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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興雨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1970 演劇學報 Vol.4 No.-
그렇다면 연극에서의 현실, 연극과 현실은 어떤관계, 어떤 상호성을 갖는가? 그것은 무대상의 리얼리티란 생생한 리얼리티가 아니고 허구위에 형상화된 리얼리티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극과 현실을 생각하기 이전에 허구성을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연극을 구성하는 구성원인 극작가, 연출가, 배우, 장치가, 조명가등 대개의 연극인은 무대가 허구로 꽉찬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철학이 우리와 거리가 먼 학문인것 처럼 느껴지나 우리들의 코앞, 눈앞에서의 현실인 것과 같아 그런 모양이다. 연극이 현실인듯 느끼는 것은 오직 제3자인 관객에게 한해서이다. 연극인은 연극인 나름대로 무대상의 리얼리즘, 연극나름의 리얼리티를 모색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꼬끄랑처럼 형식의 연기를 하게될 우려가 있으며 연극이 배우주체의 예술이라면 여타의 요소들은 모두 그것의 범주를 탈피치 못할 것이다. 설령 그런다치면 어떤 비관론자가 얘기하듯 한국의 리얼리즘연극은「잠자는 리얼리즘」이란 새로운 명사를 낳고 말 것이다.
李侑貞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1968 演劇學報 Vol.2 No.-
이동극장운동은 연극중흥을 위해서도 필연적인 것이다. <극장아닌 극장>이 아니라 이것은 <극장없는 극장>인 것이다. 극장이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놓이는 곳이면 여타를 막론하고 극장의 행세를 한다. 그러면서도 연극인구는 차츰 늘어만 간다. 관객을 그만큼 동원한 것은 연극사상 없었던 일이며 현대극에 있어서 혁신적인 것이다. <극장없는 극장>,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존재하는 극장>의 아쉬움을 느끼지 말고 연극인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도 이동극장운동을 벌여야 될 것이다. 그러면 연극도 다락방신세를 모면하게 될 것이며 대중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 되고야 말것이다. 그 어느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혁신적인 일은 젊은 사람들의 손으로 이룩되어 갔다. 이동연극은 아직 새파란 젊은 나이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젊은이들 만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극운동은 입으로만 떠들어선 안된다. 연극을 하나의 연기자 소성소로만 생각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의성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뒤에 연극이 예술로써 활약할 때가 올 것이다. 대개 이동연극이 연구, 해결해야 될 점을 들면 1) 연기자의기술적 훈련 2) 배우의 갱생시설 3) 각본, 연기 등의 새로운 규범 확립 4) 타장소와의 원할한 연락과 관객층의 조사 5) 상업극단과 극장의 유대관계 6) 교통, 식사, 숙박등의 연구 7) 공연형식의 문제 8) 경제기구의 문제 9) 농어촌 민숙문화의 개발 10) 지방인에 대한 연극 교육 등이다
金有夏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부 1967 演劇學報 Vol.1 No.-
"This is not drama"란 말은 곧 "This is true"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연극이 아니요」란 말이 「사실이요」하는 말과 같은 뜻이라면 연극은 허위한 논리가 성립된다. 과연 연극이란 허위일까? 사실상 그렇다고도 볼 수 있다. 무대에서 배우는 그가 노인으로 분장되었더라도 젊은이인 경우가 많고 남자의 역을 하더라도 그것이 여인인 수가 허다하다. 무대에서의 죽음은 그것이 사실상의 죽음일 수 없고, 무대에서의 뜨거운 사랑이란 그것이 연기자 자신의 사랑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편 관중이 연극을 보고자 하며 연기자와 같이 욱고 같이 우는 것은 그것이 허위인 줄을 모르는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무대 위에서의 현실에 동화되어 흥분하기도 하고 황홀 해 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생 그 자체보다도 보다 정확하고 보다 진지한 면이 부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가 연극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생활보다도 더욱 진실성이 있었을 때 이것이 극으로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Greece의 석학 푸라토는 『Drama란 Fiction이기에 저속한 것이다』라고 이를 부정한데 대하여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허구임에는 틀림없으나 진실보다도 심각하여 창조적』이라고 이를 긍정한 것은 여기에 연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