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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燕行錄의 체계적 정리 및 연구 방법에 대한 試論

        김영진(Kim, Young-jin) 대동한문학회 2011 大東漢文學 Vol.3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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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林基中 編 『燕行錄全集』이 나온 이래 연행록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고조되고, 아울러 다양한 방면에서 연행록의 연구 성과가 이어졌다. 한편 『燕行錄全集』은 큰 공을 세운 반면 여러 문제점들도 지적받았다. 본고는 연행록 자료의 추가 수집 및 체계적 정리 방법을 모색해 보고, 아울러 몇 가지 연구 방법에 대한 試論도 제시해 보았다. 前者와 관련해서는 연행록의 개념과 분류, 연행록 자료 추가 수집의 방법 및 전망, 燕行者 名單의 完整化 작업, 연행록의 解題 문제, 標點ㆍ校註(譯註) 및 연구에 우선해야 할 A급 연행록의 선별, 국가적 사업의 ‘한국고전총서(集部-別)’로의 編刊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거기에 A급 연행록들이 포함되어야 함을 논하였다. 後者와 관련해서는 연행록의 시기별 연구, 연행록 작가의 직위 및 신분별 연구, 연행록의 체제ㆍ유형별 연구, 연행록 국문본과 한문본의 비교 연구, 연행록 비평에 관한 연구로 세분할 필요성이 있음을 논하였다. 아울러 문학 연구 외에 제도사, 사상사, 문화사, 교류사적 연구와 燕行路 등 문화컨텐츠 개발 분야 등을 언급하였다. Since the Yeonhaengnok’s collection(燕行錄全集) that Lim, gi-jing(林基中) edits is published in 2001, interest of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y about Yeonhaengnok(燕行錄) is heightened, and research abut Yeonhaengnok(燕行錄) continues in various field. In the meantime, the Yeonhaengnok’s collection(燕行錄全集) rendered big merit, but several problems indicated. This paper seeks for addition collection of Yeonhaengnok(燕行錄) data and systematic arrangement method. Also this paper presents discussions about some method of study. First, following work should be achieved. Yeonhaengnok(燕行錄)’s concept and classification, the method and view of addition collection of Yeonhaengnok (燕行錄) data, the arrangement work of Yeonhaengja(燕行者) list, the problem of Yeonhaengnok(燕行錄)’s annotation, A grade Yeonhaengnok(燕行錄)’s sorting that must works punctuation and footnote, the publication of ‘Korea classics collection(集部-別)’ Secondarily, it should be studied by following field. Research about Yeonhaengnok(燕行錄)’s time-study, research about Yeonhaengnok(燕行錄) writer(position and status), research about Yeonhaengnok(燕行錄)’s type-study, research about comparison of Yeonhaengnok(燕行錄)’s Korean text and Chinese text, research about Yeonhaengnok(燕行錄)’s criticism. Finally, this paper refers various research field, for example the history of system, the history of ideas, the history of interchange, cultural history. Also this paper suggests culture contents development, such as Yeonhaengro(燕行路) etc.

