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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궁중의례의 극장공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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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9222520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中央大學校 大學院, 2003

    • 학위논문사항

      學位論文(博士) -- 中央大學校 大學院 , 演劇學科 演劇學專攻 , 2003.12

    • 발행연도

      2003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기타서명

      (The)study of theatre space in Korean court ritual

    • 형태사항

      xi, 331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포함

    • DOI식별코드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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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한국 극장예술은 고대 제천의례를 원천으로 형성되었다. 국가가 주도 한 궁중의례는 고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연행되었는데, 巫佛儒의 종교사상에 기반한 의례극장의 전통은 제의와 축제를 동시에 연행하는 독특한 극장공간의 양식을 창조하였다.
    한국 의례굿의 대상은 天神이었다. 기원전 3-4세기부터 夫餘의 迎鼓와 濊의 舞天은 신맞이를 위한 집단적 가무음복을 하였고, 馬韓의 蘇塗祭에서는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걸어놓고 天君이 제사를 주관하였는데, 제천의례의 장소는 숲과 산이었다.
    宇宙山과 宇宙木은 하늘과 땅 사이를 버티는 우주기둥으로서 천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관념에서 祭壇이 되었다. 檀君神話에서 환웅이 태백산 정상의 神檀樹를 통해 세상에 내려와 神市를 열었다는 기록은 天神과 始祖神의 유래를 神木을 통해 동일화 시키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始祖祭의 神宮제사와 山의 頂上 祭天壇에서 올리는 天神祭가 병행해서 열렸다. 2세기부터 6세기말까지 고구려는 동명왕을 모신 國東隧穴과 神宮사이에 있는 압록강과 대동강에서 동맹제를 지냈는데, 이는 日神 해모수와 水神 하백의 딸 柳花의 결혼에서 태어난 동명의 탄생신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始祖의 죽음과 탄생을 日沒, 日出의 자연 순환 현상으로 의례화한 동맹제의는 神像을 소각하고 水葬하는 水上祭儀를 연출하였으며, 日出과 함께 새로 강림한 神을 맞아 도성을 순행하는 神鸒 行像儀式을 거행하였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山은 죽어서 묻히는 곳이고 저승세계로 통하는 길로서, 祖靈들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에서는 天神을 山神化하고, 地神을 龍神化하여, 山에는 山神堂을, 해안의 숲에는 龍神堂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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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하였다. 자연신의 神靈을 인간공간으로 이동시켜서 제의와 축제를 지내는데 사용된 것은 우주목의 장치인 神竿이었다.
    神竿은 山을 대신한 神木으로서 神旗, 長竿, 鳥竿으로 세분화되었고, 마을에는 서낭, 堂山木, 立石, 造山등의 신성공간이 설치되었다. 생활공간안에 이러한 고정적인 祭場이 설치되는 한편, 궁중의례는 궁궐의 뜰과 사찰의 中庭에서 의식을 치르고, 궁궐 앞과 寺門밖의 광장에서 백성들에게 개방하는 연희를 베풀었다.
    삼국시대의 儀禮樂은 중국 南北朝와 西域의 영향을 받는 한편, 독자적으로 수준 높은 악기 개발과 연주, 가창, 무용이 병행되는 歌舞樂으로 발달되었다. 삼국은 또한 제사에 사용되는 巫官의 주술적 가무와 신성동물을 출현시키는 百戱雜伎, 驅儺舞등을 연행하였다.
    신라시대 의례굿은 임금의 龍樓나, 帝釋宮 앞에 탑모양의 樂棚露臺를 세우고 상층에서는 악기연주를, 하층에서는 가무를 연행하였으며, 感恩寺의 利見臺와도 같이 水上樓臺를 세워 왕과 巫官을 위시하여 國仙들이 의례를 집행하였다.
    통일 신라시대(668-935 A.D.)에는 산, 바다, 강물을 성역화하는 순행제사를 지내는 한편, 우주산을 상징하는 악붕노대, 舞樓 및 寺刹과 왕의 離宮에 舞亭을 짓고 神樂舞를 거행 하였다.
    고려 太祖가 개국 원년(918년)의, 팔관회에서 계승했던 신라의 龍鳳象馬車船은 神木을 꽂은 山車와 용, 봉, 코끼리의 가장놀이, 馬戱, 船遊樂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연등․팔관회의 伎樂雜戱로 발전되었다가 후에 山臺雜戱가 되었다.
