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은 정부가 필요로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산업․고용․지역발전과 중소기업 판로개척, 사회적 가치 실현 등 다층적 정책목표를 집행하는 핵심 정책수...
공공조달은 정부가 필요로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산업․고용․지역발전과 중소기업 판로개척, 사회적 가치 실현 등 다층적 정책목표를 집행하는 핵심 정책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법․제도는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지방자치단체 물품조달 현장에서는 수의계약․제한경쟁 등 재량이 개입될 여지가 큰 계약방식이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괴리는 단순한 관행이나 일부 행위자의 일탈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본 연구는 지방자치단체 물품조달에서 반복되는 ‘재량계약의 우위’를, 지방자치단체장(정치적 생존․성과 압박), 관료(감사․민원․사후책임에 대한 회피), 기업(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한 제도순응)이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형성․고착되는 구조적 균형으로 파악하고, 이를 안전거래(Safe Trade)모형으로 개념화하였다. 여기서 ‘안전거래’란 특정 주체의 성향이 아니라, 선거․책임․불확실성이라는 제도환경 속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안전선호’(절차적으로 방어 가능한 선택의 선호)가 수요 신호로 작동하고, 기업이 이에 맞추어 인증 등 ‘안전신호’를 확보․유지하며, 그 결과 재량계약 중심의 거래규칙이 누적적으로 구조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행정적 고려가 공공조달의 경쟁성을 어떻게 약화시키는가. 이를 위해 단체장의 임기(선거주기), 연임을 통한 정치적 숙련도, 이념적 정책성향, 지역연고 거래구조(기초행정구역 내 거래집중 및 광역행정구역 수준의 권역 확장), 그리고 인증기업과의 거래를 핵심 설명요인으로 설정하였다. 둘째, 정부의 안전선호 신호에 직면한 중소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며, 그 적응이 기업 내부의 자원배분과 비용구조에 어떠한 함의를 갖는가. 본 연구는 인증을 혁신성의 직접 지표로 전제하기보다, 조달시장에서 절차적 정당화와 거래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적 안전신호로 재해석하고, 기업의 공공조달 의존도 변화가 인증(안전신호 자산)과 행정대응 비용구조(판매관리비 비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하였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기업 관계가 단순한 일방향 효과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확인하기 위해, 광역-기초-기업-연도 수준의 다층구조를 반영한 상호작용 분석을 병행하였다.
실증분석은 조달계약 데이터를 중심으로 선거․재정․기업재무 정보를 결합하여 수행하였다. 2009~2022년 지방자치단체 물품조달 계약을 재구조화하여 지방자치단체-연도 패널을 구축하고, 고정효과 기반 패널회귀를 통해 재량계약 비중(건수․금액)을 분석하였다. 기업 수준에서 공공조달 참여 중소기업의 조달의존도(금액․기간)와 재무자료를 결합한 기업-연도 패널을 구성하여, 인증 보유 개수(안전신호 자산)와 판매관리비 비중(행정대응비용의 대리변수)을 종속변수로 검증하였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연고 거래구조와 기업의 인증 보유가 결합될 때 재량계약이 강화되는지 여부를 다층모형을 기반으로 확인하여, 안전거래가 일회성이 아닌, 반복․누적되는 거래구조임을 실증적으로 보였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 물품조달 시장에서는 경쟁원칙과 달리 수의계약이 계약의 다수를 차지하며, 인증기업과의 거래 비중도 매우 높고 장기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는 조달시장이 가격․품질의 경쟁 원칙으로 작동하기보다, 절차적 정당화와 책임회피를 가능하게 하는 신호가 거래 규칙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선거가 임박할수록 재량계약이 단조롭게 증가한다기보다, 오히려 재량을 억제하는 방향의 패턴이 관찰되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성과 압박을 받더라도, 조달영역에서 ‘정치적 성과’와 ‘절차적 위험(비난가능성)’이 교환관계를 이루며, 결과적으로 임기 후반부에 위험관리형 선택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지역연고 거래 집중은 재량계약 확대와 연결되었으며, 거래권역을 광역행정구역 수준으로 확장하는 경우 일부 지표에서 재량계약이 완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넷째, 기업 수준에서는 공공조달 의존도의 변화가 인증(안전신호 자산)의 추가 축적으로 일관되게 연결되기보다는, 인증이 조달시장 진입을 위한 문턱 또는 준고정적 자격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공공조달 의존이 심화된 기업에서 판매관리비 비중이 단선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결과는, 조달시장 특화에 따른 업무의 루틴화․규모효과 등으로 행정대응 비용의 상대적 부담이 완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섯째, 지방자치단체와 중소기업의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에서는 관내기업 여부와 인증보유가 결합될 때 재량계약이 강화되는 패턴이 확인되었다. 이는 ‘지역경제-관내업체 우대’라는 정치적 명분과 ‘인증 보유’라는 행정적 정당화가 동시에 충족될 때, 관료가 재량을 더 용이하게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안전거래가 행위자 간 상호 적응을 통해 고착회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본 연구는 공공조달에서 계약 성과나 거래 성패를 ‘관계․연결’로만 설명하는 관점을 넘어, 인증이 조달시장 진입을 좌우하는 제도적 문턱이자 준고정적 자격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즉 인증은 단순한 품질 신호나 일회적 평판 장치라기보다, 조달의 내부 접근성과 거래구조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선별․접근 통제 매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증제도의 역할을 ‘성과 향상’중심이 아니라 ‘자격화․경로의존’ 관점에서 재해석하는데 기여한다.
종합하면, 본 연구는 지방자치단체 물품조달에서 나타나는 재량계약의 우위를 부패․일탈의 문제로 단순 환원하기보다, 지방자치단체장-관료-기업이 각자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구조적 균형으로 재해석하였다. 특히 인증은 혁신성과 품질을 직접 보증하는 신호로 이해되기보다, 조달현장에서 절차적 안전과 면책가능성을 제공하는 ‘안전신호’로 작동하며, 지역연고 거래구조 및 정치․행정 책임환경과 결합될 때 시장의 경쟁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안전거래 관점은 공공조달 연구의 문제들을 효율/부패의 이분법에서 확장하여, 책임구조․정당화 기준․신호체계의 설계가 거래방식의 누적과 시장구조의 고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설명하는 통합적 분석틀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