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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노트> 청진(淸津) 개항과 일본인의 활동 : 아사오카 시게키(淺岡重喜)의 삶을 중심으로

        최우길 한일관계사학회 2022 한일관계사연구 Vol.78 No.-

        이 글의 주인공은 아사오카 시게키(淺岡重喜, 1879~1940)이다. 아사오카는 기후현(岐阜縣) 출신으로, 1901년 부산에 진출하여 무역업을 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참전하였고, 1906년 12월 북선(北鮮)의 개발에 착안하여 청진으로 진출하였다. 이 글은 아사오카 시게키의 자서전 『사적 불평(私的不平)』을 세밀히 읽으면서, ‘제국의 브로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아사오카는 청진에 이주하여, 개항운동을 진행하면서 신문사를 설립하고 일본인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경성의 총독부와 도쿄 제국의회를 찾아다니면서 일본해항로개설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진에서 전기 및 운송사업, 토지구입 및 부동산 사업 등에 종사하였다. 그는 유곽이전을 둘러싼 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헌병대 및 검찰과의 시비에 휘말려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후 청진생활을 정리하고, 경성(京城)에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1916년 8월 일본으로 귀국, 종교인이 되었다. 이 연구는, 아사오카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청진에서의 경험을 쓴 『사적 불평(私的不平)』을 통해, 청진의 개항과 식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았다. 아사오카는 일본의 조선 진출 초기 대표적인 ‘제국의 브로커’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아사오카의 경험을 통해,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 사회 모습의 단면, 지방 헌병대와 민간사업가의 관계 등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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