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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일본 전관 거류지 용두산, 용미산 지명 변천 연구

        이근열 한국지명학회 2023 지명학 Vol.38 No.-

        이 본 연구는 일본 전관거류지 안에 있던 용두산과 용미산 지명의 명명 기원, 명명 주체, 원래 지명을 고지도, 한일관계 사료, 신문 및 문헌 자료 등을 통해 고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용두산은 왜관 안에 있던 1740년 『동래부지』에 기록된 ‘초량소산(草梁小山)’이었고, 용미산은 18C중엽 「영남지도」에 기록된 ‘동산(東山)’이었다. ‘초량소산’이 일본거류지에 속해 있었기에 동래에서 발향한 읍지에서는 동래부에 속한 ‘송현산’만 언급되자 후대에 ‘송현산’이 용두산의 본래 지명으로 오해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둘째, ‘초량소산’이 용두산으로 바뀌어 처음 나타난 자료는 1876년 일본인이 쓴 『조선귀호여록』이다. 그러나 1874년에 기록된 『항한필휴』에 ‘용미산’이란 지명이 먼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일본인에 의한 ‘용두산’으로의 지명 변화는 1876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용두산, 용미산이 공식적으로 고정된 것은 용두산신사 개축년인 1899년이다. 셋째, 용두산, 용미산의 연원은 일본인이 만든 『용두산신사사료』에서 한국 고래의 것으로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인이 주변의 용호, 용당 등의 용의 지명을 본 따서 자신들의 뜻을 기원하는 용의 지명을 자신들의 중심산인 ‘중산’을 용수산, 용두산 등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에 맞춰 ‘호기산’을 ‘용미산’으로 바꾼 것이다. 넷째, 용두산, 용미산은 일본인의 의지에 의해 명명된 산명으로 확인되며 청산되어야 할 일제의 잔재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 KCI등재

        1917년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지지조서(地誌調書)》 편철 문서 지명 연구

        이근열 한국지명학회 2022 지명학 Vol.37 No.-

        본 연구는 함경남도 정평군 《지지조서》 편철 문서에 나타난 지명을 대상으로 한글 표기법과 한역 지명 표기 실태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1911년 경에 작성된 《조선지지자료》의 함경도 지명 자료가 누락된 상태이기 때문에 1917년에 작성된 함경남도 《지지조서》는 당시의 한글 표기 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때문에 《지지조서》 편철문서에 실려있는 함경도 정평군의 지명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해석하는 일은 중요한 작업이다. 본 연구에서는 함경도 정평군 《지지조서》의 12개 면별 필사본 자료를 분석하여 필사본 원전의 재구하고, 나타난 한역 표기 지명과 한글 표기 지명을 확인하여 자료로 제시한 후에 이에 대한 한글 표기법과 한역 표기법을 살펴보았다. 한글 표기 지명을 대상으로 고유 지명소를 분석하고 당시의 표기법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한역 지명을 지명의 전부요소와 후부요소로 나누어 구체적인 표기 양상을 확인하였다. 표기된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지형과 현지조사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일의 연구로 남겨 두었다.

