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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인,김원,박성광,강성귀,김형진 의과학연구소 1998 全北醫大論文集 Vol.22 No.1
Urachal carcinoma is an unusual neoplasm, which is estimated to account for 0.22% of all bladder neoplasm. The tumor usually arises from the juxtavesical segment of the urachus, and invades the urinary bladder resulting in hematuria and irritative symptoms of the bladder. Late diagnosis, aggressive nature, and poor survival are the hallmarks of this malignancy. The urachal carcinoma occurred in young adults is extremely rare. We experienced a case of urachal carcinoma found in the 26-year-old man presented with hematuria. KUB revealed irregular shaped calcific shadow in the pelvic cavity. Pelvic computed tomography & magnetic resonance imaging revealed lobulated calcified mass on urinary bladder dome. Cystoscopic biopsy showed moderately differentiated mucinous adenocarcinoma with sparsely scattered signet ring cell. The patient underwent extended partial cystectomy including excision of the urachus and umbilicus and pathologic finding showed mcinous adenocarcinoma. Three monts later, the patient remains well, free from hematuria, and cystoscopy disclosed no mass.
경찰부패 통제전략의 효과성제고에 관한 연구 : AHP의 적용
최상일(崔相一) 한국정책과학학회 2006 한국정책과학학회보 Vol.10 No.2
우리나라의 경찰조직에서는 사회변화추이에 따라 경찰조직내부의 문화를 재정립하는가 하면 투명화, 국제화, 다양화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의 문화를 변동시켜 혁신적 경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정부에서는 경찰조직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경찰부패에 대한 통제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현 단계에서 과연 어떠한 통제전략이 경찰조직의 부패를 줄이거나 근절하는데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경찰조직의 부패에 대해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전문가집단을 대상으로 분석적 계층절차(Analytic hierarchy process) 의 조사방법을 활용하여 각 부패통제 전략들 간 상대적 중요도를 평가하였다. 경찰부패 통제 전략들 간 상대적 중요도를 평가한 결과 현재 정부에서 경찰부패통제에 사용되는 정책적도구가 경찰부패를 통제하는데 우선순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경찰부패통제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찰조직이 갖는 현재적 특성과 조직의 변화에 따른 가장 최적의 통제전략을 선택하고 집중하여 제한된 인원과 예산으로 정책효과의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통제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최상기(崔尙基) 한국목간학회 2013 목간과 문자 Vol.11 No.-
1차 사료가 부족한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목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咸安城山山城에서 출토된 대량의 목간들은 중고기 신라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을 살필 때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실물 자료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산산성 목간 관련 간행물, 연구성과들이 다수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산산성 목간에 대한 체계적인 번호 부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연구 과정에서 오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 요인이다. 발굴보고서, 현장설명회 자료집의 경우 한 간행물 안에서도 번호 부여 방식이 여러 가지이며, 각 간행물마다 매번 목간 번호가 1번부터 시작하므로 일관적인 파악이 어렵다. 《韓國의 古代木簡》, 《韓國木簡字典》은 현재까지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본 자료집이다. 그러나 다른 간행물들과의 연속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부여한 번호도 아직 문제점이 있어 그 형식을 한국에서 출토된 목간들에 일괄 적용하기 어렵다. 여러 종류의 번호 부여 방식이 혼재한 상황은 연구성과의 작성 단계부터 문제가 되며, 이로 인해 연구사의 신속, 정확한 파악도 곤란하다. 번호부여 방식을 비롯해 성산산성 목간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는 학문후속세대의 연구 지속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차후 새로운 번호 부여 방식을 마련할 때에는 해당 목간의 출토 장소, 출토 연도, 일련번호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틀을 갖춰야 할 것이다.
최상기(崔尙基) 한국목간학회 2014 목간과 문자 Vol.12 No.-
2011년 소개된「?軍 墓誌」는 예군의 흥미로운 생애로 인해 한?중?일 학계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다만 각국 학계의 관심사에 따라 논의의 방향도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예군 묘지」의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이들을 정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군은 613년 사비에서 출생했다고 추정되며, 678년 장안에서 66세로 사망했다. 예씨 일족의 묘지에서는 그들의 출자를 중국에서 찾았지만, 현재로서는 웅진지역에 연고를 가진 세력이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630년대 정계 입문 적령기였던 예군은 마침 무왕이 웅진 지역과 맺은 모종의 관계 속에서 백제 정계에 진출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의자왕의 항복은 예군의 동생인 예식진이 주도했다고 보지만, 묘지의 서술 및 예군이 당에서 받은 관직을 고려하면 그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다. 백제 멸망 이후 예군은 동생 예식진과 함께 웅진도독부 체제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당의 동북아시아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軍 墓誌」에는 ‘日本’을 명시한 구절이 있어 주목을 받았는데, 이 부분은 백강 전투 및 그 사후처리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와의 교섭은 묘지에 기록될 정도로 예군 본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