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한 1990년대생(이하 90세대) 임금노동자들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일에 몰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희화화하거나 ‘조용한 사직’과 ...
2010년대 중반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한 1990년대생(이하 90세대) 임금노동자들은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특징을 보인다. 일에 몰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희화화하거나 ‘조용한 사직’과 같은 소극적 저항을 보이는 한편, 직업 및 직장 선택에 있어서는 임금과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는 강한 도구적 지향을 드러낸다.
이 연구의 목적은 90세대 임금노동자를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 찍는 시각을 넘어, 이들이 구조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고 이를 재해석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행위자일 가능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90세대가 ‘좋은 일자리’ 담론 구조를 거부하지 못하면서도 일하는 과정에서 ‘의미충만함’(meaningfulness)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소외’를 경험한 결과가 강한 도구성으로 표출되어 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울러, 임금노동자가 의미충만함을 경험하게 하는 조직 자원이자, ‘사회-조직-개인 간 정합성’ 구현을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 ‘조직민주주의’의 역할을 탐색한다.
분석의 초점은 90세대 중에서도 객관적으로 ‘좋은 일자리’에 속한다고 평가할 만한 임금노동자에게 맞추었다. 상층 일자리에 종사할수록, 최근 세대로 올수록 내재성이 강하다는 선행연구에 비추어 볼 때 ‘좋은 일자리’ 내부의 청년 노동자들조차 강한 도구성을 보인다면 여기에 세대 전체의 도구성을 설명할 중요한 단서가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임금노동이 이뤄지는 조직 내부에 집중했다. 조직은 일이라는 맥락 하에서 사회와 개인을 매개하는 존재이자, 일하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사회와 중첩되어 인식되는 일터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먼저 임금노동자 개인의 일에 대한 지향이 형성되는 기제를 분석하였다. 일하는 과정에서의 부정적 경험, 즉 소외에 가까운 경험이 도구적 지향을 강화시킨다는 ‘강화’ 기제의 타당성을 검증하고자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하여 시스템 GMM 분석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90세대 임금노동자에게서 일의 내용에 대해 만족할수록 내재성이, 만족하지 못할수록 도구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어서 분석의 초점을 보다 좁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질적ㆍ양적 분석을 수행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그룹 A의 IT 및 첨단 제조업 분야 3개 계열사의 연구 개발 및 IT 개발 직군 노동자들이 대상이며, 이 중 2개 계열사 4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수행했다. 그 결과, 일하는 과정의 부정적 경험이 도구성을 강화시키는 실제 사례들이 확인되었다. 특히 90세대는 ‘일을 일답게’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중시하였고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그저 돈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도구성이 강해지는 경험하고 있었다.
질적 분석을 통해 의미충만함을 저해하는 조직 요인도 도출하였다. 임금노동자가 일로써 사회 및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자기초월적’ 의미충만함은 조직민주주의 차원에 해당하는 ‘의사결정참여’와 ‘조직비전신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 결과는 질적 분석 도구인 MAXQDA의 코드맵 기능을 활용하여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소수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임금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의미충만함을 창출해내는 기제로서 ‘잡 크래프팅’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양적 분석에서는, A그룹 3개 계열사 직원 871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자료를 활용해 ‘일의의미’, ‘의미충만함’, ‘일중심성’, ‘일만족’ 간의 관계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 요인을 분석하였다. 회귀분석 결과, 개인 일 지향 및 만족 변수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으며, 특히 의미충만함은 다른 세 변수들과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주고받는 핵심 변수였다.
나아가 변수들의 선ㆍ후행 및 인과 관계 확인을 위해 수행한 구조방정식 분석에서는 의미충만함이 중요한 매개변수로 확인되었다. 의미충만함은 일중심성, 업무재량권, 피드백, 조직비전신뢰 등 4개 잠재변수가 일만족으로 가는 경로에서 매개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조직 요인에 따른 긍정적 경험이 있더라도 임금노동자가 의미충만함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단계가 매개되지 않으면 일 만족으로 충분히 연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임금노동자의 일에 대한 의미 지향은 조직 내에서의 긍정적ㆍ부정적 경험에 영향을 받으며, 특히 90세대는 ‘일다운 일’을 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의미충만함을 인식하고 해석해 낼 수 없을 때 도구적 지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가지게 되었다. 일하는 과정에서 의미충만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조직-개인 간 정합성’이 요구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직 자원이 조직민주주의이다.
연구의 학술적 기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노동사회학과 조직이론 안에서 분절적으로 발전해 온 ‘일’에 관한 연구 흐름 간의 이론적 접점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니 칼레버그의 ‘좋은 일자리’ 및 내재성ㆍ도구성 연구와(1977), 임금노동자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 Ezzy(1997) 간 교집합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아 연구를 수행하였다. 둘째, 주로 조직이론과 경영학에서 다뤄진 ‘의미충만한 일’ 개념을 사회학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였다. 의미충만함을 ‘사회-조직-개인 간 정합성’ 차원과 연결함으로써, 구조 분석과 개인 내부 기제를 연결하는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 셋째, 기존 조직 연구에서 일 만족과 내재적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조직 변인들의 설명력을 확장하였다. 이들 변인이 ‘의미충만함’이라는 매개를 통해 일만족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연구의 사회적 기여는 다음과 같다. 첫째, 90세대를 비롯한 청년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낙인 찍는 설명의 한계를 넘어, 이들이 ‘일을 일답게’, 의미충만하게 하기 원하는 세대임을 확인하였다. 둘째, 한국의 ‘좋은 일자리’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내재적 조건과 의미충만함의 중요성을 부각함으로써, 임금과 안정성 중심의 담론 구조가 가진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장기간 유지되어 온 ‘좋은 일자리’ 상과 90세대 간의 부정합성을 보여준다. 셋째,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도구적 보상이나 작업조직 내부 요건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조직-개인 간 정합성’이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재정의할 필요성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로써 그동안 임금과 안정성 측면에만 맞춰져 있었던 한국의 ‘좋은 일자리’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