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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기의 희곡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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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9008732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우석대학교 대학원, 1995

      • 학위논문사항
      • 발행연도

        1995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DDC

        811.209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149p. ; 26cm.

      • 일반주기명

        부록포함 : 142-144p.
        참고문헌포함 : 145-149p.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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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해방기의 연극운동 전개양상과 더불어 대표적 희곡들을 정리함으로써 그 시기의 연극이 안고 고민했던 현실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현대 연극사에 가장 치열한 격동의 일단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특히 희곡문학에 있어서는 다소 생소했던 그 출발이 정착되어가는 시기가 바로 해방기로 볼 수 있으며 다루는 문제 역시 그 폭이 한껏 열려 있던 시점이었기에 향후 희곡문학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점은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연극은 관객의 예술이라 해도 좋을 만큼 동시대의 관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연극발전과정과는 다르게 지배층이나 상층 지식인들에 의해 보호 육성되지 않고 자생되어온 우리 연극은 상대적으로 근대의 극장구조에 맞춘 기능은 취약했을지라도 의식면에 있어서는 질긴 풀뿌리의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 연극의 형식이 그러한 우리 연극의식과 어떻게 접목되며 민족극적 전통을 지켜내느냐도 본고가 관심을 가진 문제였다. 따라서 본고의 2장 해방기의 연극계 상황은 일반적으로 좌익의 준동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어버리는 해방직후의 연극운동을 최근의 의욕적인 연구들에 힘입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소극장 운동이나 소인극 운동을 통한 연극대중화 운동이 활발했던 이 시기에 진보적 연극운동론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연극론 개진은 비록 본격적인 예술론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미약하나마 전통계승과 극형식에 관한 논의로까지 이어져 연극사에 소기의 성과를 안겼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살핀 희곡은 아홉 명의 작가가 쓴 열편의 희곡이다. 이들 작가의 희곡들이 해방기 에 발표된 희곡 전체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해방기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고가 의도하는 바 나름의 대표성은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가능하면 좌, 우익이라는 정치적이고 표피적인 구분을 떠나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극형식의 유사성을 고려했다. 그럼으로써 다양하게 분출되었던 해방기의 연극론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스럽게 좌, 우익의 편가름에 대한 무모함과 더불어 그 발단의 분석까지가 가능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에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각 장별 연구방법에 변화를 두었다. 즉 동일한 기준에 의한 분석보다도 해당 작품이 지향하는 초점에 보조를 같이 하고자 했으며 필요에 따라서 작가론적 접근이나 연극사회학적 접근을 활용했다. 물론 그 방탕에는 해방기 희곡이 현실인식이라는 연구 기본주제의 일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장의 친일파 풍자를 통한 세태비판 연구비판 연구는 무엇보다 해방기의 시급한 과제였던 친일파 처리문제를 소재로 한 희곡들로 송영의 <황혼>과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친일파에 대한 처단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강하게 주장되었다가 후에 정치적 변화를 맞아 그에 대한 언급 만으로도 반국가적 행위로 규정되는 풍조가 생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문제가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해볼 수가 있다. 더욱이 송영과 오영진은 분단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제목부터가 암시하듯 <황혼>은 해방직후 힘을 잃어가는 친일세력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러나 마냥 무기력한 그들이 아니라 기득권의 수호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짧은 단막극임에도 해방직후의 현실적 갈등이 이사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생동감있게 전달된다. 반면에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친일파의 행동을 소재로 취해 이를 풍자한 작품이지만 해방기 사회속에서의 친일파에 대한 전면적인 풍자라기보다는 이중생이라는 인물의 희극적 성격에 더 많은 극적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전적 해학이 현대적 감각으로 수용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거짓죽음이라는 민담의 모티브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두 작품에는 친일세력이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미군정과의 유대를 집요하게 갈망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뒤에 현실화된 역사를 생각할 때 시사할만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진다. 4장에서는 해방기의 이념극을 대표할만한 작품들을 검토했다. 