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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가 조선조에 끼친 영향

        이상하 ( Sang Ha Yi ) 퇴계학연구원 2012 退溪學報 Vol.132 No.-

        우리나라에서 『주자대전』을 처음으로 완독하고 연구한 학자는 퇴계 이황이다. 이황의 편저인 『주자서절요』는 조선에 주자학을 보급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고, 이황과 그 門人에 의해 정리된 『주자서절요』 주석은 『주자대전』 연구를 촉발시켜 향후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사이에 성리설 논쟁을 惹起하는 한편 방대한 『주자대전』 주석을 양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자학 발전을 견인하는데 가장 큰 動因이 되었다. 『주자서절요』에는 주희의 정설이 축약되어 있어 조선의 학자들로 하여금 주자학의 정심한 이론을 쉽게 受用할 수 있게 하였다.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주자서절요』와 『朱書百選』을 비교해 보면, 두 책의 편자의 견해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주자서절요』의 영향을 받아 편찬되었으나 『주서백선』은 『주자서절요』의 내용을 산삭 또는 보완하여 율곡학파 학설의 입론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주자서절요』는 주희의 辨異端의 논리가 강하게 드러나 있어, 조선 전기까지 남아 있던 불교의 영향력을 일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학자들로 하여금 불교의 문제점을 쉽게 간파하고 주자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지만 학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깊이 불교를 알 수 있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자유로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道學 일색의 이념주의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자서가 많이 읽히면서, 이황으로부터 주희의 만연체 문장이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황의 문집부터 『주자대전』의 영향을 받아 문집의 권질이 현저히 많아지고 서간문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 문집의 모양이 종전과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상소문, 서간문 등에 주자서에 나오는 어휘, 고사가 많이 쓰였으며, 碑誌類와 같은 다른 문장에서도 宋代 語錄體글이 많이 등장하여 문체를 바꾸어 놓았다. Yi Hwang (1501-1570), the most prominent Korean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started research on the Whole works of Zhu Xi (Jujadaejeon, 朱子大全). He edited the Outline and Explanations of the Works of Zhu Xi (Jujaseojeolyo, 朱子書節要) which became popular source of the orthodox Neo-Confucianism in Korea. The annotations of of Yi Hwang and his school in the Outline and Explanations of the Works of Zhu Xi, made a starting point of intensive research on the the whole works of Zhu Xi in Korea. Also it became the trip wire of the debates between Yi Hwang School and Yi I school on the orthodox doctrines of Neo-Confucianism, one of the important motives which eventually made further development of Korean Neo-Confucianism. The Outline and Explanations of the Works of Zhu Xi has brief ex- planation of the doctrines of Zhu Xi`s criticism on Buddhism which swept the academic residue of Buddhism which had significant power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ventually this got rid of the chance of further studying on Buddhism.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had been committed to study Neo-Confucianism also this trend made the academic tolerance very narrow. As the works of Zhu Xi became read, the writing style of Yi Hwang who followed the long sentence style of Zhu Xi became popular. By means of the influence of the Whole works of Zhu Xi on the Works of Yi Hwang, the trends of the works of Korean scholars changed to became bigger and to include more letters than before. Moreover, there was lots of writing style changes, for example such as lots of quotation from the works of Zhu Xi, in such writing as the inscriptions which imitated the Sung dynasty dialogu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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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寒洲 李震相 心說의 성격-기존 嶺南學派의 心合理氣說·王陽明의 心旣理說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이상하(Yi sang ha)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4 동양한문학연구 Vol.19 No.-

