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 후기 등장한 민간 대장간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날까지 대장간이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대장장이들의 기술의 ...
본 연구는 조선 후기 등장한 민간 대장간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오늘날까지 대장간이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대장장이들의 기술의 특성과 실천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연구는 먼저 대장간이 걸어온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며, 이들의 역할과 위상, 나아가 존재 양상까지 어떠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달리해왔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검토한다.
대장간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면, 대장장이는 전근대적 신분 질서와 근대화 과정에서의 낙후된 기술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오랫동안 천시되어왔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위상의 상승을 이루었고 그 이후에도 미디어의 노출 및 숭례문 복원 사업 등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장인’으로 존중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많은 수의 대장간들은 경제적 수요 감소보다는 인력 이탈 및 신규 유입 중단으로 인해 점주인 대장장이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일부 대장간들은 기계를 도입하거나 판매 전략을 바꾸는 등 여러 변화들을 실천하여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대장간의 중심에는 기술이 항상 자리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었다.
연구는 의뢰-제작-판매 과정에서 어떠한 실천들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기술은 어떻게 재형성되어 가는지 주목하였다. 이에 따라, 소매를 중심으로 하는 만큼, 타 대장간보다 다양한 관계를 맺고 이에 따라 제작 품목도 다양한 서울의 영재(가명) 대장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참여관찰을 실시했다. 대장장이들은 손님들과의 마주침에서, 그들의 신체적 특성, 작업환경 등을 고려하며 철과 제작 방식들을 조율한다. 그렇기에 특정 의뢰들은 철물의 품질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대장장이들에 의해 반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려된 의뢰 중 일부는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용되기도 한다. 이는 손님과 대장장이의 거래가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로 전환될 때이다. 대장장이들은 관계의 전환에 따라, 제작 철물을 판매와 동시에 완결되는 상품에서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성장 가능한 사물로 위치시킨다.
그리고 대장장이들은 제작 과정에서 철의 성질, 계절 등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물질과 환경을 자신들의 신체 감각을 통해 파악하고 이에 응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대장장이들의 기술 활동은 계획에 의거해 절차적이고 반복적인 ‘실행(operate)’이기보다는 즉흥적이고 조응적인 ‘실천(practic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기술은 체계화된 공학·과학 지식과는 달리, 감각과 경험에 기반하며, 체화된 숙련을 활용한다. 그렇기에 즉흥성과 조응성이 두드러지는 대장간의 기술은 체계화된 기술과 비교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 자체를 점진적으로 재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
한편, 대장간은 주변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에게 비일상적인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주변화는 단순히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주변화는 기존에 결착된 인식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새로운 손님, 신규 대장장이의 유입을 유도하는 측면 또한 있음이 관찰된다. 구체적으로 주변화 이후 등장한 근래의 일부 손님들은 대장간에 대한 자신들만의 오해와 상상으로부터 기인해 대장간을 찾았으며, 특수한 가치를 담지한 철물 제작을 의뢰하게 된다. 물론 오해에 기인한 의뢰는 대장장이에게 부담일 수 있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관계의 유지 및 확장, 기술의 성장 등을 고려해 의뢰들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의뢰의 수용 이후 손님들이 기대하는 가치와 의미들은 그들과 관계적 연결과 배치 속에서 특정 행위들이 제작 과정 내외에서 실천됨으로써 생성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기술과 철물에 담지되는 특수한 가치와 의미는 대장간 자체에 내제되어있는 것이 아닌, 일련의 행위를 통해 생성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대장간의 기술을 전근대적 잔재나, 낙후된 수공업이 아닌, 동시대와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형성되며 복잡성을 더해가는 ‘성장하는 기술’로 재정의 하였다. 이는 기존 민속학과 인류학 연구에서 비교적 주목되지 않았던 민속 기술의 즉흥적이고 조응적인 특성을 드러냄으로써,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