그 어느 시기보다 이념적 논란과 그 쟁취를 위한 투쟁이 활발했기에 그 경중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이 시기의 대부분 작품이 이념극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이념극, 즉 이념의 구현을 위해 연극을 주도했던 진보적 연극운동 세력이 조직적인 노력을 경주했던 연극대중화운동의 결실인 현장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신고송의 <서울갔든 아버지>, 해방직후 혼돈된 상황에서 역사적 전망과 인물의 전형성을 요구하는 소설의 현실응전력보다 연극의 극작적인 힘을 더 믿었던 이기영의 <닭싸움>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수 있었다. 또 이 작품들은 노동현장의 단결력 강화와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 선동하는 현장극과 사회변혁의 당위성과 그 실천을 계몽하는 농촌극이라는 각각의 특성도 갖추고 있다. 이 이념극들은 작품내에 갈등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독자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지 않다. 관중들 앞에서 공연될 때 비로소 갈등구조가 확인되고 완결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갔든 아버지>의 경우 등장인물들 사이에 사소한 갈등의 양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한 축으로 몰려 있고 언급되는 갈등은 등장인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자체가 갈등에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고 또다른 하나는 작품 바깥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닭싸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닭싸움>에서 보여주는 갈등의 양상은 작품이 의도하는 주제와 궁극적으로 일치하지않는다. 또 그 갈등 자체가 극 안에서 완결되는 모습이 아니다. 그 갈등은 관객들에게 판단을 요구하고 작가가 꿈꾸는 방향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양상은 작가의 역량 부족에서 출발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갈등이 약한 대신 공연자와 관람자의 정서 일치를 우선에 두는 강한 목적성이 만들어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5장에서 검토한 대표적 3.1운동 소재 희곡들은 해방기 극작가들의 역사의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해방기의 이른바 좌, 우익 작가간의 현실인식 차이까지 그 폭을 넓혀 이해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서 살펴본 세 작품은 소재의 접근방법이나 형상화 방법에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면서, 3.1운동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민족적 기상을 높였던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 시각을 보이만, 작가 나름대로의 미묘한 세계관의 차이를 표출해내기 때문이다. 유치진의 <조국>의 경우, 작가 특유의 극적 통일성과 뚜렷한 사건 진행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그 갈등의 핵심이 민족적 과제보다 개인적 번민에 놓여있음으로 해서 3.1운동을 역사적 안목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작가의 식민지 시대를 변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한편 함세덕의 <기미년 3월 1일>은 5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희곡으로 역사를 담겠다는 작가의 의욕이 충분히 느껴질 만큼 다양하고 열린 구조로 3.1운동의 전개과정을 극화시켰다. 그러나 갈등의 핵을 정확히 포착하여 폭넓게 바라보려는 적극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사건전개가 산만하고 극적 긴장이 느슨해지는 약점을 보인다. 김남천의 <3.1운동>은 조선 민중과 일제라는 양극의 대결도구가 명쾌하게 설정되어 있는 작품으로 다분히 비극적인 결말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패배적이거나 나약한 좌절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힘으로 전환시키는 강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개성있고 다양한 인물설정이 극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결론 하나는 <조국>에서의 엘리트 청년의 개인적 고뇌, <기미년 3월 1일>에서의 순수한 소녀의 투쟁 의지, <3.1 운동>에서의 꿈꾸는 민중의 힘이 세 작가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기의 대부분 연극들이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띤 반면에 6장에서 다룬 <유민기>나 <혈맥>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보았다. 특히 <유민가>는 해방전 일본에서 망국의 한을 곱씹으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설움이 탁월하게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시기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으며, <혈맥>의 경우에는 해방직후 서울 근교에 사는 빈민들의 희노애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사회적 과제 속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들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사회적 과제 속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들의 삶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 두 작품은 자연주의에 가까운 사실적 묘사에 힘쓰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 등장인물들의 상황설정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해방전후의 기층민중들의 삶을 따뜻하게 포용하고자 하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유인가>나 <혈맥>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고통과 좌절속에서 살아간다. 