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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합병과 시선의 정치학

        한정선(韓程善) 동양사학회 2005 東洋史學硏究 Vol.93 No.-

        This paper revisits Japanese political cartoons that represented the moment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1910. Since the formation of the new Meiji government, the ‘Korea problem’ was at thc heart of Japanese foreign affairs. When the problem was finally solved in the form of annexation, Japanese society expressed its excitement and enthusiasm through the cartoon media. By examining how the moment of annexation was captured and caricatured in Japanese society, I argue that there was the growing popular will to empire at the social level. In analyzing the cartoons on annexation, I classify them into five recurring patterns of imagination. They are the metaphors of light, train, animal, gender, and heroes. By imagining Japan-Korea relations through these five metaphors, the Japanese populace came to the consensus that enlightened and technologically advanced Japan must lead Korea into the modern world. To rationalize and justify Japan's leadership over Korea, the cartoons visualized an animalized and feminized Korea. By arbitrarily recollecting past heroes of foreign invasions and associating them with the annexation, the cartoons attempted to render annexation continuity with Japan's own past. Developing a distinctively Japanese but unmistakably modern style of visual representation, the cartoons on the Korean annexation contributed in creating a visual culture that molded Japanese will to empire.

      • KCI등재

        王守仁의 中和說 연구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7 陽明學 Vol.0 No.18

        이 글은 陽明 王守仁이 중화문제를 처리하는데 나타난 그 특성과 사상사적 의의를 밝힌 것이다. 양명은 감정의 未發과 已發을 마음 작용의 前後ㆍ內外의 서로 다른 상태나 단계로 이해하는 기존의 견해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유행하는 마음의 본체와 그 작용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미발과 이발을 마음의 본체인 未發之中과 그 작용인 中節之和, 즉 ‘中和’로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양명에게서 마음의 본체는 바로 良知이다. 따라서 ‘중화’문제는 곧 양지의 본체와 작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中和가 마음의 全體大用이 되는 것이 바로 大本과 達道이다. 양명은 미발이발과 중화를 양지의 체용으로 바꾸어 논의함으로써, 주자학에서와 같은 靜養動察의 공부가 필요 없이 오직 마음이 유행하는데 나아가 사욕을 제거하고 그 본체를 실현하는 ‘心上工夫’만으로도 致中和가 가능한 이론체계를 갖추게 된다. 양명은 계신공구와 신독을 모두 사욕을 제거하고 본체를 실현하는 공부로 통일시키고, 그것을 다시 致中和와 致良知의 공부로 요약한다. 中和를 하나로 파악하는 양명은 戒愼恐懼를 致中공부로, 愼獨을 致和공부로 이해하는 주자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그것들을 모두 致良知의 공부로 통일시킨다. 치양지는 양지본체가 유행하는 과정에서 자사와 물욕 등에 의해 가려진 것을 제거하여 본래의 밝은 상태를 회복하는 공부이다. 뿐만 아니라 그 것은 天性을 실현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을 밝게 드러내고 있는 양지에 따라 행위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본 성실현의 문제가 완전히 致良知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양명은 치중화를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인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생육되는 경지에 대한 풀이에서도 심학적 특징을 드러낸다. 그는 ‘天地位’와 ‘萬物育’을 하나의 일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모두 내 마음 가운데의 일로 간주한다. 여기에는 마음의 본체인 양지의 감응으로 말미암아 천지만물이 일체가 된다고 보는 그의 철학적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중화 의 실현은 곧 본성실현이다. 양명은 본성실현을 통하여 열리는 성인의 경계를 자기완성과 타자완성이 이루어지는 경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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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격조사는 핵이 아니다

        한정한(韓政翰) 형태론 2010 형태론 Vol.12 No.2

        이 글은 지난 2008년 형태론 10권 3호에 실린 『다시 격조사는 핵이다』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쓰인 글이다. 필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한정한(2003)에 실린 『격조사는 핵이 아니다』에서 이미 밝혔지만, 임동훈(2008)에서 새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답함으로써 격조사에 대한 그간의 진전된 연구 성과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임동훈(2008)에서 새로 제기한 문제들은 세 가지였다. 차례대로 논의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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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州 九皇洞 三層石塔 舍利莊嚴具의 再照明

