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3세기 加耶交易體系의 變化와 浦上八國戰爭

        태경회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7 국내석사

        RANK : 247631

        浦上八國戰爭은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가야 세력권 내부의 전쟁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 駕洛國과 斯盧國, 그리고 浦上八國으로 대표되는 경남 해안의 소국집단 등 남부지방의 3세력권의 변동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駕洛國은 加耶(弁韓)의 중심국으로 漢郡縣 설치 이후 시작된 교역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駕洛國이 위치한 김해지역은 철 생산 능력이 높았고 지리적으로 해운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加耶諸國(弁韓小國)과 漢郡縣 사이에서 교역을 중개하며 많은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2세기 중반 이후 중국의 혼란은 곧 한군현의 혼란으로 이어지게 되고 기존에 駕洛國이 가졌던 교역 주도권을 약화시켜 駕洛國의 위기로 다가오게 된다. 반면에 혼란의 시기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 때 해상세력으로 자체적인 교역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서부경남해안지역의 소국들이 성장하게 된다. 3세기 초가 되면 한군현은 대방군을 중심으로 점차 안정을 찾게 된다. 駕洛國은 다시 교역 독점권을 행사하기 위해 시도하였지만 이미 상황은 이전과 달리 진행되고 있었다. 서부경남해안지역 소국들은 이제 駕洛國 중심의 교역체계 속에 편입되려 하지 않고 독자적인 교역을 통해 보다 많은 이익을 남기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유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주변의 국가들이 연합하여 駕洛國이 가지고 있던 가야의 대외교역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駕洛國은 주변 국가의 성장과 반발에 위협을 느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주변 斯盧國과 화친을 맺게 되었다. 斯盧國은 1세기 후반부터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駕洛國과 지속적인 전투에 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하류의 핵심지역을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斯盧國은 2세기 후반 북쪽으로 통하는 육로인 죽령과 계립령을 개척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굳이 駕洛國과의 전면전을 벌이면서까지 낙동강 유역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駕洛國이 화해를 요청했을 때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배후에는 이러한 상황이 놓여 있다. 駕洛國과 斯盧國의 화친은 분명 김해지역에서의 교역이익을 담보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상황은 서부경남해안지역 소국들의 불만을 더욱 크게 만들어 결국 浦上八國戰爭으로 분출되었다. 駕洛國과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 나라는 서부경남해안지역의 浦上에 있던 8개 국가이다. 8개국 중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나라는 古自國, 骨浦國, 史勿國, 保羅國, 柒浦國인데 고성, 창원, 사천, 칠원 등지로 추정해 보았다. 浦上八國이 駕洛國 공격에 실패한 후 중심 3국(骨浦國, 柒浦國, 古自國)이 斯盧國 영토인 竭火城을 공격하지만 역시 패배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처럼 浦上八國으로 대변되는 서부경남해안세력은 결국 2차에 걸친 전투로 점차 약화되었다. 반면 駕洛國은 단기적으로는 浦上八國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浦上八國이라는 교역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제거함으로서 다시 연맹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전쟁을 도와주었던 斯盧國의 간섭은 이후 김해지역에서 駕洛國의 교역 이익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 군현의 안정화와 왜와의 적극적인 교역 등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다양한 외교관계를 통해 斯盧國을 견제하면서 駕洛國은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다. 浦上八國戰爭에 있어 가장 큰 수혜자는 阿羅國이었다. 함안의 阿羅國은 배후에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고 내륙의 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포상팔국이 쇠퇴한 이후 해안으로 진출하면서 더욱 더 발전하여 3세기 중엽 이후 駕洛國과 함께 加耶을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3세기 전반 일어났던 浦上八國戰爭은 駕洛國과 阿羅國을 중심으로 加耶聯盟 내부의 세력을 재편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加耶 내의 제 소국들간의 연맹관계와 그들의 위기 극복방법을 추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전기가야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