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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연암 박지원의 「綠鸚鵡經序」 다시 읽기

        이홍식(Lee Hong sik)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9 동양한문학연구 Vol.29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연암 박지원의 「綠鸚鵡經序」는 낙서 이서구의 『綠鸚鵡經』에 붙인 서문이다. 그 동안 구성과 내용의 난해함으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작품이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북학파 문인들의 완물취향과 공안파 문학의 수용 양상을 살피는 데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녹앵무경서」의 비평적 의미를 꼼꼼히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어 고무적이다. 다만 그 논의의 대체가 ‘이서구와 『녹앵무경』에 대한 박지원의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자는 「녹앵무경서」에 대한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였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서구의 『녹앵무경』은 유득공의 『발합경』 및 이덕무의 『윤회매십전』과 마찬가지로 당대 ‘총서류에 대한 열독과 공안파 문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덕무와 유득공의 評批에 박지원의 서문이 더해져 완전한 꼴을 갖추게 된 저작이다. 따라서 「녹앵무경서」에서 이서구와 『녹앵무경』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박지원은 『녹앵무경』이 이서구의 慧悟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이서구를 창작을 권면하고, 도불이 아닌 문학의 관점에서 『녹앵무경』에 접근할 것을 주문함으로써 왜곡된 해석과 비판을 경계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박지원이 긍정한 慧悟는 공안파의 세계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박지원을 비롯한 이덕무·유득공·이서구 등은 이 慧悟를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완물상지의 두꺼운 벽을 허물고 일상의 소소한 세계를 문학으로 편입시켰으며, 이들을 활용한 새로운 문학 창작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서구의 『녹앵무경』이다. 혜오는 당대 북학파 문인들이 문학적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중요한 매개였던 셈이다. The “Nokaengmukyungsuh(綠鸚鵡經序)” of Yeonam(燕巖), Park Jiwon(朴趾源) is a preface attached Nakseo Lee Seogu's “Nokaengmukyung(綠鸚鵡經)”. Due to reconditeness of structure and contents researchers didn't have interested in “Nokaengmukyungsuh”. But it is worth studying because it is in-depth and contains valid informations about Bukhak Schooler's taste of concerns about materials and acceptance of Gongan School's literature. In recent days, a paper carefully analyzing critical meaning of “Nokaengmukyungsuh” is encouraging. However, because the paper concentrated on Park Jiwon's criticism on Lee Seogu and “Nokaengmukyung”, I didn't understand several things in the paper. Therefore I tried to reread about “Nokaengmukyungsuh”, as a result I reached following conclusion. “Nokaengmukyung” written by Lee Seogu arose from eager reading in serial publishing and interests in Gongan School's literature likewise You Deukgong's Balhapkyung and Lee Dukmu's Yoonhoemaesipjeon(輪回梅十箋). It became a whole work adding not only criticism of You Deukgong and Lee Dukmu but also Park Jiwon's preface. So in “Nokaengmukyungsuh” we didn't look at criticism about Lee Seogu. and “Nokaengmukyung”. Park Jiwon clearly announced that “Nokaengmukyung” arose from Lee Seogu's shrewdness(慧悟), then he recommended Lee Seogu writing works. Also he ordered him to approach “Nokaengmukyung” not in a view of Buddhism and Taoism but in a view of literature. So he took precautions against distorted interpretation and criticism. The shrewdness approved by Park Jiwon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world view of Gongan School. As Park Jiwon, You Deukgong and Lee Dukmu affirmed the shrewdness and accepted positively, they broke a wall of “Wan Mul Sang Zhi(玩物喪志- Being indulged in exterior thing make on lose his intention)” and inserted the little world of routines into literature. So they tried to write new literary works using these things. Lee Seogu's “Nokaengmukyung” was a outcome. The shrewdness was a mediation that could guarantee literary identifications of Bukhak Shool's writers.

