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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방정교회의 해방 전 한국선교에 대한 연구 = Historical studies on the eastern orthodox church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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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9904537

      • 저자
      • 발행사항

        오산 : 한신대학교 대학원, 2004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한신대학교 대학원 , 신학과 교회사 전공 , 2004. 8

      • 발행연도

        2004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235.62 판사항(4)

      • 발행국(도시)

        경기도

      • 형태사항

        89p. : 삽도 ; 26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84-89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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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정교회 신학자 세르기우스 불가코프는 "정교회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사 속에서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는 그동안 '잊혀진 절반의 그리스도'였다. 1054년 실바 칸디아의 감독인 추기경 홈베르트가 성 소피아 성당의 재단 위에 콘스탄티노플이 총대주교 미카엘 셀라리우스(Michael Cerularius)에 대한 파문교서를 올려놓음으로서 동방과 서방 사이의 분열이 일어난 이후 서방 교회의 전통 속에서 동방정교회는 점차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의 게시판에 95개조의 격문을 내걸음으로써 촉발된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 가운데 개신교에 있어서 동방정교회는 더욱 이질감을 느끼거나 혹은 미지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반대로 동방의 기독교인들은 개신교나 가톨릭을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보고 있다. 교파의 각기 다른 전통 속에서 상호 이해의 차이는 점차 커지고, 무지해져간 것이다.
      심지어는 근대 이후의 동·서방 세계 사이에 냉전이 치러지면서 주로 동유럽과 및 비잔틴 제국, 발칸 반도, 러시아 지역으로 집중적인 선교가 이루어진 동방정교회의 지역적인 특징은 서방교회 전통에 있는 교회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교회의 분포와 그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제3의 로마'인 페테르부르그가 구(舊) 소련 지역에 산재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념적인 논리에 따른 민주주의 진영은 선(善)이며, 공산주의 진영은 악(惡)으로 보는 굴절된 시각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 위에 있는 한 지체를 이단시하거나 점차 망각하는 우를 범하여 온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Regent University의 David B. Barrett가 조사하여 WERC(World Evangelistation Research Center)에서 발표한 2003년도 <세계종교별통계>를 보면 세계의 총 인구 6,278,519,000여명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2,076,629,000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정교회는 218,501,000명을 차지하여 가톨릭(1,097,1,44,000여명), 개신교(356,138,000여명)에 이어 세 번째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방정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3세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있는 영역이다.
      ◁표 삽입▷(원문을 참조하세요)
      정교회는 지역적으로도 위의 [표1]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유럽(5천만명), 러시아(1억 1천만명)외에도 아프리카(3천 2백만명), 북아메리카(6백만명), 예루살렘 및 중동지역(1천만명),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지역(6백만명), 남아메리카지역(6십만명) 등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등 통계적으로도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교회 전통 가운데 있는 교회사의 영역에서는 정교회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거나 다루어지더라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J. R. 곤잘레스의 ≪교회사≫에서도 '중세 기독교'에 대한 서술에서 한 장정도 언급되며, 윌스턴 워커(Willston Walker)의 ≪기독교회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도 일부분으로써 다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교회사를 다루는 많은 교재나 신학교의 강좌는 동방 기독교의 독특한 기여와 에토스(ethos)에 대해서는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관심뿐이었으며 심지어는 아예 생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사적 측면에서도 동방정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3세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있는 영역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교회의 장(場)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하나의 외래종교로 수용된 기독교는 대부분 크게 천주교(天主敎)와 개신교(改新敎)라는 두 갈래로 영향을 미쳐왔다고 구분하고 있다. 지반 1999년 한국에서 정교회를 수용하게 된지 10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선교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국교회사 속에서 정교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최근 들어서 동구권 및 구 소련지역과의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의 교류로 인하여 러시아와 관련한 사학계나 슬라브 학회 등에서는 아직은 초기적인 단계이지만 정교회와 관련된 역사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은 특히 주로 아관파천을 전후로 한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던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러시아를 조명하며 민족운동 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 논문은 정교회의 역사가 교회사에서 '잊혀진 절반의 그리스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회복되어져야 한다는 문제인식 속에서 과연 정교회는 한국 교회사 속에서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역사적인 관련성을 찾아갈 것이다. 또한 선교 1세기를 맞이한 정교회 한국 선교의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 것이며 특히 구한말이라는 변혁기 속에서 어떠한 과정으로 한국과 관련을 맺으며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금까지의 일반 역사가 아닌 교회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봄으로 한국 교회사 속에서도 동방정교회의 역사가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온전한 역사를 이루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번역하기

