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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英順 대구산업정보대학 1996 논문집 Vol.10 No.1
日本人의 言語生活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人稱代名詞는 韓國語보다 많은 종류가 사용되고 있어, 外國人이 日本語를 말할 때 흔히 잘 못 사용해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이 多樣한 人稱代名詞 중에 一人稱과 二人稱을 중심으로 시대적 변천에 따라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지금 사용되고 있는 語彙들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사용되어지고 있는가를 알아 보고자 한다. 上代에서는 自稱으로는 「あ系」와 「わ系」 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 「あ系」는 中古이후 「わ系」로 변해 「われ」나「わが」는 現代에 까지 사용되는 생명력이 긴 어휘이다. 對稱으로는 「みまし」「きみ」「なむち」등 많은 어휘가 사용되었다. 그 중에 「きみ」는 원래 名詞의 뜻으로만 사용되었던 것이 代名詞化되어 처음에는 주로 女性들이 男性을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이지만, 現代에는 주로 男性들이 사용하는 말로 변해 있다. 이 시대는 貴族中心社會라 인칭대명사도 自稱 쪽은 절대 겸양어가 많고, 對稱은 거의가 경의를 띠고 있는 것 뿐이다. 中古에는 많은 새로운 어휘가 사용되어 다채로워졌지만, 그 중에 사물을 나타내는 指示代名詞가 변화해 自稱으로 사용된 「ここ」「こなた」「これ」등이 상당히 身分이 높은 계층에서 사용되었던 것이 특징이다. 對稱으로는 경의가 높은 접두어 「おほ」를 「前」앞에 붙인 「おほ前」가 변한 「お前」가 사용되기 시작해 현대에 까지 사용되고 있지만, 그러나 정의의 정도에서 보면 현대에는 경의의 뜻은 전혀 없이 사용된다. 이 시대의 또 한가지 특징은 男女 性別에 따라 분리 사용된 어휘가 나타났으며, 男性 쪽이 女性보다 人稱代名詞의 사용 빈도도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휘 면에서는 對稱보다 自稱쪽의 어휘 수가 많이 사용되었다. 中世의 自稱은 中古에서 사용된 어휘들이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 특히 「われ」가 더욱 많이 사용되었다. 후기에 들어와 「わたくし」가 새롭게 出現되어 사용되기 시작해 현대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어휘이다. 對稱으로는 上代ㆍ中古에서 自稱으로 사용된 「わ」를 一般 名詞 앞에 붙혀 代名詞로 사용한 어휘가 많다. 이 종류의 어휘는 性別ㆍ身分에 따라 상당히 세분화해 되어있다. 예를 들면 「わごりよ」「わぬし」「わじょう」「わそう」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어휘는 中世에만 나타나 사용 되어졌기 때문에 이 시대만의 어휘라고 말할 수 있다. 近世는 政治ㆍ經濟·文化의 中心이 上方에서 江戶로 옮겨 지면서, 古代에서 近代로 변한 시기이다. 그래서 日本語도 古代語에서 近代語로 바뀌는 시기이다. 人稱代名詞도 오랜 文化의 중심이었던 上方語쪽은 以前부터 사용하던 어휘는 敬意의 정도가 낮아 지면서 敬意가 높은 새로운 어휘가 사용되기 시작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띈 文語로 발달 되었다. 그러나 江戶 쪽은 독자적인 표현법이 발달되어 自稱의 「わたし」나 對稱의 「あなた」 등이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해 현대의 口語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다. 이 시대의 특징은 武士계층에서 주로 사용한 어휘는 漢字語 쪽이 많고 町人계급에서는 규법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음변화형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男性보다 女性 쪽이 敬意의 정도가 높은 어휘를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에만 사용되었던 어휘들도 많고, 前代부터 사용되고 있던 어휘가 이 시대에 들어와 많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도 많다. 近代는 의무교육의 보급과 함께 새로운 어휘는 出現하지 않고,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어휘들이 각 지방에 따라 제각기 변화해 方言으로 발전되지만, 전국 공통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自稱의 「わたくし」「わたし」와 對稱의 「あなた」가 보편적이다 늦게 自稱의 「ぼく」가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日本語의 人稱대명사의 歷史的흐름에서 볼 때 가장 어휘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사용되었던 시기는 中世이고, 近世에 들어와 古代語와 近代語로 바뀌면서 漢字語의 어휘에서 규법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어휘들이 町人계급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口語로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敬語 측면에서 보면 어휘가 처음에 사용되기 시작할 때에는 敬意의 정도가 높은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敬意의 정도가 낮아지고, 敬意의 정도가 높은 새로운 어휘들이 出現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人稱代名詞들의 어휘가 원래의 뜻은 직접 사람을 가리키는 뜻이 아니고 일반 名詞나 事物을 가리키는 代名詞가 변하여 人稱代名詞가 된 것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人稱代名詞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敬意의 정도는 전혀 없어 지면서, 앞으로는 어떤 敬意가 높은 새로운 어휘들이 出現할 것인지가 기대되기도 한다.