      • KCI등재

        동부 경남 방언권역의 부산 방언 분화 연구—어휘를 중심으로—

        이근열 한글학회 2022 한글 Vol.- No.337

        This study was conducted to identify the Busan dialect by comparing the 153 dialects presented in the “Korean Language Map” for Busan, Gimhae, Yangsan, and Ulsan, all of which belong to the eastern Gyeongnam dialect. The Busan dialect was extracted and added to the dialect form for the Busan dialect in Dictionarys. The analysis produced four main results. The first result was that the dialects of Dongnae and Busan were integrated, as reflected in the fact that their agreement rate gradually increased from 74.5% to 81.25%, despite the fact that Okura Shinpei (1944), Han-Geul (1938–1946), Kim Hyung-gyu (1974), and Choi Hak-geun (1977) distinguished between them. The second result was that 145 words from the Busan dialect were missing from the Korean language map. Of the 153 dialects analyzed in this study, the 8 words from the Busan dialect that were not identified were “bat”, “joisak”, “inambak”, “oreunson”, “doridori”, “gonjigonji”, “antta” and “hago”. The third result was that the degrees of discrepancy and concordance between the Gimhae and Busan dialects were 75% and 25%, respectively, those of the Yangsan and Busan dialects were 76.4% and 23.6%, respectively, and those between the Ulju and Busan dialects were 77.6% and 22.4%, respectively. The fourth result was that the Busan dialect had a discrepancy rate of over 75% with the Kimhae, Yangsan, and Ulju dialects. 이 연구는 동부 경남 방언권에 속해 있는 방언을 대상으로 한국 언어지도 에 제시된 153개의 방언형을 비교 분석하여 부산 방언의 독자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 연구의 비교 대상 방언형은 오구라신페이(小倉進平)의 <조선어방언의 연구>, 조선어학회의 <한글>, 김형규의 <한국 방언 연구>, 최학근의 <한국 방언사전>을 기본으로 추출하였으며, 박지홍(1991), 김필순(1999), 안태봉(2003), 양희주(2008), 안길남(2005) 등의 자료를 대상으로 방언형을 추출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구라신페이, <한글>, 김형규, 최학근에서 동래와 부산의 방언형을 구별하여 조사되었지만 일치율이 시기적으로 74.5%에서 점차 81.25%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동래와 부산의 방언권이 통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둘째, 부산 방언을 조사한 문헌 자료를 통해 <한국 언어지도>의 부산 방언형으로 145개를 복구할 수 있었다. 셋째, 김해, 양산, 울주의 방언형을 부산 방언형과 비교 분석한 결과 김해와 부산의 불일치도는 75%, 일치도 25%, 양산과 부산의 불일치도는 76.4%, 일치도는 23.6%, 울주와 부산의 불일치도는 77.6%, 일치도 22.4%로 나타났다. 넷째, 부산 방언형은 김해, 양산, 울주와 불일치율이 75% 이상으로 부산 방언의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음을 보였다.

      • KCI등재

        근대 지명 자료에 나타난 양산 지명 연구

        이근열 한국지명학회 2020 지명학 Vol.33 No.-

        This study aims to reveal ‘Yangsan’ placenames in Modern placename Data. In particular, the changes were confirmed by analyzing old maps, modern placenames data, and 『Jibangbyeol -jimyeongjosachyeol』for Cheontae-san, Cheonseong-san, and Yeongchuk-san among the place names of ‘Yangsan’. The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Cheontae-san’ is a place name changed from ‘天臺山’, which takes the meaning of ‘dae(臺) supporting the sky’ as its origin. On old maps, Cheontaesan was marked as ‘天坮山’, ‘天臺山’, and ‘天坮岩山’. After that, the change in the name of the mountain was caused by the expression of ‘天臺山’ as the abbreviation ‘天台山’ in 『joseunjijijaryo』, a data from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is ‘天台山’ was read as it was in 『Jibangbyeoljimyeongjosachyeol』, and today it has been changed to ‘Cheontae-san’. In this respect, ‘Cheontae-san’ is identified as a place name derived from a place nam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Second, The original placename of ‘CheonSung-san’ was ‘Pocheon-san(布川山)’. Later, it was changed to ‘圓寂山’ in relation to Buddhism such as ‘Naewon-sa’, and it was also called ‘千聖山’ in relation to ‘Wonhyo’. After that, ‘圓寂’ was used as a word for death, and ‘圓寂’ was changed to ‘元寂’. Even at this time, the placename ‘千聖山’ was not officially used. However,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onJeok’ was used only as the name of the mountain range, and the placename ‘CheonSung-san’ officially appeared. In this respect, ‘CheonSung-san’ is a placename used since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Third, ‘Yeongchuk-san’ was written as'鷲捿山, 鷲栖山, and 鷲木丑山' in ancient placename data. When the Chinese character ‘鷲’ is read as ‘chwi, chuk’, it is called ‘Chukseo-san’ and even appeared in modern placename materials such as 『Joseunjijijaryo』. After liberation, what was recorded as ‘Yeongchuk-san’ in the 『Jibangbyeol jimyeongjosachyeol』, the placename data, seems to have been linked to the current placename. ‘Yeongchuk-san’ is not the placename that chang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but the placename that changed during the mapping process after liberation. 본 연구는 지명 변개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는 근대 지명 자료를 대상으로 양산의 지명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산이름만을 대상으로 그 변화의 양상을 고지도부터 근대 지명 자료, 그리고 현재의 지도의 근간이 되었던 『지방별지명조사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천태산’은 ‘하늘을 받치는 대(臺)’의 의미를 연원으로 하는 ‘天臺山’에서 변화한 지명이다. 고지도에서는 이를 ‘天坮山, 天臺山, 天坮岩山’으로 표기되었지만 일제 강점기 자료인 『조선지지자료』에서 ‘天臺山’을 약자인 ‘天台山’으로 표기한 것이 산 이름 변화의 원인이 되었다. 이 ‘天台山’을 『지방별지명조사철』에서 그대로 읽어서 오늘날 ‘천태산’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점에서 ‘천태산’은 일제 강점기 지명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확인된다. 둘째, ‘천성산’은 ‘포천산(布川山)’이 원래 지명이었는데, 내원사 등의 불교와 관련하여 ‘圓寂山’으로 바꾸고 이와 함께 원효와 관련해 ‘千聖山’으로도 불렀다. 그 후 ‘圓寂’이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자 ‘圓寂’을 ‘元寂’으로 바꾸어 표기하기도 하였다. 이 때에도 ‘千聖山’이란 지명은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부터 ‘원적’은 산맥 이름으로만 쓰이고 ‘천성산’이란 지명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천성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한 지명으로 지명의 전통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셋째, ‘영축산’은 고지명 자료에서 ‘鷲捿山, 鷲栖山, 鷲杻山’ 등으로 표기되었다. 이것이 한자 ‘鷲’가 ‘취, 축’로 읽히자 ‘축서산’ 등으로 불리며 ‘조선지지자료’ 등의 근대 지명 자료에까지 나타났다. 이후 해방 후 지명 자료인 『지방별지명조사철』에서 ‘영축산’으로 기록된 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축산은 일제 강점기에 변화한 지명이 아니라 해방 후 지도 제작 과정에서 바뀐 지명이다.

