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오태석의 한국 전쟁 소재 희곡들인 「산수유」(1980), 「자전거」(1983), 「운상각」(1989)을 대상으로, 한국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의 치유 과정에서 형성되는 ‘무덤 찾기’ 구...
이 논문은 오태석의 한국 전쟁 소재 희곡들인 「산수유」(1980), 「자전거」(1983), 「운상각」(1989)을 대상으로, 한국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의 치유 과정에서 형성되는 ‘무덤 찾기’ 구조가 희곡의 상연 과정에서 드러내는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작가의 현실 인식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논문에서 ‘무덤 찾기’는 한국 전쟁 때 희생된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서 장례 지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오태석의 한국 전쟁 소재 희곡에서는 전쟁 때 벌어진 근친 살해와 동족 살해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외상이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러한 정신적 외상은 ‘무덤 찾기’의 과정에서 치유된다. 정신적 외상은 안전감을 형성한 상태에서, ‘기억과 애도’의 과정을 거쳐, 일상생활에 새롭게 적응하면서 치유되는데, ‘무덤 찾기’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과 애도’의 과정에 해당된다. 정신적 외상의 경험은 정상적인 인식 체계를 손상시킬 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힌 사건을 앞뒤 문맥에 맞게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물들은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고 장례 지내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처음,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면서 정신적 외상을 치유한다. 이러한 ‘무덤 찾기’는 공연을 통해 집단적인 치유 과정으로 확장되면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오태석의 한국 전쟁 소재 희곡들은 ‘위반’, ‘위기’, ‘교정’, ‘재통합’이라는 제의적인 흐름을 보이는데, ‘무덤 찾기’는 한국 전쟁이라는 ‘위반’ 때문에 발생한 정신적 외상이라는 ‘위기’를 ‘재통합’하는 ‘교정’의 단계에 해당한다. 제의적인 연극의 ‘교정’의 단계에서는 종종 희생제의가 이루어지는데, 오태석의 한국 전쟁 소재 희곡들의 ‘무덤 찾기’에서는 전쟁 당시 이미 희생된 자들을 다시금 희생시키는 제의가 진행된다. 이 희곡들에서는 전쟁 당시 희생된 인물들의 장례를 통해 살아 남은 자들의 정신적 외상이 치유되고, 가해자들의 죄가 경감되는 것이다. 관객들이 제의 공동체로서 ‘무덤 찾기’를 집단 체험하는 과정에서, 희생자인 인물들은 한국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을 제유하게 되며, ‘무덤 찾기’는 살아 남은 공동체를 위한 제의가 된다. 그러나 이 희곡들에서 ‘무덤 찾기’는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해 죽은 자들을 한 번 더 희생시키는 제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무덤 찾기’는 비명에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서 무덤과 추모비를 만들어 주는 행위이며, 과거를 현재에 되살리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무덤 찾기’는 살아 남은 자들의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 희생된 자들의 흔적을 ‘찾고’, 죽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덤을 ‘찾아 주는’ 과정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무덤 찾기’의 이러한 의미는 무대화 과정에서 넋굿의 연극적 활용을 통해 부각된다. 인물들이 희생자의 흔적을 찾고, 장례를 지내는 과정은 넋굿에서 무당이 죽은 이의 혼을 불러 들여 넋두리하게 하고, 죽음을 재체험 하도록 만드는 과정과 같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키고, 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굿놀이는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동시에, 살아 있는 자들의 공동체가 무사하기를 기원한다는 점에서 ‘무덤 찾기’의 이중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와 같은 ‘무덤 찾기’의 복합적인 의미는 오태석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오태석은 희곡들을 통해 이 나라의 역사를 상처에 상처를 거듭한 비극적인 흐름으로 묘사하여 왔지만, 이러한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상처의 치유에 대한 소망과 희생된 자들에 대한 애도의 시선을 작품 속에 담아 왔던 것이다. 한편, 각각의 작품들에서는 후반에 씌어진 것일수록 확산적인 갈등 구조가 나타나며, 비약적인 장면과 환상을 통해 ‘무덤 찾기’가 진행되는데, 이는 작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 체험의 의미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냉전 구조가 와해되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약화 되었던 1980년대 후반의 작품인 「운상각」에서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태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태석은 2004년 현재까지 한국 전쟁 소재 연극들의 공연을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문제 의식을 지속적으로 표명해 왔다. 창작 시기에 따라 작품들의 미세구조가 조금씩 차이를 나타냈던 것처럼, 공연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연출될 수 있겠지만, ‘지금’, ‘여기’에서 거듭 재연되는 ‘무덤 찾기’의 제의는 상처로 얼룩진 과거에 대한 애도 의식이며, 치유 의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