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선조ㆍ광해군대 정몽주 인식

        보정(Kim, Boe-Jeong)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6 한국민족문화 Vol.61 No.-

        본고는 조선 전기 성리학 이해를 살펴보기 위한 일환으로써 윤두수의 『성인록』과 오운의 『동사찬요』를 통하여 선조·광해군대 사림의 정몽주 인식을 살펴본 연구이다. 중종대 정몽주의 문묘종사는 정몽주를 충신에서 성현의 반열로 올려놓고 있으나, 문묘종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정몽주의 출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분하니, 명종대 이황은 程子의 말을 빌어서 그 진위의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선조대 이르러 서인의 영수인 윤두수는 『성인록』에서 정몽주를 송나라의 문천상과 나란히 살신성인한 인물로서, 이제는 충신을 뛰어넘어 ‘仁人’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은 한 개인의 문집으로써 세종대에 이어서, 또 한 번 선조 18년(1585)에 간행되어 반포된다. 이때 좌의정 노수신에게 서문을 쓰게 하고, 유성룡에게는 기존의 신계본, 개성본, 관본을 모아서 교정을 보게 하고 발문을 쓰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의명분을 저버린 정도전과의 교유 관련 내용은 모두 삭제된다. 임진왜란 이후 동인의 영수인 유성룡이 교정을 보아서 간행되었던 『포은집』 운각본을 바탕으로 잘못된 곳을 다시 한 번 개진하는 이가 유성룡의 벗인 죽유 오운이다. 오운은 세 차례에 걸쳐 『동사찬요』를 편찬한다. 그 과정에서 『고려사』에는 수록되지 못한,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인물 길재, 김주, 이양중, 서견, 원천석 등을 추가 서술하는데, 이들은 선조대 이르러 세인의 이목을 받던 인물들이다. 여기에는 선조대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한 몫을 하고 있다. 광해군대 이르러 오운은 『동사찬요』의 정몽주 열전에서 이성계와의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그 대신에 공민왕 16년 기사, 즉 이색이 정몽주를 동방 이학의 비조라고 칭송한 기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중종 12년 정몽주가 문묘에 종사된 이후 조선 이학의 도통의 연원이라는 것을 말하는 단초가 되는 기사로써, 이를 강조하고자 함인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공양왕대 기사 가운데 공양왕의 옹립, 정몽주의 죽음을 제외한 모든 기사를 삭제하여, 도리어 정몽주의 죽음을 살신성인으로 강조하게 되니 성현의 반열에서 ‘인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하여 보면 선조·광해군대 정몽주에 대한 인식은 당파를 초월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하였듯이 소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조대 윤두수는 중종대 성현의 반열에 올려진 정몽주의 인식을 ‘인인’ 단계로 구체화시키며, 광해군대 오운은 이를 『동사찬요』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This article is investigated about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Sarim of Seonjo and Kwanghaegun through Sunginrok of Yoon Du-Su and Dongsachanyo of Oh Un in order to investigate the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in Chosun Dynasty. Jeong Mong-Ju was moved up to the rank to the saint from the loyalist by Moonmyojongsa of Jeong Mong-Ju in Jungjong’s period, however, his source was continuously controversial. Lee Hwang in Myongjong’s period obliterated the authenticity controversy by quotation of Jungja words. In Seonjo’s period, Yoon Du-Su, who was the leader of Seoin, recognized Jeong Mong-Ju as the saint in Sunginrok. He called that Jeong Mong-Ju was a martyr like Moon Cheon-Sang in Song Country. Through this recognition, Pounjib of Jeong Mong-Ju was again spreaded and published in 18 years of Seonjo’s period. The introduction was written by Noh Su-Shin, who was the first vice-premier. and the epilogue was written by Ryu Seong-Ryong. In the process, the information relating to Jeong Do-jeon has been deleted. After Imjin War, Ryu Seong-Ryong, who was the leader of Dongin, published Pounjib and Oh Un, who was a friend of Ryu Seong-Ryong, was again published after the correction. Oh Un published Dongsachanyo third edition. In this process, Gil Jae, Kim Ju, Lee Yang-Jung, Seo Kyeon, and Won Cheon-Seok were described additionally, they received the attention of the public in Seonjo’s period. It played an important role that the change of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Seonjo’s period. Additionally, the story of Jeong Mong-Ju in 16 years Gongmin King period in Dongsachanyo was included in the achievements of Jeong Mong-Ju. This story was showed that Jeong Mong-Ju in 12 years Jungjong’s period was the origin of Chosun Confucianism, and it was emphasized in this story. As disprove it, all stories except the enthroning of Gongyang King and the death of Jeong Mong-Ju were deleted, rather, the death of Jeong Mong-Ju was emphasized as the martyr and was showed the aspect as the saint. Through this article, we could know that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Sarim of Seonjo and Kwanghaegun was communicated as the overcome of the Imjin War transcending the partisans. Yoon Du-Su in Seonjo’s period embodied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moved up to the rank to the saint in Jungjong’s period, Oh Un in Kwanghaegun’s period reflected in Dongsachanyo.