그 고통과 좌절의 현실적 원인은 가난이다. 물론 <유민가>에서 식민지 민족이라든가 <혈맥>에서 정부수립의 난망등 근원적 문제가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이들 눈 앞의 삶을 생각해볼 때 너무 멀리 있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의 위안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그만큼 생존 자체가 훨씬 절막한 문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에게 조국해방이나 정부수립은 관념적인 구호나 다름없다. 김동식이나 김영수는 바로 그 사람들을 무대로 끌어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찢기는 대다수 민중의 모습이 바로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의식이 일치되고 있지는 않다. <유민가>의 경우 조국의 해방이라는 꿈이 어느 정도 작품에 희망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반면에 그 숙원이 이루어진 <혈맥>에서는 더 이상 희망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 민족 최대의 숙원은 성취되었지만 이제 개개인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눈 앞에 던져졌을 뿐 장미빛 희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같은 두 작품의 현실이 해방전후를 살았던 민중들의 보편적 의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7장에서는 해방기의 사회를 한 마을에 서있는 나무 하나의 운명으로 상징시켜 형상화한 함세덕의 <고목>을 살펴보았다. 함세덕은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된 이후 가장 주목받은 작가로 일제 말기와 해방기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기 한복판을 살면서 당시 혼란했던 상황과 그 안에서 고민해야 했던 지식인의 사상적 흐름을 온전히 삶으로써 보여준 해방기의 대표적 작가다. 그는 해방기 연극계에 지도적인 목소리를 내었던 조선연극동맹의 부위원장을 맡는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월북, 6.25가 나자 다시 월남하던 중 사망, 민족의 비극과 그 운명을 함께 했다. <고목>은 그가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으로 전형적인 인물의 제시와 다양한 갈등을 통해 당시 정치인들과 친일세력들의 기득권 유지 다툼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고목>에서 늙은 행자나무는 수백년 동안 지속된 이땅의 봉건체제이며, 또한 친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방이 되자 각자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라 이 고목을 베어 사용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고목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베어지는 방법과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수반된다.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와 같은 이 갈등들은 해방기 사회가 축소된 모형이다. 결국 행자나무는 베어져 가난한 수재민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으로 결말나지만 마치 송영의 <황혼>이 그러하듯 친일인사는 결코 무릎꿇지 않는다. 함세덕은 자신의 이상과 해방기 현실 사이의 괴리를 함축적으로 <고목>에 담아놓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해방기의 희곡을 검토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해방기 연극이 이념적 투쟁 속에 퇴보했다거나 공백기였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해방기의 연극은 격변하는 주변 상황을 즉각 반영해냈으며 사회적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그 창작 방법이나 의식도 다양한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을 한시대의 문화적 척도로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동시대인의 의식이 투영된 예술품으로 봤을 때, 그 기록문학으로서 희곡 역시 그 시대의 가장 충실한 기록일 수 있다. 해방기의 희곡들은 그 어느 시기 못지않게 이러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던 것이다. 물론 해방기의 연극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천편일률적인 주입식 사상극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예술적 작업이 되지 못한 시기라는 반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이 성립하려면 해방기 이전의 연극과 그 이후의 연극에 비해 해방기 연극이 어떤 측면에서 부족함을 갖고 있는지를 예시하고 확고한 예술론에 입각해서 논증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기 연극이 강한 이념적 경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의 연극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징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민족의 숙원과 민중의 요구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연극의 예술성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해방기 연극의 대중화운동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이차 적 결론을 유도해낼 수있다. 