        Yi Jinsang(1818~1886. Courtesy name Hanju)is often hailed as the one who completed the theory of Principle(juriron, 主理論)of Young-nam school. The focus of his scholarship was concentrated on epistemology. He polished the existing epistemological concepts such as ‘合看·離看’, ‘渾倫看·分開看’and regrouped them into ‘三看’and ‘二推’. ‘分開看’ ran the danger of letting one misunderstand that the Principle(理)and material force(氣)had different bases in mind and thus emanated separately. '渾倫看’, on the other hand, gave the false impression that the Principle was subordinated to material force, as the former was mistakenly relegated to the position of guiding rules of the latter’s movement. ‘三看’, more specifically, '竪看·橫看·倒看' and '二推', namely '順推‘ and ‘逆推’, were his intellectual invention to remedy the negative sides of the former epistemological theories. Among the "Three Lookings(三看)," ‘倒看’marks an original contribution in the history of Neo-Confucianism. The tenn was sometimes used to denote that the starting point of perception should be placed in things them-selves when exhausting the Principle, in which case it was inter-changeable with ‘格物’. In other times it meant the perceptive gaze was only limited to the traces of things. ‘二推’ was a device to overcome the shortcomings of ‘三看’as each ‘看’, when confined within itself, may run the risk of not perceiving the wholeness of things. In this sense, it may be considered a practical running device to activate ‘三看’. ‘心卽理說’, Hanju’s representative theory, was geared toward illuminating the presiding role of the mind while being open to the possibility of both ‘心合理氣’, and ‘心卽氣’. However, his theory met with the criticism of the Youngnam ‘心合理氣’ school let alone Giho ‘心卽氣’ school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Youngnam school and Hanju ran as follow. Both parties agreed that the mind integrated both the Principle and material force. However, in Hanju’s case, he argued that the pristine condition(本然) of the mind in its essence(體)and practical usage(用), and the pristine condition of nature(性)and emotion(情)were the Principle itself, which materialized into his theory of ‘心卽理’. His Youngnam opponents raised questions over whether the mind could be defined primarily in terms of the Principle while excluding material force. It reflected their strong adherence to the teachings of their influential local teacher Toege who regarded that the seven emotions were the results of emanation of the material force. Hanju manifested that his ‘心卽理說’was different from Wang Yangming’s despite the same name. He argued that the Principle in Wang’s ‘心卽理’was in fact ki, the material force. Their difference was evident in their approach to the practice of study as Wang primarily focused his training to the mind operation while Hanju tried to illuminate the complexities of outer things by researching existing intellectual theories, instead of practicing introspective methods such as quiet sitting and mind preservation. 寒洲 李震相 性理說의 핵심은 인식의 방법론인 竪看·橫看·倒看의 三看, 順推·逆推의 二推와 心性情論을 집약한 心卽理說로 요약될 수 있다. 한주가 기존의 合看·離看, 渾倫看·分開看을 더욱 정밀히 다듬어 三看·二推로 재구성한 것은 離·合, 渾倫·分開라는 용어가 가져올 수 있는 폐단을 지양하고 나아가서는 난맥으로 전개되던 당시의 성리설들을 회통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즉 分開看 쪽을 중시하다보면 실제로 理와 氣가 心中에 각각 근본을 두고 발출하는 것처럼 오인되기 쉽고, 渾倫看 쪽을 중시 하다보면 理는 氣의 운동법칙에 그쳐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주가 倒看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성리학 史上 매우 특기할 만하다. 한주에게 있어서 도간은 처음 窮理할 때 事物上에 인식의 출발점을 두어야 한다는, 즉 格物과 상통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인식의 시선이 形迹에만 그쳐 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二推는 三看의 각 看法이 한 관점에만 고정되어 있을 경우 사물의 전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게 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이를 테면 삼간의 실제 운용법이라 할만하다. 즉 倒看에만 머물면 사물의 形迹을 보는 데 그칠 수밖에 없고, 倒看을 거치지 않은 竪看은 공허한 관념에 빠지기 쉬우며, 橫看이 빠지면 현상의 內外, 本末을 구별하지 못해 실제 공부에 착수할 단서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삼간은 한주의 心說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주의 대표적인 학설인 心卽理說은 心의 본체를 가리켜 그 主宰性을 밝힌 것으로서 心合理氣,, 心卽氣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탕 위에서 입론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학설은 心卽氣를 주장하는 기호학파는 물론 心合理氣를 주장하는 영남학파의 주류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七情은 氣發이라는 퇴계의 설에 위배된다고 판단되어졌기 때문이었다. 心의 本色, 즉 내용을 合理氣로 보는 견해에는 한주와 영남학파 사이에 이견이 없지만, 여기서 한 층차를 더 마련하여 心의 本然의 體用, 性情의 本然을 摘示하여 理로 규정 한 것이 한주의 심즉리설이다. 이 점에서 한주는 기존 영남학파의 理氣心性論의 본령을 본격적으로 비판, 수정한 최초의 영남학파 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젓이다. 한주는 자선의 심즉리설은 왕양명의 심즉리설과 명칭은 같지만 실상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왕양명의 설을 분석하여 왕양명이 주장하는 섬즉리의 理는 실상은 氣를 理로 오인한 것이므로 心의 본체를 가리켜 말한 자신의 心卽理와는 다르다고 하였다. 한주와 왕양명의 학설의 차이는 실제 공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왕양명은 모든 공부를 一心 속에 수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한주는 靜坐 存心과 같은 內觀보다 사물의 번다한 이치를 밝히는 일에 주력하여 복잡다단한 기존 학계의 성리설을 정리하는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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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시간 영상회의 시스템 보안