      • KCI등재후보

        연행록 소재 누정기(樓亭記)의 정의 및 특징

        차오후이 ( Cao Hui ) 연민학회 2016 淵民學志 Vol.25 No.-

        본고는 임기중이 편찬한 『燕行錄叢刊增補版』과 한국고전종합DB에서 제공한 『연행록선집』을 텍스트로 삼아 연행록 소재 독립된 누정기를 다루었다. 누정기의 정의 및 범위 검토에 주력하였으며 연행록 소재 누정기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먼저 연행록 소재 독립된 누정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누정기란것은 亭, 臺, 樓, 閣, ?를 비롯한 유람과 관상의 건물과 軒, 堂, 齋, 室, 館을 비롯한 여가와 휴식의 거소를 소재로 쓴 기문이다. 누정의 이름, 위치, 기능, 구조 등 제반 사실, 누정 숙조 관련 사항, 주변 경치에 대한 묘사, 누정 명칭에 대한 논설, 누정과 누정 주인의 고사와 역사, 누정 주인 공덕에 대한 칭송 등은 모두 누정기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다만 서술한 내용의 초점은 누정이라는 건축물에 벗어나지 않는다. 누정에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누정기라고 할 수 없다. 이 정의를 바탕으로 연행록에서 총 31편의 독립된 누정기를 뽑아서 표로 정리하였다. 독립된 누정기는 18세기 후반에서야 처음으로 연행록에서 등장하였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연행록 작가층이 정사, 부사, 서장관 이외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삼사가 아닌 조선 문인들이 공적 업무 말고 산천 유람, 개인 교유, 경제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천 유람을 하면서 수려한 경치와 거대한 누정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저절로 누정기를 남겼다. 또한 유명한 누정을 통해 누정기를 지어 자신의 문명(文名)을 알리고자 하는 의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둘째, 북학파가 연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학파가 중화의 문명을 받아드리고자연경에 가서 형식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누정기는 새로운 형식인 잡지체 연행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행록 소재 누정기는 타인의 청탁을 받고 쓴 누정기와 달리 모두 저자가 누정을 참관한 후 느낀 바가 있어서 창작한 것이다. 실제로 보러 찾아간 것이라서 누정을 찾으러 가는 과정 및 누정 주변 경치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고 뛰어나다. 이는 연행록 소재 누정기의 한 특징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유기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유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보지못한 경물을 묘사하지 못한다. 누정기는 시간적 제약을 초월하여 상상하거나 타인에게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그 누정과 주변 경치의 가장 아름다울 때의 경치를 묘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누정기와 유기를 구별할 수 있다. 편폭으로 인해 연행록 소재 누정기의 정의와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향후 연행록 소재 누정기의 서술체제와 사상의식 등의 특질을 드러내도록 계속 연구할 것이다. In this report, Supplementary Edition of General Yeonhaengrok DB(Key Zung Lim, 2016) and A selection of Yeonhaengrok which is provided on the site named DB of Korean classics are used as the materials. This report mainly discusses the defini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 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At first, I make a definition of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is a kinde of Kimun(記文) which is about the traditional house for sightseeing such as Jung(亭), Tae(臺), Kak(閣), Sa(?), and the leisure traditional house where can take a rest such as Hun(軒), Tang(堂), Jae(齋), Sil(室). It can contain fundamental information of traditional house such as name, position, function, structure; the discussion about the name of traditional house; the history and story of traditional house; encomium upon traditional house owners, as long as it does not divorce from the traditional house. I refor to the definition to make a table which contains 31 pieces of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It was 1765 years when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 first appeared in the Yeonhaengrok. There are two reasons. Firstly, at that time, the identity of Yeonhaengrok`s writers became diversified. People who can went to China were not only Jeongsa(正史), Busa(副史), Seojaongwan(書狀官), but also entourages such as Jajegungwan(子弟軍官). Entourages did not need to do official jods, so they had time to travel, trade and make friends with Chinese. When they traveled in China, beautiful scenery and magnificent architecture touched them, so they writed many pieces of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 Secondly, Bughakpa(北學派) became popular at that time. Bughakpa(北學派) academics tried to accept Chinese civilization, so they leaved so many records which have substantial content and new form.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 can be considered as a kind of Jabjiche(雜識體).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have outstanding scenery description. It is a characteristic feature of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are different from traditional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 Readers may be think it is the same as travelogues, because of the outstanding scenery description. Howere, we can identify which is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by seeing if it can descript scenery without time limit. Because people have to write travelogues accord to what they experience. But when people write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s`, they can image the most beautiful scenery and leave timeless record. Because of paper length limit, I just discusses the defini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 `Writings about Traditional House(樓亭記)` which are included in the Yeonhaengrok in this report. In the future, I will continue to do intensive study of this project.

      • KCI등재

        연행록 문학 방면 연구 성과와 향후 과제

        김현미(Kim, Hyun-mee) 대동한문학회 2011 大東漢文學 Vol.34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연행록의 문학적 접근 연구 성과를 알아보고 그를 분석하여 경향을 살펴본 후, 그 경향에 따른 향후 과제를 알기 위한 중간 점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연행록의 문학적인 연구는, 연구사 초기 연암 박지원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인 열하일기를 설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로부터 시작하여 연행록이라는 문헌군의 발견과 목록 정리, 체계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대부터 다종다양한 연구와 문학적 접근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연구사를 살펴본 결과, 연행록 연구 중 문학적 접근에 있어서는 크게 세 가지의 경향을 띠고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세 가지 경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연구사의 초기부터 지속된 ‘연행록은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대표 저술’이라는 입장, 두 번째 연행록 문헌군의 실체가 구체화됨에 따라서 ‘여행문학’ ‘기행문학’ ‘여행자문학론’ 등의 입장을 수립하여 이에 알맞은 문학적 접근 방법론을 모색하는 입장, 마지막으로 시나 가사라는 기존 장르에 문학성을 담보하여 그를 분석하는 태도이다. 이 중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경향은 두 번째이다. 이것은 곧, 연행록이 더 이상 문학이냐 문학이 아니냐하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져서 작품군의 복합적인 성격을 인정하면서 문학적으로도 좀 더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작품군의 복합적인 성격을 더욱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단지 문학적인 접근을 하는 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연행록의 문학적 연구 뿐 아니라 사학, 지리학, 정치학, 서지학, 한국 복식학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연구들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분석하는 ‘연행록’ 이 단순한 일차적 자료를 넘어서 ‘타자의 문명과 문화를 바라보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기록’으로서의 연행록 정체성에 대한 암묵적인 전제 후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현재 학계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운위되는 ‘학제간 · 다학문 간의 집체작업’을 자연스럽게 불러오는 인식이면서, 이에 따라 학문의 통섭이 일어날 수 있는 주된 연구 대상으로서의 연행록 문헌군의 위상을 굳히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연행록 자체의 간학문성, 통섭성은 연구자들에게도 기존의 세부 학문 분류, ‘순수혈통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학문 탐구 태도를 유도하고 있다. This paper is for explanation and find prospect on literary researchs of Yeonhangrok(연행록). Literary researchs of Yeonhangrok(연행록) started in 1930’s, when Korea's modern sciences had begun. So there are many researchs on that, and they have their own trends. That trends are able to be said in three ways. First, Yeonhangrok regarded as a masterpiece of Silhakpa(실학파). Second, researchers thought Yeonhangrok as a important texts itself, so they tried to find methodology like “traveler’s literature”. Finally, researchers tried to analysis Yeonhangrok(연행록), through existing literature genre like poem, kasa(가사). Throughout these three trends, second one is the most frequent methodology. That means, Yeonhangrok(연행록) is to be admitted as complex-texts, and researchers must try to do inclusive study on it, without arguing Yeonhangrok(연행록) is a pure text of literature or not.