      • KCI등재

        선조대 『포은집』 운각본(芸閣本)의 간행과 의의

        보정(Kim, Boe-Jeong) 포은학회 2017 포은학연구 Vol.19 No.-

        포은집 은 고려 말 정몽주의 문집이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판본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가장 많이 간행된 문집이기도 하다. 특히, 세종 21년(1439)과 선조 18년(1585) 두 차례에 걸쳐 왕명에 의해 교서관에서 간행된 점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고는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 판본 가운데 선조 18년(1585)에 간행 된 포은집 운각본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판본은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운각본이라 칭하고자 한다. 포은집 운각본의 특징은 선조의 명에 의해 유성룡이 기존의 포 은집 을 바탕으로 하여 교정을 보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산물이 주자의 「한문고이」를 본받아서 서술한 유성룡의 「연보고이」이다. 「연보고이」는 조선 전기 포은집 판본인 신계본, 개성본, 교서관본 등 세 본에 실려 있는 정몽주의 연보를 바탕으로 하여, 유성룡이 주자의 「한문 고이」의 예에 따라서 새롭게 정리한 것이다. 유성룡은 조선 당대 최고의 주자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그러므로 선조 18년(1585)에 간행된 포은집 운각본은 주자성리학의 대의명분에 바탕을 둔 판본으로서 그 내 용면에서 「연보고이」의 수록과 함께 기존의 포은집 에 수록되어 있는 정 도전의 글을 모두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 후기 포은집 판본인 영천본, 봉화본, 숭양본 등의 저본이 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선조대는 포은집 의 간행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 저변에는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중종대 정몽주는 문묘에 종사됨에도 불구하고, 재야에 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몽주의 출처문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명종대 이황이 주자의 말을 빌어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잠재웠으며, 선조대 이황의 문인인 유성룡은 주자의 「한문고이」를 빌어서 「연보고이」 를 서술하여 글로서 정몽주의 출처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현종대 송시열이 정몽주를 절의의 차원에서 그 위상을 찾기보다는 조선 성리학의 이학의 비 조로 인식하고, 여기에서 정몽주의 위상을 찾고자 한 점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대 포은집 운각본은 조선시대 정몽주 문집의 간행에서 조선 전기의 포은집 과 조선 후기의 포은집 을 구분하는 한 획을 긋고 있다. Poeunjib is the collected writings of Jeong Mong-Ju at the end of Korea dynasty. This book had the most edition and the most published book in Chosun dynasty. Especially, it has the meaning of being published in Kyoseokwan because of the command of king twice(21th year of King Sejong and 18th year of King Seonjo). This article is about one of those anthology’s edition, Poeunjib Ungakbon which was published in 18th year of King Seonjo. Althiough this edition had lots of names, we’ll call it ‘Ungakbon’ in this article. One of its feature was that Ryu Seong-Ryong corrected the original Poeunjib because of the order of King Seonjo. The result was shown by Ryu Seong-Ryong’s Yonbokoyi(年譜攷異) which emulated Zhuxi’s Hanmunkoyi(韓文攷異). Yonbokoyi was summarized by Ryu Seong-Ryong through the example of Hanmunkoyi, based on Jeong Mong-Ju’s chronology in three books which Poeunjib Shinkyebon, Poeunjib Kaesungbon, and Poeunjib Kyoseokwanbon. These books were the edition of Poeunjib in early Chosun dynasty. Ryu Seong-Ryong was one of Lee Hwang’s disciple who was the greatest Neo-Confucianism scholar in Chosun dynasty. Poeunjib Ungakbon was the edition based on Neo-Confucianism in 18th year of King Seonjo. Therefore, all articles of Jeong Do-Jeon in the contents of Poeunjib were deleted. Poeunjib Ungakbon had a signification that were the base of Poeunjib edition (Youngchunbon, Bonghwabon, Sungyangbon) in the late of Chosun dynasty. The King Sunjo of Chosun is the most popular period of publishing Poeunjib. On the other hand, we could find a change of recognition about Jeong Mong–Ju. Despite the fact that Jeong Mong-Ju is engaged in the temple in King Jungjong,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which is constantly raised in the field, still remained. About these, Lee Hwang in King Myongjong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Jeong Mong-Ju s source by asking Zhuxi. Ryu Sung-Ryong, who was a disciple of Lee Hwang in King Seonjo, summarized the source of Jeong Mong-Ju s works by describing Yonbokoyi. This had lead to a shift in the recognition of Jeong Mong–Ju in the late Chosun Dynasty. Song Si-Yeol in King Hyunjong recognized as a juxtaposition of Chosun Neo-Confucianism rather than a term of Jeong Mong-Ju’s fidelity. Here, it have reflected the desire to find Jeong Mong-Ju s position.

      • KCI등재

        세조 · 성종대 정몽주 인식

        보정(Kim, Boe-Jeong) 역사실학회 2015 역사와실학 Vol.57 No.-

        본고는 조선 전기 성리학 이해과정을 살펴보려는 일환으로써 세조 · 성종대의 정몽주 인식을 살펴본 연구이다. 사서는 당대의 인식을 보여주는 척도이며, 그 시대 편찬자의 사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세조 · 성종대 편찬된 관찬사서인 『국조보감』과 『동국통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세조대 『국조보감』의 편찬자, 즉 신숙주 등 8인의 정몽주 인식은 실록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배제되어 그들의 정치성향과 무관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종대 『동국통감』의 편찬자는 서거정 중심의 훈척과 표연말?최부 등 사림으로서, 이들의 정몽주 인식은 사뭇 달랐다. 세조대 공신이자 훈척인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농(弄)을 빌어서 정몽주를 폄하하고 있는데 비해, 김종직의 문인인 표연말 · 최부 등은 신편 『동국통감』에서 정몽주의 절의를 칭송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사서(史書) 진강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세종대 경연과 달리 성종대 경연에서는 새로이 『고려사』를 진강한다. 『고려사』에 수록된 정몽주의 칭송기사를 발췌하여 신편 『동국통감『에 수록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종대 사림은 정몽주를 ‘절의지사’ 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세조 · 성종대의 정몽주 인식은 세종대 『삼강행실도』의 ‘충신’에서 중종대 문묘종사의 ‘성현’으로 숭배되는 과정에 있으며, 성종대 사림의 정몽주 인식은 ‘절의지사’ 라고 정의할 수 있다. This paper was investigated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in Sejo?Seongjong Dynasty through the compilers of Kukjobogam and Dongguktonggam. Through the eight compilers of Kukjobogam such as Sin Suk-Ju, it had proved the fact that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in Sejo Dynasty were excluded in Kukjobogam unlike the Annals of the Chosun Dynasty. Because Kukjobogam was written by focused in achievements and good words of the Kings, the articles for Jeong Mong-Ju were also partially omitted. This was found out being related to political opinions of eight persons such as Sin Suk-Ju. As the results about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in Seongjong Dynasty through the compilers of Dongguktonggam, there were distinctions between the recognition of the King’s relatives and the recognition of Sarim such as Pyo Yeon-Mal and Choi Bu. Seo Keo-Jeong who the King’s relatives in Sejo Dynasty have banteringly denigrated Jeong Mong-Ju through Pilwonjabki. It was a look that reflects from the regency by the queen mother in the initial Seongjong Dynasty and the political affairs by Chancellors. However the government styles were changed through the reorganization systems by Chancellors,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were gradually changed by appointed Sarim from the management the affairs of state in Seongjong 7th Dynasty. During the lecture, only Jeong Mong-Ju and Gil Je were mentioned as ‘Jeoleuijisa’, and the recognition about ‘Jeoleuijisa’ was changed as severely remonstrated persons in usual not urgent crisis. In the basis of this perception change, the lecture of history books was played an important role. Unlike Sejong Dynasty, Goryeosa was lectured twice, and Hanseo was lectured before and after the compilement of Dongguktonggam. As a result, Dongguktonggam in the Seongjong 16th Dynasty have been compiled by attaching 204 pieces of Shinsaron. Dongguktonggam was included the contents to honor the achievements of Jeong Mong-Ju in Goryeosa by Choi Bu and Pyo Yeon-Mal. Although Dongguktonggam in the Seongjong 16th Dynasty have coexisted the recognition of Hunchuk and Salim,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have been represented as the ‘Jeoleuijisa’ recognition of Salim. Therefore,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in Sejo? Seongjong Dynasty was in the process of being worshiped as ‘Saint’ for Jeong Mong-Ju in discussions of Confucian shrine in Jungjong Dynasty from the recognition as ‘Loyalty’ for Jeong Mong-Ju in Samkanghaengsildo of Sejong Dynasty, and the recognition for Jeong Mong-Ju of Salim in Seongjong Dynasty could be defined as ‘Jeoleuijisa’.