    삼국시대의 의례악은 露臺, 樓臺, 舞亭, 舞樓 같은 무대에서 연행되었고,山車와 百戱雜伎는 寺門 앞 연희공간이나, 궁궐 앞 광장에서 베풀어졌으며 도성을 순행하였다.
    고려왕조는 600년 동안 연등․팔관회를 축제적 국가 의례로서 거행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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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유교식 의례악과 창우들의 재담과 가면극이 있는 산대잡희를 창출하였다. 송나라로부터 받아들인 연등․팔관회의 의식은 왕과 군신들이 교방악과 함께 술, 꽃, 차, 향 등의 예물을 교환하는 궁중의례로서, 王幄 과 의례의 참여자들이 함께 오를 수 있는 浮階를 설치하여 半室內 半野外의 극장공간을 조성하였다.
    연구자는 왕과 군신들이 교합하면서 교방악에서 제시되는 이상적 세계를 함께 구현하는 부계의 공간을 臺라고 명칭하였다. 또한 儀式의 절차와 교방악이 상호 전환하면서 진행되는 의례의 구조는 주인공의 에피소드와 가무의 코러스가 상호 전환되는 의례의 구조를 서사극 구조로 대본화 하였다.
    고려 연등회 공간의 특징은 의식공간인 臺와 마당의 잡희공간이 맞닿아 있고, 마당에 세워진 彩山에 등불이 켜져서 의례공간을 신성화 한 것이다.
    山은 교방악의 중심인물인 西王母가 살고 있는 蓬萊山(鼇山)으로서 呈才樂의 실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의 연등회는 도성 전체에 燈竿, 燈樹, 燈山을 설치하여 등석놀이를 하였고, 궁궐 문 앞과 寺門 앞에서 기악잡희가 연행되었다.
    한편 팔관회에서는 궁궐내의 毬庭에 수천 명의 군인들과 백성들로 둘러싸인 두개의 무대를 구축하였다. 하나는 王幄이 있는 神鳳門 앞에 설치된 의례공간이고, 하나는 중심에 輪燈이 있고 좌우에 높은 綵棚山이 있는 雜戱공간이다. 연구자는 이 두개의 공간을 각각 제의와 축제의 공간으로 나누고 臺와 마당의 공간이라고 명칭 하였다.
    臺에서는 교방악과 예식이 거행되었고 그 앞의 마당공간에서는 잡희가 연행되었는데, 높이 5丈의 채붕산에는 雜像 및 雜伎를 실어서 놀이가 있는 神聖莊嚴物을 조성하였다.
    궁중의례에 巫․佛․儒의 사상을 통합한 고려 왕조와는 달리, 조선왕조(1392-1897)는 性理學을 國是로 하여 禮樂의 道로 백성을 교화하는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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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잡희는 궁중의례에 들어올 수 없었고, 唐樂과 鄕樂의 교방악만이 臺와 마당공간에서 연주되었다.
    조선왕실은 國朝五禮의 朝賀 및 進宴을 위한 正殿을 건축하였다. 의례가 있을때는 王幄의 殿을 열고 공중에 채붕을 치고 넓은 臺를 지었는데,회랑과 계단을 우회하여 殿으로 올라오는 길의 공간연출을 하였다. 공간을 원형으로 回旋하거나, 좌우방향으로 진퇴하는 것은 상극의 오행을 和로 일치시키기 위한 공간연출 방법이었다.
    한편, 마당공간에서 臺의 중앙으로 들어오는 呈才의 唱詞와 무용은 하늘을 따르는 樂의 행동이었고, 進爵과 致詞로 서로 화답하는 왕과 군신들의 儀式은 땅의 道를 따르는 禮의 행동이었다.
    禮樂의 행동이 병행하는 유교식 의례는 의례용 건축이 아닌 內殿이나 대왕대비의 寢殿에서도 거행되었는데, 臺의 공간이 香安, 花安, 수주정, 또는 신성 儀物들의 배치로 인해 다원적으로 분할되어 여러 개의 행동이 병렬식으로 연출되었다.
    의례용 건축인 正殿외의 생활공간에서 의례를 행할 때는 補階, 帳幕, 簾을 사용하여 궁궐건축을 변용하였으며, 일상공간이 장치화되는 환경극장 공간을 창출하였다.
