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와 문화를 함께 포용하는생활양식으로, 지난 이슬람 역사를 통하여 이슬람 종교세력은 이슬람정치세력화를 추구하였고 정교일치(政敎一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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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慶南大學校, 1992
1992
한국어
인도네시아 ; 이슬람 ; 정치참여 ; 정치사 ; POLITICALHISTORICAL ; ISLAM ; INDONNESIAN ; POLITICS
340.9147280 판사항(3)
320.9598297 판사항(19)
경상남도
iv,221장;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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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라 정치와 종교와 문화를 함께 포용하는생활양식으로, 지난 이슬람 역사를 통하여 이슬람 종교세력은 이슬람정치세력화를 추구하였고 정교일치(政敎一致)와신법통치국가(新法統治國家)를 지향해 나왔다. 종교와 정치를 상징하는칼리프제도(Caliphate System)가 비단 중동(中東)의 정통 이슬람국가에서만사용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집트와 오스만터키, 나아가서 인도네시아 군도의상당지역에서 18세기 까지 통용되었다는 것은 이슬람의정치적성향(政治的性向)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광대한 군도(群島)의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전래과정과 지리적·지역적요인 그리고 전래시기의 다양성이 주요 요인이 되어 동질적인 이슬람으로성장하고 정착되지 못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정치세력은 그러므로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결코 주도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없었다.1950년대 초반의 의회민주주의 경험기 때 조차도 이슬람 정당들은 독자적으로정권을 담당하기 위한 충분한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영향력이 서부쟈바와 도서지역에 고루 미치는 마슈미(Masyumi)와 중부와 동부 쟈바를근간으로 하는 나흐다둘 울라마(NU)는 이슬람의 두 주요 정당으로서 언제나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여타의 군소 이슬람 정당들은 지방 지지세력을 축으로 지역당(地域黨) 역할을 해왔다. 비록 의회민주주의 경험기동안에 마슈미가 몇번에 걸쳐 단명했던 내각을 이끈 적이 있었지만, 정부는언제나 여러 이슬람 정당이 권력을 다른 정당과 나누어 갖는 다당제 연립내각형태를 취했으므로, 특별히 이슬람 위주의 정책을 펼 수 없었다. 비록통계적으로 이슬람교도가 인도네시아 인구의 8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긴하지만 정치적 이슬람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장 자유스럽고민주적이었던 1955년 선거에서 44.05퍼센트 만이 이슬람 정당을 지지했다는점이며, 정치적 이슬람에 대한 지지가 쟈바에 집중되기 보다는 오히려외곽도서 지방에 퍼져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도네시아 정치에 있어서외곽도서 지방의 이슬람의 주종 세력인 마슈미는 1958년인도네시아공화국혁명정부(PRRI) 사건에 연루되어 1960년수카르노(Soekarno)와 나수티온(Nasution)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었다. 1959년교도민주주의 체제의 실시로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통치하의 인도네시아정부는 점차로 자바출신 아방안 계가 전적으로 지배해 왔다. 9·30사태 이후수하르토의 군사정권이 등장한 이후로 인도네시아는 점차로 권위주의적정치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신질서(Orde Baru) 초기에 여당인골카르(Golker)를 제외하고 9개 정당의 활동영역을 극도로 제한하고 정권에잘 순응하도록 2개 정당으로 통폐합 시켰다. 또한노동조합·농민조직·학생단체·전문적인 기능직종 등 사회 대중조직들로부터 고유의 특성과 독립성을 박탈하고, 유사단체들간에 서로 합병하도록강요하였으며, 나아가 정부시책에 순응하는 지도자를 뽑도록 거부할 수 없는압력을 가하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정부시책에 비판적인 자세를취했던 일부 언론사들은 반(反)정부적인 신문들이 폐간되는 것을 보고점차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게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에 들어서는공식적인 정치단체나 비공식적인 사회단체를 막론하고 정부를 위협하는대중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 비판그룹들은 대중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루트가 막혀버린 까닭에 단지토론그룹으로 축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람 계(系)의 정치적 열망에 대한표출을 극도로 제한하려는 주된 시도로 추진된 쟈카르타 정부의 정책은 이를시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같은 형태로 취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계는 두 가지 중요한 점에 있어서 대부분의 다른정치적 그룹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첫째, 이슬람계는 적어도 공통된 의식속에서는 꽤 명확한 정치적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구성원 대부분이 불리한상황하에서 조차도 행동주의자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초월적인 신앙을가지고 있다. 둘째, 이슬람계는 조직 자체를 조직화하는 소위 근대적이고전통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 조처와 압력에도 불구하고이슬람은 이슬람 사원과 각종 이슬람 종교학교 및 여러 종류의 사회단체를중심으로 자체의 이데올로기와 전통적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과거의 비(非)이슬람 정당들이 보여주었던 간헐적인 사회적 영향력과는 달리많은 이슬람 정치지도자들은 상당한 이데올로기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것이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통적조직과 지지자들에 대한 접근 수단을 유지해 나왔다. 