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은 한국현대연극사에서 전승연희 양식을 수용하여, 현대적인 공연 양식으로 계승·발전시킨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전승연희를 과거의 고루한 가치를 지닌 연행물로 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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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02
2002
한국어
810.906 판사항(4)
서울
157p. : 삽도 ; 26cm.
참고문헌: p. 15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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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오태석은 한국현대연극사에서 전승연희 양식을 수용하여, 현대적인 공연 양식으로 계승·발전시킨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전승연희를 과거의 고루한 가치를 지닌 연행물로 보지 ...
오태석은 한국현대연극사에서 전승연희 양식을 수용하여, 현대적인 공연 양식으로 계승·발전시킨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전승연희를 과거의 고루한 가치를 지닌 연행물로 보지 않고, 새로운 공연양식의 모색과 실험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했던 것이다. 또한 오태석이 수행했던 작업은 한국연극사의 기점을 단순하게 외래의 연극양식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개화기 즈음으로 설정했던 시각에 대해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결국 오태석이 전승연희 양식를 수용하여 다양한 희곡 텍스트를 만들어낸 작업은 연극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가 산출해낸 희곡 텍스트들은 단순히 전승연희의 소재·극형식을 차용하거나 고전적 세계관을 답습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 극적 원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는 오태석의 희곡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전승연희 양식의 수용 양상과 새로운 극양식 수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본론에서 오태석 희곡에 나타난 전승연희 양식을 '굿과 제의 양식', '민속극 양식', '판소리 양식'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Ⅱ. 굿과 제의 양식의 수용」에서는 <물보라>와 <백마강 달밤에>를 분석 대상 텍스트로 선정하여 살펴보았다. <물보라>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거행되는 '풍어제(豊漁祭)'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풍어제의 여러 제의절차 중에서 망자(亡者)를 위한 의례인 '사령(死靈)굿'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씻김굿의 '고풀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갈등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물보라>에서 원용하고 있는 굿은 은폐되어 있던 진실이나 욕망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이러한 장치로서 활용된 굿은 일상적인 굿의 메카니즘과 다른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즉 모든 문제의 상황이 종결되는 해원(解寃)의 결말로 끝나지 않고, 갈등의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는 미완의 결말로 끝나고 있다. 문제의 상황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순환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강하게 제시되어 있다. 오태석은 굿이 거행되는 마을 자체를 혼돈된 세계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그 어두운 세계 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들을 하나씩 들추어낸다. <물보라>의 세계 속에는 근원적인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일시적인 해결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고, 문제는 영원히 세계 속에 잠재되어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백마강 달밤에>는 마을굿인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를 원용하고 있다. 형식적인 제의 절차는 은산별신제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실질적인 제의 내용은 '서사무가 바리공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완전히 거친 순단이가 진정한 무당으로 재탄생하는 통과제의(通過祭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가장 중심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무속적 원리는 망자(亡者)와 생자(生者), 과거와 현재, 저승과 이승, 꿈과 현실, 거짓과 진실, 집단과 개인, 선(善)과 악(惡)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오태석이 지향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모든 가능성이 공존할 수 있는 열려있는 세계이다. 굿의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공존공생의 양상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결국 절대성이나 확실성이라는 가치가 무의미해지는 굿판에서는 충(忠)의 논리도 상대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굿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갈등상황이 완전히 해소된 화해로운 결말을 이끌어 낸다. 너무 일방적이고 급격하게 제시된 화해로운 세계는 성급하고 낙관적인 해결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도저히 해소될 수 없는 현실의 갈등을 무속적 상상력이라는 초월적 해결방식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이 강하게 나타난 대목이다.