      • KCI등재후보

        조청 지식인의 우연한 만남과 사적 교류 -이해응의 『계산기정』을 중심으로-

        이홍식 ( Hong Sik Lee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0 동아시아 문화연구 Vol.47 No.-

        조선시대 대외 인식의 주요 창구로 연행과 통신사행과 표류를 지목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어 양국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연행이다. 현재 이 연행의 기록이 연행록이란 이름으로 남아 전하는데, 최근 한·중·일 학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주로 교류사의 측면에서 연행록을 살펴보았다. 특히 북경 유리창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조청 문사들의 사적인 만남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국제 교류의 실체와 의미를 밝히는 데 집중하였다. 다만 논의의 집중도를 높이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해응의 『계산기정』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계산기정』은 이해응이 1803년 10월 21일부터 이듬해인 1804년 2월 1일까지 자제군관으로서 연행을 경험하고 기록한 것으로, 조청문사들의 사적 만남과 국제 교류의 실상을 파악하고 연행록의 사적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청 문사들 사이의 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공간, 만남이 성사되는 방식, 만남을 구속하는 여러 가지 제약,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 마지막 이별의 장면 등 국제 교류의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유효한 자료들을 집중 탐구하여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 결과 `만남의 장`으로서 북경 유리창이 가지는 표상뿐 아니라 복식과 감찰과 情 등 조청 지식인 교류의 의미와 성격을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를 추출할 수 있었다. 더하여 이러한 키워드들이 이해응의 『계산기정』뿐 아니라 18세기 중후반 이후 조청 문사들 간의 사적 만남이 활발했던 시기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major windows of foreign awareness in Joseon Dynasty were travel to Beijing, Tongsinsa trip and the drift. It was travel to Beijing lasted for a long time that most influenced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Ching. Nowadays, the records of travel to Beijing are passed under the name of Yeonhaengrok. Scholars of Korea, China and Japan are studying them with the various views in present. This paper mainly researched Yeonhaengrok in side of interchange history. Especially it focused on personal meetings of Joseon`s intellectuals and Ching`s intellectuals with Beijing Windows background. And then, it discovered the reality and meaning of international interchange in their personal meetings. To raise intensive of the paper and to achieve the aim of this discussion, however, I focused on Lee haeung`s Gyesangijeong. Because Gyesangijeong written by Lee haeung from Oct. 21st, 1803 to Feb 1st, 1804, included valuable information to understand person meetings of Joseon`s intellectuals and Ching`s intellectuals, to grasp the reality of international interchange and to see the historical changes of Yeonhaengrok. Lee haeung wrote his experience of travel to Beijing in Gyesangijeong. In this paper, I researched, analyzed and give meanings intensively to avaliable materials for revealing mechanism of international interchange such as the space fulfilled personal meetings of joseon`s intellectuals and Ching`s intellectuals, the method arranged the meetings, the several restricts limiting the meetings, the course continued the meetings and the last scene of the meeting. As a result, I extracted not only the icon occupied by the Beijing Windows as a space of meeting but also various key words analogized meanings and characters of interchange between joseon`s intellectuals and Ching`s intellectuals such as the costumes, inspections, and affection etc. In addition, these key words can be applied to the period been personal meetings between joseon`s intellectuals and Ching`s intellectuals briskly after the mid of 18C, not alone to Lee haeung`s Gyesangijeong.

      • KCI등재

        북경 유리창의 공연예술 -18~19세기 연행록을 중심으로-

        이홍식 ( Hong Sik Lee ) 한국한문학회 2011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47