      • KCI등재

        식민지 본국의 지식 수용 양상에 나타난 탈식민주의 : 2차 유학 이후의 김기림 비평을 대상으로

        강정구 ( Jeong Gu Kang ),종회 ( Jong Hoi Kim ) 한국사상문화학회 2012 韓國思想과 文化 Vol.65 No.-

        This paper researches the post-colonialnistic aspect of Kim, gi-rim`s criticism and essay that the colonized accept colonizer`s savoir from 1936 to 1941. His criticism shows acceptance of colonizer`s savoir and cultural difference. This paper refers Homi Bhabha and John McLeod`s post-colonialnism. This paper analyzes that Kim, gi-rim is misty existence because he is or not in colonial ruler in the his criticism and essay. Korean traditional apple and bower is "in-between", because these is not for modern culture. Also his criticism is "in-between". On the contrary, his criticism serves as a momentum in that colonizer`s savoir is not absolut and powerful. And, I search the aspect of acceptance of colonizer`s savoir and cultural difference in Kim, gi-rim`s criticism from 1939 to 1941. Kim, gi-rim indicates historial and social difference whice endangers narcissistic demand. This analyzes Homi Bhabha"s concept such as micmicry. His ciritism is mimicry that shows acceptance and cultural difference on I. A. Richards"s poetics(savoir) Moreover his ciritism is rewriting that gives the meaning on Miki Giyosi"s discourse of east-asia(savoir), but informs cultural difference which is deny representation of the colonized by colonizer. Miki Giyosis`s discourse of east-asia is fantastic and powerful. Kim, gi-rim shows cultural difference that he accepts Miki Giyosis"s discourse of nation and culture, but cultural self-examination is important. 이 논문은 2차 유학 이후부터 1941년까지 발표된 김 기림의 비평과 수필을 대상으로 하여 피식민자가 식민지 본국인 일본의 지식을 수용하는 양상을 살펴봤다. 일찍이 서구의 근대를 수용, 재창조한 일본의 지식이란 그것을 수용한 위치에 있는 한인에게는 진의 담론적인 위상을 지닌 것이었지만, 김 기림의 비평은 그 지식을 수용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기존의 연구사에서는 주로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부지불식간에 전제된 감이 있었는데, 이 논문에서는 호미 바바와 존 맥클라우드의 탈식민주의론을 참조하여 지식의 수용과 문화적 차이화의 양상을 세밀히 분석했다. 첫째, 2차 유학 중의 비평과 수필을 대상으로 하여 김 기림이 식민지 본국에서 있으면서도 없는 "사이에 낀 위치"에 있는 희미한 실존임을 검토했다. 2차 유학 중에 발표한 수필 「林檎의 輓歌」의 "능금"과 수필 「인제는 늙은 望洋 停-어린 꿈이 航海하던 저 水平線」의 "정자"는, 근대 문화가 식민지에 전파되는 것이 절대적, 권력적, 위계적이었고, 그로 인해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에 낀 위치"에 있는 사물이었다. 김 기림의 비평 역시 본격적으로 수용한 식민지 본국의 지식에서 피식민자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다는 점에서 "사이에 낀 위치"에 있었다. 이 때 평론 「科學과 批評과 詩-現代詩의 失望과 希望」과 「現代와 詩의 르넷상스」에서 확인되듯이, 그의 비평은 오히려 식민지 본국의 지식이 절대적, 권력적, 위계적이지 않음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2차 유학 직후부터 1941년까지의 비평을 대상으로 하여서 식민지 본국의 지식을 수용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양상을 검토했다. 김 기림은 리처즈의 시학(지식)을 수용하되 그 지식의 권위가 지닌 “나르시즘적 요구를 위태롭게 하는” 역사적, 사회적 차이를 드러냈는데, 이러한 수용과 문화적 차이화는 흉내내기의 양상으로 잘 분석됐다. 김 기림의 평론 「科學으로서의 詩學」은 리처즈가 게쉬탈트 심리학을 활용하여 시학을 구성하는 과정을 잘 이해하고 그 논의(지식)를 수용하면서 피식민지의 “文明의 一定한 段階의 歷史的 特徵”이 "反映"돼야 한다는 역사적, 사회적 차이를 드러내는 흉내내기의 일종이었다. 또한 김 기림은 평론 「詩와 科學과 會話-새로운 詩學의 基礎가 될 言語觀」에서도 리처즈가 당대의 언어학에 영향 받아 구성한 시학을 잘 따르고 있음에도, 식민/피식민의 관계를 고려한 “一定한 歷史的 社會”를 중시해애 한다는 흉내내기의 전략을 보여줬다. 셋째, 김 기림의 비평은 미키 기요시의 동아시아론에 일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식민자의 재현을 거부, 반발하는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다시 쓰기였다. 미키 기요시의 동아시아론은 당대의 일본 지식인들에게 매혹적이고 권위적인 것이었다. 김 기림은 평론 「朝鮮文學에의 反省-現代 朝鮮文學의 한 課題-」에서 서구 근대가 파산된 당대의 시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선 민족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미키 기요시의 민족 논의를 수용하면서도, 한 민족의 우월적인 "지도"보다는 “서로서로의 文化의 接 脈과 包容과 尊敬”이라는 호혜적 원칙이 중요하다는 방식의 다시 쓰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김 기림은 평론 「「東洋」에 관한 斷章」에서 미키 기요시의 동아시아 문화 논의를 반복하면서도 동아시아 문화의 “가장 빛나는 얼굴”을 “고대와 중세에서 찾”아야 한다는 성찰적인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 김 기림이 발표한 2차 유학 이후의 비평과 수필은 식민지 본국의 지식을 수용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탈식민주의적인 양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인 의미가 있다. 김 기림의 문학은 식민지의 지식인 타자가 지식 담론 속에서 존재하는 문화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은 일본이 1940년대 중반을 향해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치달을 때에는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담론의 지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식민지 본국의 지식을 수용하면서 부분적으로 위반, 거부, 해체해 나아가는 피식민자의 담론적인 위치를 설정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1940년 전후의 비평사적인 의미가 있다. 해방 이후의 김 기림 비평 연구는 후속과제가 된다.