진보적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 대중화운동은 진보적 예술론과 함께 연극행위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해방기의 대중화운동은 단순한 연극의 대중화운동을 넘어서 혁명의식 고취를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 이용되었다는 데에서 그 순수성이 삭감될 여지가 많으나, 민속극의 근대화가 좌절되고 신파극, 혹은 신극의 이름으로 무기력하고 나약하게 민중의식이 왜곡되면서 점차로 민중의 삶과 유리되는 양상을 회복하는 계기로 극형식에 관한 고민의 터를 제공해 민속극의 생성과 전승에 관한 언급을 비롯, 전통극들을 연극사 논의의 주역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향유하고 전승해운 중심세력으로 민중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극사관을 정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조차도 서구연극이 마련한 연극적 틀을 벗어나는 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연극이 갖는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관한 인식은 제고되었지만 방법론에 집중되었던 대중화운동은 본격적인 예술론을 꽃피워내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해방기의 '연극'은 '민족'을 만나 민족극으로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지만 '민족적 연극'의 원형을 탐색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연극이라는 예술의 연행담당자가 전면 교체된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극 연행자들은 연극사에서 소외되어버린 심각한 단절의 역사는 그만큼 그 골도 깊었던 것이다. 해방기의 연극 연구에 있어 또하나의 연극 연구에 있어 또한 분명히 언급되어야할 문제는 이른바 좌·우익으로 구분지어 논의되는 풍토가 보편화되어 있음으로써 연구자가 편의주의에 빠질 여지를 다분히 제공한다는 점이다. 해방기의 작가들은 이념적 성향과는 관계없이 그 관심 영역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이념적 계열로 분류되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작품세계에 있어 폭넓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좌·우익적 구획은 작가 개개인의 독창적 예술성에 관한 평가를 놓치게 하고 단편적인 이념적 재단에 익숙하게 하는 문제점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작가가 가졌던 이념에 관한 이해는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념적 기준을 준비한 채로 그 작가의 작품을 재단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연구의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해방기는 우리 민족에게 외세와 분단이라는 과제를 남겼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기는 아직 끝나지 안고 있다. 연극사나 희곡문학사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방기의 올바른 이해와 평가가 해방기를 마감하는 일일 것이며, 그것은 또 우리 시대의 분단연극사, 분단문학사를 극복할 민족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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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해방기의 연극운동 전개양상과 더불어 대표적 희곡들을 정리함으로써 그 시기의 연극이 안고 고민했던 현실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현대 연극사에 가장 치열한 격동의 ...

      본고는 해방기의 연극운동 전개양상과 더불어 대표적 희곡들을 정리함으로써 그 시기의 연극이 안고 고민했던 현실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현대 연극사에 가장 치열한 격동의 일단을 이해해보고자 했다. 특히 희곡문학에 있어서는 다소 생소했던 그 출발이 정착되어가는 시기가 바로 해방기로 볼 수 있으며 다루는 문제 역시 그 폭이 한껏 열려 있던 시점이었기에 향후 희곡문학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점은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연극은 관객의 예술이라 해도 좋을 만큼 동시대의 관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연극발전과정과는 다르게 지배층이나 상층 지식인들에 의해 보호 육성되지 않고 자생되어온 우리 연극은 상대적으로 근대의 극장구조에 맞춘 기능은 취약했을지라도 의식면에 있어서는 질긴 풀뿌리의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 연극의 형식이 그러한 우리 연극의식과 어떻게 접목되며 민족극적 전통을 지켜내느냐도 본고가 관심을 가진 문제였다. 따라서 본고의 2장 해방기의 연극계 상황은 일반적으로 좌익의 준동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되어버리는 해방직후의 연극운동을 최근의 의욕적인 연구들에 힘입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소극장 운동이나 소인극 운동을 통한 연극대중화 운동이 활발했던 이 시기에 진보적 연극운동론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연극론 개진은 비록 본격적인 예술론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을지라도 미약하나마 전통계승과 극형식에 관한 논의로까지 이어져 연극사에 소기의 성과를 안겼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살핀 희곡은 아홉 명의 작가가 쓴 열편의 희곡이다. 이들 작가의 희곡들이 해방기 에 발표된 희곡 전체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해방기 현실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고가 의도하는 바 나름의 대표성은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가능하면 좌, 우익이라는 정치적이고 표피적인 구분을 떠나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극형식의 유사성을 고려했다. 