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집중된 지역이었으며, 1970년 대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하 게 만들었다. 본 연구는 박정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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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 국방대학교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국방대학교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 안보정책 안보정책학 , 2026. 2
2026
한국어
충청남도
; 26 cm
지도교수: 유상범
I804:11070-20000094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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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집중된 지역이었으며, 1970년 대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한국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하 게 만들었다. 본 연구는 박정희 정부의 자주국방 노선과 핵개발 시도가 미국 의 핵 비확산 정책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1981년 미국 에너지부(DOE) 의 한국에 대한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 지정과 1994년 해제 과정을 실 증적으로 분석하였다. 나아가 이 사건이 한미동맹의 신뢰 구조와 원자력 기술 협력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 대만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미국의 비확산 정 책이 동맹국에 적용되는 기제를 고찰하였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 철수 논의로 인한 안보 불 안을 해소하고자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추진 하였다. 이에 미국은 1978년 핵비확산법(NNPA) 제정 등 법ㆍ제도적 통제를 강화하였고, 그 일환으로 1981년 1월 에너지부 내부 규정을 통해 한국을 민감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켰다. 이는 한국 연구자의 미국 국립연구소 접근과 기술 협력을 제한하는 행정적 통제 수단으로 작동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1993 년 10월 주미대사관의 보고를 통해 비로소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지하게 되 었다.
본 연구는 1994년 지정 해제 과정이 북핵 위기라는 엄중한 안보 상황 속에 서 한미 양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한국은 제1차 한 ㆍ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1993년)와 제15차 원자력공동상설위원회(1994년) 등 제도화된 협의 채널을 통해 문제를 공식 제기하였고, 국제안전조치 기술협력 약정 체결 등 구체적인 투명성 조치를 제시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였다. 미국 또한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결속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 었기에, 한국의 비확산 의지를 확인하고 민감국가 지정을 해제하였다.
민감국가 지정은 한미 관계를 기존의 전면적 신뢰 관계에서 ‘관리된 신뢰’ 구조로 변화시켰다. 지정 기간 동안 한국은 핵무기 개발 경로를 포기하고 평 화적 원자력 기술 자립으로 정책을 선회하였으며, 미국은 행정적 통제를 통해 동맹국의 기술적 잠재력을 관리하였다. 대만 사례와의 비교 분석 결과, 미국은 대만에게는 외교 단절과 시설 폐쇄라는 물리적 롤백 조치를 취한 반면, 동맹 이 유지된 한국에게는 행정적 통제와 조건부 협력이라는 유연한 방식을 적용 했음이 확인되었다.
결론적으로 1981년 지정과 1994년 해제 사례는 미국의 비확산 규범과 동맹 관리가 ‘행정적 통제’를 매개로 상호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2025년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다시 민감국가로 지정한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과거의 지정이 핵연료주기 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재는 첨단 과 학기술과 연구 보안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연구 보안의 제도화와 투명성 강화를 통해 한미동맹을 단순한 안보동맹을 넘어 신뢰에 기 반한 ‘기술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주요어 : 민감국가, 미국 에너지부, 핵 비확산, 박정희 정부, 한미 원자력협력, 대만 비교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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