朴英順 대구산업정보대학 1997 논문집 Vol.11 No.1
韓國語와 日本語는 많은 類似性을 갖고 있지만, 相異点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 하나가 人稱代名詞이다. 문법체계에서는 類似性을 갖고 있지만, 어휘면에서 비교해 보면 日本語 쪽이 韓國語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휘수도 많다. 본고에서는 言語와 文化가 근접한 韓國語와 日本語의 人稱代名詞의 흐름을 비교해 봄으로서 兩國의 言語使用과 言語生活에 대한 행동양식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선 양국의 人稱代名詞의 특징에 관해서 알아 보고, 古代부터 현대까지 時代의 흐름과 함께 人稱代名詞는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가를 조사해 본다. 품사분류에서는 韓國語는 9품사 속에 代名詞를 인정하고 있지만, 日本語는 10품사 속에 넣지 않고, 名詞를 下位分類해 代名詞를 인정하고 있다. 韓國語와 日本語의 人稱代名詞는 그 語 자체가 갖고 있는 特遇性이나, 상대방의 연령, 신분, 직위 등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는 것은 兩國語 모두 같은 성격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日本語 쪽이 더욱 복잡하고 어휘가 세분화되어 있다. 이것은 韓國語의 人稱代名詞는 時代의 흐름에 따라서 그다지 변화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一人稱代名詞의 「나」는 古代에서 中世까지는 보통체와 겸칭의 구별없이 널리 사용되다가, 19세기 말경에 겸칭인 「저」가 등장하면서 보통체와 겸칭으로 구분해서 사용되기 시작해, 20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特遇法의 분화가 분명하게 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수명이 긴 어휘라고 말할 수 있다. 二人稱代名詞는 古代부터 사용되어 오던 「너」가 現代까지 사용되고 있고, 後期中世에 들어와서 사용하기 시작한 「그듸/그%」가 「너」보상 상대방을 다소 존경해서 말할 때, 사용했던 것이 지금은 「그대」로 표기해서 사용하지만, 일반적이 口語體 속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편지문이나 연극, 소설적인 文體에서 다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現在에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당신」은 16세기경에는 재귀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19세기 초경부터 二人稱代名詞로 사용되기 시작해 현대에 들어와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비해 日本語는 一人稱代名詞나 二人稱代名詞 모두 韓國語보다 훨씬 더 많은 어휘가 등장해서 사용되었지만, 그 수명이 길지 않은 어휘가 많고, 또한 말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 직업 등에 따라서 사용하는 어휘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이것은 日本語의 人稱代名詞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 語의 敬意의 정도가 낮아져, 敬意의 정도가 높은 어휘가 새롭게 등장한 어휘가 많은 뿐만이 아니라, 어휘 수가 많다는 것은 실제 言語生活 속에서 人稱代名詞를 사용하는 횟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비해 韓國語의 人稱代名詞는 사용하지 않고 敬意의 정도가 높은 가족명칭이나 職名 등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것은 韓國語가 日本語 보다 敬語使用에서 特遇性이 높은 어휘가 사용되었으며, 敬語法에서도 더욱더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문학작품의 생산 시스템: 출판체제와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박영순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인문학연구 Vol.39 No.1