「Ⅲ. 민속극 양식의 수용」에서는 <쇠뚝이놀이>, <春風의 妻>, <이식수술>, <약장사>를 분석 대상 텍스트로 선정하여 살펴보았다. <쇠뚝이놀이>는 몰리에르의 희곡 <스카펭의 간계>를 번안한 작품이다. 서사구조와 인물형은 몰리에르의 텍스트를 원용하고 있지만, 인물들이 구사하는 대사와 행동양상은 탈놀이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였다. 저항적인 하인형 인물로 쇠뚝이와 말뚝이를 내세워 상스러운 비속어(卑俗語)와 외설스러운 육담(肉談)으로 일상적인 주종관계의 파괴와 전복을 통하여 유희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탈놀이의 핵심적인 극전개 방식인 '싸움의 원리'를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대결 양상 자체를 즐기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시켜 나간다. 결국 싸움의 결말도 웃고 즐기고 춤추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것은 갈등이 난무하는 세계속에서도 화해로운 결말을 희구하는 작가의 희망이 강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공연적인 측면에서는 탈놀이의 극적 원리인 인물들의 등퇴장 방식과 시공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적극적으로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적용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정된 탈놀이의 인물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혼돈, 기존의 탈놀이·판소리·고전에서 발췌한 난해한 대사의 전달 문제, 탈놀이의 반복적인 연행형식을 배제하고 간단한 대사만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에서 오는 난해함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초기 작품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오태석의 공연사적 측면에서 보면 전승연희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깨닫는 계기가 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春風의 妻>는 고소설 <李春風傳>의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탈놀이·꼭두각시놀음·민속놀이·설화·판소리·고대가요 등의 다양한 전승연희들을 수용하여 흥겨운 한 바탕의 마당놀이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놀이의 결말은 낙관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었던 <李春風傳>의 결말과 달리, 탈놀이의 미얄영감과장을 차용하여 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고 있다. 이러한 결말에서 원텍스트에 대한 전복과 새로운 해석의 시도하고 있다.
또한, <春風의 妻>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마당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한판의 놀이처럼 연행된다. 이 놀이의 극적 원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성이며, 이 속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도 무의미해진다. 고정되어 있는 기존의 체계나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텍스트 속의 세계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즉 자유로운 즉흥성과 통제되지 않는 듯한 무질서와 변덕이 극의 전반적인 지배 원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가벼운 듯한 놀이성의 이면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깔려 있다. 이것은 결말에서 제시되는 비극적 세계관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편, 놀이성이라는 극적 원리는 장면의 단순한 나열식 전개라는 한계성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나열은 다양한 갈등의 양상을 폭넓게 보여주는 장점은 있으나, 갈등의 구체적인 제시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전승연희를 수용한 오태석의 희곡에서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인형극 양식을 수용한 텍스트로는 <이식수술>을 살펴보았고, 광대재담극 양식을 수용한 텍스트로는 <약장사>를 살펴보았다. <이식수술>은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을 원용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공중무대'가 설치되고, 대잡이 역할을 하는 홍동지와 산받이의 역할을 하는 조카가 등장한다. 꼭두각시놀음의 홍동지와 같이 원초적인 인물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행동방식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식수술>의 홍동지는 세속적인 이목에 민감하고, 스스로가 규정한 사회적 제약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홍동지와 조카의 재담은 꼭두각시놀음의 대잡이와 산받이의 공연원리를 원용하고 있다.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는 현장성과 즉흥성을 동원하여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홍동지와 조카의 대화는 끊임없이 주고 받는 말의 나열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관객들에게조차 그 의미는 전달되지 않는다.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유언조차도 의미가 왜곡되고 조작된다. 이러한 언어의 유희 속에서 작가 오태석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의사소통의 부재이다. 범람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지만 현대인들은 완전히 차단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을 오태석은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약장사>는 골계적인 광대재담극을 원용하고 있다. 전문예능인인 광대가 등장하여 다양한 언술과 극적인 동작, 노래 등을 섞어서 복합적으로 연행하는 방식이 바로 광대재담극이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어리석은 자가 발화하는 방식을 취하여 다양한 골계적 모티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오태석은 골계 재담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적인 육담(肉談)의 화소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작가의 자기검열 의지가 작동하여, 의도적으로 적나라한 표현은 억제하면서 적절한 표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약장사>에서는 전통적인 놀이마당의 공간성을 이용하여,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울려 놀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놀이판의 참여자가 갖추어야할 일체감이나 능동성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광대의 언술 자체가 요설과 같은 발화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 특유의 무의식이 자주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너무 일방적인 발화가 자주 튀어나와 관객들과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성도 가지고 있다.