    또한 의례공간 내에는 五峰日月圖와 蓮花臺 및, 春臺玉燭의 舞臺 등, 집약적인 신성공간의 장치가 동원되었다. 의례공간의 연출에서는 신화공간의 축이 다원적으로 이동되는데 공간과 공간사이에 존재하는 길 공간이 의례의 목적을 표상하는 기능적 행동 공간이 되었다.
    조선왕조의 산대나례는 왕의 수레가 종묘에서 궁궐로 돌아올 때, 선조들의 화답을 기뻐하는 국가의 축제로서 백성들에게 베풀어진 것이었다.
    산대는 우주의 순환을 묘사한 春, 夏, 秋, 冬의 大山臺, 왕의 수레를 前導하는 曳山臺, 잡상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茶亭山臺등이 있었다. 沈香山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산으로써 왕의 환궁시 呈才樂을 이끌고 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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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는 軒架山臺이기도 했다.
    중국사신 阿克敦에 의해 그려진(1725년)《奉使圖》에 나타난바와 같이 산대 위에는 실제 인물과 인형들이 설치되었고 산을 중심한 주위의 공간에서는 호랑이, 사자, 낙타 등의 동물 가장놀이와 잡희가 놀아졌다.
    조선시대의 山臺는 삼국시대의 山車와 마찬가지로 이상세계에서 들어오는 神山의 이동장치로써 세속의 길공간을 축제 극장으로 구축하는 장엄물이었다. 또한 고구려때부터 출현한 東盟祭의 물의 수레는 신라, 고려, 조선조의 龍船이 되어 강물에 횃불을 띄우는 船遊樂의 축제로 발전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궁중의례는 산과 물을 의례의 공간으로 삼은 天神祭, 山川祭로 출발하여 산과 물이 장엄화 된 산대의 야외극장을 창조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의 正殿은 북악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御座의 뒤에도 日月 五岳圖를 배치했다. 왕이 마주보는 臺의 남쪽 끝에는 연화대가 배치되어 산과 물은 건축적 의례공간 내에서도 하늘과 땅의 공간으로 장치화 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궁중의례는 자연이 의례의 대상이 되어 자연공간 안에 祭場을 형성하였고, 중세부터는 자연이 의례의 공간적 장치 및 儀物로 발전되었다. 또한 궁궐과 사원의 건축은 의례의 공간으로서 臺, 마당, 길의 공간을 창출하였으며, 樓亭, 樓臺, 城門들도 자연공간내의 의례공간으로 축조되었다.
    한국 궁중의례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국의 극장은 자연친화적인 환경의 공간으로 지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현대극장에 山臺수레와 綵棚山, 茶亭, 龍船같은 우주의 순환을 표상화하는 극장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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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극장예술은 고대 제천의례를 원천으로 형성되었다. 국가가 주도 한 궁중의례는 고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연행되었는데, 巫佛儒의 종교사상에 기반한 의례극장의 전통은 ...

    한국 극장예술은 고대 제천의례를 원천으로 형성되었다. 국가가 주도 한 궁중의례는 고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연행되었는데, 巫佛儒의 종교사상에 기반한 의례극장의 전통은 제의와 축제를 동시에 연행하는 독특한 극장공간의 양식을 창조하였다.
    한국 의례굿의 대상은 天神이었다. 기원전 3-4세기부터 夫餘의 迎鼓와 濊의 舞天은 신맞이를 위한 집단적 가무음복을 하였고, 馬韓의 蘇塗祭에서는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걸어놓고 天君이 제사를 주관하였는데, 제천의례의 장소는 숲과 산이었다.
