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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가야 고분 교차편년

        홍보식 영남고고학회 2014 嶺南考古學 Vol.- No.70

        Although, the ancient tomb chronology of Shill and Gaya Periods has been woven by many researchers using a method to dynamically explain Yeongnam Region society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reare some parts that do not match. Apart from the difference of historic era, some problems have been revealedin building objective chronology network by selecting data favorable to each one's chronology in terms ofcross-chronology setting. This study tried objective and cross-chronology targeting the pottery excavated frommajor ancient tombs in building the chronology framework of ancient tombs in Shilla and Gaya Periods. As a result of cross-chronology, Busan Bokcheon-dong No. 57 Tomb, Daeseong-dong No. II-24 Tomb andHaman Hwangsa-ri Dogulgang(Tomb Theft Pit) and No. 35 Tombs were chronicled as the same period in the4th century. Daeseong-dong No. 2 Tomb, Bockcheon-dong No. 54, 69 and 1 (DongA University) Tombs andHwangsa-ri No. 1, 32 and 48 Tombs were also cross-chronicled as the same period in the 4th century. After the5th century, the excavated articles from Busan Bockcheon-dong No. 39 Tomb and Hapcheon Okjeon No. 23Tomb were chronicled as the same stage. Bockcheon-dong No. 53 Tomb and Haman Dohang-ri No. 10, 20 and27 Tombs were chronicled as the same stage. The South Tomb in Hwangnam Great Tomb, Gyeongsan ImdangNo. 7B Tomb, Changnyeong Gyenam-ri No. 1 and 4 Tombs, Gimhae Daeseong-dong No. 73 Tomb and HapcheonOkjeon No. M2 Tomb were also chronicled as the same stage. The North Tomb in Hwangnam GreatTomb, Goryeong Jisan-dong No. 32 Tomb, Okjeon No. M1 and 32 Tombs, Gimhae Yean-ri No. 36 Tomb andChangnyeong Gyo-dong No. 3 and 1 Tomb were cross chronicled as the same period. Gyeongju Inwang-dongHyeopsung Gas Station Site No. 14/15 Tomb, Yeongil Naengsu-ri Ancient Tomb, Goseong Songhak-dong No. 1A-11 Stone-lined Tomb and No. 1B Stone Chamber Tomb were cross chronicled as the same period. 신라·가야 고분 편년은 삼국시대 영남지역 사회를 동태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짜여져 왔지만, 합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역연대 차이는 제쳐두더라도 교차편년 설정에도 각자 편년에 유리한 자료만을 취사 선택해서 객관적인 편년망 구축에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신라·가야 고분의 편년틀 구축의 주요 고분 출토 토기를 비교하여 교차편년을 시도하였다. 교차편년 결과, 4세기는 부산 복천동 57호묘와 대성동 Ⅱ-24호묘, 함안 황사리 도굴갱·35호묘는 같은 단계, 대성동 2호묘와 복천동 54·69·1(동)호묘, 황사리 1·32·48호묘는 같은 단계로 교차편년이 되었다. 5세기 이후는 부산 복천동 39호묘와 합천 옥전 23호묘 출토품은 같은 단계이고, 복천동 53호묘와 함안 도항리 10·20·27호묘가 같은 단계, 황남대총 남분과경산 임당 7B호분, 창녕 계남 1·4호분, 김해 대성동 73호분, 합천 옥전 M2호분이 같은 단계로 편년할 수 있었다. 황남대총북분, 고령 지산동 32호분, 옥전 M1호분·31호묘, 김해 예안리 36호묘, 창녕 교동 3·1호분이 같은 단계, 옥전 M3호분과 지산동 44호분이 같은 단계, 지산동 45호분, 옥전 M7·M4호분과 부산 연산동 58호묘, 경주 인왕동 협성주유소부지 14·15호묘, 영일 냉수리고분, 고성 송학동 1A-11호 석곽·1B호 석실은 같은 단계로 교차편년 되었다.

