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경북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 답사 보고서 : 하나이면서 둘인 마을 둘이면서 하나인 마을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8 민속학연구 Vol.4 No.1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는 동경 129˚ 27´ 40˝, 북위 36˚ 47´ 50″ 에 위치하고 있다. 동은 청정해역으로 조수 간만의 차가 작은 동해바다이며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달리고 그 자락인 낮은 구릉이 북쪽에서 남으로 자리하여 마을을 감싸고 있다2). 마을 앞에는 7번 국도가 남ㆍ북으로 가로지르며, 마을의 남쪽 방향은 후포와 영덕을 거쳐서 포항으로 향하고 있다. 북쪽 방향으로 울진을 거쳐서 강원도 지역인 삼척과 동해로 향하고 있다. 기성리는 남북으로 각각 두 개의 산이 위치한다. 남쪽에 위치한 산은 곡두산(꼭두산, 꼭재산)이라고 부르며 북쪽에 위치한 산을 망재산이라고 부른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정명천(正明川)이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정명천은 두 개의 근원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울진군 원남면 길곡리의 금장산 동록(東麓)에서 발원하여 기성면 정명리와 기성리를 거쳐 곡두산 아래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 하천의 하구에 발달한 충적 평야가 기성들을 이루고 있다3).
송라면 광천 1 리 하광마을 : 완전한 하나를 꿍꾸는 빛 속 (下光) 의 사람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9 민속학연구 Vol.5 No.1
하광마을은 500년 전 입향시조인 용씨와 지씨 부부를 시작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상광에서 하광으로 옮겨진 마을이다. 500년 역사를 가진 만큼 마을사회는 체계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의 모둠살이는 마을전체를 아우르는 대동회를 중심을 개발위원회ㆍ노인회ㆍ부인회ㆍ초군회ㆍ산림계의 개별 모둠들로 각각의 성격과 기능을 유지하는가 하면 외지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석메회와 다른 마을과의 연대모둠인 동갑계와 칠성계 등으로 질서정연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들 개별 모둠들은 실제로 제 각각의 기능을 다할 뿐만 아니라 운영에 있어서도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모둠살이는 마을사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아우르며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도 단합된 면모를 보인다.
진복 1 리 답사 보고서 : 배를 잊고 사는 오원 사람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8 민속학연구 Vol.4 No.1
먼저 답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답사할 곳이 울진군의 해촌 마을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사전 조사를 하였으나 막상 들어간 이 마을은 지형적으로는 해촌이지만, 생업상으로는 농촌이었다.海事는 전혀 없고 좁은 경지에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우리가 이 마을에서 느낀 것은 엄청난 빈촌(貧村)이라는 것이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8 민속학연구 Vol.4 No.1
이제까지의 조사되어져 온 답사보고서는 대부분 한 사회를 민속학의 각 파트별로 단락 짓고, 이를 조사하여 그 결과물을 통하여 전체를 보고자 하였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방법에 대하여는 이미 많은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하여 본 오산1리의 답사보고서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양식을 탈피하여 한 마을 사회의 일정 부분을 통하여 그것과 연관되어져 있는 마을 전체를 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하였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8 민속학연구 Vol.4 No.1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는 울진군에서는 남쪽에 있으며 기성면사무소에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다. 2, 3리를 합쳐 약 1.3km 정도 동해를 바라보며 길게 늘어선 모양이며 사동리는 上沙銅과 下沙銅으로, 현재는 행정구역 1리(上沙銅)와 2,3리(下沙銅)로 나누어져 있다. 沙銅이라는 마을 명칭은 예로부터 모래가 있는 골 근처는 金, 銀, 銅 등 광물질이 있다고 구전되어 불리게 된 이름이다(慶尙北道 地名由來總覽).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8 민속학연구 Vol.4 No.1
여기에 우리의 조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오산3리에서 느끼고 이해한 부분을 충실히 기술하려고 노력 하였지만 여러면에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우리가 이해한 오산3리는 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다른 주변마을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다른 마을 사람들 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변마을에 물을 대주는 것을 봐도 그렇고 어업을 하는 사람을 천시하는 것에서도 마을 사람들의 우월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1999 민속학연구 Vol.5 No.1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3리는 본래 청하현의 북면에 속하는 '화산'이라는 마을이었다2). 신라 35대 경덕왕 때에 그 명칭을 그 명칭을 해아(海阿)로 고쳐, 유린군(有隣郡 : 영해)에 유린군에 포함시켰다. 또 고려초에는 이 명칭이 청하(淸河)로 개칭되었으며, 제 8대 현종 9년(1895년)에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조 태조때에 감무(監務)를 두고, 그 뒤 영조 때에 縣內, 東, 南, 北, 驛 등 6개의 면으로 되었는데, 제 26대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청하군으로 바꾸어 명하면서 다른 군의 여러 면을 통합하였다. 1914년에는 군면 폐합에 따라 영일군에 편입되고 송라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에 화산은 耳津(1里)와 大津(2里)의 津字를 취하고 3里인 花山(一名 華山)의 華字를 취하여 華津이라 명명하여 화진3리라고 한다. 그리고 96년의 시군의 통합에 따라 포항시 북구에 속하게 되었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2000 민속학연구 Vol.6 No.1
조사지인 무실마을은 구미시 선상읍1) 봉곡 2리로 행정구역이 편재되어 있다. 무실은 선산읍에서 68번 국도를 따라 상주방향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은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바로 봉곡1리가 위치한다. 마을 뒷 편에는 비봉산 지맥인 대장곡이 우뚝 솟아 마을을 감싸고 있고, 앞에는 정식(鼎食)돌(솥배미)이 넓게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