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기록물로서의 1712년 임진 백두산정계지도 연구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7550460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URL 복사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기존의 고지도 연구가 지도의 내용(역사학)이나 물리적 형태(서지학)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기록학적 관점에서 백두산정계지도의 생산, 모사, 활용, 전승 등 기록의 생애주기와 맥락을 규명하여 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임진목호정계시소모’라는 동일 표제를 가진 현전 3종의 백두산정계지도(개인 소장본, 프랑스본, 규장각본)를 비교 검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현전 3종 지도의 제작 시기를 정밀하게 고증하였다. 프랑스본(영조 대)과 규장각본(철종 대)의 제작 시기에 관한 기존 연구를 보완하는 한편, 개인 소장본의 제작 연대를 청나라식 지명이 조선식으로 수정된 1716년부터 1767년(숙종 42~영조 43) 사이로 비정하였다. 개인 소장본은 핵심 표기인 ‘토문강’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으며 타 지명의 오기가 가장 적다는 점에서 현전 3종 중 가장 앞선 시기의 지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프랑스본과 규장각본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표기 오류를 확인하였다. 개인 소장본은 1712년 정계 당시의 유숙처 3곳과 서수라덕 주변의 이동 경로를 문헌 기록과 일치하게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나, 나머지 두 지도는 특정 유숙처가 누락되거나 청측 이동 경로가 실제보다 하류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이는 개인 소장본이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후대 지도를 전사한 모사본이 아님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셋째, 지도 내 일부 지명 앞에 붙은 ‘水(수)’ 자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를 단순한 연문이나 오기로 보았으나, 본 연구에서는 두만강 상류 수계를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원류를 명확히 확정하기 위해 지명 앞에 의도적으로 표기한 적극적인 식별 행위로 규명하였다.
    넷째, 현전 3종 모두 1712년 당해에 제작된 ‘원본’이 될 수 없음을 밝혔다. 프랑스본과 규장각본은 지도책 수록본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개인 소장본은 낱장 형태이나 숙종의 어제시가 누락되었고 판본 번호(‘五’)가 적혀 있는 데다 지명이 이미 조선식으로 교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문헌 분석을 통해 숙종과 영조 시기에 세 차례에 걸쳐 모사본(1713년 김진규의 모사본 A, 1716년 민진후의 모사본 B, 1730년 송진명의 모사본 C)이 제작되었음을 밝혀냄으로써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백두산정계지도의 생산 및 전승 계통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현전하는 백두산정계지도 3종은 청나라식 지명을 조선식 지명으로 교정하여 제작했던 1716년의 ‘민진후 교정본(모사본 B)’을 공동의 모본으로 삼아 재생산·활용·보존되어 온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번역하기

    기존의 고지도 연구가 지도의 내용(역사학)이나 물리적 형태(서지학)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기록학적 관점에서 백두산정계지도의 생산, 모사, 활용, 전승 등 기록의 생애주...

    기존의 고지도 연구가 지도의 내용(역사학)이나 물리적 형태(서지학)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기록학적 관점에서 백두산정계지도의 생산, 모사, 활용, 전승 등 기록의 생애주기와 맥락을 규명하여 기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임진목호정계시소모’라는 동일 표제를 가진 현전 3종의 백두산정계지도(개인 소장본, 프랑스본, 규장각본)를 비교 검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현전 3종 지도의 제작 시기를 정밀하게 고증하였다. 프랑스본(영조 대)과 규장각본(철종 대)의 제작 시기에 관한 기존 연구를 보완하는 한편, 개인 소장본의 제작 연대를 청나라식 지명이 조선식으로 수정된 1716년부터 1767년(숙종 42~영조 43) 사이로 비정하였다. 개인 소장본은 핵심 표기인 ‘토문강’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으며 타 지명의 오기가 가장 적다는 점에서 현전 3종 중 가장 앞선 시기의 지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프랑스본과 규장각본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표기 오류를 확인하였다. 개인 소장본은 1712년 정계 당시의 유숙처 3곳과 서수라덕 주변의 이동 경로를 문헌 기록과 일치하게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나, 나머지 두 지도는 특정 유숙처가 누락되거나 청측 이동 경로가 실제보다 하류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이는 개인 소장본이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후대 지도를 전사한 모사본이 아님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셋째, 지도 내 일부 지명 앞에 붙은 ‘水(수)’ 자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를 단순한 연문이나 오기로 보았으나, 본 연구에서는 두만강 상류 수계를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원류를 명확히 확정하기 위해 지명 앞에 의도적으로 표기한 적극적인 식별 행위로 규명하였다.