        이상하(Sang-ha Yi),장준교(Jun-kyo Jang),신성철(Seong-cheol Shin),김동규(Dong-kyoo Kim) 한국정보과학회 1998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5 No.2Ⅲ

        실시간 영상회의 시스템을 인터넷 상에서 다양하게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부분의 연구는 오디오, 비디오 압축기법, 멀티미디어의 동기화, 다자간의 영상회의를 지원하기위한 IP multicast 의 Mbone 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통신의 회선속도가 고속화 됨에 따라 인터넷에서 영상을 통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방형 분산 인터넷 통신망 환경에서의 영상회의는 영상회의 데이터인 영상 및 음성 보안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된다. 본 논문에서는 실시간 영상회의에서 멀티미디어 데이터의 특성에 따른 보안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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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국역의 傳承과 재번역의 과제

        이상하(Yi, Sang-ha) 한국고전번역원 2017 民族文化 Vol.50 No.-

        고전번역원이 할 재번역의 목적은 우선 초기에 번역한 주요 고전을 보다 낫게 번역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기존의 번역을 검토하여 전승해야 할 것과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변별해야 한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언해는 탁월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매우 우수한 국역이다. 언해는 오늘날 고전국역에서 그 번역의 체제, 용례, 어휘 등을 취하여 활용할 수 있는 榜樣(일종의 전범)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두시언해』보다 후대에 나온 『고문진보언해』는 『두시언해』를 계승하지 못하여 『두시언해』보다 못한 번역이 되고 말았으며, 佛書의 언해와 私記(일종의 주석)보다 후대에 나온 『주자대전』의 주석들은 불서의 언해와 사기를 참고하지 못하여 불서의 사기보다 못한 語錄體 풀이를 내고 말았다. 후대의 번역에서는 『소학언해』,『두시언해』 및 佛書의 언해와 私記등을 참고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곳들을 잘못 번역하고, 잘못된 번역과 주석을 답습하였다. 이러한 오류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먼저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힌 한문의 原典類를 선정해 두어 국역의 주석에서 출전으로 밝히게 하는 한편 언해의 어휘와 용례를 모아서 사전을 만들어 검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역 동문선』 등 기존 번역의 장점이나 타당성도 면밀히 분석 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언해에는 『사서언해』 類의 엄정한 정신과 『소학언해』, 『두시언해』, 佛書언해 類의 자유로운 발상이 함께 流傳하고 있다. 그리고 李滉의 『古文眞寶前集』 해석에서 보듯이 이 밖에 아직 발굴하지 못한 우리의 주석들도 많다. 이러한 성과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국역의 토대를 구축하고, 고전번역원이 그 동안 쌓아온 국역자산을 잘 활용하면, 고전국역의 전범이 되고 제이의 고전이 됨직한 우수한 국역서를 낼 수 있을 것이다. The primary goal of retranslation by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ITKC) should be improving earlier translations of major classics. To this end, ITKC should review existing translations and determine what should be passed down and what should be not. Ŏnhae from the Chosŏn Dynasty are excellent Korean translations of Chinese classics by outstanding scholars. Ŏnhaes can be utilized as sample translations of Chinese classics whose system, usage, and vocabulary can be borrowed by today’s Korean translations. However, Komunchinbo Ŏnhae(古文眞寶, Reliable Treasures of Archaic Prose), which was published later than Tusi Ŏnhaes(杜詩, Poems by Du Fu), was a worse translation than Tusi Ŏnhae, because it failed to follow Tusi Ŏnhae. Annotations of Chu Tzu ta ch’üan(朱子大全, Chu Hsi’s Complete Works), which was published later than the Ŏnhaes or Sagi(私記, a kind of annotation) of Buddhist scriptures, also generated worse interpretations of analectic texts compared to these sagi, because they did not refer to the Buddhist Ŏnhaes or sagi. Later translations wrongfully translated some texts and included incorrect annotations, which could have been prevented if they referred to Sohak Ŏnhae, Tusi Ŏnhae, or the Ŏnhae and sagi of Buddhist scriptures. In order not to repeat these errors, selected original literature in the Chinese language, which has been widely read in Korea, should be listed as references in the annotations of Korean translations. It is necessary to collect the vocabulary and usage of Ŏnhaes and to create a searchable encyclopedia. In addition, the merits and validity of existing translations, such as Kugyŏk(國譯, Korean Translation of) Tongmunsŏn(東文選, Anthology of Korean Literature), should be thoroughly analyzed and examined. Ŏnhaes contain both strict spirits, learned from books like Sasŏ Ŏnhae, as well as liberal ideas, learned from Sohak Ŏnhae(小學諺解, Vernacular Elementary Learning), Tusi Ŏnhae, and the Ŏnhae of Buddhist scriptures. As can be seen from Yi Hwang’s interpretation of Komunchinbo Chŏnjip(前集), there are many annotations that have not been discovered yet. If ITKC gathers and organizes these works, establishes a foundation of Korean translations, and utilizes accumulated Korean translations, it will be able to produce excellent works of Korean translation that can be the standard for Korean translations of Chinese classics.