그럼으로써 다양하게 분출되었던 해방기의 연극론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스럽게 좌, 우익의 편가름에 대한 무모함과 더불어 그 발단의 분석까지가 가능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에 보다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각 장별 연구방법에 변화를 두었다. 즉 동일한 기준에 의한 분석보다도 해당 작품이 지향하는 초점에 보조를 같이 하고자 했으며 필요에 따라서 작가론적 접근이나 연극사회학적 접근을 활용했다. 물론 그 방탕에는 해방기 희곡이 현실인식이라는 연구 기본주제의 일관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장의 친일파 풍자를 통한 세태비판 연구비판 연구는 무엇보다 해방기의 시급한 과제였던 친일파 처리문제를 소재로 한 희곡들로 송영의 <황혼>과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당시 친일파에 대한 처단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강하게 주장되었다가 후에 정치적 변화를 맞아 그에 대한 언급 만으로도 반국가적 행위로 규정되는 풍조가 생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문제가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해볼 수가 있다. 더욱이 송영과 오영진은 분단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제목부터가 암시하듯 <황혼>은 해방직후 힘을 잃어가는 친일세력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러나 마냥 무기력한 그들이 아니라 기득권의 수호를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짧은 단막극임에도 해방직후의 현실적 갈등이 이사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생동감있게 전달된다. 반면에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친일파의 행동을 소재로 취해 이를 풍자한 작품이지만 해방기 사회속에서의 친일파에 대한 전면적인 풍자라기보다는 이중생이라는 인물의 희극적 성격에 더 많은 극적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고전적 해학이 현대적 감각으로 수용된 <살아있는 이중생각하>는 거짓죽음이라는 민담의 모티브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두 작품에는 친일세력이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미군정과의 유대를 집요하게 갈망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뒤에 현실화된 역사를 생각할 때 시사할만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진다. 4장에서는 해방기의 이념극을 대표할만한 작품들을 검토했다. 그 어느 시기보다 이념적 논란과 그 쟁취를 위한 투쟁이 활발했기에 그 경중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이 시기의 대부분 작품이 이념극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이념극, 즉 이념의 구현을 위해 연극을 주도했던 진보적 연극운동 세력이 조직적인 노력을 경주했던 연극대중화운동의 결실인 현장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신고송의 <서울갔든 아버지>, 해방직후 혼돈된 상황에서 역사적 전망과 인물의 전형성을 요구하는 소설의 현실응전력보다 연극의 극작적인 힘을 더 믿었던 이기영의 <닭싸움>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수 있었다. 또 이 작품들은 노동현장의 단결력 강화와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 선동하는 현장극과 사회변혁의 당위성과 그 실천을 계몽하는 농촌극이라는 각각의 특성도 갖추고 있다. 이 이념극들은 작품내에 갈등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독자적인 완결성을 갖고 있지 않다. 관중들 앞에서 공연될 때 비로소 갈등구조가 확인되고 완결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갔든 아버지>의 경우 등장인물들 사이에 사소한 갈등의 양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한 축으로 몰려 있고 언급되는 갈등은 등장인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자체가 갈등에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고 또다른 하나는 작품 바깥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닭싸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닭싸움>에서 보여주는 갈등의 양상은 작품이 의도하는 주제와 궁극적으로 일치하지않는다. 또 그 갈등 자체가 극 안에서 완결되는 모습이 아니다. 그 갈등은 관객들에게 판단을 요구하고 작가가 꿈꾸는 방향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양상은 작가의 역량 부족에서 출발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갈등이 약한 대신 공연자와 관람자의 정서 일치를 우선에 두는 강한 목적성이 만들어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5장에서 검토한 대표적 3.1운동 소재 희곡들은 해방기 극작가들의 역사의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해방기의 이른바 좌, 우익 작가간의 현실인식 차이까지 그 폭을 넓혀 이해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서 살펴본 세 작품은 소재의 접근방법이나 형상화 방법에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면서, 3.1운동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민족적 기상을 높였던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공통된 시각을 보이만, 작가 나름대로의 미묘한 세계관의 차이를 표출해내기 때문이다. 