    넷째, 현전 3종 모두 1712년 당해에 제작된 ‘원본’이 될 수 없음을 밝혔다. 프랑스본과 규장각본은 지도책 수록본이라는 한계가 있으며, 개인 소장본은 낱장 형태이나 숙종의 어제시가 누락되었고 판본 번호(‘五’)가 적혀 있는 데다 지명이 이미 조선식으로 교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문헌 분석을 통해 숙종과 영조 시기에 세 차례에 걸쳐 모사본(1713년 김진규의 모사본 A, 1716년 민진후의 모사본 B, 1730년 송진명의 모사본 C)이 제작되었음을 밝혀냄으로써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백두산정계지도의 생산 및 전승 계통을 확인하였다.
    결론적으로 현전하는 백두산정계지도 3종은 청나라식 지명을 조선식 지명으로 교정하여 제작했던 1716년의 ‘민진후 교정본(모사본 B)’을 공동의 모본으로 삼아 재생산·활용·보존되어 온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presents a comparative analysis of three maps sharing the same title, 「Imjin Mokho Jeonggyesi Somo(壬辰穆胡定界時所模)」. The three maps under study are: the version included in the 『Yeojido(輿地圖)』 held at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version within the 『Cheonhajegukdo(天下諸國圖)』 held at the Collège de France; and a version held in a private collection. By examining the records of the Joseon delegation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demarcation, such as Kim Ji-nam(金指南), Park Gwon(朴權), this study investigates how these types of Mt. Baekdu boundary maps were transmitted within Joseon. Although all three versions are copies, this paper establishes their chronological order of production as Private Collection 〉 French Collection 〉 Kyujanggak Collection, based on a comprehensive comparison of the depiction of the Tomun River, the location of lodging sites, and the realism of the Mt. Baekdu illustrations. Through this analysis, the study revises and supplements existing arguments made by scholars such as Jeong Dae-young and Lee Hwa-ja regarding the production of these maps. Furthermore, a precise examination of the private collection map allows for the correction of clerical errors and unresolved questions found in the Kyujanggak and French versions. Beyond a purely bibliographic comparison, this paper also evaluates these maps as state records. It examines from an archival perspective how the original boundary map provided by the Qing official Mukedeng(穆克登) during the 1712 Mt. Baekdu demarcation was subsequently preserved, replicated, and utilized within the Joseon dynasty.
    And from an archival perspective, Privately owned Map of the Mt. Paektu Boundary Survey serve as a significant case study demonstrating how privately collected records in a state of "Broken Custody"—where the chain of preservation has been severed—can regain their value as national records through contextual restoration. This confirms the dynamism of the process by which records that have strayed from official channels can be reintegrated into the formal record management system by proving their content authenticity and reliability.
    번역하기

    This paper presents a comparative analysis of three maps sharing the same title, 「Imjin Mokho Jeonggyesi Somo(壬辰穆胡定界時所模)」. The three maps under study are: the version included in the 『Yeojido(輿地圖)』 held at the K...

    This paper presents a comparative analysis of three maps sharing the same title, 「Imjin Mokho Jeonggyesi Somo(壬辰穆胡定界時所模)」. The three maps under study are: the version included in the 『Yeojido(輿地圖)』 held at the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version within the 『Cheonhajegukdo(天下諸國圖)』 held at the Collège de France; and a version held in a private collection. By examining the records of the Joseon delegation members who participated in the demarcation, such as Kim Ji-nam(金指南), Park Gwon(朴權), this study investigates how these types of Mt. Baekdu boundary maps were transmitted within Joseon. Although all three versions are copies, this paper establishes their chronological order of production as Private Collection 〉 French Collection 〉 Kyujanggak Collection, based on a comprehensive comparison of the depiction of the Tomun River, the location of lodging sites, and the realism of the Mt. Baekdu illustrations. Through this analysis, the study revises and supplements existing arguments made by scholars such as Jeong Dae-young and Lee Hwa-ja regarding the production of these maps. Furthermore, a precise examination of the private collection map allows for the correction of clerical errors and unresolved questions found in the Kyujanggak and French versions. Beyond a purely bibliographic comparison, this paper also evaluates these maps as state records. It examines from an archival perspective how the original boundary map provided by the Qing official Mukedeng(穆克登) during the 1712 Mt. Baekdu demarcation was subsequently preserved, replicated, and utilized within the Joseon dynasty.