      • KCI우수등재
      • KCI등재

        통일신라시대 울릉도의 고분 구조와 축조 배경

        홍보식 영남고고학회 2019 嶺南考古學 Vol.- No.84

        The tomb shape of the ancient tomb constructed in Ulreung-do and the burial structure are analyzed and the construction period is established through the burial items and the system and background are reviewed. As a result of the review, the ancient tombs of Ulreung-do that had the burial structure constructed on the stone structure with the red stones and they were the most appropriate burial facilities for the natural environment of Ulreung-do with its geology, topography, climate or the likes. Originally, the ancient tombs of Ulreung-do had known its burial structure as the stone chamber tomb with horizontal entrance, but as a result of structure analysis, they were confirmed to be the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 Those reported ancient tombs of Ulreung-do from ground surface, excavation survey and others are confirmed by the characteristics of earthenware excavated as the burial items with the construction period to be late 8th century to 9th century. In the main land region of the unified Silla era, had a number of cases grouped in Ulreung-do for the disappearing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 that it is confirmed to have similar shapes with the capital city of the similar period. Those earthenwares decorated splendidly with the stamped design pottery excavated from the living relics and ancient tombs of Ulreung-do were produced and consumed in the capital city. The structure of the ancient tomb is in the corridor-style stone chamber tomb and the earthenware carried in for significant number from the capital city and based on such facts, the ancient tombs of Ulreung-do could be presumed as highly likely to be constructed by the migration of those people in the capital city of Silla Dynasty. 본 논문은 울릉도에 조영된 고분의 분형에 따른 축조 기법과 매장주체시설의 구조 분석을 통한 묘제 파악, 부장품을 통해 조영 시기를 설정하고, 계통과 배경을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 석축을 만들고, 그 위에 매장주체시설을 구축하고 적석을 한 울릉도의 고분은 지질·지형·기후 등 울릉도의 자연환경에 가장 적합한 매장시설을 만든 결과물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종래 울릉도 고분의 매장주체시설을 횡구식석실로 파악하였으나 구조 분석 결과 횡혈식석실임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지표 및 발굴조사 등에 의해 확인된 대부분의 고분은 그 조영시기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임이 부장품으로 출토된 토기의 특징에 의해 확인할 수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횡혈식석실이 군집되어 조영된 사례는 왕경과 울릉도에 다수 확인되었고, 울릉도의 생활유적과 고분에서 출토된 화려하게 인화문이 장식된 토기들은 왕경에서 생산·소비된 것과 동일한 토기들이었다. 고분 구조가 횡혈식석실이고, 왕경으로부터 상당수 반입된 토기 등을 근거로 울릉도의 고분은 신라 왕경인들의 이주에 의해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 KCI등재후보

        統一新羅土器의 上限과 下限 - 연구사 검토를 중심으로 -

        홍보식 영남고고학회 2004 嶺南考古學 Vol.- No.34

        2000년대 이후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에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의 유적에 대한 조사가 현저하게 증가되면서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기와와 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와보다 변화가 풍부하고 다양한 토기를 소재로 하여 이 시기의 물질자료는 물론 사회변화의 시간적 틀의 제공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에 제시된 편년틀은 새로운 자료를 포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기의 유물과 유구의 시간축을 문제의식 없이 기존 연구 틀에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편년체계의 수립에 앞서 기존 연구의 문제점들에 대한 검토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였으며, 그 검토 결과, 찍은 삼각집선문에서 수적형문, 연속마제형문으로의 변화가 삼국통일 전후의 토기양상으로 확인되었고, 인화문의 시문기법은 획일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기법이 병존하면서 10세기 전반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 KCI등재

        영상강유역 고분의 성격과 추이

        홍보식 호남고고학회 2005 湖南考古學報 Vol.21 No.-

        본고는 현재 한국 고고학과 고대사뿐만 아니라 고대 한일관계사에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영산강유역 고분의 성격과 변화에 대한 기존연구의 문제점 검토를 토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에 있다. 본고의 검토내용은 고총분구 및 전용옹관의 등장과 소멸, 횡혈식석실의 계통과 유형 및 九州系 횡혈식석실 및 前方後圓形 古墳의 수용주체, 백제석실로의 전환시기 등이다. 영산강유역의 특징적 고고자료인 전용옹관의 등장시기는 선행하거나 또는 병존관계에 있는 목관묘에서 출토된 판상철부 및 낙동강 하구에서 출토된 영산강유역계 토기 등을 통한 교차편년 결과, 4세기 전반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방형 또는 원형의 高墳丘 옹관묘는 5세기 전반에 등장하여 6세기 전반까지 유행하였다. 5세기 말에 옹관고분 이외에 횡혈식석실을 매장시설로 하는 원형前方後圓形 분구의 고분이 축조되었다. 횡혈식석실은 백제계, 九州系, 백제계와 九州系의 절충형 등 매우 다양하며, 옹관고분의 외곽지역에 분포하면서 옹관고분과 병존하였다. 매장시설이 九州系 석실인 고분은 입지분형분구제사후장연도와 묘도의 유물 부장 등이 九州地域의 매장습속과 유사한 점은 이들 九州系 석실의 피장자가 왜인이었음일 보여주었다. 영산강유역에 정주한 왜인은 재지세력에 포섭되거나 외곽에 있으면서 선진문물을 왜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백제중앙정권은 재지세력과 정주 왜인들에게 위세품을 분여하여 그들을 통치권내로 흡수하고자 하였는데, 재지세력을 우위에 두고, 그 아래에 정주 왜인을 두는 차등정책을 실시하였음이 이 곳의 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위신재의 구성에서 확인되었다. 6세기 중엽이 되면, 옹관고분, 前方後圓形 古墳이 사라지고 전형적인 백제 석실이 조영되는 등 질적 변화가 나타나지만, 九州系 石室의 영향으로 이 곳에서 만들어진 창출형 석실이 축조되고, 倭의 매장요소들이 나타나는 현상은 6세기 중엽 이후 백제가 이 지역을 직접 지배하였더라도 재지수장층이 완전히 와해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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