      • KCI등재후보

        연행록의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스토리텔링의 연구

        김미경(Kim Mi-Kyung)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5 한국문학과 예술 Vol.16 No.-

        본고는 역사학 분야와 국문학 분야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연행록(燕行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100여권의 『연행록』을 읽고 분석하다가 2002년, 저자미상으로 되어 있었지만 작품성이 뛰어나고 기록성이 치밀한 『계산기정(?山紀程)』을 만나게되었다. 이에 『계산기정』을 분석하고 동분서주 뛰어다녀 『계산기정』의 저자가 ‘동화(東華) 이해응(李海應)’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민속연희의 원소스(one Source)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밝혀내어 “동화 이해응의 『계산기정』 연구”(고려대학교 석사논문, 2002)라는 논문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논문을 통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가 『계산기정』이라는 원소스(one Source)를 어떻게 하면 멀티유즈(Multi Use)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행록의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스토리텔링 연구를 해보고자 했다. 『계산기정』은 산문과 시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으면서 여행기로서의 치밀함이 돋보였고 문학작품으로서의 작품성도 뛰어난 연행록이다. 1803년에 쓴 기록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이에게 전혀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흔치 않은 연행록이 바로 『계산기정』이다. 본고는 『계산기정』이라는 연행록을 읽으면서 “민속연희”와 연관시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한문 기록이 민속연희의 자료로 민속학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하나의 예를 보여 주고 싶었다. 융합콘텐츠가 학문의 지평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으며 한문 기록이 원소스(one Source)를 멀티유즈(Multi Use)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화원형(Prototypes)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핵심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중요한 자료임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이 논문에서 본고가 주력한 부분도 연행록의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요즘, 현장에 가서 스토리텔링 기획부터 로드맵, 디자인, 창작, 마케팅까지 스토리텔링 마스터-플랜을 짜는 일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여 온 연행록 - 『계산기정』을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잘 입혀서 문화콘텐츠 개발에 성공하느냐가 중요 관심사이다. 그래서 이번 논문은 『계산기정』이라는 원소스를 멀티유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주력해 보았다. 즉연행록- 『계산기정』이라는 원소스를 멀티유즈하게 활용하여 대한민국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 줄 수 있는 훌륭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해 어떤 스토리텔링을 해야 할지 그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연행록 - 『계산기정』이 테마파크 스토리텔링, 무대공연예술로서의 스토리텔링, 축제로서의 스토리텔링 등으로 다시 태어나 결국은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에 충분히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는 더 이상 연행록을 책 속에만 가두어 놓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테마파크, 무대공연예술, 축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멀티유즈하게 현대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그 소통 방식의 핵심에 바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것이다. 연행록이라는 기록물을 오늘날에 색깔에 맞게 좋은 스토리텔링으로 거듭나게 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미래를 만나게해야한다. 그것이 우리의전통문화콘텐츠가세계화 되는 지름길이다. Taking interest in “Yeonhaengrok,” which embraces both history and Korean literature, the investigator read and analyzed approximately 100 books of Yeonhaengrok, in which process she came across Gyesangijeong, is characterized by superior literary values and elaborate recording features with its author unknown, in 2002. She then analyzed the book and busied herself with it, eventually finding out that it was written by “Donghwa Lee Hae-eung” and held high values as one source of folk play. The final result of her hard work around the book was a paper titled “A Study on Gyesangijeong by Donghwa Lee Hae-Eung”(a master’s thesis submitted to Korea University, 2002). The present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storytelling to develop cultural content based on Yeonhaengrok, raising a question about how to put the one source of Gyesangijeong to multiple uses by taking a further step. Gyesangijeong is a book of Yeonhaengrok that features proper harmony between prose and poetry, prominent elaborateness as a travel journal, and superior literary values. Its unique structure is not common as it makes the readers feel no boredom at all during the reading process of the book written in 1803. Reading it, the investigator thought it would be great to do research by linking it to “folk play” because she wanted to present an example of records in Chinese being used in the field of folklore as a material of folk play. She also wanted to demonstrate that convergent content could fully broaden the horizon of study and that records in Chinese were important materials of storytelling, which is one of the core elements in the South Korean cultural content industry today, as a prototype applicable for one-source, multi-use. The present study thus focused on storytelling to develop cultural content based on Yeonhaengrok. The investigator has lately been involved in a series of field works directly from storytelling planning through road maps, design, creation, and marketing to storytelling master plans, thus taking huge interest in how to create good storytelling based on Gyesangijeong, on which she has done research with affection, and succeed in developing cultural content based on it. In the present study, she thus focused on searching for ways to put the one source of Gyesangijeong to multiple uses. That is, she searched for ways to come up with great storytelling to develop wonderful cultural content that would bring economic benefits to the nation by putting the one source to multiple uses. The study found that it had the possibilities of being created as storytelling in the forms of theme parks, stage performance art, and festivals and eventually making full contributions to the South Korean cultural content industry. Yeonhaengrok should no longer be contained in books. It should be let out to the world, serve multiples uses in various forms including theme parks, stage performance art, and festivals, and attempt to communicate with modern people. Storytelling lies at the very center of communicative methods. It is needed to add the colors of today to the records of Yeonhaengrok, create good storytelling based on them, and let them meet the past, present, and future. That will be a shortcut to the globalization of traditional Korean cultural content.

