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夏目漱石の 「 草枕 」にぉける旅

        金泰淵 慶州大學校 2005 論文集 Vol.18 No.1

        소세키의 「풀베게」는 현대의 물질문명에 지친 한 화공(画工)이 도원향을 찾아 여행을 하는 이야기이다. 「 풀베게 」와 「도원향」과의 구조상의 차이는 우선 선경(仙境)에의 길이 「도원향」에서는 배로 가는 길이었지만, 「풀베게」에서는 고개를 넘어가는 산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나코이로부터 나올 때에는 들어 갈 때와 달리 배를 타고 강을 내려오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바닷가에 면해 있는 나코이로부터 배를 타고 강을 내려온다는 모순은 소세키가 작품을 발표한 때부터 논의되고 있던 문제로 소세키의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의 찻집과 나코이의 여관은 10리 정도의 가까운 거리임에도 화공이 온천여관에 도착하자 저녁 8시가 되어있었다는 문제는, 고개를 넘을 때의 안개비로 덮힌 몽롱한 풍경묘사와 온천여관의 미로와 같은 구조에 대한 애매한 묘사로 부터 생각해 볼 때, 전체적인 분위기를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구조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깔린 저녁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화공은 비속에서 현실세계와 선계(仙界)인 나코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의 찾집에 도착한다. 그 찻집은 선계와 속계의 중간에 위치하는 입구로 거기에는 선계에의 안내역으로 어울리는 노파가 있어, 그 노파로부터 선계의 고아(古雅)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화공이 나코이로부터 나오는 곳은 강을 따라 내려온 마을의 역이었다. 즉 고개에서 시작해 역에서 끝난 선계에의 여행은 물과 함께한 [애매한 회색]의 세계인 것이다. 이 애매함은 꿈과도 통한다. 해변에 면한 곳이면서도 역까지 강을 내려온다는 구조적 모순은 있지만, 선계로부터의 출구가 강을 내려오는 것으로 설정된 것은 이와 같은 물을 함께하는 소세키의 주도한 구조적 계산에 의한 것이다. 밤에 미로와 같은 나코이의 여관에 도착한 화공은 다음날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속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체험을 한다. 나미상은 꿈처럼 나타나 밤과 낮의 경계에 있는 듯한 기분을 재촉한다. 화공은 자신이 피하려 했던 세계, 즉 [인정(人情)] 세계는 [탐정]으로 대표되는 [끈질기고, 독살스럽고, 곰상 맞고, 게다가 뻔뻔스러운 보기 싫은 놈으로 메워져] 있는 번잡스런 현실세계였다. 때문에 화공이 원했던 세계는 그와 같은 [인정]을 [비인정]으로 바꿀 수 있는 세계였고, 그것이 [여행]이라는 비일상적 수단을 통해 이동한 나코이라는 도원경이었던 것이다.

      • 夏目漱石の作品におけゐ色

        金泰淵 경주대학교 1999 論文集 Vol.12 No.1

        우리들은 무의식 속에서 이미 시각을 통하여 인지된 [색채]로부터 얻은 질량감이나 好惡感 등의 정서를 신체 속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받아들여진 색은 언어의 분절화 과정을 통하여 [균질하게 보이는 색을 차이화하고 미세하고 다채로운 것으로 인도하는 한편 어떤 색을 추출] (飯村眞喜雄ㆍ安藤治, 「色彩と言語」, 『現代のエスプリ一色彩とこころ』 No.229 1986年8月號)하기도 한다. 그것은 색이라고 하는 감각이 갖는 상징적 특질의 하나이지만 이처럼 작가의 원체험으로서 경험된 하나의 기호적 상징성은 작품 속에 표현되어 지는 것에 의해서 이미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함축된 이미지를 담게 된다. 나쯔메소오세키는 색채의 면에 있어서 매우 흥미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의 색채는 다른 작가에 비해 결코 다용 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가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虞美人草』의 「紫」나 『それから』의 「赤」등의 표현은 문학작품 속에서 사용되어진 색채표현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초기의 단편 군에서 보여지는 현란한 색채는 전기 삼부작 무렵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門』을 쓸 무렵 부터는 위험한 세상을 대변하는 「赤」의 세계와, [자기본위]를 집요하게 추구한 결과, 결국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해 타자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는 「暗」의 세계와의 콘트라스트에 의해서 극명하게 그려져 간다. 소오세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색채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본 고에서는 우선 제1장에서 그의 『文學論』에 있어서의 색의 역할에 대한 언급을 개략적으로 살펴본 후, 제2장에서 주로 전기의 각 작품 속에서 색으로 표현되어진 인물유형과 배경으로서 채색되어진 자연묘사 등을 전후의 작품과의 관련성에 유의하면서 이야기의 서술구조속에 감추어진 색채적 복선을 살펴 보았다. 소오세키는 그의 『文學論』속에서 [색]이라고 하는 인간의 감각기능에 단순하게 접하는 경험이 문학작품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情緖와 風情을 만들어 내는가를 짧은 문장 속에서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주된 문학작품 속에서의 색채적 표현이 장면 설명이나 계절감 등을 나타내는 장식물로서 사용되어 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소오세키의 대다수의 작품은 그 속에 담겨진 다양한 색채표현에 의해서 읽는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를 상기시켜 그 색이 그대로 작품 속의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상태, 나아가서는 이야기 줄거리의 복선까지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전체의 사상에 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주도하게 구성되어져 있다.