「Ⅳ. 판소리 양식의 수용」에서는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 가>와 <기생비생 춘향전>을 분석 대상 텍스트로 선정하여 살펴보았다. 판소리양식의 수용양상은 전통적인 음악극 양식을 수용하기보다는 서사구조에 집중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이 주로 이루어졌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서는 원텍스트인 <심청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기존의 서사구조를 완전히 해체하여 새롭고 현대적인 텍스트로 재구성하였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용왕과 함께 현대를 여행하는 이야기로 패러디되어 있다. 중심적인 인물로 심청이, 용왕, 세명이 등장한다. 용왕은 원텍스트의 용왕과 달리 폭압적인 권력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 끊임없이 세속적인 탐욕을 드러내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세명은 현대판 심청이로서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의 무게에 억눌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물이다. 원텍스트의 인물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심청이다. 심청이는 우리 공동체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순수성으로 대표되는 인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심청이의 등장은 과거와 다른 현대의 냉혹함과 부조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한 개인의 순수성으로 세계를 바꿀 수 없으며, 심청이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 수밖에 없다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또한 오태석은 원텍스트인 <심청가>에서 '현실의 원리'가 강조되는 앞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텍스트 속의 극적 질서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의 세계 속에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이것은 오태석이 살고 있는 현대라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심청이와 같은 순수한 인물들이 끊임없이 희생양으로 바쳐지지만 견고한 현실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고 유지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원텍스트 속의 심청이는 희생양으로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의 심청이는 아무런 의미조차 가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이며,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기생비생 춘향전>은 <南原古詞>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춘향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오태석은 아름답고 정숙한 기존의 춘향이와 완전히 다른, 어리고 철없는 기생 춘향이를 새롭게 창조해 내었다. 춘향이의 신분 자체를 기생으로 확정지어 놓고 이야기를 출발하고 있으며, 발칙한 상상력으로 육체적 순결까지 훼손당한 여자로 바꾸어 놓았다.
오태석은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도령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시련을 감내하며, 자발적으로 정절을 지키고자 노력한 춘향이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새롭게 해석하였다. 또한, 시련과 고난의 장면을 비장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겁고 유쾌한 골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리고 천진난만한 기생 춘향이의 관점으로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도령의 불망기(不忘記)를 굳게 믿고 있는 천진난만하고 때로는 무모한 듯 보이는 춘향이는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작가는 냉혹하기 그지 없는 이 세계 속에서도 아름다운 희망을 갖고 춘향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사물을 바라보며, 행복한 결말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Ⅴ. 한국전승연희 수용의 의의」에서는 오태석이 수용한 전승연희 양식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각각의 전승연희 양식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특징을 원용하여, 현대극으로 새롭게 해석한 오태석의 작업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면 오태석이 궁극적으로 전승연희 양식을 원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태석은 텍스트 속의 현실 자체를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 찬 세계로 규정하고, 그것을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을 견디는 힘으로 제시한 것은 '비현실적인 꿈'과 '천진난만한 낙관성'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작가가 마련한 방법은 긍정적인 환상을 만들어, 묵묵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전승연희 양식에서 찾아낸 '초월적인 해결방식', '흥겨운 화합', '유쾌한 놀이', '천진난만한 희망'이 바로 우리가 냉혹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밑천이라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오태석은 화해롭고 유쾌한 결말, 환상적인 꿈, 진정한 소통을 믿고 있는 건강한 낙관주의자인 것이다.
물론 전승연희 양식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 원리가 현대극 양식과 만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태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전승연희를 소재적 차원에서 차용하거나 과거의 고답적인 세계관을 안일하게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동시대인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새로운 미래적 전망과 가치를 꾸준히 재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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