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실내모형시험을 통한 연약지반의 쉴드 TBM 터널굴착 모사
한명식,김영준,신일재,이용주,신용석,김상환,Han, Myeong-Sik,Kim, Young-Joon,Shin, Il-Jae,Lee, Yong-Joo,Shin, Yong-Suk,Kim, Sang-Hwan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 2013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논문집 Vol.15 No.5
This paper presents the shield TBM technology in soft ground tunnelling. In order to perform this study, a scale model test was carried out using the developed small scaled shield TBM machine. The various instrumentations were conducted during the simulation of tunnelling. In addition, the ground behavior due to the shield TBM operation parameters was measured during the simulation. Based on the simulation results, the stability of the ground was evaluated and the fundamental shield TBM tunnelling technique in the soft ground was suggested. In conclusion, design's reliability through laboratory small scale model test about Shield-TBM section was obtained, and both the improvement plan for safety during construction and the construction plan for securing airport runway's safety during tunnel passing by Shield-TBM propulsion were suggested. 본 논문에서는 연약지반에 건설되는 Shield TBM 터널의 시공기술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하여 Shield TBM 장비를 축소 제작하여 축소모형 시험을 수행하였으며, 쉴드터널 굴착을 모사하기 위하여 다양한 장비들이 적용되었다. 또한 축소모형시험 중 Shield TBM 장비로 인해 발생되는 지반의 거동을 계측하였으며, 지반의 안정성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평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쉴드터널의 안전한 시공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Shield-TBM 구간에 대한 실내축소모형시험을 통하여 설계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시공 시 안전을 위한 개선사항 등과 특히, Shield TBM 추진시 쉴드터널이 통과하는 공항 활주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공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크 공간에서 나타나는 시지각적 착시현상과 유형별 특성 분석 - 게슈탈트 시지각 이론을 중심으로
한명식 한국바로크학회 2022 바로크연구 Vol.5 No.-
바로크 건축과 미술에 적용된 공간에 대한 표현은 기본적으로 전시대인 르네상스의 투시법과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 르네상스의 투시법이 공간체계의 시각적 상상력을 창출했다면 바로크는 ‘왜상(anamorphosis)’이라는 변칙적 투시법을 통해서 공간을 착시적인 현상으로 변화시켰다. 본 연구는 바로크 공간의 이러한 착시적 조형성을 분석하고 개념적으로 응용함으로서 공간이라는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이론적 토대를 갖추기 위함이다. 바로크 공간의 착시적인 유형을 조형적으로 분류해보면 ‘왜상과 과장투시’, ‘중첩과 반복’, ‘운동과 연속’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를 게슈탈트 시지각이론으로 분석해보면 주관적이고비가시적인 구축 요소로서 심상작용에 다양한 조형 언어적 의미를 생성시키고 그 응용적 결과를 확대시킬 수 있다.
한명식 청주대학교 사회(지리)교육학과 1975 上黨地理 Vol.- No.1
지석묘와 같은 거석문화(Megalithic Culture)의 유적과 토기ㆍ석기 등의 유물이 제주시의 용담ㆍ오라 ㆍ삼양ㆍ외도 등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제주도에 인구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아득한 옛날 선사시대부터 임을 알수 있다. 선사시대 부터 고려말까지는 외적의 침입이 없이 평화로운 상태가 계속된 고도로서 주민의 대부분이 패류 ㆍ해조를 채취하기 쉬운 해안지방에 거주하였으나 고려말에 원이 침입하고 또 려말에서 이조초초에 거쳐 왜구의 약탈이 심하여 사회가 불안해지기 시작하자 주민의 대부분이 거주지를 해안에서 중산간지대로 옮기어 인구가 내륙의 중산간지대에 집중하였다. 또 이중환의 택성지의 『譫曰, 溪居不如江居, 比以通貨財取漁硼而論耳, 其實則, 海上多風, 人面易黑, 又多脚氣水腫瘇虐之疾, 水泉乏土地, 且灣濁水潮至淸絶韻絶』에서와 같은 해안지방이 거주지로써 결코 좋은곳이 못된다는 그 당시의 사회관이 작용한 것도 같다. 이리하여 내륙의 중산간지대는 경작과 목축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거주지가 되어 산계의 봉천수와 용천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 하였다. 그러던 것이 1910년 한일합병후 제주 ㆍ목포간 정기선로가 개설되어 육지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해안 환상도로가 해안을 따라 개통되고 제주 ㆍ서귀포 간의 남북 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해안지대가 급격히 발전되어 새로운 인구를 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