    宇宙山과 宇宙木은 하늘과 땅 사이를 버티는 우주기둥으로서 천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관념에서 祭壇이 되었다. 檀君神話에서 환웅이 태백산 정상의 神檀樹를 통해 세상에 내려와 神市를 열었다는 기록은 天神과 始祖神의 유래를 神木을 통해 동일화 시키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始祖祭의 神宮제사와 山의 頂上 祭天壇에서 올리는 天神祭가 병행해서 열렸다. 2세기부터 6세기말까지 고구려는 동명왕을 모신 國東隧穴과 神宮사이에 있는 압록강과 대동강에서 동맹제를 지냈는데, 이는 日神 해모수와 水神 하백의 딸 柳花의 결혼에서 태어난 동명의 탄생신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始祖의 죽음과 탄생을 日沒, 日出의 자연 순환 현상으로 의례화한 동맹제의는 神像을 소각하고 水葬하는 水上祭儀를 연출하였으며, 日出과 함께 새로 강림한 神을 맞아 도성을 순행하는 神鸒 行像儀式을 거행하였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山은 죽어서 묻히는 곳이고 저승세계로 통하는 길로서, 祖靈들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에서는 天神을 山神化하고, 地神을 龍神化하여, 山에는 山神堂을, 해안의 숲에는 龍神堂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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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하였다. 자연신의 神靈을 인간공간으로 이동시켜서 제의와 축제를 지내는데 사용된 것은 우주목의 장치인 神竿이었다.
    神竿은 山을 대신한 神木으로서 神旗, 長竿, 鳥竿으로 세분화되었고, 마을에는 서낭, 堂山木, 立石, 造山등의 신성공간이 설치되었다. 생활공간안에 이러한 고정적인 祭場이 설치되는 한편, 궁중의례는 궁궐의 뜰과 사찰의 中庭에서 의식을 치르고, 궁궐 앞과 寺門밖의 광장에서 백성들에게 개방하는 연희를 베풀었다.
    삼국시대의 儀禮樂은 중국 南北朝와 西域의 영향을 받는 한편, 독자적으로 수준 높은 악기 개발과 연주, 가창, 무용이 병행되는 歌舞樂으로 발달되었다. 삼국은 또한 제사에 사용되는 巫官의 주술적 가무와 신성동물을 출현시키는 百戱雜伎, 驅儺舞등을 연행하였다.
    신라시대 의례굿은 임금의 龍樓나, 帝釋宮 앞에 탑모양의 樂棚露臺를 세우고 상층에서는 악기연주를, 하층에서는 가무를 연행하였으며, 感恩寺의 利見臺와도 같이 水上樓臺를 세워 왕과 巫官을 위시하여 國仙들이 의례를 집행하였다.
    통일 신라시대(668-935 A.D.)에는 산, 바다, 강물을 성역화하는 순행제사를 지내는 한편, 우주산을 상징하는 악붕노대, 舞樓 및 寺刹과 왕의 離宮에 舞亭을 짓고 神樂舞를 거행 하였다.
    고려 太祖가 개국 원년(918년)의, 팔관회에서 계승했던 신라의 龍鳳象馬車船은 神木을 꽂은 山車와 용, 봉, 코끼리의 가장놀이, 馬戱, 船遊樂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연등․팔관회의 伎樂雜戱로 발전되었다가 후에 山臺雜戱가 되었다.
    삼국시대의 의례악은 露臺, 樓臺, 舞亭, 舞樓 같은 무대에서 연행되었고,山車와 百戱雜伎는 寺門 앞 연희공간이나, 궁궐 앞 광장에서 베풀어졌으며 도성을 순행하였다.
    고려왕조는 600년 동안 연등․팔관회를 축제적 국가 의례로서 거행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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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 유교식 의례악과 창우들의 재담과 가면극이 있는 산대잡희를 창출하였다. 송나라로부터 받아들인 연등․팔관회의 의식은 왕과 군신들이 교방악과 함께 술, 꽃, 차, 향 등의 예물을 교환하는 궁중의례로서, 王幄 과 의례의 참여자들이 함께 오를 수 있는 浮階를 설치하여 半室內 半野外의 극장공간을 조성하였다.
    연구자는 왕과 군신들이 교합하면서 교방악에서 제시되는 이상적 세계를 함께 구현하는 부계의 공간을 臺라고 명칭하였다. 또한 儀式의 절차와 교방악이 상호 전환하면서 진행되는 의례의 구조는 주인공의 에피소드와 가무의 코러스가 상호 전환되는 의례의 구조를 서사극 구조로 대본화 하였다.
    고려 연등회 공간의 특징은 의식공간인 臺와 마당의 잡희공간이 맞닿아 있고, 마당에 세워진 彩山에 등불이 켜져서 의례공간을 신성화 한 것이다.
