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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작(KIM, YOUNG-JAK)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3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2 No.2
본고(本稿)는 개국(開國) 문제가 중대한 쟁점으로 부각된 시기(1860년대 후반)부터 1884년의 갑신정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에 나타난 조선의 초기개화사상과 운동에 관해 ‘또 하나의 정치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글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위정척사 사상과 운동은, 그 심정적 애국주의와 서구의 침략성에 대한 통찰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ㆍ군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을 창출하기 어려운 주자학적 ‘도그마티즘’, 곧 ‘문화주의’(Culturalism)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개화적 ‘내셔널리즘’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실용(實用)에 착목하고, 목적과 수단간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치척 리얼리즘’의 생성이 사상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즉 개화적 내셔널리즘’은 실용의 관점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Will to Change)’ 와 ‘변화에 대한 새로운 자세(New Attitude towards Change)’를 가지고 위기의 실체를 객관적ㆍ사실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그 위기극복을 위한 합리적 수단을 창출하려는 사상과 행동이었다. 셋째, 초기 개화파의 사상과 운동은 기본적으로 「부국 강병」을 통한 자주독립 곧 ‘내셔널리즘’의 사상과 운동이었다. 「동도서기론」은 물론이고 보다 광범한 계몽사상으로서의 「문명개화론」 역시 ‘내셔널리즘’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었다. 넷째, 초기 개화파는 「국민적 통합」이라는 내셔널리즘의 또 하나의 목적달성을 위해 「제도적 통합」방법과 「심정적 통합」방법이라는 두 개의 근간을 활용하였다. 이를 실행함에 있어, 그들은 「국민적 통합」을 위해 서구적ㆍ근대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통」과 「근대」를 조화ㆍ절충하고자 하였다. 다섯째, 초기 개화파의 ‘내셔널리즘’ 사상은 「정치적 집중」과 「정치적 확산」이라는 대립적 요소를 조화ㆍ절충함으로써 「국민적 통합」을 극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의 체제구상은 「입헌군주제」를 지향하는 것이었는데, ‘입헌적 요소’의 도입에 의해 「정치적 확산기능」을 기대하고 ‘군주적 요소’에 의해 「정치적 집중기능」을 기대 했다. 여섯째, 초기개화파의 ‘내셔널리즘’ 운동의 실패원인은 외세의 군사적 개업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한말 ‘내셔널리즘’에는 사상과 운동 사이의 극심한 괴리현상이 존재했다. 이는 ‘주체성’의 결핍과 ‘주체적 역량’의 결여가 가져다주는 문제점을 보여주며, 이것이 이 연구가 현재에 시사하는 역사적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