the 1781 article in the contents of Naegagillyeok(內閣日曆) as an example of what form the Chogyemoonshin(抄啟文臣)'s writing test was conducted over a year. In addition, by closely analyzing the contents of Kyehoek(計劃), which settles Chogyemoonshin's one-year writing test, I tried to uncover new facts that were not previously known. The reason for the special attention in 1781 was that this year was the first year the Chogyemoonshin system was established and implemented, and Chogyemoonshin's works built in this year were published 13 years later in 1794 in Kyuhwamyeongseon(奎華名選). The Chogyemoonshin system itself was established based on the Sagadokseo(賜暇讀書) system, but the writing test regulations were based on the Wolgwa(月課) system. The Chogyemoonshin had to undergo intensive training, which was evaluated twice a month after taking a writing test, and the results were summed up by field at the end of the year and awarded. In terms of performance evaluation, the regulations of Gyeonggukdaejeon(經國大典) were applied mutatis mutandis, but there was a difference in that it gave points to grade Chasang(次上). A performance evaluation and Kyehoek, conducted in the Chogyemoonshin composition test, were effective in inspiring and maintaining Chogyemoonshins' motivation to learn by providing appropriate benefits to those with excellent grades. In the future, a more systematic and in-depth analysis of the contents of various Chogyemoonshin writing tests recorded in Naegagillyeok will deepen the understanding of the Chogyemoonshin system and tests for servant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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