    山은 교방악의 중심인물인 西王母가 살고 있는 蓬萊山(鼇山)으로서 呈才樂의 실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의 연등회는 도성 전체에 燈竿, 燈樹, 燈山을 설치하여 등석놀이를 하였고, 궁궐 문 앞과 寺門 앞에서 기악잡희가 연행되었다.
    한편 팔관회에서는 궁궐내의 毬庭에 수천 명의 군인들과 백성들로 둘러싸인 두개의 무대를 구축하였다. 하나는 王幄이 있는 神鳳門 앞에 설치된 의례공간이고, 하나는 중심에 輪燈이 있고 좌우에 높은 綵棚山이 있는 雜戱공간이다. 연구자는 이 두개의 공간을 각각 제의와 축제의 공간으로 나누고 臺와 마당의 공간이라고 명칭 하였다.
    臺에서는 교방악과 예식이 거행되었고 그 앞의 마당공간에서는 잡희가 연행되었는데, 높이 5丈의 채붕산에는 雜像 및 雜伎를 실어서 놀이가 있는 神聖莊嚴物을 조성하였다.
    궁중의례에 巫․佛․儒의 사상을 통합한 고려 왕조와는 달리, 조선왕조(1392-1897)는 性理學을 國是로 하여 禮樂의 道로 백성을 교화하는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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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잡희는 궁중의례에 들어올 수 없었고, 唐樂과 鄕樂의 교방악만이 臺와 마당공간에서 연주되었다.
    조선왕실은 國朝五禮의 朝賀 및 進宴을 위한 正殿을 건축하였다. 의례가 있을때는 王幄의 殿을 열고 공중에 채붕을 치고 넓은 臺를 지었는데,회랑과 계단을 우회하여 殿으로 올라오는 길의 공간연출을 하였다. 공간을 원형으로 回旋하거나, 좌우방향으로 진퇴하는 것은 상극의 오행을 和로 일치시키기 위한 공간연출 방법이었다.
    한편, 마당공간에서 臺의 중앙으로 들어오는 呈才의 唱詞와 무용은 하늘을 따르는 樂의 행동이었고, 進爵과 致詞로 서로 화답하는 왕과 군신들의 儀式은 땅의 道를 따르는 禮의 행동이었다.
    禮樂의 행동이 병행하는 유교식 의례는 의례용 건축이 아닌 內殿이나 대왕대비의 寢殿에서도 거행되었는데, 臺의 공간이 香安, 花安, 수주정, 또는 신성 儀物들의 배치로 인해 다원적으로 분할되어 여러 개의 행동이 병렬식으로 연출되었다.
    의례용 건축인 正殿외의 생활공간에서 의례를 행할 때는 補階, 帳幕, 簾을 사용하여 궁궐건축을 변용하였으며, 일상공간이 장치화되는 환경극장 공간을 창출하였다.
    또한 의례공간 내에는 五峰日月圖와 蓮花臺 및, 春臺玉燭의 舞臺 등, 집약적인 신성공간의 장치가 동원되었다. 의례공간의 연출에서는 신화공간의 축이 다원적으로 이동되는데 공간과 공간사이에 존재하는 길 공간이 의례의 목적을 표상하는 기능적 행동 공간이 되었다.
    조선왕조의 산대나례는 왕의 수레가 종묘에서 궁궐로 돌아올 때, 선조들의 화답을 기뻐하는 국가의 축제로서 백성들에게 베풀어진 것이었다.
    산대는 우주의 순환을 묘사한 春, 夏, 秋, 冬의 大山臺, 왕의 수레를 前導하는 曳山臺, 잡상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茶亭山臺등이 있었다. 沈香山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산으로써 왕의 환궁시 呈才樂을 이끌고 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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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는 軒架山臺이기도 했다.
    중국사신 阿克敦에 의해 그려진(1725년)《奉使圖》에 나타난바와 같이 산대 위에는 실제 인물과 인형들이 설치되었고 산을 중심한 주위의 공간에서는 호랑이, 사자, 낙타 등의 동물 가장놀이와 잡희가 놀아졌다.