      • 夏目漱石 『道草』における「家」の意味

        金泰淵 경주대학교 2001 論文集 Vol.14 No.-

        이전에 본 논자는 두개의[미치쿠사]에 관한 논문에서 주인공 겐조의 현실인식과 서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論하였다. 본 논문에서는[미치쿠사]에 있어서 주인공 겐조가 가지고 있는 집, 즉 가족이 갖는 의미를 논하였다. 나츠메소세키의[미치쿠사]에 있어서 서재는 사회나 인간관계를 피해 들어간 삭막한 은둔의 장소로, 결국 겐조는 금전적인 실용의 세계를 부정하여, 스스로 선택한[감옥]과 같은 서재에 틀어 박히는 것에 의해 외부의 세계와 단절되어 버렸다. 집에서의 일상에 있어서도 서재는 겐조가 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도피처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장면은 작품의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겐조는 안으로 감추어진 폐쇄적인 공간인 서재가 주된 생활공간인 반면, 그 부인은 밖으로 열려진 거실이 주된 생활공간이다.[미치쿠사]의 집에 있어서는 겐조와 부인이 갖는 이 두 공간이 두 사람의 긴장과 대립의 상징처럼 항상 대립적인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미치쿠사]를 통해서 보는 한, 겐조는 서재를 통한 자신의 생활에 충실할 뿐, 가족이나 사회와의 인간적 교섭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미치쿠사]에 있어서의 서재의 의미는 단지 폐쇄적인 공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단지 자신이 갖고 있는 따뜻한 정애를 막아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게 하는]겐조의 내적정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서재를 나와[길]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므로해서, [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외부로 개방하는 정서적 통로로서 준비되어지게 된다. 그 길을 통하여 그는 세상에 둘 밖에 없는 누나와 형이라는 자신의 혈육을 찾아 나선다. 그를 통하여 그가 발견하는 것은 과거에[혼자서 빠져 나온][피와 살]의 역사, 즉 혈족이라는 관계의 집요함이었다. 이는 그의 과거가 과거에 있었던 실제의 장소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고 하는 혈연적 공간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미치쿠사]에 있어서의 과거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방문하게 되는 타인의 집은 주로 그의 형제의 집이다. 그리고 그들의 집을 방문함으로 해서 주인공 겐조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하게 된다. 이는 집, 즉 가족이라는 것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상기시켜주는 것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 夏目漱石 『草沈』の空間 : 東京と那古井-俗界から仙界へ 동경과 나고이 - 속계로 부터 선계에

