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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李相敦) 한국철학회 2008 철학 Vol.0 No.95
주희는 木性의 純善이 氣質의 偏向으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智愚 등의 기질의 변화를 말했지만 실제적으로 인간의 기질적 편향은 쉽게 변화되지 않으며, 더구나 기질의 변화여부가 도덕적 완성인 聖에 필수적인 조건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도덕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은 本體의 必然性과 마음의 능동적 自發性이다. 내적 필연성을 갖는 본체의 기능은 꺼지지 않고 살아 있으며, 이점에서 본성은 심의 내적 질서로 작용하여 심은 단순한 인지기능의 수동적 반응체가 아니라 도덕 본성의 담지자로 정위된다. 즉, 도덕적 善의 실현은 바로 이런 구조에 따라 이루어진다. 인간의 道德 實踐과 人倫 秩序는 바로 인간의 내적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修養은 도덕적인 마음의 보존을 근본으로 하는 居敬에 기반하며 格物致知는 이에 입각하여야만 올바로 전개될 수 있다.
이상돈(李相敦)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풍우란의 신리학 체계는 공허한 논리 구조로서 중국 철학의 핵심적 특징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고 비판된다. 그러나 「신원인」.「신원도」등에서 제시된 천지경계론은 도덕 실천의 의의와 철학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데, 이는 신리학의 논리체계와 이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다. 천지경계는 만물일체의 경지로서 주객과 내외의 구분이 소멸된 지점으로, 철학을 실제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 공허한 학문으로 규정한 풍우란의 신리학 체계와 매우 정합적인 주장이다. 이 관점은 주자학 이해에도 적용된다. 풍우란은 격물치지 논의에서 지식의 축적과 직관적 깨달음이 모두 필요한 것으로 보아, 이성주의와 신비주의를 합일시키려 노력하였다. 이 작업은 유의미하지만 서양의 이성주의를 중국철학 해석에 깊이 관여시켜 동양 철학의 고유한 특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馮友蘭的新理學體系因其空虛的邏輯結構不足以顯示中國哲學的核心特徵而遭到批判。然而《新原人》、《新原道》等著作提出的天地境界論明確地體現出了道德實踐的意義和哲學位相。這幷非與新理學邏輯體系相隔離, 反而是相輔相成的。天地境界是萬物一體的氣象, 卽主客.物我之區別完全消滅的狀態, 與把哲學規定爲不着實際的空虛學問的新理學體系大體整合。此種觀點適用于對朱子學的理解,幷且把格物致知看成需要知識的蓄積和終極直覺, 試圖將理性主義和神秘主義合爲一體。這是有意義的。但是遺憾的是, 馮友蘭把西方理性主義牽入中國哲學理解當中, 未能明顯地突出東方哲學的獨特本質。
이상돈 ( Lee Sang Don ) (사)율곡연구원(구 사단법인 율곡학회) 2017 율곡학연구 Vol.34 No.-
이 논문은 유가에서 제시된 즐거움에 대한 논의를 주자가 어떻게 독해하는지를 밝혀서 수양론의 이상적 경지가 어떻게 규정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주자는 공안락처와 증점기상을 통해 이 즐거움을 인격의 궁극, 이상적 경지의 마음 상태 또는 감정으로 설명하였다. 이 공안락처로서의 즐거움은 감각적 쾌락과 다르며 한가한 즐거움은 물론 아니며, 또한 도덕적 가치와 대상을 추구하여 얻는 즐거움도 아니다. 즉 도덕을 즐거워하는 단계의 즐거움과도 다른 것이다. 이렇게 도덕 실천과 감정과의 연관은 주자의 수양론을 이해하는 주요한 표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주자가 보는 도덕에서의 감정은 보다 여러 층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주자가 이해하는 공안락처의 즐거움은 만물일체에서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신비체험에 의해 획득된 전체와의 합일이라는 무차별한 경지가 아니라, 오히려 심과 리가 합일하여 사물에 합당하게 대처함이 자연스럽게 된 상태에서의 즐거움이다. 즉 그것은 각득기소가 가능한, 그러니까 모든 존재로 하여금 각각 합당한 몫을 얻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편안한 마음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도덕적 이상주의인 성리학의 학문적 이념인 수기치인이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대부의 학문인 성리학에서 학문을 통해 성인된다는 이상은 단순한 이론적 가설차원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구체적인 인간 경험에 근거하여 수립된 것이다. 이는 송대에 형성된 성리학의 학문적 특성 중의 매우 핵심적인 지점을 짚어주고 있다. This paper explores how Zhu xi comprehends the discussions about the pleasure presented in Confucianism and examines how the ideal status of mind in the self cultivating theory is defined. Zhu xi explained the pleasure through ultimate ideal person`s mind state or emotion through the konganlechu(孔顔樂處) and zhengdianqishang(曾點氣象) This pleasure as a konganlechu(孔顔樂處) is different from sensual pleasure, not leisurely pleasure, nor pleasure in seeking moral values and objects. In other woeds, it is different from the joy of enjoying morals. This connection between moral practice and emotions has become a major sign to understand the theory of Zhu xi. However, the emotions in the morality that zhu xi sees seem to have more layers. The joy of kongan(孔顔) that Zhu xi understands is the pleasure in the condition that wanwuyiti(萬物一體), However, this pleasure is not the indiscriminate state of unity with the whole which is acquired by mysterious experience, but rather the comfort in the condition the mind and principle become one and coped appropriately to the affairs naturally. So we can say that this is a comfortable state of mind where making each being to have a reasonable share of each, naturally takes place. Here, the moral idealism Neo-Confucianism can be practically realized. In other words, the ideal of being grown up to be sacred through scholarship will be established based on the concrete human experience that has already been realized, not merely a theoretical hypothesis in Neo-Confucianism. This points out a very important point in the academic characteristics of Neo-Confucianism formed in Sung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