      • KCI등재

        대청사행(對淸使行)의 종결과 마지막 연행록

        임준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8 民族文化硏究 Vol.49 No.-

        이 글은 연행록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자미상의 『燕行錄』을 살펴본 것이다. 이 연행록은 고 유탁일 교수의 소장본으로 1983년 학계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작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연행록의 자료적 가치는 근래 국내를 넘어서 국외의 학자들에게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학계의 연행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특정 연행록에만 집중되어 연행록 양식 내지 연행록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연행록은 1894년 마지막 사행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자료이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의 격변으로 인해 이들 사행단은 이전과 다른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 견문의 기록 또한 연행록의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연행록』에 담겨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을 기반으로 추적한 결과 작자는 金東浩(1860~1921)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동호는 進賀兼謝恩使行團의 부사 閔泳喆을 수행하여 북경에 다녀왔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등 국내외 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가 속한 사행단은 극심한 혼란과 고초를 겪었다. 김동호의 『연행록』은 사행수단의 진화, 정보습득 방법의 변화, 그리고 시대변화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생성된 기록물이란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행단은 이전과 다른 노정으로 기차와 기선을 타고 이동했으며, 전신체계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또한 북경 체재 중엔 당시 동아시아정세에 관한 정보들을 근대적 신문을 통해 습득하였다. 하지만 사행단에게 새로운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사행단은 1894년 6월에 출발하여 이듬해 5월 36일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 사이 청일전쟁의 결과로 청과의 외교관계는 변화 하였다. 이에 따라 대청사행은 역사적 소임을 마치게 된다. 또 사행의 부산물인 연행록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마지막 대청사행단이 돌아온 1895년은 공교롭게 兪吉濬(1856~1914)의 『西遊見聞』이 출판된 해이기도 했다. 전근대 지식인들의 선진문물 수용의 통로였던 연행록이 그 수명 (시대적 효용)을 다하는 순간, 서구 신문화의 첨병이 된 새로운 기록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연행록 양식이 그 소임을 다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연행록 전반에 대한 통시적 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지 않았다. 이 연행록에 대한 검토는 연행록의 역사 끝자리에 놓이는 자료의 검토로서 이에 관해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his study is about the Yeonhaengrok by an anonymous author which is the last one in the history of the Yeonhaengrok. This one was owned the late professor Yu Tak-il, and disclosed to the public in 1983. But so far there is no study on this text and its author. Recently, the value of Yeonhaengrok is fully recognized not only by the domestic scholars but also by the scholars abroad. But studies so far are relatively focused on certain kinds of Yeonhaengrok, so, as a result, it is needed to understand Yeonhaengrok from the aspect of its style and history. This Yeonhaengrok is important because it is the document of the last envoy in the year of 1894. Because the political turmoil in the East Asia, the experience of the envoys are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the past. Tracking with some clues in this Yeonhaengrok, I identified the author tobe Kim Dong-ho(金東浩, 1860-1921), who has been to Peking along with Min Yong-chol(閔泳喆), a member of Congratulation and Celebration envoy. The envoys suffered from extreme chaos and trouble caused by Donghak Peasant Revolution, Sino-Japanese war, the Gabo Reform. The Yeonhaengrok by Kim Dong-ho is unique because it represents the evolution of the ways of envoy, change of the way of aquiring informations, and agonies about the change of the time. They traveled by train and steamship, and communicated by telegraph system. And during the stay in Peking, they acquired informations on the East Asian situation through newspapers. But to the envoys, these new changes were not totally affirmative. They could not get used to the speed of changes, just looking on the arrival of the new era. The last envoy departed on June 1894, and returned on 3 May 1895. But during the time, the diplomatic relation between Qing dynasty and Chosun dynasty changed. Envoys to Qing dynasty ended, and Yeonhaengrok, the offspring of the envoy, also ended. By coincidence, in the year of 1895, Yu Kil-jun(兪吉濬) published Observation on the Journey to the West(『西遊見聞』). When the Yeonhaengrok as a path of receiving developed civilization came to the end, sprang up the new kind of document as the vanguard of Western civilization, and this is very symbolic.