작가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 지적 생산물로서의 문학 작품을 창작한다. 작품은 반드시 어떠한 제도적 틀과 장치 속에서 생산되기 마련이므로 작품생산의 정책과 시스템은 자연 작품과 창작경향에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문학의 범주와 영역 및 문학 환경에까지 영향을 준다. 따라서 문학작품 생산체제에 대한 연구는 중국 문학작품이 어떠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생산되며, 생산된 작품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문학지식으로 어떻게 피드백·수렴되는 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본고는 중국 문학작품생산의 제도적 환경과 거시적 장치로 기능하는 출판정책, 기구, 제도 및 현재 문학작품(베스트셀러)생산의 실제적인 역할을 하는 ``민영출판사``의 출판시스템을 통해 문학작품(베스트셀러) 생산체제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학작품의 생산체제는 문학작품의 생산범주 및 영역을 어떻게 정하느냐와 연관한다. 문학작품 생산은 협의적인(작품창작, 교육연구) 면에서 보면 문학 영역에 속하지만, 광의적인(정책과 제도 및 시장시스템) 면에서 보면 도서출판업, 문화산업 영역까지 아우른다. 작가의 창작행위는 문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작품의 생산, 유통 부분은 도서출판 영역에 속하며, 이러한 문학작품의 재생산·재활용(영화, 드라마, 공연, 게임 등의 문화콘텐츠)은 문화산업 영역에 속한다. 현재 중국 문학작품의 생산 범주는 이러한 세 영역이 하나의 고리로 꿰어있다. 이로 볼 때, 중국 문학작품의 생산 체제의 범주는 크게, 중국의 출판(문화산업)정책을 관리·규제하는 조직과 제도 및 출판시스템, 그리고 문학작품의 생산주체인 작가 생산시스템 등을 포괄한다. 그리고 문학작품 가운데 베스트셀러는 대중적으로 넓게 파급된 문학지식의 한 유형으로서 2000년대 중국의 출판체제와 정책 및 시장시스템의 변화와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2000년대 베스트셀러(특히 ``2008년-2010년 문학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중국 문학작품의 거시적인 생산 체제를 살펴본다. 내용의 구성은 Ⅱ에서는 먼저 2000년대 중국 출판과 문학작품 시장의 주요 현황과 특징을 살펴보고, 실질적으로 베스트셀러를 출판하는 민영출판사와 베스트셀러 제작팀이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생산하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Ⅲ에서는 문학작품생산과 출판에 있어 외부적인 장치로 작용하는 출판조직과 제도와 작품생산의 주체자인 작가시스템에 대해 논의한다. 中國文學作品的生産系統:以出版系統與暢銷書爲中心 朴英順文學作品生産如果從狹義的角度(作品創作, 敎育究)看應該屬於文學領域, 但是從廣義的角度(政策和制度以及市場體系)來看的話, 也應該屬於圖書出版業和文化産業等領域。作家的創作行爲是屬於文學領域的, 作品的生産·流通等是應該屬於圖書出版領域, 而文學作品的再生産(文化産品:電影, 連續劇, 話劇, 游戱等)是屬於文化産業領域的。現今中國文學作品的生産主要和這三個領域有密接關係。此論文從巨觀的角度探討在這樣的背景下中國文學作品[暢銷書]是如何生産, 而生産的機制又是什요, 從而要畵出``文學作品生産機制形態``。我想爲了把握文學作品的生産機制, 首先該着重於國家[機構, 制度, 政策]系統, 市場[出版]系統, 作家系統等是如何運作的, 然後要探討他們之間又是如何有機合作進行文學作品[暢銷書]的生産的, 進而了解文學知識的創出、活用。本論文首先要試探討其中一部分。就是要分析政府的出版政策、制度和機構以及這樣的制度下形成的圖書出版市場的特徵以及出版社的生産機制。具體來說, 本文第二章首先分析2000年代圖書出版産業和文學作品市場的主要現狀和特徵, 其次從巨觀角度觀察出版政策和相關機構。第三章主要是以2000年代文學學類暢銷書(2008-2010)爲中心分析出版社是如何運行文學作品[暢銷書]的企劃和制作, 以及言論媒體中的廣告和宣傳是通過什요通路進行流通和發行的。