유치진의 <조국>의 경우, 작가 특유의 극적 통일성과 뚜렷한 사건 진행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그 갈등의 핵심이 민족적 과제보다 개인적 번민에 놓여있음으로 해서 3.1운동을 역사적 안목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작가의 식민지 시대를 변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한편 함세덕의 <기미년 3월 1일>은 5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희곡으로 역사를 담겠다는 작가의 의욕이 충분히 느껴질 만큼 다양하고 열린 구조로 3.1운동의 전개과정을 극화시켰다. 그러나 갈등의 핵을 정확히 포착하여 폭넓게 바라보려는 적극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사건전개가 산만하고 극적 긴장이 느슨해지는 약점을 보인다. 김남천의 <3.1운동>은 조선 민중과 일제라는 양극의 대결도구가 명쾌하게 설정되어 있는 작품으로 다분히 비극적인 결말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패배적이거나 나약한 좌절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힘으로 전환시키는 강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개성있고 다양한 인물설정이 극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결론 하나는 <조국>에서의 엘리트 청년의 개인적 고뇌, <기미년 3월 1일>에서의 순수한 소녀의 투쟁 의지, <3.1 운동>에서의 꿈꾸는 민중의 힘이 세 작가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기의 대부분 연극들이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띤 반면에 6장에서 다룬 <유민기>나 <혈맥>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보았다. 특히 <유민가>는 해방전 일본에서 망국의 한을 곱씹으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설움이 탁월하게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그 시기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으며, <혈맥>의 경우에는 해방직후 서울 근교에 사는 빈민들의 희노애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사회적 과제 속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들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사회적 과제 속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빈민들의 삶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의의가 있다. 이 두 작품은 자연주의에 가까운 사실적 묘사에 힘쓰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 등장인물들의 상황설정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해방전후의 기층민중들의 삶을 따뜻하게 포용하고자 하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유인가>나 <혈맥>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고통과 좌절속에서 살아간다. 그 고통과 좌절의 현실적 원인은 가난이다. 물론 <유민가>에서 식민지 민족이라든가 <혈맥>에서 정부수립의 난망등 근원적 문제가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이들 눈 앞의 삶을 생각해볼 때 너무 멀리 있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의 위안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그만큼 생존 자체가 훨씬 절막한 문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에게 조국해방이나 정부수립은 관념적인 구호나 다름없다. 김동식이나 김영수는 바로 그 사람들을 무대로 끌어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정치적 회오리 속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찢기는 대다수 민중의 모습이 바로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의식이 일치되고 있지는 않다. <유민가>의 경우 조국의 해방이라는 꿈이 어느 정도 작품에 희망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반면에 그 숙원이 이루어진 <혈맥>에서는 더 이상 희망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 민족 최대의 숙원은 성취되었지만 이제 개개인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눈 앞에 던져졌을 뿐 장미빛 희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같은 두 작품의 현실이 해방전후를 살았던 민중들의 보편적 의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7장에서는 해방기의 사회를 한 마을에 서있는 나무 하나의 운명으로 상징시켜 형상화한 함세덕의 <고목>을 살펴보았다. 함세덕은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된 이후 가장 주목받은 작가로 일제 말기와 해방기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기 한복판을 살면서 당시 혼란했던 상황과 그 안에서 고민해야 했던 지식인의 사상적 흐름을 온전히 삶으로써 보여준 해방기의 대표적 작가다. 그는 해방기 연극계에 지도적인 목소리를 내었던 조선연극동맹의 부위원장을 맡는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월북, 6.25가 나자 다시 월남하던 중 사망, 민족의 비극과 그 운명을 함께 했다. <고목>은 그가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으로 전형적인 인물의 제시와 다양한 갈등을 통해 당시 정치인들과 친일세력들의 기득권 유지 다툼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고목>에서 늙은 행자나무는 수백년 동안 지속된 이땅의 봉건체제이며, 또한 친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방이 되자 각자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라 이 고목을 베어 사용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고목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베어지는 방법과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수반된다.