        l8세기 이후 조청 문화 교류사에서 북경 유리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난다, 특히 청대에 꽃 피웠던 출판문화의 중심으로 기능함으로써 이곳을 통해 수입된 각종 서적과 이곳에서 집적된 여러 정보들은 조선후기 문화 변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천문, 지리, 문학, 예술, 사상, 일상 등 그 영향 범위 또한 매우 넓다. 하지만 연행사들에게 북경 유리창은 청대 출판문화의 중심으로만 인식되지는 않았다. 유리창은 북경 제일의 소비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연극과 잡기 등 민간 연희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공연 공간이고도 했다. 1765년에 연행길에 오른 홍대용, 1791년에 연행길에 오른 김정중, 1794년에 연행길에 오른 이희경, 1803년에 연행길에 오른 이해웅, 1826년에 연행길에 오른 홍석모, 1832년에 연행길에 오른 김경선, 1855년에 연행길에 오른 서경순 등이 유리창과 그 주변에서 공연된 민간 연희를 직접 관람하고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근 100년 가까이 청대 민간 연희의 대표적 연행 공간으로 유리창이 소비되고 기록되었던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청대 민간 공연예술의 대표적 공연 공간``으로서 북경 유리창이 가 지는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아는 북경 유리창 이 가지는 다충적 공간 표상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나아가 조청 문화 교류사에서 유리창 차지하는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도 일조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청대에 발달한 민간 공연예술의 현황과 유리창의 공간적 특수성, 유리창에서 공연된 공연예술의 실제와 조선 연행사들의 의식 등을 종합 정리하였다. Beijing Liuljhang(琉璃廠) in culture exchange history between Josaon and Ching after 18C had very important meaning. Especially there had functioned as the center of publication culture booming in Ching era. Al] sorts of imported books through there and several information accumulated in there enormously influenced on culture changes in the late Joseon. The range of influence was very extensive such as astronomy, geography literature, thought. routine and so on. However Beijing Liulichang was not recognized only the center of publication culture to diplomats in Ching era. Liuiichang was not only the prime consume market but also performing space played folk festivities such as various plays and performances, Hong Daeyong traveling in 1765. Kim Jeongjung traveling in 1791. Lee Heegyung traveling in 1794. Lee Haeeung traveling in 1803. Hong Seokmo traveling in 1826, Kim Gyengseon traveling in 1832, Sea Gyengsun traveling in 1855 etc directly watched folk performances played in Liulichang and around there. Then they recorded those performances. Liulichang used and recorded as a representative performing space played folk performances in Ching era for about 100 years. Therefore this paper proceeded discussion to reveal meanings and values of Beijing Liulichang as a the representative performing space of folk performing arts in Ching era, Which can help to more accurately understand palimpsest space emblem of Beijing Liulichang. Furthermore which can help to apprehend meanings and values of Liulichang in exchange history between Joseon and Ching. For those, this paper totally arranged states of folk performances developed in Ching era, space characteristics of Liulichang. the realities of performing arts played in there, and consciousness of Joseon delegations.

      • SCISCIESCOPUSKCI등재
      • VORTEX SHEAR VELOCITY AND ITS EROSION IN THE SCOUR HOLE

        Lee,,Hong-Sik,Kim,,Jin-Hong,Lee,,Sam-Hee Korea Water Resources Association 2000 Water engineering research Vol.1 No.4

        Scour hole is formed due to the high shear stress of the jet flow at the outlet of a hydraulic structure and vortex erosion occurs in the scour hole. It is important to determine the amount of vortex erosion occurs in the scour hole. It is important to determine the amount of vortex erosion for the design of bed protection. If the vortex erosion continues and reaches to the hydraulic structure, it causes the deformation of the structure itself. To obtain the amount of the vortex erosion, it is necessary to determine the shear velocity of the line vortex in the scour hole was derived by the theory of energy conservation and found to be related to the upstream overflow velocity. The amount of vortex erosion from the scour hole was obtained using entrainment equation for given value of shear velocity. For a design purpose, if the flow velocity at the end of an apron and the properties of bed material are given, the amount of vortex erosion was obtained.

      • The safety and effectiveness of 2-liter polyethylene glycol plus ascorbic acid in patients with liver cirrhosis : A ret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Lee,,Jae,Min,Lee,,Jae,Hyung,Kim,,Eun,Sun,Lee,,Jung,Min,Yoo,,In,Kyung,Kim,,Seung,Han,Choi,,Hyuk,Soon,Keum,,Bora,Seo,,Yeon,Seok,Jeen,,Yoon,Tae,Lee,,Hong,Sik,Chun,,Hoon,Jai,Um,,Soon,Ho,Kim,,Chang,Duck Wolters Kluwer Health 2017 Medicine Vol.96 No.51

