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경향신문』의 시사 보도와 사회적 시선 - 천주교 사목 네트워크 및「각 지방 기서(寄書)」 분석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1886년 조불조약 이후 한국 사회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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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 가톨릭대학교 (성심) 일반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가톨릭대학교 (성심) 일반대학원 , 국사학과 근대사 , 2026. 8
2026
한국어
대한제국 후기 ; 경향신문 ; 사회적 시선 ; 각 지방 기서 ; 천주교 사목 네트워크 ; 애국계몽운동 ; 민중 보호와 단계적 계몽론 ; 서구중심주의
경기도
vii, 81 p. ; 26 cm
지도교수: 허태구
I804:41027-20000102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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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경향신문』의 시사 보도와 사회적 시선 - 천주교 사목 네트워크 및「각 지방 기서(寄書)」 분석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1886년 조불조약 이후 한국 사회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소통하려 하였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는 신문의 주장이 담긴 논설보다, 그 토대가 된 국내기사에 주목하였다. 특히 각 지역의 현실을 담은 「각 지방 기서」를 분류·분석함으로써, 신문에 반영된 한국 천주교 고유의 사회적 시선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900년대는 개신교와의 선교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였다. 교육과 의료 선교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개신교와는 달리, 천주교는 여러 차례 교안(敎案)을 거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뮈텔 주교는 천주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언론에 대한 뮈텔 주교의 관심과 더불어 다양한 가톨릭 언론이 만들어지던 유럽 교회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신문 창간을 앞두고 신문사 사장으로 임명된 드망즈 신부는 공문을 통하여 『경향신문』의 창간과 운영 계획을 밝혔다. 그 계획에서 드망즈 신부는 기사의 수집과 논설의 작성에 각 지역의 선교사들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 천주교의 사목 네트워크를 『경향신문』의 정보망으로서 활용하고자 계획했던 것이다. 이렇게 대목구-본당-공소의 구조를 이용하여 신문의 정보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한국 천주교 내에 이미 설정되어 있었던 이러한 구조를 따라 각지 선교사와 신자들의 제보와 기서를 통해 각지의 소식을 모았다.
그렇게 수집되고 편집된 기사 중 특히 심층기사에 해당하는 「각 지방 기서」 기사 1,257건을 분류하여 주제별 분포를 보았다. 민중의 피해를 고발하고 민중의 계몽을 유도하는 기사가 주로 지면에 실렸다. 이러한 기사는 다시 논설의 소재이자 근거가 되었다. 이렇게 기서의 내용과 논설화 과정을 함께 분석하여 살펴본 『경향신문』의 사회적 시선은 크게 두 가지, 곧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준과 도덕성 회복이 선행하는 단계적 계몽론이라는 기조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신문』의 사회적 시선에 대해 여러 계층의 반응을 살펴보면, 먼저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경향신문』의 법률 계몽이라는 취지와 관점이 어느 정도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애국계몽운동계열 언론에서는 자신의 관점과 필요에 따라 『경향신문』의 기사 중 일부, 특히 일제의 민중 침탈 기사를 주로 선택하여 인용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회와 크게 갈등이 없었던 통감부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으나, 1910년에 이르러서는 압수를 시행하거나 검열을 강화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지방 곳곳에 뻗어 있는 한국 천주교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의 목소리를 직접 담음으로써 계몽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민중의 실제적인 고통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다만 이 시선은 서구중심주의나 시혜적 민중관을 담고 있어, 일제의 식민화를 인정하면서도 그 야만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문명적 지배를 촉구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한국의 후진성을 부각함으로써 한국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는 식민 논리를 강화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도덕성 회복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계몽론 역시 현실의 관찰에서 비롯되었음에도 현실과는 괴리가 존재했다. 빠르게 한국을 장악해 나가는 일제로부터 국권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도덕성 회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경향신문』의 사회적 시선은 분명 한국 천주교가 각 지역에서 보았던 생생한 민중 침탈의 현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국권회복이나 실력양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가려질 수 있었던 지역 민중의 실제적인 아픔을 포착하고, 도덕성의 회복으로써 이를 개선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애국계몽운동의 흐름에서 한국 천주교가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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