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와 같은 이 갈등들은 해방기 사회가 축소된 모형이다. 결국 행자나무는 베어져 가난한 수재민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으로 결말나지만 마치 송영의 <황혼>이 그러하듯 친일인사는 결코 무릎꿇지 않는다. 함세덕은 자신의 이상과 해방기 현실 사이의 괴리를 함축적으로 <고목>에 담아놓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해방기의 희곡을 검토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해방기 연극이 이념적 투쟁 속에 퇴보했다거나 공백기였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해방기의 연극은 격변하는 주변 상황을 즉각 반영해냈으며 사회적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또한 그 창작 방법이나 의식도 다양한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을 한시대의 문화적 척도로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동시대인의 의식이 투영된 예술품으로 봤을 때, 그 기록문학으로서 희곡 역시 그 시대의 가장 충실한 기록일 수 있다. 해방기의 희곡들은 그 어느 시기 못지않게 이러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던 것이다. 물론 해방기의 연극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천편일률적인 주입식 사상극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예술적 작업이 되지 못한 시기라는 반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이 성립하려면 해방기 이전의 연극과 그 이후의 연극에 비해 해방기 연극이 어떤 측면에서 부족함을 갖고 있는지를 예시하고 확고한 예술론에 입각해서 논증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기 연극이 강한 이념적 경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의 연극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징후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민족의 숙원과 민중의 요구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연극의 예술성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이런 측면에서 해방기 연극의 대중화운동은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이차 적 결론을 유도해낼 수있다. 진보적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한 이 대중화운동은 진보적 예술론과 함께 연극행위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해방기의 대중화운동은 단순한 연극의 대중화운동을 넘어서 혁명의식 고취를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 이용되었다는 데에서 그 순수성이 삭감될 여지가 많으나, 민속극의 근대화가 좌절되고 신파극, 혹은 신극의 이름으로 무기력하고 나약하게 민중의식이 왜곡되면서 점차로 민중의 삶과 유리되는 양상을 회복하는 계기로 극형식에 관한 고민의 터를 제공해 민속극의 생성과 전승에 관한 언급을 비롯, 전통극들을 연극사 논의의 주역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향유하고 전승해운 중심세력으로 민중의 역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극사관을 정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조차도 서구연극이 마련한 연극적 틀을 벗어나는 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연극이 갖는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관한 인식은 제고되었지만 방법론에 집중되었던 대중화운동은 본격적인 예술론을 꽃피워내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해방기의 '연극'은 '민족'을 만나 민족극으로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지만 '민족적 연극'의 원형을 탐색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연극이라는 예술의 연행담당자가 전면 교체된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극 연행자들은 연극사에서 소외되어버린 심각한 단절의 역사는 그만큼 그 골도 깊었던 것이다. 해방기의 연극 연구에 있어 또하나의 연극 연구에 있어 또한 분명히 언급되어야할 문제는 이른바 좌·우익으로 구분지어 논의되는 풍토가 보편화되어 있음으로써 연구자가 편의주의에 빠질 여지를 다분히 제공한다는 점이다. 해방기의 작가들은 이념적 성향과는 관계없이 그 관심 영역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이념적 계열로 분류되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작품세계에 있어 폭넓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좌·우익적 구획은 작가 개개인의 독창적 예술성에 관한 평가를 놓치게 하고 단편적인 이념적 재단에 익숙하게 하는 문제점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작가가 가졌던 이념에 관한 이해는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념적 기준을 준비한 채로 그 작가의 작품을 재단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연구의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해방기는 우리 민족에게 외세와 분단이라는 과제를 남겼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기는 아직 끝나지 안고 있다. 연극사나 희곡문학사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방기의 올바른 이해와 평가가 해방기를 마감하는 일일 것이며, 그것은 또 우리 시대의 분단연극사, 분단문학사를 극복할 민족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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