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 」차 세계대전동안에 세워진 유엔은 그 동안 냉전체제아래에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분쟁의 해결자로서, 그리고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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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YUNG HEE UNIVERSITY, 1994
학위논문(석사) -- Department of North Peace and Security, KYUNGHEE UNIVERSITY , Department of North Peace and Security , 1994
1994
영어
349.000
대한민국
6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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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 」차 세계대전동안에 세워진 유엔은 그 동안 냉전체제아래에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분쟁의 해결자로서, 그리고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 」차 세계대전동안에 세워진 유엔은 그 동안 냉전체제아래에서 세계 분쟁지역에서 분쟁의 해결자로서, 그리고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된 지금 유엔의 기능과 위상은 새롭게 정립되어져야만 한다. 유엔의 활동을 대표하는 것이 평화유지활동 (Peacekeeping Operation:PKO)이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은 냉전기간동안에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대립등으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즉, 냉전기간동안 단 두차례 (한국전쟁, 걸프전)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유엔의 무력의 사용의 승인에 동의한 것에서 그 불완전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냉전기간동안에도 유엔은 13개 지역에서 분쟁의 중재자로서 큰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그러한 역할의 변화는 조금도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욱 그 역할의 수행이 절실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민족적, 지역적.인종적 갈등의 해결에 유엔의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의 수행이 필요할 때이며 그 가운데에서 한국에서도 첫 해외파병을 한 소말리아 위기에서의 유엔의 역할과 그 활동의 유효성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좌표를 설정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평화유지활동이라는 것은 유엔헌장가운데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Chapter 6과 그것이 불완전할 경우의 강제력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Chapter 7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평화유지활동의 기원은 중동에 있어서의 비무장 유엔감시요원들의 휴전에 대한 감시로부터 비롯되며 첫 군대의 파견은 1956년 수에즈전쟁부터이다. 이것이 이른바 평화유지군(Peacekeeping Troops: PKF)의 시초이다. 그러나 냉전기간동안의 평화유지활동은 강대국들간에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속에서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임시적인 조직 이라는 점, 자형을 위한 무력의 사용이라는 면, 그리고 분쟁지역에 대한 개입은 당사국의 동의를 얻어야만이 가능하다는 전에서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다. 냉전이후의 평화유지활동은 유고슬라비아사태와 소말리아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성격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재정의 어려움, 그리고 강제적인 수단의 사용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 마지막으로 주권의 침해에 대한 문제의 대두둥은 앞으로 유엔이 풀어나가야 할 어려움으로 지적된다. 소말리아는 전통적으로 중앙정부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씨족중심의 국가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에 의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에티오피아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되어지면서 지금 소말리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시작되어진다. 1960년이후로 민족주의의 고양과 함께 이탈리아 및 영국지역은 소말리아 공화국으로 통합되어졌으나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미통합상태에 있었다. 이때 1969년 쿠테타로 집권한 시아드 바레는 정권에 대한 정통성의 확보의 한 방편으로 에티오피아가 권력문제로 내분은 겪고 있을즈음 1974년 오가덴지역의 재탈환을 위한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당시 에티오피아는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 전쟁은 오가댄 지역에 살고 있던 수백만의 소말리아 난민의 발생과 반응그룹의 발생을 초래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United Somali Congress(USC)는 마침내 1991년 독재자 시아드 바레를 쫓아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후 USC는 Ali Mahdi가 이끄는 그룹과 Mohamed Aideed가 이끄는 그룹으로 양분되어짐으로써 오가댄 전쟁이후로 시작된 기아와 난민에 대한 문제를 가속화 시키게 된다. 이러한 소말리아 사태에 대해 유엔은 1992년 식량의 공급에 중점을 둘 100일 구호노력을 시작하게 되나 소말리아 내부의 전쟁과 안전의 문제는 이러한 구호노력을 헛되이 함으로써 유엔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ITAF(America-3ed Unified Task Force)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1992년 유엔의 중재아래 이루어졌던 아이디드와 알리간의 휴전이 붕괴되어짐으로써 유엔의 개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며 그것이 유엔의 무력사용의 승인이라는 유엔 초유의 계기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소말리아사태에는 세계 30여개국의 약 28,000의 평화유지군이 활동함으로써 기아와 질병과 전쟁의 해결에 다함께 노력하였다. 그러나 절대적인 기아는 해결하였다고는 하나 아직도 소말리아에는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절대수가 남아있으며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각 부족간의 전쟁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말리아에 있어서의 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간, 혹은 무장된 그룹사이의 군사적인 충돌로 맡은 평화유지군의 사상자를 남겼으며 소규모의 병력만을 남기고 미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안전상의 이유와 안건보장이사회에서의 결정과정에서의 갈등으로 철수를 서두르긴 있다. 비록 외형적으로 소말리아에 나타난 모든 갈등의 요소들을 유엔의 개입이 해결하지는 않았으나 경제적인 복구나 지원을 통한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평화유지활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소말리아에 있어서 내전이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은 소말리아사태의 해결에 있어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말리아에 있어서도 결국은 이것이 주권의 침해라는 문제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수많은 유엔의 활동에 있어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것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곤의가 요구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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