      정교회 신학자 세르기우스 불가코프는 "정교회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 신학자 세르기우스 불가코프는 "정교회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사 속에서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는 그동안 '잊혀진 절반의 그리스도'였다. 1054년 실바 칸디아의 감독인 추기경 홈베르트가 성 소피아 성당의 재단 위에 콘스탄티노플이 총대주교 미카엘 셀라리우스(Michael Cerularius)에 대한 파문교서를 올려놓음으로서 동방과 서방 사이의 분열이 일어난 이후 서방 교회의 전통 속에서 동방정교회는 점차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의 게시판에 95개조의 격문을 내걸음으로써 촉발된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열 가운데 개신교에 있어서 동방정교회는 더욱 이질감을 느끼거나 혹은 미지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반대로 동방의 기독교인들은 개신교나 가톨릭을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보고 있다. 교파의 각기 다른 전통 속에서 상호 이해의 차이는 점차 커지고, 무지해져간 것이다.
      심지어는 근대 이후의 동·서방 세계 사이에 냉전이 치러지면서 주로 동유럽과 및 비잔틴 제국, 발칸 반도, 러시아 지역으로 집중적인 선교가 이루어진 동방정교회의 지역적인 특징은 서방교회 전통에 있는 교회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교회의 분포와 그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제3의 로마'인 페테르부르그가 구(舊) 소련 지역에 산재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념적인 논리에 따른 민주주의 진영은 선(善)이며, 공산주의 진영은 악(惡)으로 보는 굴절된 시각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 위에 있는 한 지체를 이단시하거나 점차 망각하는 우를 범하여 온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Regent University의 David B. Barrett가 조사하여 WERC(World Evangelistation Research Center)에서 발표한 2003년도 <세계종교별통계>를 보면 세계의 총 인구 6,278,519,000여명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2,076,629,000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정교회는 218,501,000명을 차지하여 가톨릭(1,097,1,44,000여명), 개신교(356,138,000여명)에 이어 세 번째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방정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3세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있는 영역이다.
      ◁표 삽입▷(원문을 참조하세요)
      정교회는 지역적으로도 위의 [표1]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유럽(5천만명), 러시아(1억 1천만명)외에도 아프리카(3천 2백만명), 북아메리카(6백만명), 예루살렘 및 중동지역(1천만명),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지역(6백만명), 남아메리카지역(6십만명) 등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등 통계적으로도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교회 전통 가운데 있는 교회사의 영역에서는 정교회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거나 다루어지더라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J. R. 곤잘레스의 ≪교회사≫에서도 '중세 기독교'에 대한 서술에서 한 장정도 언급되며, 윌스턴 워커(Willston Walker)의 ≪기독교회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도 일부분으로써 다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교회사를 다루는 많은 교재나 신학교의 강좌는 동방 기독교의 독특한 기여와 에토스(ethos)에 대해서는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관심뿐이었으며 심지어는 아예 생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사적 측면에서도 동방정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1/3세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있는 영역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교회의 장(場)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하나의 외래종교로 수용된 기독교는 대부분 크게 천주교(天主敎)와 개신교(改新敎)라는 두 갈래로 영향을 미쳐왔다고 구분하고 있다. 지반 1999년 한국에서 정교회를 수용하게 된지 10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선교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국교회사 속에서 정교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최근 들어서 동구권 및 구 소련지역과의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의 교류로 인하여 러시아와 관련한 사학계나 슬라브 학회 등에서는 아직은 초기적인 단계이지만 정교회와 관련된 역사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은 특히 주로 아관파천을 전후로 한 세계 열강의 각축장이던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러시아를 조명하며 민족운동 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 논문은 정교회의 역사가 교회사에서 '잊혀진 절반의 그리스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회복되어져야 한다는 문제인식 속에서 과연 정교회는 한국 교회사 속에서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역사적인 관련성을 찾아갈 것이다. 또한 선교 1세기를 맞이한 정교회 한국 선교의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 것이며 특히 구한말이라는 변혁기 속에서 어떠한 과정으로 한국과 관련을 맺으며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지금까지의 일반 역사가 아닌 교회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봄으로 한국 교회사 속에서도 동방정교회의 역사가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온전한 역사를 이루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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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Ⅰ. 서론 = 1
      • 1. 연구의 동기와 목적 = 1
      • 2. 연구 방법과 전개 = 5
      • Ⅱ.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의 역사적 배경 = 9
      • 목차
      • Ⅰ. 서론 = 1
      • 1. 연구의 동기와 목적 = 1
      • 2. 연구 방법과 전개 = 5
      • Ⅱ.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의 역사적 배경 = 9
      • 1. 수교 이전의 한ㆍ러 관계와 정교회와의 접촉 = 9
      • 2. 러시아 이주 한인을 통한 정교회와의 접촉 = 14
      • (1) 러시아 극동지역의 한인선교 제1기(1863-1883) = 18
      • (2) 러시아 극동지역의 한인선교 제2기(1884-1916) = 19
      • Ⅲ. 한ㆍ러 수교와 서울 선교부의 설립 = 26
      • 1. 구한말 한ㆍ러 수교의 배경 = 26
      • 2. 서울 선교부 설립 결정의 배경 = 30
      • 3. 러시아 정교회의 입국 = 37
      • Ⅳ. 선교영역의 확장과 시련 = 45
      • 1. 입국 이후 선교영역 확장과 난관 (1기:1900년-1904년) = 45
      • 2. 러일전쟁 이후의 선교 재개(2기:1906년-1917년) = 60
      • (1) 국내 선교의 재개 = 60
      • (2) 민족의식 형성과 민족운동 -『대한인정교보』를 중심으로 ..65 = 65
      • 3. 일제치하에서 정교회의 박해(3기 :1917년-1945년) = 73
      • Ⅴ. 결론 = 77
      • 〈참고문헌〉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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