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박정일(Jeong-Il Park) 한국철학회 2001 철학 Vol.67 No.-
최근에 이병덕 박사는 졸고 「열린 해석과 타르스키의 진리정의」 (이하 ‘박정일(1999)’로 약칭함)에 대하여 일견 매우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 비판의 핵심은 박정일(1999)에서 제시된 주장의 세 가지 근거가 모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이러한 이병덕 박사의 비판에 대해 답변하고자 한다. 나의 논점은 이러하다: 나는 박정일(1999)에서 타르스키의 진리정의가 철학에 필수적인 수단을 제공하지 않으며,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한 이병덕 박사의 비판은 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자극적인 것이었지만, 나는 그가 대체로 박정일(1999)를 오해했다고 생각하며, 그리하여 그의 어떤 비판은 모호하거나 빗나갔고 또 어떤 주장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제시하는 반대 주장 -이것을 의도한 것이라면- 의 논거는 거의 설득력이 없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나는 여전히 박정일(1999)의 주장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朴正一 釜山外國語大學校 敎育大學院 2005 敎育論叢 Vol.6 No.-
일본어 교육에 있어, 회화 교육 중 회화 능력의 증진에 관한, 한국의 일본어교육의 내용과 환경 등은 한국적인 문화 풍토, 취중, 한국적 교육 환경 중에서 창출된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유래 없는 일본어교육의 성장을 이룩한 뒤, 성립과정은 양적인 확대는 하였지만 질적인 발전은 아직 성장과정 중이라고 본다. 그중에서 회화능력은 제 7차 교육과정의 실시로 진행되었고, 그 교육정책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거기에 따라 교육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일선에 있는 교사들의 연구와 노력이 요구되어왔다. 또한, 대학이나 일반사회 속에서 인위적인 조직의 한정하지 않고 시대적 요청에 응하는 방법전환과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커뮤니케이션능력의 수용이 요구되고 왔다. 회화력의 육성 증징은. 커뮤니카티브 방법이 많이 수용되어 왔다. 하지만, 교육 환경에서는, 툴(도구, 수단)의 변화. 에를 들면.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의 등장이 앞으로 어떠한 영향이 끼칠지는 미지수 일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아웃풋뿐만이 아니라 인풋에 의한 피드백 등이 빠질 수가 없다. 회화기능에 대해서는 단순한 어학적 관심뿐만 아니라 교실활동의 실천에 창에서 일본어회화교육의 단게적 지도라는 측면에서 초급, 중급으로 이루어지는 단게에서 발생하는 흥미가 상실되어지는 형상에서 학습자들의 받은 충격과 불안감을 최소화 시키는 취급방법이 학습에 사용되어져서 말하기 표현력에 육성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뜻으로 교육일원과 실천의 관점에서 일선교사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어교육의 대해서는 여러 과제와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앞으로 이러한 점에서 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朴正一 釜山外國語大學校 文化硏究所 1995 比較文化硏究 Vol.6 No.-
韓國에 있어서 日本語敎育은 前例없는 盛時를 이룰정도라고 하지만 韓國『日本語敎育』의 確立過程은 양적으로는 어찌 되었던 아직 未開拓上에 있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 證據로서 表裏一體에 있는 大學外國語敎育制度, 特히 有型的인 조치에 制限하지않고 敎育內容의 實態에 關해서 考察하 것이다. 韓國日本語敎育의 內容이나 環境등은 韓國的인 文化風土 속에서 創出되어진 것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는 것이다. 속칭 『日本語一世』以後의 學習者數는 1980年代 以後 急增하여 왔다. 돌이켜보면 日本語가 外國語의 한가지 라고하는 認識을 韓國社會全體, 學習者 한사람 한사람이 學習하기에 이르기까지는 너무나도 길고, 同時에 너무나도 짧은 期間밖에 必要하지않았다. 즉, 時代的 要請에 對應하는 방법전환과 言語가 國際化에 초석이라고 하는 認識의 所産이었다고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世界化의 흐름속에서 科學的精神의 重要性이 높아짐에 따라 日本語硏究구 연이어 활발해져 갔다. 이 過程에서 日本語敎育의 새로운 專門的 硏究方法등이 導入되어 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日本語敎育에 있어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어떠한 方法手段으로 가르치는가라는 課題도 重要하고 또한 敎育實態의 實際事例속에서 여러問題를 지적하고 그것을 시정하는 硏究와 努力도 勿論 重要한 것이지만 非學習者가 말하는 『무엇을 위하여』라고하는 불평이 事物의 本質을 지적하고 있음과 同時에 이같은 視點이 이제부터 重要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日本語敎育에 關해서는 항상, 여러가지 問題가 남아 있지만, 今後 계속 이 問題에 關해서 硏究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