      • KCI등재

        연행록(燕行錄) 국역 사업’의 성과와 향후 과제 ― 학술적 가치와 연계하여 ―

        이홍식 ( Lee¸ Hongshik ) 온지학회 2021 溫知論叢 Vol.- No.67

        본고에서는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2015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학술적 차원에서 평가하고 그 의미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에 지금까지 제출된 연행록 국역 성과와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를 비교 분석하여 현재 의미를 평가하였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이루어진 사행 관련 학술연구 성과를 분석하여 ‘연행록 국역 사업’ 성과의 미래 가치를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연행록 국역 사업’의 성과에 비추어서 앞으로의 국역 사업 진행 방향 등에 대해 정책 제언을 더하였다. 대중국 사행기록인 연행록은 한·중 교류의 역사적인 기록이자 문화의 교류와 충격 그리고 자각을 드러내는 문화사적·지성사적 자료이다. 우리 문화유산 속에서 독자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 문헌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사에서도 매우 독특한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이에 한·중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밝히는 자료로써 그 가치가 매우 높은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번역 출간한 20권의 연행록은 이러한 사행기록의 학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이다. 따라서 ‘연행록 국역 사업’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체계적인 계획 아래에서 완성도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다. 더하여 학술 연구와의 연계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사업 주체들의 책임의식과 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하여 한국고전번역원의 평가 심사 외에도 성과발표회 및 학술세미나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국역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술연구와 연계하여 새로운 비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부의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연구지원이 절실하다. This paper evaluated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燕行錄)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which has been carried out by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since 2015 with the support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at the academic level. And this paper examined meanings of the achievements and discussed the main purpose of presenting the future business direction.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conducted by the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plays a very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e basis for research on Sahaeng(使行:). So this paper was forced to proceed in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First of all, the present meaning was evaluated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 performance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that have been submitted so far. Then this paper examined the future value of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by analyzing the achievements of academic research related to meandering from 2018 to 2020. Finally, in conjunction of the achievements of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policy suggestions were added on the future direction of the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Yeonhaengrok, the record of diplomatic trip from Joseon to China(Ming and Ching), is the historical record of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travel literature, and material of cultural·intellectual history indicated exchange, shock and awareness of culture. It is not only a document with its own value and meaning in Korea’s cultural heritage, but also recognized as a very unique entity in East Asian cultural history. Therefore Yeonhaengrok is very valuable as a material that reveals the homogeneity and heterogeneity of Korean-Chinese culture. The 20 volumes of Yeonhaengrok, translated and published by the Memorial of the Great King Sejong from 2015 to 2019, are very useful texts in revealing the academic value of these speculative records. Therefore, the “Yeonhaengrok National Translation Project” needs to continuously submit high-quality results under a systematic plan than any other project. In addition, the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should be strengthened even more than now. For this, the responsibility and cooperation of each project subject should precede anything else. Also, in addition to the evaluation of the Korean Classical Translation Institute, achievements presentations and academic seminars should be held regularly to evaluate the achievements of national translation in an overview, and to seek new visions in connection with academic research. Above all, stable and continuous research support from the Ministry of Education is desperately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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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譯本 연행록 <桑蓬錄>의 특징과 漢譯 양상 연구

        정내원 동양고전학회 2014 東洋古典硏究 Vol.0 No.55

        Kang Jae Eung translated 『Sang-bong-lok』 of Kang Ho Boo from Korean into Chinese. There is Yeonhaengnok(燕行錄) written in with Korean and Chinese among 500 Yeonhaengnok(燕行錄). Especially it is very rare that is translated from Korean into Chinese. Because of there aspect, it is valuable and worth studying. ㅍSang-bong-lok』 was 3 series by origin, but now we have only 2 series. That is the original text written in Chinese by Kang Ho Boo, a Korean version by Kang Ho Boo, and Chinese translated of Korean version by his descindants Kang Jae Eung. Original text dosen’t exists now undiscovered yet. Chinese version 『Sang-bong-lok』 is distinguished from the other Yeonhaengnok(燕行錄) and classical novel in form and contents. In formal aspect, Chinese version 『Sang-bong-lok』 describes an industry remarks in prologue. This industry remark describes standard and form of writing. Looking industry remark, you can find that Kang Jae Eung didn’t add or subject the sentence of original text and distinguished between his own sentence and original text. This compiling system distinguishing compiler from original writter is rare enough to so that you cannot find it in other Yeonhaengnok(燕行錄). In contents, Kang Jae Eung almost transcribed Korean Yeonhaengnok(燕行錄) without subtraction and added special information to promote the view of Kang Ho Boo. After discription, Kang Jae Eung covered all information and reviewed it and added opinion to it. Kang Jae Eung’s conclusion is sometimes same or different from Kang Ho Boo’s. Anyway it is worthy of noticing that Kang Jae Eung wrote his opinion after Kang Ho Boo’s sentence. 漢譯本 『桑蓬錄』은 姜在應이 자신의 선조인 四養齋 姜浩溥의 한글본 『桑蓬錄』을 한문으로 편술한 것이다. 500여 종이 넘는 연행록 중 한글본과 한문본이 모두 현전하는 연행록이 매우 적으며 그 중에서도 한글본을 가지고 한문으로 번역한 漢譯本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桑蓬錄』의 자료적 가치는 귀중하며, 연구할 필요성이 있는 자료이다. 『桑蓬錄』은 원래 3종이었는데, 현재 전하는 것은 2종이다. 姜浩溥가 저술한 원본인 한문본 『桑蓬錄』과 그것을 가지고 姜浩溥 자신이 한글로 번역한 『桑蓬錄』, 그리고 후손인 姜在應이 한글본을 가지고 한문으로 번역하여 편술한 漢譯本 『桑蓬錄』이 그것이다. 이 중 원본인 한문본 『桑蓬錄』은 현전하지 않는다. 漢譯本 『桑蓬錄』은 형식면과 내용면에서 여타 漢譯本 연행록 및 漢譯本 고전소설과 변별되는 특징이 있다. 먼저 형식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漢譯本 『桑蓬錄』은 서두에 범례가 기술되어 있다. 이 범례는 姜在應이 漢譯本 『桑蓬錄』을 편술한 기준과 방식을 서술한 것이다. 범례를 살펴보면 姜在應이 姜浩溥의 문장을 가감하는 일 없이 그대로 수록하고 姜在應 자신의 문장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작자와 편술자를 구분하여 편술한 이러한 편집 체제는 여타 연행록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식이다. 한편 내용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姜在應은 한글본 『桑蓬錄』의 내용을 刪削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옮기는 한편, 姜浩溥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정보를 추가하였다. 이러한 서술의 다음에는 새로 추가된 정보들을 총망라하여 검토한 후 내린 姜在應의 의견이 덧붙여져 있다. 姜在應의 결론은 姜浩溥의 의견과 같은 경우도 있었고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姜在應이 姜浩溥의 글 다음에 의론을 기술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는 후손인 姜在應이 선조 姜浩溥의 유고인 『桑蓬錄』을 후대에 온전한 형태로 전함과 동시에 姜浩溥의 논의의 완전성을 높이기 위해 취택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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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조(金照)의 연행록(燕行錄) 『관해록(觀海錄)』연구

