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짧아져만 가는 봄과 가을, 그만큼 길고 더워져 가는 여름 그리고 유래 없는 겨울의 폭설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가 이제 더 이상 경고로만 머무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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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2003
학위논문(석사)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 교역학전공 , 2004. 2
2003
한국어
231 판사항(4)
전북특별자치도
65p. ; 26cm .
참고문헌: p. 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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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짧아져만 가는 봄과 가을, 그만큼 길고 더워져 가는 여름 그리고 유래 없는 겨울의 폭설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가 이제 더 이상 경고로만 머무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사실 우리가 지구의 온난화 현상, 오존층 파괴, 산성비, 대기오염, 수질 및 토양오염, 열대우림의 파괴와 사막화 등의 문제들에 대하여서 벌써부터 이 시대의 선지자들로부터 많은 경고를 받아 왔지만, 사실 그러한 문제들에 우리의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에서 "잘살아 보세"라는 국가적 정서는 온 국민의 관심을 오로지 발전과 개발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하여 환경문제들에 대하여 경고하는 이들에 대하여 우리는 '잘살아 보세'를 방해하는 이상주의자들 내지는 사상적으로 불순한 자들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을 때도 있었고, 이들을 '반체제 인사'로서 처벌하는 상황 속에 살았던 적도 었었다.
그러나 이제 사회적인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점차로 우리들은 지구는 하나뿐이라는 주장이 뜻하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공해 및 환경파괴의 재앙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가져다 줄 폐해에 대해 보다 심각한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많은 집에서는 수돗물보다는 생수를 구입하여 마시고 있으며, 먹거리도 무공해·무농약 먹거리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생수를 사먹는 것과 무농약·무공해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 등은 결코 환경보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초래하는 사회적 부조리를 더욱 근본적인 영역, 즉 먹거리의 영역으로 확대시키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비싼 생수와 무농약·무공해 먹거리를 구입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조된 세계는 대상을 막론하고 전 영역에 있어서, 가지고 힘있는 자들은 더욱 편하지만 반면에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은 자신의 가진 것조차도 빼앗기게 될 위기 가운데 놓여 있으며 적지 않은 경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 7월 1일 서울시에서 시행한 청계천 복원공사는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이다.
사피로(D. Shapiro)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 근거이다. 이 세계를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의 변함없는 사랑이다'라고 했다. 그 사랑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의 공동체로 서로 유기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꿈으로 우리들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삶을 가르쳤다. 그 중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여기서 말하는 '화평', 즉 진정한 샬롬이 무엇인가? 인간들 사이의 평화만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은 창조세계 전체의 샬롬이다. 예수에게 와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예수는 가진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와서 제자가 되라고 하였다.(막 10:17-22) 예수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꿀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예수와 함께 걷기 위해서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으며, 삶의 수준을 낮출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그 부자는 슬픈 기색으로 돌아갔지만, 삭개오는 과감하게 예수의 뜻에 따랐다.(눅 19:1-10) 누가 예수와 함께 샬롬의 꿈을 꾸는 자이겠는가? 샬롬의 공동체는 크게 위대한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창조세계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그 신음소리를 줄여 나가는 길만이 샬롬의 공동체를 꿈꾸는 예수의 꿈에 동참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신음하는 창조세계의 해방과 회복을 위하여 자기중심적인 "번영과 행복"을 포기하는 진정한 믿음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를 보내셔서 이루게 하신 진정한 샬롬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고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인간의 이기적 죄로 말미암아 고통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조물의 탄식 속에서 성령의 탄식은 절망적인 환경파괴의 현실 속에서 생태학적 회복의 희망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또 다른 하나의 가난한 자이다. 성령은 항상 이처럼 가난한 자의 희망이 된다. 인간은 이 공동체 속에서 정복자와 지배자의 자세를 버리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시는 성령의 탄식을 듣고 섬기는 자의 자세로 공동체 속에서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는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우주적 구원을 교회 공동체에 먼저 받아들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의 도구로서 종말론적 세계의 이상향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진정으로 연약하고 가난한 자, 고통 속에서 탄식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속에서 자연이 연약하고 가난한 자이다. 그 분은 예나 지금이나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연약하고 가난한 자의 위로자이시다.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 가는 등불 같은 생명의 아픔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받으신다. 그러므로 창조사의 완성 안에서 생명의 회복을 위해 주님은 다시 오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인간에 의해 파괴(자멸)되어 가는 세상은 종말에 대한 하나의 표징이 된다. 그날에는 '이리가 함께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害)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다.
이는 곧 '희망의 하나님' 개념으로, 하나님이 '인간과 그의 세계가 희망하고 기다려야 할 미래의 존재'임을 나타낸다. 몰트만은 하나님 이해를 '종말론적'으로 하였는데, 하나님은 이 세계의 피안(彼岸)에 있는 초세계적 존재도 아니며 세계의 전체성을 뜻하는 대재적 존재도 아니라고 한다. 달리 말하여 그는 우리 "위에" 혹은 우리 "안에" 있는 존재라기 보다 먼저 우리 "앞에" 있는 존재이다. 그는 그렇게 미래를 존재의 내용으로 삼고 있다.(Futurum als Seinsbeschaffenheit) 그의 초월성은 공간적 초월성이 아니라 시간적 초월성, 곧 그의 미래성을 의미한다. 그가 하늘에, 즉 위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 앞에, 즉 미래에 계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스 큉(Hans Ku¨ng)도 하나님을 "종말론적으로 미래적인 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현재와 관계없는 의미에서의 미래적인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또 현재의 시간적 연장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래는 Futurum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Adventus로서의 미래를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미래로부터 우리의 현재로 오시는 존재, 그리하여 이 현재를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한 새로운 미래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이다. 달리 말하여 죄와 죽음의 세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를 창조하여 나가는 "창조의 하나님"이다.
종말론적 이상향의 완성('샬롬'의 공동체)을 향해 가제는 하나님께서 지금 연약하고 가난한 생명을 향해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 곁에서 위로하시며 말씀하심을 우리 모두는 들어야 한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사 42:2-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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