      • 한국 성이학(性理學) 칠정이발설(七情理發說)의 계보 상에서의 응와 이원조(凝窩 李源朝)

        이상하 ( Sang Ha Yi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6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39 No.-

        한국 성리학에서 主理論의 絶頂을 이룬 것은 七情理發說이며, 당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寒洲 李震相의 心卽理說도 그 핵심은 필경 칠정이발설에 있다. 퇴계의 학설을 계승한 영남학파에서는 葛庵 李玄逸 이후 대체로 갈암의 설을 遵奉하여 四端을 理發, 七情을 氣發로 정의하였다.그러나 영남학파의 일각에서는 이미 갈암 이전부터 칠정이발설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西厓 柳成龍의 제자인 愚伏 鄭經世이다. 우복 이후로는 우복의 六世孫인 立齋 鄭宗魯가 가정의 학설을 이었고, 한편 우복의 스승인 大山 李象靖도 사실상 七情理發과 같은 설을 보인다. 凝窩 李源祚는 스승인 입재의 설을 이어서 칠정이발을 주장하였다. 이들이 칠정이발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퇴계의 心統性情中圖이다.응와는 ≪중용≫의 해석 등에서 철저한 主理論을 보여 七情理發의 논리적 근거에서 한주와 견해가 일치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응와는 한주가 心卽理說을 주장하는 것을 반대하였는데 이는 心說의 차이와 학문성향에서 기인한다. 특히 心說은 七情理發說의 가장 중요한 논리적 근거가 되는데 이 心說의 차이가 결국 七情理發의 실제 내용의 차이를 낳는다. 그러나 응와의 七情理發은 聖人의 경지에 한정한 것으로, 理發을 모든 情의 본연으로 본 한주의 七情理發과 다르다. 응와의 칠정이발은 본성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본성을 회복한 성인의 경지에 한정하였고, 한주의 칠정이발은 心의 用의 본모습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응와는 퇴계학파 전통의 心合理氣를 遵奉하였으며, 한주가 사용하는 竪看橫看倒看三看에 의거하지 않고 퇴계학파 일반이 사용하는 渾淪看分開看에 의거하여 四七理氣說을 전개한다. 응와는 혼륜간에 의거하기 때문에 氣를 떠나서 七情 내지 心을 말할 수 없고, 한주는 竪看에 의거하기 때문에 七情도 본연은 理發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응와의 심설은 合理氣를 중시했지만, 活看하여 理發과 氣發을 모두 인정했다는 점에서 會通論에 가까우며, 이러한 점에서는 寒洲의 심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는, 주리설이 주자의 정설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先儒의 학설을 조목별로 모으고 心卽氣說을 비판하는 등 논변과 저술에 주력하는 한주의 학문 태도를 비판하고 실제의 敬 공부와 실행에 힘쓰라고 권하는 응와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원조는 성리론에 가치를 두지 않았는데, 아마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듯하다.” 하였는데, 필자는 이 견해에 대체로 찬동한다. 그러나 다카하시 도오루가 “이진상은 이원조의 학설을 계승하면서도 실제는 오히려 유치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하였는데,攀 ≪조선의 유학≫ 다카하시 도우로 지음 조남호 옮김. 조합공동체 소나무 1999년 12월. 131쪽.攀攀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주의 성리설은 정재 유치명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없으며, 오히려 견해가 상반되는 곳이 보인다.응와는 성리설을 따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각 학파의 저술들을 두루 읽고 나름대로 비평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응와는 성리설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리설은 대체를 파악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실행을 중시했던 듯하다.응와의 七情理發說은 우복 정경세입재 정종로로 이어지는 것을 받아서 한주에게 전하여 主理說의 절정이라 할 心卽理說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일회성키를 이용한 전자우편 보안 프로토콜