      • KCI등재

        1950년대 김규동의 문학에 나타난 모더니티 고찰

        강정구(Kang, Jeong-gu),종회(Kim, Jong-hoi)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2 외국문학연구 Vol.- No.46

        이 논문에서는 현대문명이 진보한다는 이성주의자의 믿음과 그 믿음을 회의·부정하는 반이성주의자의 비판이라는 두 가치가 혼재·충돌·모순되는 독특한 모더니티의 양상을 김규동의 1950년대 문학이 잘 드러낸다는 점을 검토했다. 첫째, 김규동의 평론에서 제시된 현대시의 개념에는 이성주의자와 반이성주의자의 두 심리가 상충했지만, 이러한 상충된 심리는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라는 용해의 비전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김규동은 1950년대라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현대시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현대문명의 질서 속에서 무질서(혼란)를 용해시키고자 하는 비평적인 주체의 의지를 개진한 것이었다. 둘째, 시집 『나비와 광장』에서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이성주의자의 믿음 위에서 그 믿음을 거부·회의하는 반이성주의자의 부정적인 감정-공포와 불안-이 수용된 탈원근법적인 시각이 주로 제시되었는데, 이러한 시각은 아방가르드적인 미학적 반역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었다. 김규동은 역사적인 아방가르드가 원근법적인 시각을 거부하는 방법을 자기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수용하면서도,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과학 문명”·“기계 문명”에 대한 역사적인 아방가르드의 긍정적인 태도를 다시 반역하였다. 셋째, 시집 『현대의 신화』에서는 현대문명이 진보한다는 이성주의자의 믿음에 대한 회의가 드러났는데, 이러한 회의는 계몽을 계몽한다는 계몽성찰적인 양상으로 살펴졌다. 김규동의 시는 “과학문명의 질주와 그 조명 아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과 시”라는 모더니티의 기획 속에서 전후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이성의 동일성 폭력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성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김규동은 그의 문학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문명사적인 충격 속에서 현대문명의 발전과 퇴보라는 모순적·역설적인 이중경험을 나름대로 이해해야 했던 시대적인 과제에 대해서 용해적, 반역적, 그리고 계몽성찰적인 모더니티의 양상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This essay studies on modernity in the literature of Kim, Ku-dong of 1950"s. In his literature, there are two values that the truth on the reason and criticism on the reason is inconsistent. This essay analyzes melting, revolt, and reflective modernity. Firstly, Kim, Ku-dong"s modern poetry has a collision, in that the truth on the reason and criticism on the reason is inconsistent. We understand this concept is melting modernity, for Marx"s a slogan. Kim, Ku-dong endures for modernity that order and disorder is dissolved Secondly, there is post-perspective in butterfly and square. Kim, Ku-dong receives scientific technique, that scientific technique reject perspective, and than is revolt to the vanguard"s positive attitude of civilization. Thirdly, modern myth appears be skeptical on the truth on the reason. This doubt studies on reflective modernity that enlightenment enlightens itself. Kim, Ku-dong"s poetry shows the project of modernity that we think poetry under speeding of civilization. And Kim, Ku-dong"s poetry shows negative reality. This is reflective. Thus, Kim, Ku-dong knows that melting, revolt, and reflective modernity are caused by double experiences of development and retrogression of modern civilization. His literacy modernity is meaningful, because he shows consciousness of 1950"s in the literature. 이 논문에서는 현대문명이 진보한다는 이성주의자의 믿음과 그 믿음을 회의·부정하는 반이성주의자의 비판이라는 두 가치가 혼재·충돌·모순되는 독특한 모더니티의 양상을 김규동의 1950년대 문학이 잘 드러낸다는 점을 검토했다. 첫째, 김규동의 평론에서 제시된 현대시의 개념에는 이성주의자와 반이성주의자의 두 심리가 상충했지만, 이러한 상충된 심리는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라는 용해의 비전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김규동은 1950년대라는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현대시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현대문명의 질서 속에서 무질서(혼란)를 용해시키고자 하는 비평적인 주체의 의지를 개진한 것이었다. 둘째, 시집 『나비와 광장』에서는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이성주의자의 믿음 위에서 그 믿음을 거부·회의하는 반이성주의자의 부정적인 감정-공포와 불안-이 수용된 탈원근법적인 시각이 주로 제시되었는데, 이러한 시각은 아방가르드적인 미학적 반역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되었다. 김규동은 역사적인 아방가르드가 원근법적인 시각을 거부하는 방법을 자기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수용하면서도,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과학 문명”·“기계 문명”에 대한 역사적인 아방가르드의 긍정적인 태도를 다시 반역하였다. 셋째, 시집 『현대의 신화』에서는 현대문명이 진보한다는 이성주의자의 믿음에 대한 회의가 드러났는데, 이러한 회의는 계몽을 계몽한다는 계몽성찰적인 양상으로 살펴졌다. 김규동의 시는 “과학문명의 질주와 그 조명 아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과 시”라는 모더니티의 기획 속에서 전후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이성의 동일성 폭력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성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김규동은 그의 문학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문명사적인 충격 속에서 현대문명의 발전과 퇴보라는 모순적·역설적인 이중경험을 나름대로 이해해야 했던 시대적인 과제에 대해서 용해적, 반역적, 그리고 계몽성찰적인 모더니티의 양상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This essay studies on modernity in the literature of Kim, Ku-dong of 1950"s. In his literature, there are two values that the truth on the reason and criticism on the reason is inconsistent. This essay analyzes melting, revolt, and reflective modernity. Firstly, Kim, Ku-dong"s modern poetry has a collision, in that the truth on the reason and criticism on the reason is inconsistent. We understand this concept is melting modernity, for Marx"s a slogan. Kim, Ku-dong endures for modernity that order and disorder is dissolved Secondly, there is post-perspective in butterfly and square. Kim, Ku-dong receives scientific technique, that scientific technique reject perspective, and than is revolt to the vanguard"s positive attitude of civilization. Thirdly, modern myth appears be skeptical on the truth on the reason. This doubt studies on reflective modernity that enlightenment enlightens itself. Kim, Ku-dong"s poetry shows the project of modernity that we think poetry under speeding of civilization. And Kim, Ku-dong"s poetry shows negative reality. This is reflective. Thus, Kim, Ku-dong knows that melting, revolt, and reflective modernity are caused by double experiences of development and retrogression of modern civilization. His literacy modernity is meaningful, because he shows consciousness of 1950"s in the literature.