        김영진 ( Young Jin Kim ) 한국한문학회 2015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59

        본 연구는『燕行錄』(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 1책, 임기중 편 『연행록전집』70권에 영인)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이 책의 서명이 본디『觀海錄』이며, 그 저자가金照(1754.1825)임을 새롭게 고증하였다. 아울러 그 체제, 내용, 비평 양상을 고찰하고 연행록으로서의 의의와 가치를 평가해 보았다. 김조는 경기도 화성에 세거한 무반 명문가인 해풍김씨의 후손으로 그 자신은 시인으로 명성이 상당했던 인물이다. 金祖淳, 金., 徐榮輔, 申緯, 李明五, 趙冕鎬 등과 교유하였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金祖淳, 金.와의 교유는 주목을 요한다. 김조는 평생토록 參奉, 主簿 등 미관말직을 전전하였고, 한때 徐榮輔의 幕客으로도 있었다. ‘北村詩社’의 핵심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후배시인에 끼친 영향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784년 사은사행을 따라 연행을 다녀왔으며 연행록인 관해록 을 남겼다. 현재까지 그의 다른 저술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조의 연행록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김조의 관해록 은 저자의 친필본이자 수택본으로 추정된다. 타인의 頭評을 통해원 제목이 ‘觀海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는 글자를 수정한 흔적이 보이며 곳곳에 저자의 부연 설명이나 주석이 적혀 있다. 또 많은 批點이 찍혀 있고, 評批가 붙어있는데 평비자는 필체로 보아 적어도 3인 이상이다. 그 중 ‘香谷’이란 평비자는 바로풍고 김조순이다. 함께 연행한 자도 평비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조의 관해록 은 작가 신분으로 보자면 ‘隨行員의 연행록’으로, 특징상으로는 ‘評批本 연행록’으로 규정할 수 있다. 관해록 의 체제는 항목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결락부분을 제외하고 총 60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일부 항목에는 附가 붙어 있기도 하고, 한 항목 안에서도 여러 칙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대체로 시간과 장소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간간이 귀로의 상황을 교차하여 서술하기도 하였다. 표현상으로는 소품적 문예취가 확연하며 산문 기록임에도 시적인 표현이 많다. 描寫, 記事, 立論이 모두 뛰어나면서도 서정성 넘치는 소품문 성향이 농후하다. 『담헌연기』와『열하일기』의 영향이 일정정도 감지되기도 하지만 일상과 사실에 대한 기록은 매우 상세하고 새로운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수준 높은 비평이 가해졌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는 연행록이라고 할 것이다. This research is about Gwanhaerok(觀海錄), which is a Yeonhaengrok written by Kim Jo. The author and title of this book was remained unknown, but I traced it. And I explained the format, contents, critic aspects so that I reappraised its value. Kim Jo is a descendant of Haepung Kim family who had lived in Hwaseong area. He also was known for a poet. He was a member of Bukchon group and had strong influence on colleagues. He went to Beijing with official envoy, and wrote Gwanhaerok at that time. Since the book is the only one remained, this book is so meaningful. Furthermore, this book was written by his own handwriting, and he proofread himself. And we can find other writers review in it. One of them was Kim Jo-sun who was famous for writing during the King Sunjo period. The format of this book is composed of items. It has 60 items, and each item has its own contents. Generally, it was written by the order of time and place. And we can find out the taste of Sopum(小品) from its expre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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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한문 산문 연행록 속 `풍속` 요소의 인지와 범주

        김현미 ( Kim Hyun-mee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6 漢文古典硏究 Vol.33 No.1