      • KCI등재

        부산 동구 동명의 연원

        이근열,이병운 한국지명학회 2015 지명학 Vol.23 No.-

        The Place Name is the resource of the Future. And so we insist that a study on the Place name is very important. This study begin as reflecting the contents registered in 『The Encyclopedia of Busan Place Names』(Busan jimeong chongram), 『The Encyclopedia of Korean Local Culture』(Busan hyangto munhwa jeonja daejeon). The results are as follows. 1) The Etymology of ‘Beomil-dong’ is ‘Beopcheon’. ‘Beopcheon’ is analyzed such as ‘beop[法:barrier]’+ cheon[Stream 川]’. 2) ‘Sujeong’ is originated in the Name of the village which formed naturally such as ‘suchengol’. In 『The Encyclopedia of Busan Place Names』(Busan jimeong chongram) and 『The Encyclopedia of Korean Local Culture』(Busan hyangto munhwa jeonja daejeon) interpretate ‘Sujeong’ into ‘crystal[水晶]’. But this interpretation has mistake. 3) ‘Jwacheon’ is originated in the Name ‘jatcheon[城川]’. ‘jatcheon’ is analyzed as ‘jat[castle 城]’+ ‘cheon[Stream 川]’. ‘jajinnae’ means ‘castle village’. It is analyzed ‘jat+an+nae’ 4) The Etymology of ‘Choryang(草梁)’ is ‘big tract of land’, ‘Plains’. ‘Choryang[草梁]’ is analyzed as ‘cho’[peureu:fields] + ‘ryang’[fields, a flat land]. ‘Saetti’ is the Place Name which is made in recent. It concerns with ‘choryang(草梁)’. ‘Saetti’ means ‘a land of glass’, ‘new land’, ‘east land’. 지명은 현재의 문화자산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명의 연원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가지는 해석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부산 동구의 여러 지명을 언어적으로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범일동은 원래 ‘범천일동’에서 변화한 것이며, ‘범천’의 어원은 부산진성과 관련된 ‘법+내’일 가능성이 있다. 이 ‘법내’가 후대에 비음동화에 의해 ‘범내’로 굳어지고 이것이 범천(凡川)으로 표기되어 고정되었다. 수정동은 자연마을 ‘수천골’에서 일제 강점기 때 ‘수정동’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이며, 수정(水晶)과 관련된 기원은 잘못된 것이다. 좌천동은 ‘잣내[城川]’에서 변한 지명이다. ‘잣내’의 한자 표기인 ‘자천’이 어원이 불확실해 지면서 ‘좌천’으로 바뀌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左自川’, ‘自川’, ‘左川’ 등으로 표기되어 ‘자천, 좌천, 좌자천’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자천’이라는 고유한 명칭이 어원의식이 부족한 상태로 ‘자천(自川)’으로 표기되면서 ‘좌천(左川)’으로 바뀌고 이 두 개의 명칭이 섞이면서 ‘좌자천’으로 표기된 것이다. ‘자진내’마을도 ‘잣+안+내’가 그 연원으로 보인다. ‘초량’은 ‘草+梁’으로 분석되는데, 이때 후부요소인 ‘량’은 ‘땅, 평지, 벌’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전부요소 ‘풀’은 ‘벌, ’의 의미인 ‘푸르, 부르’의 한자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량’은 ‘넓은 땅‘, ‘평원’과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 새띠는 ‘새+띠’로 분석되는데, ‘새’는 ‘새[新], 동쪽[東], 사이[間], 새[茅]’등을 의미하고 ‘띠’는 ‘터’의 이 지역 음변으로 ‘갈대나 풀이 많은 땅’, ‘새로운 땅’, ‘동쪽의 땅’의 의미이다.