      • KCI등재

        왕릉건축을 통해 본 박자청(朴子靑)의 김사행(金師幸)건축 계승

        버들,조정식,Kim, Bue-Dyel,Cho, Jeong-Sik 한국건축역사학회 2018 건축역사연구 Vol.27 No.2

        This study investigates the relationship of two architectures 'Kim Sa-haeng' and 'Park Ja-cheong.' They were the architects whose architecture were established and well known however they were not acknowledged by the people. Because they were not revealed under the large-scale national construction in complicated circumstances at home and abroad.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Kim Sa-haeng who was an overseas architect in Yuan dynasty stood out in all areas of architecture. Particularly in making royal tombs; His works were recognized as the most beautiful royal tombs ever existed and was later on followed by the Joseon dynasty. Second, Park completed the construction of Joseon's by faithfully reflecting on the discussed process of Neo-Confucian while coming after the time of the construction of Kim Sa-haeng. Third, although Kim Sa-haeng was a vassal of the Buddhist nation in Goryeo, he built the Moon-myo, a Confucian inspired temple of Joseon. Park Ja-cheong, who continued to build Kim Sa-haeng's architecture, reproduced Kim Sa-haeng's confucian's temple of Joseon dynasty while modifying it according to the situation in Joseon dynasty. The constructions of the two architects' monuments continues unabatedly. Their architecture has continued without massive changes.

      • KCI등재후보

        조선 초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

        보정(Kim, Boe-Jeong) 포은학회 2012 포은학연구 Vol.9 No.-

        본고는 15세기 초반에 편찬된 史書 『고려사』ㆍ『고려사절요』를 중심으로 하여 정몽주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태조ㆍ정종대와 달리 태종대에 이르러 정몽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게 된다. 그 배경에는 태종의 새로운 인재정책으로 인해서 정치세력의 변화가 주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세종대 집현전학사를 중심으로 경연에서 史書를 진강한 점도 한 요인이다. 『자치통감』과 『자치통감강목』등의 사서진강을 통하여 『고려사』의 롤모델을 찾는 과정에서 忠臣의 사례를 배우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삼강행실도』를 편찬할 때 정몽주가 「충신도」에 그려진다든가, 재야에서 『포은집』을 편찬할 때 「행장」에서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태종대 편찬된 『태조실록』과 세종대 편찬된 『용비어천가』에서는 정몽주를 여전히 亂臣으로 인식하고 있다. 태종이나, 세종 모두 조선 제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몽주는 조선건국을 반대한 역적이자 난신이었던 것이다. 즉, 조선 초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 구도라 할 수 있다. '난신'과 '충신'의 인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완결이 『고려사』의 諸臣傳 입전이다. 특히, 반역전도 충의전도 아닌 諸臣傳의 입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이중적 인식은 『고려사』열전에 그대로 반영되어, 반역 죄인으로 효수된 사실과 충신으로 인정하고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실을 모두 함께 서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This paper was investigated about the perception of Jeong Mong Ju focusing on GoryeosaㆍGoryeosajeolyo published in the early 15th century. In the reign of King Taejong unlike King Taejo and Jungjong, it became to change the perception of Jeong Mong Ju. In the background, there was a major factor of political power change by new human resources policy of King Taejong. Another factor was giving a lecture of history in the Royal presence around the Jiphyeonjeon Scolarship in the reign of King Sejong. In the process of finding role models of Goryeosa, through Saseojingang such as Jachitonggam and Jachitonggamgangmok, the case of loyalists were studied and perceived. We could confirm these perceptions that Jeong Mong Ju was painted in Chungsindo when Samganghaengsildo was published, and his achievements were acclaimed in Haejang when Poeunjip was published. However, at Taejosillok published in the reign of King Taejong and Yongbieocheonga published in the reign of King Sejong, Jeong Mong Ju was still perceived as a traitorous servant. He was a traitorous servant and traitor opposed the founding of the Chosun from the overview of Chosun's King such as Taejong and Sejong. Therefore, the perception of Jeong Mong Ju in the begining of Chosun was seen the dual composition coexisting the position of the Lord (traitor) and the position of servants (loyalist). And this completion was the introduction into the biographies of Goryeosa. Because of this dual perception, the biographies of Goryeosa and Goryeosajulyo were subsequently described as a traitor of Chosun and a loyalist of Korea. Also it was described his personality and achievements at the same time.

      • KCI등재

        고려 말 조선 초 건축가 金師幸조명

        버들(Kim, Bue-Dyel),조정식(Cho, Jeong-Sik) 대한건축학회 2014 대한건축학회논문집 Vol.30 No.11

        This study is on the Architect Kim Sa-haeng. But he was generally known as only an eunuch. The result is as concerned. 1st, a lot of construction workss were needed to consult new capital in the late Koryo to early Chosun dynasty. At that time, Kim sa-haeng took the lead in most of the construction work. 2nd, He was an an eunuch who had worked for Yuan Dynasty. Based on his experience, He created a new type of architecture following an old practice, like royal tomb of the Gongminwang. He also organized the 1st Royal Tomb of Chosun dynasty and his architect became a model of Royal Tomb. 3rd, He built Buddhist temple like Jinkwansa Suryuksa and supervised Buddhist ritual in Geunjeongjeon hall. This means that he was anle to design architectures consdering the ritual and culture. Namely, he was distinguished in many different fields. 4th, He was an officer overcame the limitation on status of eunuch. Besides, he won his spurs. Although he was affected by Buddhism, he built a Confucian shrine. And he completed Palace plan, according to behavioral pattern of royal family, servant and vassal. 5th, we’ve read in documentaries he built an architectural monstrosity with grand sized and spectacular ornament. It means that he created a new type of architecture never seen before.