        金泰淵 경주대학교 1999 論文集 Vol.11 No.-

        나쯔메소오세키의 『草枕』는 명치39년 쓰여진 작품으로 현실세계에 염증을 느낀 화가가 출세간의 염원을 품고 도원경을 찾아 떠난다고 하는 기행문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화가 「余」가 본 東京은 항상 타인을 의식하여 자기의 영역을 침임해 오는 끈질기고 독하고 뻔뻔스런 인간들로부터 탐정당하고 있다고 위협을 느끼고 있다. 즉, 동경은 「人事葛藤」이 많은 20세기의 물질문명이 개인을 압박하는 속(俗)의 세계인 것이다. 소설을 통하여 읽는 한, 주인공인 畵工의 동경에서의 생활모습은 알 수가 없지만, 이와같은 사정으로부터 추측하건데 적어도 주인공 「余」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되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그다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같은 자신을 위협하는 침략적 세계, 탐정당하는 공포 등 현실의 문명세계, 말하자면 속계에 대한 혐오감이 쌓이면 쌓일수록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발로이다. 이와같은 『草枕』에 있어서의 東京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남의 약점을 분석해 침략해 오는 시련의 장소로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余」는 그러한 현실세계에 넌더리가 나 살기 쉬운 곳을 찾아 나고이(那古井)라는 비일상적 공간으로 이동한다. 상당히 험한 고개길을 어렵게 넘어 나고이의 迷宮과 같은 온천여관에 머문 「余」는 그 여관의 분위기에 취해 「분별」「집착」등 「인사갈등」의 현실세계로 부처 해방되어 꿈이라고도 현실이라고도 분별이 가지 않는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나고이의 미궁과 같은 여관에서 현실세계의 물질문명에 의해 분열되어 본연의 자기와 외부로부터 만들어진 자기와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나미(那美ちん)라고 하는 한 여인을 만난다. 「余」는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미친 사람」이라 평해지고 있는 나미상의 이상한 행동에 대하여 본성은 「내향적이고 상냥한」사람이라고 인정한 후, 생에 있어서의 결함, 즉 강요된 결혼의 파국에 의해서 밖으로 향하여 자신의 울분을 발산하려 했지만, 그 자체가 자신의 본래의 생의 모습과는 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본래의 「내향적이고 상냥한」모습으로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과 밖으로 향한 울분의 바란스가 무너져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자포자기의 방향으로 행동한 결과라고 파악하고 있다. 「余」는 東京의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을 일상속에서 의식되고 있는 대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응시하고 있었다. 「余」에 의해서 파악된 나미상의 현실세계에 대해서의 자포자기의 모습은 「余」자신의 동경의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草枕』의 「余」의 여행은 나고이라고 하는 비일상적 세계에서 나미상의 기행에 접해,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 역으로 평상시 의식할 수 없었던 현실세계에 있어서의 자신의 모습을 응시한다고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草枕』라는 소설은 이야기의 공간적 구조로부터 살펴 보아도 주로 동경과 나고이라고 하는 이항대립적 구조로부터 성립하고 있으며, 『草枕』의 이와같은 동경으로부터 나고이에의 여행은 의식으로부터 무의식으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의 역행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 夏目漱石の 『 夢十夜』の 「第一夜」 : 「第一夜」における人勿構造 「제일야」에 있어서의 인물구조

        金泰淵 경주대학교 2002 論文集 Vol.15 No.-

        나츠메소오세키의 「열흘밤의 꿈」중에서 「제1야」는 사랑의 이야기로 정설화 되어져 왔다. 그러나 「제1야」의 「자신」과 「여자」사이에는 남녀간의 절실한 사랑의 묘사도, 일반적으로 사랑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을 법한 감동도 없다. 확실히 「제1야」에는 남자인 「자신」의 의지나 희망과는 달리 죽어 가는 여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여자」의 죽는 이유나 사정 등의 설명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읽어 갈수록 「자신」과 「여자」의 관계나 두 사람의 애정의 모습 등도 전혀 이야기되어 지고 있지 않다. 「제일야」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면 우선 「자신」과 「여자」와의 죽음을 둘러싼 대립이 두드러진다. 이대립은 여자에 대한 「자신」의 의심이 「여자」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자신」과 「여자」가 실체로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라고 하는 「여자」가 직면하고 있는 사정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여자」의 죽음을 앞에 두고 항상 회의적이고 사색적이다. 항상 현실적, 나아가서 일상적 논리에 의해서 「여자」를 보고 있다. 그에 대해서 「여자」는, 결코 죽을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신」의 보편적 상식에 의한 생물학적 판단에 대해서 「이젠 죽습니다」하고 도발적으로 거스르고 있다. 여자의 대화는 항상 조용한 목소리로 침착하다. 그에 비해 「자신」의 언행은 항상 외적 학습에 의한 보편적 상식이 기반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제일야」는 「여자」의 「죽음」을 둘러싼 「자신」과 「여자」의 대립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두 사람의 대립은 일상적인 측면을 지향하는 「자신」과 비일상적인 측면을 지향하는 「여자」의 긴장된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 夏目漱石 『道草』論 : 『道草』におけろ書재と外部の意味 『道草』에 있어서의 서재와 외부의 의미