        한정호(韓政鎬) 한국미술연구소 2006 美術史論壇 Vol.- No.22

        1942년 경주 狼山 동편에 위치한 구황동 삼층석탑 해체ㆍ수리 과정에서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이 사리장엄구는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유입을 계기로 야기되는 신라 사리장엄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이다. 사리함의 명문에 의하면 692년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탑이 건립된 이후. 700년 신목태후가 세상을 떠나고 이어서 702년에 효소왕이 승하하자, 성덕왕 5년(706)에 불사리 4과와 全金彌陀像 1구, 『무구정경』 1권을 추가로 봉안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706년에 사리장엄구를 추가로 봉안한 배경에 대해『무구정경』의 ‘낡은 탑을 중수(修造佛塔)하는 功德’에 의거하여 성덕왕이 선대 왕가의 명복을 빌기 위한 의도로만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건립된지 불과 14년 밖에 경과되지 않은 석탑을 낡은 탑〔塔〕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문헌자료를 통해 706년에 시행된 석탑 중수의 배경에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삼국사기』권 제8성덕왕조의 기사를 통해 당시 신라사회는 705년에서 706년 사이에 발생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백성들의 피해가 극에 달하였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성덕왕이 사리장엄구를 추가로 봉안한 배경에는 先祖에 대한 追福供養은 물론, 신라에 새롭게 유입된 『무구정경』의 威神力을 빌어 자연재해로 인한 국난 극복의 의도가 강하게 내포되어 없다고 사료된다. 그리고 구황동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 대해 품목별로 납입 시기를 살펴본 결과, 사리용기를 비롯한 유물들은 대부분 성덕왕대에 추가로 봉안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692년 초창 당시에 납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은 금제여래입상이 유일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초창당시의 사리장엄 방식이 금제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봉안되었을 가능성과 사리장엄구와 공반되는 불상의 성격에 대해 살펴볼 수 없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사리함에 기록된 납입품 가운데 무구정경은 1942년에 수습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대나무 편들에 결부시켜, 付簡의 형태로 제작ㆍ봉안되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무구정경』1권은 종이에 묵서된 寫經으로 별도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대나무 편에 기입된 經文은 다라니경 전체가 아니라 99벌 혹은 77볼 寫書한 6종의 陀羅尼呪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706년에 추가 봉안되었던 금제아미타좌상 1구와 사리함 명문에 기술된 6寸 크기의 全金彌陀像 1구와의 관련성이다. 지금까지 논란을 빚고 있는 6寸 크기의 불상에 관해 여러 異說이 제기되었다. 사리함의 명문에 명시된 6寸은 周尺을 기준으로 금제여래좌상의 크기와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구황동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에서 발견된 2구의 불상 가운데 명문에 기록된 ‘6寸 크기의 全金彌陀像’은 그동안 양식사적 접근을 통해 거론되어온 금제여래좌상임이 재확인되며, 아울러 신라에 周尺이 통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It is very important the reliquary discovered inside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Goowhang-dong in Cyeoungju that shows the change of practice with Buddhist relic woship as the introduction of R?mivimalavi?uddhaprabh?n?ma-sutra in Silla. The reliquary was engraved in 692 A.D.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Goo-wangdong was bolt to play for the repose of King Sinmoon by the King Hyoso and the Queen Sinmok, King Sinmoon's wife, then the Queen Sinmok who demised in 700 A.D. Also, the King Hyoso who demised in 702 A.D. This is next to the four pieces of the Buddha's bodily relic, one of the statues of Amitabha which is made of gold, one of the R?mivimalavi?uddhaprabh?n?ma-dh?ran?-sutra were enshrined in by the King Sungduk, in 706 A.D. Therefore, we can think that the reason of adding to a re-liqury was to pray for the repose of the late king, based on the teaching R?mivimalavi?uddhaprabh?n?ma-dh?ran?-sutra, the charity of repairing a old pagoda. It is difficult that the three-story pagoda at Goowhang-dong has been only fourteen years since it was built thinking the age old pagoda. Therefore, in 706 A.D., the repairing of the stone pagoda can be another reason. On investigation, we can see that lots of people perished by famine and drought between 705 A.D. and 706 A.D. in Silla. It is the reason of adding to be enshrined a reliquary by the King Sungduk that pray for the repose of the late king and overcome a national crisis, through natural disaster and the power of the R?mivimalavi?uddhaprabh?n?ma-dh?ran?-sutra. We studied the time which reliquaries discovered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Goowhang-dong was buried. As a result, the majority of the main relics including reliqaury proved to be enshrined in the stone pagoda the King Sungduk period. Also, the stone pagoda was built first, 692 A.D. and Standing Buddha made of gold turned out the only relic buried at that time. So we can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iquary and Standing Buddha made of gold. The Ra?mivimalavi?uddhaprabh?n?ma-dh?ran?-sutra in the buried items of being engraved a reliquary has relation to bamboo pieces which was written letters and missing since it was discovered, in 1942. It may be manufactured and enshrined as bamboo book form. But, according to witness's evidence at that time, one Ra?mivimalavi?uddhaprabh?n?ma-dh?ran?-sutra can be enshrined separately and The Sutra which was recorded of bamboo pieces cam be a part of charm copied ninety-nine or seventy-seven set, not all dh?ran?. Finally, the Buddhist statue of six Chon(寸) solved the exchange of Buddhist statue's size by calculating the measure of being reflected, In result, the size of Buddhist statue, six chon(寸) equal the size of the seated Buddha made of gold by JooCuck(周尺) Therefore, The Amitabha statue which is made of gold of six Chon(寸) size in the two Buddha statue of being discovered the stone pagoda was reconfirmed seared Buddha made of gold and it is a very important example that may be of use Joochuk(周尺) in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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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張載와 程顥의 ‘定性說’에 관한 비교 연구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2 陽明學 Vol.- No.8