      • 최근 5년간 한국 의학드라마에 나타난 간호사 이미지와 역할 수행에 대한 연구

        김정은 ( Jeong Eun Kim ),정희정 ( Hui Jung Jung ),한나 ( Han Na Kim ),손승윤 ( Seung Yoon Son ),안슬기 ( Seul Ki An ),샛별 ( Saet Byeol Kim ),손정은 ( Jung Eun Son ),이의진 ( Eu Gine Lee ),이효원 ( Hyo Won Lee ),정민경 ( Min K 서울대학교 간호과학연구소 2013 간호학의 지평 Vol.10 No.2

        1. 역할비중 본 연구의 등장 인물별 분석은 기타인물을 제외한 총 20명의 간호사를 대상으로 하여 진행되었고, 이 중 10명(50.0%)의 역할이 조연, 10명(50.0%)의 역할은 조연보다 노출횟수나 중요도가 적은 주변인물로 등장했다. 아직까지 한국 의학드라마에서 주연은 의사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간호사가 주연으로 나오는 경우는 전무했다. 그러나 극 중에서 조연으로서 중요한 역할의 간호사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드라마 <골든타임>에 등장한 중증외상코디네이터는 응급전문간호사로서보다 전문적인 간호수행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이 간호사를 전문 의료인으로 인식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학드라마 및 일반드라마에서 간호사 이미지를 분석한 Im7)의 연구에서는 총 153개의 역할 (매회마다 등장하는 동일한 간호사를 별개의 표집대상으로 함) 중 6개(3.9%)가 주역으로 등장하기도 했었지만 의학드라마가 아닌 일반 드라마였기 때문에 그 주연의 직업이 간호사일 뿐 실제 의료현장에서 활약하는 전문인으로서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많이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본 연구에서는 비록 주연으로 출연한 간호사는 없었지만 드라마의 흐름과 스토리전개 상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조연이 50%를 차지하면서, Im7)의 선행연구에 비해 임상현장에서의 간호사의 업무가 재조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등장 인물별 분석 1) 등장 인물의 일반적 특성 성별은 총 20명 중 19명이 여자로 나타났다. 하지만 2009년도 산업·직업별 고용구조조사에 의한 실제 임상에서의 남자 간호사 비율이 전체 간호사의 1.5%임을 고려해 볼 때, 5%의 비율로 남자 간호사가 등장한 것은 적당하다고 사료된다. 하지만 분석한 전체 모수가20명에 불구하고, 이 중 1명의 남자 간호사가 등장하여 5%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남자간호사의 등장은 의미가 있는데, 이는 그 동안 우리나라 드라마 속 남자 간호사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시트콤<순풍산부인과(1998~2000)>에서 여자 흉내를 내던 ‘표 간호사’라는 인물로 굳어져 있었지만, <종합병원2>에서는 그 동안의 이미지를 벗고 남성으로서 간호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응급실 간호사의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연령 면에서 20대 간호사가 많이 등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미혼이 기혼보다 많이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혼상태에서 11명이 ‘알수없음’으로 결혼 유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급 면에서는 일반 간호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이 나타났고, 수간호사는 <골든타임>을 제외한 모든 드라마에서 등장하였다. 그 외에 가장 최근 의학드라마인 <골든타임>에서는 중증외상 코디네이터와 같이 전문직으로서 간호사 새로운 모습을 그려낸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2) 등장인물의 외적 특성 용모 면에서 ‘매력적’이 45.0%, ‘보통이다’가 55.0%를 차지하였으나 ‘못생겼다’는 단 한 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Im7)의 분석 결과(매력적: 39.9%; 보통이다: 58.2%; 못생겼다: 2.0%)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체격 면에서는 선행연구(말랐다: 16%; 보통이다: 83%; 뚱뚱하다: 0.7%)와 다르게 ‘말랐다’가 60.0%로 가장 많게 나타났다. 이는 이상적인 몸에 대한 사회적 취향의 형성이 한 사회에 속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나 선호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사회문화적 접근10)에서, 최근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적 취향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의상이 ‘단정하다’가 95.0%나 차지한 것은 선행연구인 Im7)의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단정하다: 78.4%; 보통이다: 17.6%; 불결하다: 3.9%)이다. 이렇게 독보적인 우위를 점한 ‘단정한 간호사’의 이미지는 간호이미지 실행에 대한 연구11)에서 ‘용모가 깨끗하고 단정하다’는 항목의 집단간 평점 우선순위가 병원 직원과 일반인에서 1위, 의사집단에게서 2위로 높게 측정된 결과와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드라마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간호사에 대해 갖는 관념과 인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3) 등장인물의 성격특성 성격특성을 분석한 결과 11개의 특성 모두에서 ‘중립’이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극중 간호사의 역할이 실제로 중립적인 특성을 많이 나타내기도 했을 뿐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갈등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성격이 분명하게 표출되지 않는 조연 및 주변인물이기 때문이라고도 사료된다. 첫 번째 특성에서 ‘강인하다’가 7개의 역할(35.0%)을 차지 해 1개 역할(5.0%)을 차지한 ‘연약하다’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행연구7)에서는 ‘연약하다’가 59.5%, ‘강인하다’가 13.7%를 차지하여 드라마에 묘사된 간호사가 수동적이고 연약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분석하였으나 본 연구에서는 강인한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번째 특성에서는 간호사가 수동적(4개 역할, 20.0%)이기 보다는 능동적인 성격(6개 역할, 30.0%)으로 묘사되었다. 즉 간호사가 의사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나, 능동적인 면모를 보이는 역할로 더 많이 그려진 것이다. 세 번째 특성에서는 ‘상냥한’ 성격이 8개 역할로 40.0%, ‘권위적인’ 성격이 2개 역할로 10.0%를 차지하여, Im7)의 선행연구에서 상냥하기(24.2%) 보다 권위적으로(36.6%) 나타난 결과와 상반되었다. 네 번째 특성에서는 ‘합리적이다’가 2개의 역할로 10.0%, ‘감성적이다’가 3개의 역할로 15.0%, ‘중립’이 15개 역할로 75.0%를 차지하여, 합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며, 이성적인 모습과 감성적인 측면이 적절히 잘 조화된 중립적인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고 있었다. 다섯 번째 특성에서 ‘엄격하다’는 2개 역할로 10.0%, ‘자애롭다’가 3개 역할로 15.0%를 차지하여, 선행연구7)의 자애롭기(16.3%)보다 엄격했던(39.2%) 이미지에 비해 비교적 자애로운 경향을 보였다. Im7)은 Kalisch와 Kalisch6)의 오락매체에 나타난 간호사, 의사 비교분석연구에서 간호사가 의사에 비해 지적, 합리적, 이기적이지 못하다고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그의 연구결과도 ‘비지적’인 성격이 29%를 차지하여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비지적이다’는 3개 역할(15.0%)로, 7개 역할(35.0%)을 차지한 ‘지적이다’보다 낮은 비율을 차지하여 간호사는 비교적 지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Kim과 Kim12)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호사는 ‘늘 바쁘게 일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수행한다고 인지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Im7)의 연구에서는 ‘헌신적’이 5.2%인데 반해 ‘이기적’인 성격특성이 32%로 나타나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기적이다’가 2개 역할(10.0%)을 차지한 것에 반해 ‘헌신적이다’가 4개 역할(20.0%)을 차지하여, Kim과 Kim12)의 연구결과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덟 번째 특성에서는 ‘복종적이다’가 5개 역할로 25.0%를 차지하여, 3개 역할로 15.0%를 차지한 ‘공격적이다’보다 더 많이 나타났다. 두 번째 특성에서 전체적으로 수동적이기보다 능동적인 경향을 나타낸 데에 반해, 갈등상황에서는 공격적이기보다 복종적인 경향을 보이는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다. 아홉 번째 특성에서는 2개 역할(10.0%)이 경쟁적인 성격, 6개역할(30.0%)이 비경쟁적인 성격으로 나타나, 주로 갈등관계의 중심에서 경쟁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의사들과는 달리, 간호사는 경쟁적이기보다 비경쟁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 번째 특성에서는 ‘현실적이다’가 7개 역할(35.0%)로, 2개 역할로 10.0%를 차지한 ‘비현실적이다’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는 비현실적인 성격(11.8%)보다 현실적(45%)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는 Im7)의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였다. 끝으로 ‘냉정한’ 성격을 나타낸 역할은 없었으며 ‘동정적’인 성격이 8개 역할(40.0%)을 차지하였다. 3. 장면별 분석 1) 활동내용 가장 많이 나타난 활동내용은 ‘환자 관련 의사소통’으로 총 240회(24.4%)를 차지하였다. 환자 관련 의사소통은 타 의료인과 환자와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 장면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타 의료인은 주로 의사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드라마 상에서 간호사는 의사의 오더를 받거나, 의사에게 환자의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으로 주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의학드라마의 주연이 의사이기 때문에 드라마 전개상 주연과의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므로 나타난 결과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적인 대인관계’가 222회(22.6%)를 차지하였다.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갈등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로, 의학드라마라 할지라도 극의 전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부분이 할애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로 많은 활동내용은 ‘치료 협조’로 73회(7.4%)로 나타났다. 전문간호사가 등장하는 <뉴하트>와 <골든타임>의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치료 협조는 의사의 회진참여나 처치 및 진료보조, 외래지원 등이었다. ‘투약·물품·기구 준비’는 50회로 5.1%를 차지하였다. 주로 의사의 처치에 이용될 물품 및 기구를 준비 및 정리하는 장면으로, 간호사가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독자적인 간호를 제공하기 보다는 주로 의사의 치료행위 관찰 혹은 병원의 물품과 기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역할로 그려지고 있었다. ‘회의 및 병동보고’는 43회로 4.4%를 차지하였다. 