    조선시대의 山臺는 삼국시대의 山車와 마찬가지로 이상세계에서 들어오는 神山의 이동장치로써 세속의 길공간을 축제 극장으로 구축하는 장엄물이었다. 또한 고구려때부터 출현한 東盟祭의 물의 수레는 신라, 고려, 조선조의 龍船이 되어 강물에 횃불을 띄우는 船遊樂의 축제로 발전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궁중의례는 산과 물을 의례의 공간으로 삼은 天神祭, 山川祭로 출발하여 산과 물이 장엄화 된 산대의 야외극장을 창조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의 正殿은 북악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御座의 뒤에도 日月 五岳圖를 배치했다. 왕이 마주보는 臺의 남쪽 끝에는 연화대가 배치되어 산과 물은 건축적 의례공간 내에서도 하늘과 땅의 공간으로 장치화 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궁중의례는 자연이 의례의 대상이 되어 자연공간 안에 祭場을 형성하였고, 중세부터는 자연이 의례의 공간적 장치 및 儀物로 발전되었다. 또한 궁궐과 사원의 건축은 의례의 공간으로서 臺, 마당, 길의 공간을 창출하였으며, 樓亭, 樓臺, 城門들도 자연공간내의 의례공간으로 축조되었다.
    한국 궁중의례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국의 극장은 자연친화적인 환경의 공간으로 지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현대극장에 山臺수레와 綵棚山, 茶亭, 龍船같은 우주의 순환을 표상화하는 극장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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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제 1장 서론 16
    • 제 1절 연구의 목적 16
    • 제 2절 기존연구의 검토 19
    • 제 3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22
    • 제 2장 자연공간의 祭場 26
    • 제 1장 서론 16
    • 제 1절 연구의 목적 16
    • 제 2절 기존연구의 검토 19
    • 제 3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22
    • 제 2장 자연공간의 祭場 26
    • 제 1절 祭儀와 자연공간 26
    • 제 2절 宇宙木의 신화 27
    • 제 3절 제단의 형성 39
    • 1) 산의 제단 39
    • 2) 물의 제단 54
    • 가) 東盟祭儀의 공간 54
    • 나) 북두칠성의 수중궁궐 67
    • 제 3장 삼국시대 가무백희의 공간 71
    • 제 1절 娛神遊人의 儀禮樂 연출 71
    • 1) 의례악의 형성배경 71
    • 2) 神人들의 가무백희와 공간연출 72
    • 3) 五伎의 연출 82
    • 4) 百獸漫衍之戱의 세계관 87
    • 제 2절 신라 토속신앙의 제례공간 95
    • 1) 신라의 제천의례 95
    • 가) 신궁의 제사 95
    • 나) 산천의 순행제사 99
    • 2) 風月道의 주술적 가무공간 15
    • 가) 國仙의 제례굿 연출과 遊娛공간 103
    • 나) 八關會와 가면무의 연출공간 117
    • 제 4장 고려시대 국가의례의 축제극장 133
    • 제 1절 燃燈會의 축제공간 133
    • 1) 禮會와 殿庭속의 彩山 133
    • 2) 연등행향과 등석놀이 144
    • 3) 연등기악의 공간 155
    • 제 2절 八關會의 축제극장 167
    • 1) 팔관회의 意義 167
    • 2) 毬庭의 야외극장 171
    • 가) 의례의 공간 171
    • 나) 총체가무악의 공간 175
    • ① 敎坊樂의 연출공간 175
    • ② 綵棚과 山臺雜劇의 공간 182
    • 제 5장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공간 193
    • 제 1절 禮樂의 공간 193
    • 1) 예악사상과 의례공간 193
    • 2) 궁중의례의 공간연출 196
    • 가) 純祖己丑明正殿外進饌의 구성과 공간연출 196
    • 나) 慈慶殿內進饌의식의 구성과 呈才의 연출 205
    • 3) 궁중의례공간의 환경극장적 특성 222
    • 가) 궁궐공간의 적용과 변용 222
    • 나) 己巳進表裏進饌의 환경극장적 특성 227
    • 제 2절 山臺의 유동성 231
    • 1) 宮中儺와 山臺의 설치 231
    • 2) 山臺의 유형과 기능 234
    • 가) 채붕과 山臺의 설치 234
    • 나) 沈香山과 軒架山臺 245
    • 3) 자연공간의 극장 255
    • 제 6장 궁중의례 극장공간의 원리 265
    • 제 1절 山의 개념과 장치의 유형 265
    • 제 2절 臺와 마당의 공간원리 272
    • 제 3절 臺와 길의 공간연출 원리 286
    • 제 7장 결론 298
    • 참고문헌 317
    • 국문초록 334
    • 영문초록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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