        이 글은 조선 후기의 중요한 문화적 文獻群으로서 존재하는 燕行錄의 주요한 내용 중 하나인 `風俗`의 구체적인 내용과 전개를 살피기 위한 첫 시도로 쓰여 졌다. `풍속`은 기본적으로 타 문화를 체험한 기록이라는 상황적·내용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연행록의 저자들에게 중요한 관찰 및 묘사 대상이 되면서, 연행록을 읽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는 내용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풍속`은 `문헌군`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성격의 텍스트를 포괄하고 있는 연행록을 `타문화 관찰 및 체험 텍스트`라는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분석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풍속`이 왜 18세기에 새로운 표제로서 나올 수 있었는가를 사행 기록의 전통 하에서 생각해보기 위해 이전 시기인 `대명 사행록` 속의 풍속적인 요소가 어떻게 등장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소개되었는가를 살펴본 후, 18세기 연행록 중 잡지 양식의 24개 연행록 중에서 일단 `풍속`이라는 개념의 총합적 이해와 전개 양상을 보기 위해서 풍속이라는 표제 하의 서술들을 분석하였다. 대명 사행 문학의 전통에서 형성된 풍속 요소의 서술 방식은 임금께 복명하기 위한 `문견 별단체`인 잡록 형식이었으며, 내용적으로는 문화적인 자부심을 표출하기 위해 언급된 `상례`의 발견과 지리적 요소와 긴밀히 연결된 풍속의 서술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 연행록 중 `풍속`을 표제로 하여 단편서술 양식을 모아놓은 세 개의 기록, 즉 노가재 김창업의 『연행일기』(1712) 중 「산천풍속 총록」, 그리고 이의봉의 『북원록』(1760) 소재 「산천풍속 총론」, 김조의 『관해록』(1784)에 수록된 「민속잡기」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바라본 새로운 세계인 `청`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고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폈다. 우선 노가재의 산천풍속 총록에 수록된 72개의 항목들은 이전 시기 대명사행문학에서 소개되었던 상례와 지리 지형적인 요소를 포괄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양식인 의-식-주 영역을 고르게 소개하면서도, 이전시기별단체 잡록처럼 나라의 경영을 위한 정보로서 작가의 목표를 삼지는 않았다. 이상봉의 산천풍록총론 속 118개의 항목들은 18세기 초 노가재가 관찰하고 겪은 결과의 타국 풍속을 기반으로서 받아들이고 이러한 기초지식 위에서 자신의 관찰 결과를 더하여 타국 풍속의 관찰을 했다. 1784년 연행의 결과로 민속잡록을 남긴 김조는 30항의 기록 중에서 일반적인 `풍속`이 아니라 그곳의 인물을 중심으로 여정에 따른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민속`의 항목을 서술하였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감상이 보다 많이 투영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writing was written to examine the concrete contents and development of `customs(風俗)`, which is one of major contents of yeonhangrok(燕行錄) existing as important cultural literature(文獻群) in the late Joseon Dynasty because `customs` are important subjects of observation and description to the authors yeonhangrok that basically has the situational·contextual characteristics of the records of experience of other cultures while being a contextual element that makes those that read yeonhangrok have continuous interest. Therefore, `customs` are expected to become a connecting ring that would enable analyzing yeonhangrok that contains texts in diverse natures under the name `literature` with a unity `text of observation and experience of other cultures.` First, to consider why `customs` appeared as a new tile in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tradition of delegation records, how customary elements appeared in the `records of delegation to Ming` that were written earlier and mainly what were introduced were examined. Thereafter, to se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concept `customs` and how the concept developed in 24 pieces of yeonhangrok in the form of magazines out of yeonhangrok written in the 18th century, descriptions under the title customs were analyzed. The format of descriptions of the elements of customs formed through the tradition of the literature regarding delegations to Ming was miscellanea in the form of `separate records of experience` for reporting to the king and the contents were the discovery of conventional practice mentioned to show off cultural pride and customs closely connected to geographical elements. Centering on the `miscellaneous records of folklore`contained in three records that gathered short story narrations under the title `custom` out of yeonhangrok written in the 18th century, that is, 「Sancheon Pungsok Chongrok」 in the 『yeonhangilgi』 of Noh Ga-Jae and Kim Chang-Eop(金昌業)(1712), 「Sancheon Pungsok Chonglon」 in the 『Bukwonrok』 of Lee Sang-Bong(李商鳳)(1760), and the 「miscellaneous records of folklore」 contained in the 『Gwanhaerok』 of Kim Jo(金照)(1784), concrete shapes of the new world `Qing` as seen by them and how the shapes changed over time were examined. First, 72 items contained in 「Sancheon Pungsok Chongrok」 of Nogajae included conventional practice and geographical and topographic elements and evenly introduced the areas of food, clothing, and shelter that are basic ways of human life but the objective of the author was not information for management of the country unlike the separate miscellaneous records in the pervious period. The 118 items in the 「Sancheon Pungsok Chonglon」 of Lee Sang-Bong are descriptions of observation of other country`s customs based on other country`s customs observed and experienced by Noh Ga-Jae in the early 18th century added with the results of observation by Lee Sang-Bong. Kim Jo, who left miscellaneous records of folklore as a result of delegation in 1784, described items of `folklore` based on his experience and observation during the trip rather than general `customs` in 30 record items and projected his emotions and sentiments considerably in the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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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연행록에 드러난 홍경래의 난과그 토양 ‘서북’