간호사가 병동 회의를 주도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의사에게 병동 및 환자의 상황을 보고하는 역할로 나타나고 있었다. ‘수술간호’는 41회로 4.2%를 차지하였다. 의학드라마는 의학적 응급상황 혹은 생명에 긴박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을 극적 상황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종합병원 중에서도 외과 계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주로 다루게 된다.13) 본 연구의 5편의 드라마에서도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응급실 및 중증 외상센터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수술 장면은 모든 드라마에서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간호 장면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본 연구가 관찰 대상을 조연과 주변인물로 한하였기 때문이다. 수술장에서 수술 장면을 위해 일회성으로 등장하는 간호사는 극중인물이라기 보다 병원이라는 환경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 파악하여 관찰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수술 전 과정을 이해하고 수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집도의에게 수술도구를 전해주는 역할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관리’, ‘관찰 및 측정’, ‘개인위생과 이동’은 각각 4.1%, 2.5%, 2.4%를 차지하였는데, 의미가 있는 의료행위로써의 기록관리와 관찰 및 측정 등이 행해진 장면은 드라마 상에서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게 악화되어가는 경우 의사에게 보고하기 전에 환자를 사정하는 모습으로 극히 소수였고, 대부분은 의학드라마라는 극 배경 상 일상적인 모습의 일환으로써 나온 장면이었다. ‘간호직원관리 및 연구’는 40회로 4.1%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모두 간호직원관리에 해당하였고, 연구와 관련된 장면은 없었다. 활동내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처치’와 ‘투약’이 각각 단 24회(2.4%)와 8회(0.8%)만을 차지하는 데 반해, ‘휴식 및 출퇴근’이나 ‘식사 및 다과’는 각각 39회(4.0%)와 27회(2.7%)나 차지하고 있었다. 휴식 및 출퇴근이나 식사 및 다과에 6.7%나 할애된 것은 주연 간의 관계와 갈등을 보여 주기 위함인데, 이는 사적인 대인관계가 22.6%나 차지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담, 정서지지’는 32회, ‘교육’은 8회로 총 4.1%만을 차지하였는데, 이는 실제 임상에서 간호사가 환자 및 보호자를 정서적으로 지지 및 상담하고 교육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속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의료인이 의사만으로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간호사가 행하는 상담 및 정서적 지지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요하기보다는 단순한 감정적 공감을 표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끝으로 ‘응급간호’ 장면은 17회로 1.7%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섯 편의 드라마의 배경이 외과계열인 만큼 긴급한 처치를 요하는 응급 환자가 등장하는 빈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앞서 언급했던 수술간호와 마찬가지로 응급 환자 등장 시 일회성으로 간호사가 등장하여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응급상황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간호사가 수행하는 대표적인 응급간호 장면은 CPR 상황이었는데 이때도 주로 의사의 보조적인 역할로 등장하였으나, 특징적으로 <뉴하트>에서 흉부외과전문간호사로 추정되는 역할이 모든 흉부외과 의사들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소아 환자에게 단독으로 응급 CPR을 수행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상의 활동내용을 다시 영역별로 분석해 보면 직접간호 영역에서는 ‘치료 협조(7.4%)’가, 간접간호 영역에서는 ‘환자 관련 의사소통(24.4%)’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는 간호사가 등장하는 장면의 대부분이 주연인 의사가 등장하는 장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간호사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항목들은, 실제 임상에서 훨씬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상에서 보여지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본 연구와 같은 분류를 사용하여 실제 간호사의 업무를 분석한 Kim8)의 선행연구에서는 직접 및 간접 간호 영역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상위 3개 항목이 ‘투약·물품·기구 준비(19.69%)’, ‘기록관리(14.10%)’, ‘관찰 및 측정(12.73%)’로 모두 간호사가 단독으로 수행하는 항목들이었다. 이에 반해 본 연구에서 해당 항목들은 각각 5.1%, 4.1%, 2.5% 정도에 그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실제 간호사의 주요한 활동내용과 드라마 상에서 보여지는 주요한 활동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 업무태도 간호사의 업무태도는 ‘수동적·의존적(11.4%)’ 이기보다 ‘능동적·자율적(57.8%)’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수동적인 업무태도가 더 강하게 부각되었다는 선행연구6)에 비해 간호사의 행동이 비교적 타인의 명령이나 권유 없이 자율적인 것으로 묘사되었음을 의미한다. 업무태도 중 ‘성실’한 업무태도(37.6%)에 비해 ‘불성실’한 업무태도(1.5%)는 압도적으로 낮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간호사가 지속적으로 환자 상태를 관찰하고 환자의 요구에 곧바로 대응하는 등 여러 장면에서 맡은 업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부 장면에서는 성의 없게 작성한 의무기록에 대해 지적 받는 모습, 업무 중에 잡담하는 모습 등이 묘사되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친절 또는 불친절 여부를 분석한 항목에서 ‘해당없음’이 40.4%를 차지하여 ‘보통(46.0%)’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는 간호사가 직접적으로 환자나 보호자를 대면하는 장면이 적음을 의미한다. 등장장소 분석에서 ‘간호사 스테이션’이 차지하는 비율이 37.2%인 것에 비해 환자나 보호자를 대면할 수 있는 장소(외래진료실, 일반병동병실, 특실, 응급실)의 비율은 총합이 21.7%에 불구하였고, 활동내용 분석에서도 직접간호의 비율이 26.0%로 환자와 접하지 않는 간접간호, 관리, 개인시간의 합(74.0%)에 비해 적게 나타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Im7)의 선행연구결과와 다르게 ‘친절’한 업무태도(11.2 %)가 ‘불친절’한 업무태도(2.4%)에 비해 매우 높은 것을 보아, 최근 많은 병원에서 친절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로 바뀌어 가는 현실이 드라마에서도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사소통태도는 ‘인간적·소통적(31.6%)’이 ‘기계적·비소통적(14.8%)’보다 높게 나타났다. 과거 선행연구에서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지지를 하는 모습은 주로 의사의 몫으로 표현이 되고, 간호사는 대부분(57.5%) 기계적인 모습으로만 묘사되었던 것7)에 비하여 크게 개선된 점으로 보인다. 환자의 정서와 감정상태 등을 고려하여 간호를 제공하는 장면이 다수 있었다. 또한 환자에 대해서 타 의료진들과 의사소통 시 인간적이고 소통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숙달된’ 업무태도의 비율(26.7%)은 ‘미숙한’ 업무태도(4.3%)의 비율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이는 의학드라마 제작 시 간호사나 간호단체로부터 기술자문을 구한 것으로 사료된다. <종합병원 2>의 일부 장면에서 신규간호사가 의사의 오더를 확인하지 않는 미숙한 업무태도를 보이더라도 경력간호사가 즉시 해결하는 모습 등에서 숙달된 간호사의 전문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의학드라마 내에서 간호사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조연이나 보조인물로 등장하여 업무나 성격이 구체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없어 간호사의 업무태도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극 중에서 단순히 모여서 잡담을 하거나 차트를 들고 복도를 걸어가는 등 단순한 배경으로 표현된 장면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은 모든 유목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으며, 3번 유목을 제외하고 그 비율이 50%를 넘었다. 본 연구에 나타난 간호사는 대체적으로 능동적·자율적, 성실, 친절, 인간적·소통적, 능숙한 업무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Im7)의 선행연구에서 수동적, 자율적, 불친절, 기계적, 숙달된 업무태도로 나타난 것보다 개선된 결과를 나타낸다. <뉴하트>에서는 간호사 혼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고, <골든타임>에서는 유능한 간호사 한명을 붙잡는 것이 다른 스텝을 더 뽑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이전보다 긍정적인 간호사의 이미지가 드라마 내에서 비춰지고 있었다. 3) 등장장소 등장장소는 임상현실과 비슷하게 간호사 스테이션이 가장 많았고, 입원 환자가 있는 병동이 그 다음으로 이어졌다. 또한 드라마에서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장 등이 주로 나타났다. Purpose: Since the perception of the public on nurses tends to be shaped substantially by the media, this study analyzed the image of nurses portrayed in Korean medical TV dramas. Methods: This study was on five Korean medical TV dramas in recent five years selected based on their popularity. Ten coders broke into five groups of two. Full episodes of each drama were assigned to each group. The coders made assessments separately and cross-matched their analysis, checking with the Holsti`s method. Results: Ten of the analyzed twenty nurses were supporting characters. They were mainly in their twenties. Only one nurse was male and 13 (65%) were staff nurses. Nurses were described as strong (30.0%), active (30.8%) and kind (40.0%). They were mostly portrayed discussing patients mainly with doctors (24.4%). In terms of their attitude toward work, they appeared diligent (37.6%) and communicative (31.6%). Conclusion: There have been positive changes compared to past studies. Despite the enhancement in the image of nurses in medical dramas, there is yet a long way for dramas to properly portray the professionalism nurses truly have. Further research is needed and diverse measures should be taken for the improvement in the social recognition of the nursing profession.