        <P><B>Abstract</B></P><P>The safety of bowel-cleansing agents is an important issue in clinical practice, especially in patients with chronic diseases. Although the safety and efficacy of polyethylene glycol (PEG) has been investigated in many studies, few studies on PEG plus ascorbic acid exist. In this study, we compared the safety of 2 bowel-cleansing agents for patients with liver cirrhosis: 2-liter PEG (2 L PEG) plus ascorbic acid versus 4-liter PEG (4 L PEG). We performed a retrospective study on colonoscopy in patients with liver cirrhosis. Patients referred for colonoscopy were divided into 2 groups: 2 L PEG plus ascorbic acid (n = 105) and 4 L PEG (n = 61). Safety was assessed by comparing the clinical factors and laboratory findings as follows: blood biochemistry, electrolytes, weight change, and bowel-cleansing quality. Serum electrolytes, laboratory findings, and body weight showed no significant change between the 2 groups. There was no significant change in clinical factors before and after bowel preparation in the PEG group or the PEG plus ascorbic acid group. The acceptability and compliance of patients was better in the 2 L PEG plus ascorbic acid than the 4 L PEG group. In subgroup analysis, patients with compensated or decompensated cirrhosis showed no increased risk of electrolyte imbalances after bowel preparation. Child–Pugh scores did not influence the outcome after bowel cleansing. Successful cleansing was mostly achieved in both groups. Our analysis showed that of the use of 2 L PEG plus ascorbic acid could be a safe choice for colonoscopy in patients with liver cirrhosis.</P>

      • KCI등재SCOPUS
      • SCIEKCI등재
      • KCI등재

        Helicobacter pylori의 위상피세포 유착에 관한 전자현미경적 고찰

        이성일,이정환,김영선,이상우,박동규,이홍식,김창덕,진윤태,최재현,엄순호,류호상,전훈재,송치욱,현진해,김윤홍,허병원,강창돈,엄창섭 대한내과학회 2001 대한내과학회지 Vol.60 No.1

        Background :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ultrastructural relation of H. pylori and gastric epithelial cells in their adhesion. Methods : Endoscopic biopsy of gastric antrum and body was performed from 15 patients (9 men, 6 women) with chronic gastritis. These specimens were processed and observed by 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Hitachi H-600). Results : On the basis of morphological appearances, the different types of adhesion of the organism with the epithelial cells were categorized as filamentous connection, adhesion pedestals, membrane fusion. Coccoid and intermediate forms were associated with filamentous connection whereas bacillary forms were associated with adhesion pedestals and membrane fusion. Conclusion : Various types of adhesion were associated with H. pylori and gastric epithelium. Further studies are needed to investigate biophysiologic influence to epithelial cells by ultrastructural relationship.(Korean J Med 60:16-21, 2001)

      • SCOPUSKCI등재

        간세포암 선별검사로서 정기적인 초음파 및 α-fetoprotein 검사의 유용성

        이정환,이상우,이재원,박미라,이홍식,김창덕,진윤태,최재현,엄순호,류호상,전훈재,송치욱,현진해,허병원,강창돈 대한소화기학회 2000 대한소화기학회지 Vol.36 No.1

        Background/Aims : Periodic follow-up with abdominal ultrasonography and/or α-fetoprotein (AFP) assay has been used for the early detection of hepatocellular carcinoma (HCC). However, its effectiveness is still controversial.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re-evaluate the effectiveness of these follow-up methods. Methods: Five hundreds and thirty patients with HCC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follow- up group with regular screening (n=81) and non follow-up group without screening (n=449). According to the interval of checkup, the follow-up group was divided into three subgroups: FU-1 group ($lt;3 months), FU-2 group (4-6 months), FU-3 group (7-12 months). Results : The rate of early detection (58% vs 27% in the detection of the single nodular type), median survival (48 months vs 6 months) and therapeutic trial (91% vs 60%) were higher in the follow-up group than in the non follow-up group. The diameter of the largest tumor in each group was 3.4±2.3 cm and 9.0±5.0 cm, respectively. As screening methods, abdominaltrasonography combined with AFP assay was superior to AFP assay alone or abdominal ultrasonography alone. There were no significant differences in type and size of the tumor and the survival rate among three follow-up subgroups. Conclusions: Periodic follow-up with abdominal ultrasonography and/or AFP assay enabled the early detection of HCC and improved its prognosis and sur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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