    And from an archival perspective, Privately owned Map of the Mt. Paektu Boundary Survey serve as a significant case study demonstrating how privately collected records in a state of "Broken Custody"—where the chain of preservation has been severed—can regain their value as national records through contextual restoration. This confirms the dynamism of the process by which records that have strayed from official channels can be reintegrated into the formal record management system by proving their content authenticity and reliability.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제1장 서론 1
    • 제1절 연구 배경 및 목적 1
    • 제2절 선행 연구 검토 3
    • 제3절 연구 방법 및 범위 7
    • 제1장 서론 1
    • 제1절 연구 배경 및 목적 1
    • 제2절 선행 연구 검토 3
    • 제3절 연구 방법 및 범위 7
    • 제2장 백두산정계지도의 제작 경위 11
    • 제1절 백두산정계지도 제작의 배경 11
    • (1) 청의 봉금정책과 조선의 범월 문제 11
    • (2) 강희제의 『황여전람도』 편찬 추진 12
    • 제2절 백두산정계지도의 제작과 모사 15
    • (1) 정계 수행 과정과 지도 제작 15
    • (2) 원본 지도의 국가아카이브 등재 18
    • 제3장 현전 백두산정계지도 3종의 현황과 원본과의 관계 21
    • 제1절 현전 백두산정계지도 3종의 현황 21
    • (1) 개인 소장 백두산정계지도 21
    • (2) 콜레주 드 프랑스 한국학도서관 소장 백두산정계지도 22
    • (3)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백두산정계지도 24
    • 제2절 현전 백두산정계지도 3종과 원본의 상관관계 27
    • 제4장 지리정보 분석을 통한 현전 백두산정계지도의 제작 선후 관계 규명 33
    • 제1절 규장각 정계지도와 프랑스 정계지도 제작 시기 분석 33
    • 제2절 개인 소장 정계지도 제작 시기 분석 38
    • (1) 토문강 표기 39
    • (2) 신대신수 및 기타 지명 표기 44
    • (3) 백두산 묘사 50
    • (4) 강원비(江源碑) 묘사 53
    • (5) 조선 측 일행의 유숙처 56
    • (6) 서수라덕(西水羅德) 주변 경로 58
    • (7) 산계와 수계의 회화적 묘사 63
    • (8) 소결: 개인 소장 정계지도의 제작 시기 추정 64
    • 제3절 기타 지리정보 비교 - 세 지도에 나타난 동일 표기 지명 비교 66
    • (1) 문암(門岩) 묘사 68
    • (2) 연지봉(胭脂峯/臙脂峯) 표기 70
    • (3) 자포수(自浦水) 표기 71
    • (4) 노은동산(盧隱東山) 표기 73
    • 제5장 기록물로서 백두산정계지도의 재생산·활용 및 가치 82
    • 제1절 지도 표제 속 ‘소모’의 기록학적 의미 82
    • 제2절 백두산정계지도의 재생산과 활용 84
    • (1) 숙종 대의 기록 검토 (1713년과 1716년 기록) 85
    • (2) 영조 대의 기록 검토 (1730년 기록) 90
    • (3) 고종 때의 기록 검토 (1880년대 기록) 100
    • 제3절 국가기록물로서 정계지도의 전승과 전사 관계 107
    • (1) 백두산정계지도의 전승 107
    • (2) 현전 백두산정계지도 3종의 전사 관계 109
    • 제4절 백두산정계지도의 기록학적 가치 119
    • (1) 국경 인식과 영토 정보의 시각화 119
    • (2) 백두산 정계 관련 현장 실무 기록 120
    • (3) 고지도 전승과 모사 체계를 통한 기록문화사적 가치 123
    • (4) 후대 감계 및 영토 논의에서의 활용 가치 125
    • 제6장 결론 128
    • 참고문헌 135
    • ABSTRACT 139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