        이 글은 본성을 안정시키는 문제에 대한 張載와 程顥의 해법과 그에 나타난 양자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의 동이점은 무엇인지를 탐색한 것이다. 定性의 문제에 관한 논의는 ‘본성이 표현될 때 어떻게 하면 외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장재의 물음에서 촉발되었다. 장재에게서 정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마음이 見聞知에 매여서 외물에 이끌림으로 말미암아 본성이 자신의 본래적인 感通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마음이 외물에 이끌리지 않기 위해서는 견문을 통하여 형성된 物象을 마음으로 간주하지 말고 有無와 內外의 대립이 해소된 太虛가 마음의 본원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存象之心이나 習心 등을 덜어내는 虛心의 공부가 요구된다. 장재의 이러한 해법은 인간의 일체 사려작용이나 정감을 끊고 마음을 안으로 수렴함으로써 본성의 안정을 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已發의 情感이 어떻게 中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정호는 장재가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정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정호에 따르면 본성은 내외의 구분이 없으며, 움직이건 고요하건 늘 안정되어 있다. 이것은 본성을 마음의 동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형이상학적 본체로 파악한 것이다. 이는 본성의 본래상태를 未發時의 至靜體로 고정시킨 장재의 견해와 구별된다. 정호는 마음과 우주의 본체인 天理를 體認하면 萬事에 감응하면서도 항상 마음의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지가 곧 ‘廓然大公’과 ‘物來順應’이다. 그리고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自私’와 ‘用智’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자사’와 ‘용지’를 없애기 위해서 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본성에 본래 내외의 구분이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본체인 천리를 실제로 자기 마음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천리를 체인하는 공부는 마음의 已發, 未發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러한 명도의 공부법은 기존의 수양법이 主靜에 머물러 있던 것을 넘어섰다는 의미를 지닌다. 장재와 정호는 우주와 인간을 하나의 유기적 整體로 파악하는 중국적 세계관을 잇고 있다. 그런데 장재는 우주와 인간의 본원을 순수한 하나의 至靜體로 파악한 반면에 정호는 우주의 본체가 펼쳐내는 생명성을 마음의 본체로 직관해 낸다. 장재와 정호는 각자의 세계인식에 기초하여 본성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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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학에서 윤리주체의 건립과 그 실현의 문제

        한정길(韓正吉) 한국양명학회 2001 陽明學 Vol.- No.5

        송명유학은 우주원리와 상통하는 인간의 본성실현을 통하여 인륜세계를 건립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특정적이다. 그럼에도 그 내부에는 본성실현의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주자와 양명의 견해이다. 주자는 본성실현을 위해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라고 본 반면에 양명은 마음에서의 공부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양명은 용장에서 심체가 우주와 인생의 대본임을 체득한다. 그 마음은 하나의 도덕적 자각능력으로서의 양지이다. 양지는 도덕정감과 도덕의식의 통일체이며, 천리와 명각의 통일체이다. 그것은 사물에 감통하여 그에 적합한 행위양식을 창출해낸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자사와 물욕을 지니고 있으며, 양지는 이들 사욕에 의하여 가리워질 수 있다. 따라서 내 마음의 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해야 한다. 양명은 치양지를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제출한다. 양명은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을 모두 치양지 공부로 통일시키며, 의념이 연관되어 있는 구체적인 사물에서 내 마음의 양지를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곧 자기의 본성실현과 구체사물의 특수성에 맞는 행위양식이 실현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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