이슬람계의 정치적탄력성은 신질서 시기 동안에 실시된 4번의 총선거에서 증명된 바 있다.의회민주주의의 경험기인 1955년 치뤄진 선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민주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신질서 하의 선거는 정부여당인 골카르에게상당히 유리한 상황에서 치루어졌다. 선거운동에는 극심한 통제가 가해졌고,대통령이나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극도로 제한하여 제기될 수 있는문제점을 사전에 제거하였으며, 정보부가 후보자들을 심사하였고 지방 군부와경찰이 눈에 띄일 정도로 위협을 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계 정당이1955년 선거에서 확보했던 지지율을 신 질서기에서 유지하지 못하였던 것은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87년 총선은 별도로하고 1971년과 1977년 그리고1982년 선거에서 이슬람계 정당은 내용면에서 실속이 있었으며, Golkar를제외한 비 이슬람 당을 훨씬 앞질렀다. 1971년에는 4개 이슬람당이총투표수의 27.11퍼센트를 확보하였으며, 그 후 1973년 이슬람당들이통일개발당(PPP)으로 강제적인 합병을 한 후에도 이슬람표가 29.99퍼센트로증가하였다가 1982년에는 27.78퍼센트 확보에 그쳤다. 비록 정부 여당인Golkar가 매번 선거에서 행정부와 군부의 지원으로 안정적인 절대 다수를확보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사상을 같이 하고 있는 정당들에 대한지지가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여러차례 선거를통해서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지도자들의 대중동원 능력에 대한 정부의우려는 선거기간 동안으로 한정된 것만은 물론 아니다. 정부 측의 보다 더커다란 우려는 반(反)정부 운동을 선동하는 극단주의자들과 이슬람광신도들의능력이다.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인 194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이르기까지 다룰 이슬람(Darul Islam)운동이 보여준 능력을 수하르토 정부는잘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질서 시기의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서도실의에 찬 이슬람 정통세력들의 폭동은 기독교에 대한 정기적인 형태로경우에 따라서는 반(反)중국인 항거의 유형으로 계속적으로 격렬하게표출되어 나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재 '이슬람은 국가에서 특별한역할이나 지를 갖지 못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내포하고있는 국가 이데올로기인 빤쨔실라(Pancasila)의 원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군부가 계속해서 지배하고 있다. 비록 군부 내의 '66년 세대(Angkatan'66)'로 지칭되는 혁명 후 세대 일부 장교들이 이슬람적 배경을 가졌지만이들도 대부분이 전통적인 쟈바 신비주의 경향을 지니므로 해서 정치적이슬람과는 사상적으로 동류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젊은 세대의장교들이 구세대(Angkatan '45)에 비해서 이슬람 조직에 보다 관용적이면서동시에 덜 의심적인 접근법을 채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군부가 그자체의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슬람조직들은 현재의 모든 상황을 상당기간 동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보인다. NU는 제한된 최소한의 기대가 충족된다면무함마디야(Muhammadiyah)나 여타의 현대주의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적어도 단기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 하에서는 현재의 군사정부에반대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하게 표명하였다. 그러나, 정치적이슬람의 대중동원 잠재력은 비록 이슬람 운동이 정권장악을 목적으로 하지않더라도 군부에 장재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수하르토나 그의 후계자가 폭동으로 인해서 권력으로부터 물러나게 된다면,그 원류는 이슬람이 아니고 아마 군부 내부가 될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이슬람은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파벌주의가 일단군부에서 다시 발전된다면 이슬람주의자들의 대중동원은 하나의 촉매로써역할을 할 수 있으며, 군부내의 그룹들이 이슬람의 지지에 손을 뻗칠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에서 정치적 이슬람의 지위에 작은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좀 더관계가 적은 다른 하나는 지역 분권주의가 이슬람 세력으로 하여금 정권을위협할 만한 형태로 발전될 가능성이다. 신질서 기간동안 지방 분권주의는정통 이슬람의 아성(牙城)인 아쩨(Aceh)에서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중대한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쟈바중심주의와쟈바와 외곽도서로 크게 구분되는 쟈바문화와 비(非)쟈바문화의 괴리(乖離)는이와같은 지역 분권주의를 부추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이슬람의 역할은이때 크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0년이 가깝도록 지속되어 온안정되고 견고한 정부와 어떠한 불화도 조정할 수 있는 군부의 능력, 그리고기간 중의 기록적인 경제성장은 이러한 가능성을 크게 축소시켰다고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중대한 변화 특히, 정부의 정치적 안정을침해하는 극심한 경제 하락과 같은 상황은 이슬람 세력에 의한지역주의운동의 재등장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인도네시아에서 정통 이슬람 정치세력의 등장은 설상 그것이 군부 내부의파벌싸움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하더라도 이슬람 국가로 이어지지는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