      • KCI등재

        해동명산도첩에 나타난 영동지역 지형 경관에 대한 연구

        신원정 ( Shin Won Jeong ),종연 ( Kim Jong Yeon ) 한국지형학회 2020 한국지형학회지 Vol.27 No.4

        Silgyeong sansuhwa (Realistic landscape paintings) are drawn in Korea since 17th century. It has characteristics of more realistic description of landscape than painting from previous periods. Kim Hong Do’s ‘Haedong Myeongsan docheop (The album of paintings of famous mountains in Korea)’ has been recognized as fine example of realistic description of geomorphic landscapes. Kim Hong Do and Kim Eung hwan did official travel to Gwandong and Geumgangsan area by order of King Jeongjo in 1788. As a result of that travel they draw about 100 piece of landscape painting. About 60 pieces of the paintings are still remaining. These are open to public by Korea National Museum in 1996. 14 pieces of painting, Daegwanryeong and Gangneung, Gyeongpo-dae, Hohae-jeong, Gahak-jeong, Cheonggan-jeong, Mun-am, Mangyang-jeong, Wolsong-jeong, Neungpa-dae, Naksan-sa, Mureung-gye, Gyejo-gul, and Hyeonjong-am, are analysed in this study. Coastal depositional landforms, like lagoon, sand beach and spit or barriers, erosional forms, like sea stack, sea cliff and sea cave, depicted in the paintings are analysed. In addition, structural landforms, colluvial landform and bedrock incision form by the running water in mountain area were analysed and weathered forms of granite and excursion to karst cave also discussed. It is found that sea arch in the printing destroyed since 1788, though exact position and reason is still unknown. There are strong need for discovery and identification of geomorphic landscape resources, for applied geomorphological studies and for prepare educational materials for non-face-to-face education. It also be emphasized that it can be used of the course work materials for future education using augmented reality and virtual reality technology.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