        김현미 한국한문학회 2019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76

        Hong Kyungnae Nan(洪景來亂), a major event representing the nineteenth century, is still a rebellion caused by the history created by the local climate, or a failed revolution caused by a hero formed by the unique atmosphere and energy of the region. It is a case where there is much room for reconsideration. This article is to examine how the 19th-century YeonHangnok(燕行錄) writers who had no choice but to go to the field of warfare explained the way and how to understand the region. First of all, there is a diary named YooYeonRok(遊燕錄), that left the experience of those days after returning to Korea in April 1812, when Hong Kyung-rae's crisis was taking place. It mainly deals with the question of who and how acts in controversy. Maintaining the structure of 'presentation of the person-the testimony of the person around-the citation of the record of the person's activity, it emphasize Jung-si(鄭蓍) and Cho-Jong young(趙鐘永), the people who expressed the virtues of Loyalty as local government. Locals come out only as witnesses. For example, Yeonhong(蓮紅) and Kim Hyundae(金鉉大). We can also see the interest in space and the features that describe it. The north-western region in the Hong Kyung Rae that they draw is a space of ruin that has been devastated in a short time, and it is a space that feels more terrible because it is familiar with the existence of the thriving past. However, if this is where Gwan-Gun's response to the “Banran(變亂)” is held, it can be remembered as an image of the battlefield. Two of the above concerns can be seen in the subsequent history of the 19th century YeonHangRok(燕行錄) reference to the region. The most representative persons related to Hong Kyung Raenan are still mentioning Jung-si(鄭蓍) and Cho-Jong young(趙鐘永). However, it is clear that the approach that reminds people related to Hong Kyung Raenan is not through testimony, but through the historical monument. As such, they are not provided with information in a variety of possible interpretations, but also have the adverse effect of limiting the direction to be respected. The problem is whether the space being drawn is also a space of 'ruin'. However, the same “recovery statue” is also shown in the space description, suggesting that the war in the area is not a progressive event but a kind that can be summoned into memory. The place to bring out the episode related to the “Hang Kyung Raenan” to be summoned by the war in memory is concentrated in Zhengzhou(定州), especially the Seobukjangdae(西北將臺). Because the area had many sacrifices, but in the end it was a battlefield that defeated the traitor Hong Kyung Rae. It is settled as an “old battlefield [古戰場]” that does not bring about the loss and pain of the present. 19세기를 대표하는 일대 사건인 ‘홍경래의 난’은 아직도 지역의 풍토가 만들어낸 逆賊에 의한 반란인지, 혹은 지역의 독특한 풍정과 기운으로 형성된 英雄이 일으킨 실패한 혁명인지 재再構하고 再考할 여지가 많은 사건이다. 이 글은 19세기에 ‘안주-(가산-정주-곽산-선천-철산-용천)-의주’라는 사건의 현장을 지나가면서 追體驗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 연행록의 저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하게 되는가를 살폈다. 일단,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있던 1812년 4월에 귀국하여 그 당시의 현장을 겪은 체험을 일기체로 남긴 연행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李鼎受의 遊燕錄 (1811-12)이다. 그곳에서는 ‘누가’ 變亂 중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 방법으로 ‘인물의 제시-직접 경험 인물의 증언-인물의 행적 관련 기록 인용’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의병인 김견신과 허항을 잠깐 소개하다가 본격적으로 지방관으로서 忠과 義의 덕목을 발현한 가산군수 정시, 안주목사 조종영을 부각시킴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행적을 더욱 생생하게 해 주는 증언자로서만 현지인 기생 연홍, 현지인인 김현대가 등장한다. 또한 지나가야만 했던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를 서술하는 특징도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려내는 홍경래란 속의 서북 지역은 짧은 사이에 초토화가 된 폐허의 공간이며, 번성했던 과거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기에 더욱 참담함을 느끼게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것이 ‘變亂’을 치리하기 위한 관군의 대응이 있는 곳이라면 ‘戰場’의 이미지로도 기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전술한 두 가지의 관심사가 이후 19세기 이 지역을 언급한 연행록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홍경래의 난 관련한 인물로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여전히 가산군수 ‘鄭蓍’와 안주목사 ‘趙鍾永’이 언급되지만, 홍경래난 관련 인물들을 환기하는 접근 방식은 ‘증언’을 통한 것이 아니라 ‘기념비’라는 사적(史蹟)을 통한다는 변화 양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기려져야 하는 방향이 제한되는 역효과도 지닌다. 이후 연행록에서 그려지는 공간 역시 ‘폐허’의 공간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회복상’도 공간 묘사상 함께 보여주어, 이제 그 지역의 전란은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아니라 기억으로 소환될 종류임을 시사한다. 기억 속의 전쟁으로 소환될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화소(話素)를 꺼내는 장소는 정주, 특히 서북장대로 집중되는데, 그 지역은 많은 희생은 있었지만 결국 역도(逆徒)인 홍경래를 치리하는 승전장(勝戰場)이기 때문에 현재의 상실과 아픔만을 불러내지 않는 ‘옛 전장[古戰場]’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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