      • KCI등재

        부산 구포(龜浦)의 어원 연구

        이근열 釜山大學校 韓國民族文化硏究所 2009 한국민족문화 Vol.33 No.-

        본 연구는 ‘갑우개, 굿개, 거북개’ 등의 다양한 어원으로 해석되는 구포관련 지명을 여러 지명 정보를 이용하여 새롭게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구포는 감동포, 구법포, 구복포 등 다양한 지명으로 불리며, 신라성인 의성이 있고 큰 하천인 덕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고대부터 대단위 주거 단지가 있었으며, 동래와 양산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구포를 단순히 거북이라는 한자음에 이끌려 해석하면 다양한 지명을 해석할 수 없고 관련 지명과 지물의 상관성을 설명할 수 없다. 여러 지명 정보를 이용하여 해석한 결과, 덕천은 큰 하천으로 이곳에 위치한 신라성인 의성은 ‘큰 성’으로 덕천에 위치한 성으로 보이며, 구법포는 큰 물이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나루로 해석되며 감동 포도 역시 ‘큰 갈래에 위치한 나루’로 구법포와 그 어원을 같이 한다. 구포는 구법포에서 2음절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두물머리인 이포에서 귀포로 바뀌고 이것이 거북 구로 바꾸어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구법포나 감동포, 구포는 두 물이 만나는 곳, 혹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큰 나루라는 뜻으로 어원을 추정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newly indicate the place name about Gupo(龜浦) interpreted as various etymologies, Gapuge, Gutge, Geobukge etc. Gupo is named different place names, or Gamdongpo, Gubeoppo, Gubokpo and so on. It has the castle of Silla Uiseong(義城), and stands on the place where a great river, Teokcheon, joins the Nakdong-river. Because it has been the habitat keeping a lot of residence since the ancient times, and was the site headed for Dongre and Yangsan, Gupo was considered important militarily and culturally. If it is interpreted by the sound of Chinese characters simply, Gupo can be explained neither as various place names nor as the interrelationship of place names and natural and artificial objects on earth concerned. After using a variety of information on the place name and interpreting it, I suppose that Deokcheon may be a great river, Uiseong, a castle of Silla, be a big castle standing at Deokcheon, Gubeoppo and Gamdongpo be a ferry where a great river is separated. We can see that 2-syllable Gupo may be changed from Gubeoppo, but, at the same time, see that Gupo may be changed from Epo, meaning ‘Two river join together', and then might be named Geobok. In this way, we can suppose that Gubeoppo, Gamdongpo, and Gupo are a wide ferry located at the place where two rivers join, or are separated.

      • KCI등재

        부산 땅이름의 말밑 연구

        이근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7 한국민족문화 Vol.29 No.-

        This thesis focuses on reconstruction rightly etymology of wrung Busan place names. Ii is necesusey to consider synthetically relevance of place names, topographical place, peripheral place names, local dialect and cultural background for etymological study of place names. As a result study of Susan place names, this study can reorganize wrung etymology as follows. Susan was reorganized nut jeung-san' but different place names named sujeong-san'. As follows grounds. First, Susan was transcribed variously 'Busan(釜山)과 'Busan(富山)', second, peripheral big mountain as sujeong-san(水晶山)', Thirdly, at was mentioned 'Busangogi(釜山古基)' at the old record, fourthly, 'meori-seong', 'mari-seong' was existed at the 'sujeong-san', lastly 'suri' can Se changed 'sujeon' or 'sirs'. 'jang-san' was reorganized 'the must high mountain', 'ganbio-san' was reorganized 'mountain located a large ferry', 'kachigogea' was reorganized nut 'a pass being crows' but 'a low pass', 'osige' was reorganized 'a pass toward gambol'. Just to say Jaime', 'bea-san' was reorganized 'mountain located a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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