        金泰淵 경주대학교 1998 論文集 Vol.10 No.-

        나쯔메소오세키의 『道草』의 주인공 겐조는 영국 유학으로부터 돌아온 대학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나아가려고 하는 인생의 절대선을 金力에 의한 실용의 세계보다는 다른 방면, 즉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優者가 될 것을 결심,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피해 삭막한 학문의 세계를 향해서 시간의 수전노처럼 걸어온 인물이다. 그러나 영국 유학을 마치고 자신의 목표가 달성된 지금은 교육의 힘을 부정하고 교단에선 자신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게 되어 「학문에만 전념하다 죽는다면 인간은 덧없다」고 자신의 절대선으로서 여기던 학문의 세계의 효력으로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스스로가 선택한 학문의 세계에 안주하지 못 하는 겐조의 모습은 소설 속의 여러 장면에서 엿 볼 수가 있다. 결국 그는 학문의 세계에도 안주하지 못 하하고 서재에 틀어 박혀 스스로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버린다. 서재에서의 그의 주된 작업은 거의 매일처럼 「개미머리」만큼이나 작은 글씨로 강의노트를 작성하거나 학생들의 기말시험지를 빨간 잉크로 첨삭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전 그가 부정하던 「돈이되는」 원고를 쓰면서 그때까지는 맛보지 못했던 여유로움으로 인해 「재미있는」 기분조차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의무처럼 느끼고 있던 직업으로서의 일을 떠나 겨우 해방된 겐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작자 나쯔메쏘오세키가 대학강단에 서서 「호도도기스(불여귀)」라는 잡지에 작품을 쓰고 있던 무렵의 실감이기도 했던 것이다. 학문의 길로 대변되는『道草』에서의 서재라고 하는 공간은 사회나 인간관계룰 피해 숨듯 들어간 삭막한 은둔의 장소로 자기중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사물을 생각하면 「언제나 도덕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 「자신에게서 끝이나」는 독선적인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와 같은 겐조에게 원고를 쓴다고 하는 것은 「바다에도 살지 못하고」「산에도 살지 못하는」 공간을 상실한 그의 최후의 시도였던 것이다. 또한 겐조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추위를 타는 남자였다」고 하는 표현은 육체적 감각 뿐만아니라, 동시에 외부로 부터의 애정의 회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항상 자신의 존재에 고통스러워해 온 겐조는 스스로 俗의 세계라고 부정하고 있던 외부의 세계를 찾아 서재를 박차고 나와 거리를 산책하면서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 헤멘다. 서재가 자기중심적 공간이라면 외부, 즉 사회와의 접촉은 서재라고 하는 자기중심적 공각으로부터 탈피시켜 타자의 입장에 자신을 세우는 것에 의해 타자이해의 기반이 이루어지는 탈중심화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道草』의 주인공 겐조의 비극은 모처럼 발견한 외부세계, 즉 외부와의 관계성을 상대적인 시야에서 파악하지 못 하고 있는 바에 있다.

      • 夏目漱石 『道草』論 : 新歸朝者健三の現實認識 신귀조자 겐조의 현실인식

        金泰淵 경주대학교 1997 論文集 Vol.9 No.-

        나쯔메소오세키의 『道草』는 그의 나이 49세, 즉 그가 죽기 일년 전에 쓰여진 작품으로 1915년 6월 3일부터 9월14일까지 전 102회에 걸쳐서 동경 오사카의 양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작품이다. 1915년은 위궤양으로 토혈 후 30분간 의식불명이 된 수선사의 대환으로 부터 5년후에 해당하는 해로서 그전에 그는 타자와 자기와를 함께 상처를 준 에고이즘의 실태를 그린 『마음』을 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道草』는 그 후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런던유학에서 돌아와서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무렵까지의 양부와의 확집등 실생활에서 취재한 작품으로, 쏘오세키 본인도 [나의 현대에 갖는 지고의 인격과 사상을 나타내는 유일의 고백문학으로서, 또한 유일의 인생 증권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道草』의 주제를 둘러싸고 아라씨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유대로서의 사랑을 모색하고 있다]고 논하고 있으며, 무라가미씨는 [타인과의 조화적, 상호 풍부화를 가능케 하는 자기본위성이 주제]이다 라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道草』에 있어서 겐조의 의식을 생각해 볼 때 그러한 설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다시 말하면 그러한 모색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道草』의 주인공이 겐조는 타인과의 관게성을 부정하고 [자기본위]라는 아집을 고집하여, 그것에 숙명처럼 끌려다니며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러나 겐조가 진실로 타인과의 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본위]를 관철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과의 관계성을 염두에 두는 상대파악의 시점에서부터 일 것이다. 그러나 [도덕은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그리고 [자신에게서 끝나]는 [독단가]이며, [반성해보기 보다는 곧 머리의 힘으로 상대를 눌러버리고 싶어하는] 인물인 그의 의식 속에는 아직 [사교를 피해 사회를 피해] 자신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는 강할지언정 자신의 일상의 이면에는 타인의 일상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라고 하는 상대파악의 의식이 결여되어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조화적인 상호풍부화를 가능케 하는 자기본위의 모색은 이와같은 겐조에 있어서는 꿈과 같은 현실일 뿐이고, 타인과의 조화적인 유대와, 자신을 우선하고 타인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기본위의 논리의 덫 속에서 괴로워하는 바에 겐조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 격돌 : 가격변동대응직불은 나쁜 직불인가?