        장준교(Jun-kyo Jang),이상하(Sang-ha Yi),김동규(Dong-kyoo Kim) 한국정보과학회 1998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5 No.2Ⅲ

        전 세계가 정보화 열풍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엄청난 사용자들이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 중 전자우편 서비스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전자우편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환경하에서는 많은 보안 위험요소 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전자우편 서비스의 사용에 많은 제약과 노출 위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미 기울여져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형태의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PEM은 구현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보편화 되지 못하고 있으며, 또 다른 제품인 PGP는 키인증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들 제품들은 전자우편 보안 요구사항 들을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문제점들도 안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던 제품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을 내 놓기 위해 모든 보안 요구사항을 만족할 수 있고 사용하기 편리한 전자우편 보안 프로토콜을 설계하였다. 이를 위해 비대칭키 방식인 키 분배 서버를 이용하며, 하부 사용자는 키 분배 서버에 의존해 기밀성 및 무결성등 정보보호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 DNS를 사용한 다중 도메인 환경에서의 CRL 검증에 대한 연구

        이건희(Geon-Hee Lee),유정각(Jeong-Gak Yoo),이상하(Sang-Ha Yi),김동규(Dong-Kyoo Kim) 한국정보과학회 2002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9 No.1A

        현재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제공되고 사용 되는 서비스는 전자 상거래에 관련된 서비스이다. 이러한 서비스에서 각 사용자 사이의 신원을 증명해 줄 인증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전자 상거래의 성격에 비추어 그 인증서는 항상 적시에 유지 관리 되어야 하며, 그 상태가 매 순간마다 정확하게 변경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보안성도 높아야 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현재 인터넷 환경에서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DNS 를 이용하여 해결 하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자원레코드의 한 속성을 사용하여 인증서를 배포하고, 그를 검증하여 안전하고 적시 적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 공개키 기반 구조에서의 인캡슐레이션 방식 키복구 절차

        윤혁중(Hyuk-Joong Yoon),임진수(Jin-Soo Lim),이상하(Sang-Ha Yi),김동규(Dong-Kyoo Kim) 한국정보과학회 1999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6 No.2Ⅲ

        키복구는 암호화 제품의 사용자가 암호화키를 분실하여 데이터를 복호화할 수 없을 때 데이터를 복구하거나 수사기관등이 합법적인 절차로 암호화된 데이터를 복호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보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 앞으로 많은 종류의 암호화 제품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다양한 키복구 기술의 개발과 키복구 기술간의 호환성의 해결이 시급한 실정이다. 본고에서는 공개키 방식에 기반을 둔 전자상거래와 전자 정부등에서 채택할 수 있는 인캡슐레이션 키복구 기술과 이를 위한 절차에 관하여 논한다. 공개키기반구조에서 키복구는 사용자와 법집행기관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키복구기관을 인증관리센터의 관리하에 두고 인증관리센터가 인증하는 키복구기관의 공개키를 이용하여 키복구필드를 생성하는 인캡슐레이션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세션키를 제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법집행기관도 필요한 경우에 언제나 사용자의 세션키를 복호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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