중국 서적의 인용과 지식의 수용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중심으로
박영순 중국인문학회 2016 中國人文科學 Vol.0 No.64
≪五洲衍文長箋散稿≫繼承實學思想的成果, 引導出了博學的潮流. 朝鮮後期這樣的百 科全書式著作, 大量引用了明清時代的著作內容, 同時大幅容納了明清時期的學術內容, ≪五 洲衍文長箋散稿≫爲其代表. 在李圭景所生活的19世紀, 中國的書籍以使行·下賜等形式, 通過 浙江和琉璃廠流入朝鮮. 因此, 當時被認爲先進文物媒體的中國書籍如何流入朝鮮, 及其對朝 鮮知識層帶來了什麼樣的影響, 可以說是對理解古代中韓知識交流史乃至東亞知識交流史來說 非常重要的主題. 因此,本文的宗旨在於了解在≪五洲衍文長箋散稿≫中引用的中國書籍內容, 及其對≪ 五洲衍文長箋散稿≫有著什麼樣的關係. 爲此, 本文將在≪五洲衍文長箋散稿≫中引用的中國 書籍收錄作爲研究主題, 了解一下在哪一時期究竟收錄了哪些書籍, 并考察≪五洲衍文長箋散 稿≫中接受的中國知識. 本文主要內容大致分爲≪五洲衍文長箋散稿≫的順序與特點, ≪五洲 衍文長箋散稿≫引用明清書籍的內容與特點, 及≪五洲衍文長箋散稿≫接受的中國知識. 本文 作爲一次作業, 通過其內容, 可以看到中國的書籍是如何流入朝鮮的, 對朝鮮知識層引起了何 種影響, 及古代知識交流史的一個方面.
朴英順 중국어문연구회 2002 中國語文論叢 Vol.23 No.-
명대의 주요 시가주장인 격조는 그 함의를 한 마디로 단언하기가 어렵다. 즉, 체재·구법·성률 등 시가 외재형식을 가리키기도 하며, 동시에 含蘊한 시가 내재미를 나타내기도 한다.이러한 격조에 대한 함의는 南宋 嚴羽≪滄浪詩話≫속에 이미 그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물론 체계적이면서도 完整하게 전개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격조에 대한 이론적 남상의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따라서 ≪滄浪詩話≫는 명대 시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명대 시단은 宗唐派가 그 주류를 이루며, 明代 中期 七子派들의 주요 시가관점은 '시는 반드시 성당시를 본받는다'이다. 이러한 복고적 경향은 高棅에서부터 시작하여 李夢陽·何景明을 거쳐 명 중·말기에 王世貞·胡應麟 등으로 계속 이어져왔다. 그러나 '李·何의 논쟁'이후 복고파의 폐단이 점차 드러나게 되자, 격조설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한 변화가 일게 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인물로 왕세정은 '才思'를, 호응린은 '興象風神' 등의 개념을 각각 내세우면서 격조설에 性靈과 神韻의 색채를 띠게 되는 변화를 가져온다. 이들의 시론비평 영역은 여전히 격조설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격조설을 보완·수정하고, 그러한 내용이 후대 성령설과 신운설의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격조', '성령', '신운' 이 세 가지 시가 범주는 결코 독립되어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연속선상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엄우의 시론이 후대 시단에 계속 언급되어지는 이유도, 그 내용이 비록 완정하고도 체계적이지는 못하지만, ≪滄浪詩話≫안에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안파가 칠자파를 공격할 때 그 비판의 화살이 엄우에게 까지 미치기도 하였지만, '體制', '格力', '音節'과 '學古'에 대한 관점 등은 격조설에서 언급되어졌고, '興趣', '韻味', '意興'등은 신운설 중의 한 범주로 작용하였음은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엄우의 시학사상 속에 격조·성령·신운의 싹이 움트고 있었으며, 명·청시단에 이르러 발아하고 성장하면서, 그들과 시가생명을 함께 하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