        김태연,박준기,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2019 시선집중 GSnJ Vol.- No.262

        ○ 김태연 교수는, 시장기능을 통해 필요한 농산물이 필요한 만큼 생산될 수 있으므로 농업 생산과 경영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불필요하고 가격변동대응직불도 시장을 왜곡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 이런 주장은 농업의 농산물 공급 기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며, 현재의 상황에서 농산물 공급의 모든 문제가 시장기능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생각된다. ○ 농산물 가격하락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변동성도 큰 상황에서 이 모든 위험을 농가 스스로 감당하면 경영은 매우 불안정하게 되어 결국 농업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점점 더 어렵게 될 우려가 크다. ○ 이와 반대로 박준기 박사는 정부가 필요한 식량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서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생산조정장치가 없는 가격변동대응직불은 과잉생산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정부가 특정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조정하려는 것은 설계주의적 농정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소비자의 욕구가 매우 다양하고 고급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현실과 괴리되어 실패하기 쉽다고 생각된다. ○ 더욱이 대체성이 있는 농산물이 얼마든지 수입될 수 있는 상태에서 적정한 생산량을 설정하고, 그 양만큼만 농가가 생산하도록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결국 실패하여 결국 정부가 가격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 따라서 가격변동대응직불제가 필요하고 적절한 대안이지만 목표가격은 시장가격의 실태를 반영하고 그 변화를 추종하여야 하며, 생산 비연계 방식을 준수하고, 가격지지는 배제하여 시장기능을 되도록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다는데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 또한 직불제 중심 농정은 기존의 정책사업을 대부분 폐기하여 직불제로 통합하는 예산구조의 개혁과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현황과 이행실적을 조사하고, 특히 공익성 검증과 평가를 담당할 수 있도록 농정조직을 개편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 KCI등재

        일제 강점기 한 기독인 과학자의 과학관과 종교관 ― 조응천(曺應天, 1895-1979)의 경우

        김태연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22 신학사상 Vol.- No.199

        Previous studies on religion and science have mainly focused on the differences in their worldviews based on the Western conflict model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However, an excessively confrontational interpretation could rather be a hindrance in recognizing the variety of historical realities. It is necessary to set aside this conflict model for a while and discover the discours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through concrete examples from our history. This study took a microscopic approach to examine how the understanding of religion and science was expressed discursively in a Christian scient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rough the life and writings of Cho Eung-Cheon, a scientist who worked for the magazine Farmer’s Life published for scientific agriculture, Christian virtue, and moral cultivation of farmers, I attempted to analyze how he expressed his views of science and religion. In the case of Cho, his religious faith and the altruistic decision that resulted from these became the basis for his dedication to scientific research, enlightenment, and scientification of Joseon. He believed that the true value of science could be demonstrated only when it was developed ‘for Joseon’ in Joseon. His views of science and of religion were mutually influential in his thought and his national identity was also related to these. In the lives of intellectuals like Cho who struggled for scientific Joseon and Joseon’s scie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can be confirmed that religion and science were not in a conflicting relationship, but in a close partnership.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주로 종교와 과학의 서구적 갈등 모델을 중심으로 각 세계관의 차이점을 조명해온 경향이 있다. 갈등 모델을 잠시 접어두고 구체적인 우리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종교와 과학에 대한 담론을 발굴하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학과 종교의 세계관과 담론이 교차하는 장소인 삶을 살아내는 인간에 대한 조명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 모델 하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본 연구는 미시적 접근 방식을 택하여 일제 강점기의 한 기독인 과학자에게서 종교와 과학에 관한 이해가 담론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살펴보았다. 과학적 영농 교육과 농민의 기독교적 덕성, 도덕 함양을 위해 발행된 잡지, 『農民 生活』에서 활동한 과학자 조응천(曺應天, 1895-1979)의 삶과 글을 통해 그가 어떠한 과학과 종교관을 피력했는지 검토하고자 했다. 조응천의 경우, 종교적 신앙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이타적 결단이 오히려 과학적 탐구와 조선의 계몽화, 과학화를 위해 헌신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조선인으로서 조선 땅에서는 ‘조선을 위한’ 과학이어야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학관과 종교관은 그의 사유 속에서 상호 영향 관계 속에 놓여있었으며 민족적 정체성 또한 이와 연관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 과학적 조선과 조선적 과학을 위해 분투한 지식인의 삶 속에서 종교와 과학은 대립적 관계가 아닌 긴밀한 동반자적 관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