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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태준 中央大學校 韓國藝術硏究所 1999 中央大學校 藝術大學 創論 Vol.18 No.-
지금까지 나온 한국 현대시의 전개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김소월과 한용운으로 대표되는 1920년대의 시의 문학적 성취도를 펌하하고,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일련의 시를 감각적으로 수용한 태도이며, 주체적 성찰의 시각을 결여한 것이다. 김소월과 한용운은 여성을 화자로 삼아 임상실의 사태를 극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이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시적 완성도에서도 모더니즘 시가 차지한 자리에 못 미칠 것이 없다. 이에 본고는 1920년대와 30년대 시단의 흐름과 주요 시인들의 시적 성과를 분석하면서, 1920년대가 한국 현대시의 자설적 생성기반을 마련하고 시적 미숙성을 극복하기 시작한 시기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진전시키고자 한다. 3ㆍ1운동 이후 우리 문학은 순문학으로 전환하면서 동인지의 속출과 작가층의 확대를 가져왔다. 곧 이광수류의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문학엔 문학 자체의 목적이 있음을 선언하면서 「창조」 「백조」 「폐허」등을 중심으로 젊은 시인 작가들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시의 경우 1915년 이후 활발하게 나타난 신시운동을 통하여 자유시형식이 꾸준히 모색되었고 1920년 이후에는 그 완전한 정착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1919년 이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던 한시ㆍ가사ㆍ시조ㆍ국문풍월ㆍ창가ㆍ신체시등의 갈래가 서서히 재정리되면서 자유시 하나로 남게 된 사실을 뜻하는 것이었다. 특히 3ㆍ1운동 이후 등장한 신문ㆍ잡지는 현저히 시에 대한 경사, 그것도 자유시에 대한 경사를 보여준다. 김용직 교수는 이 같은 시의 경사를 당시 소설의 상대적 미숙, 전통적인 시 선호 경향, 신물ㆍ잡지 편집인들의 시적 취향, 당국의 사상통제에 의한 검열통과의 용이함 등으로 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이러한 시 경사는 위와 같은 원인 이외에도 시가 갈래의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파편성ㆍ도구성 등을 암묵리에 인식한 소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