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30년대 초 윤봉길 의거를 전후한 시기를 중심으로, 김구와 장제스(蔣介石) 간에 전개된 교섭의 배경과 그 정치적 함의를 분석한다. 특히 중국의 대내외 정세와 여론 변화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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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 단국대학교, 2026
2026
한국어
경기도
The Political Context and Outcomes of Early 1930s Negotiations between Kim Gu and Chiang Kai-shek
85p. ; : 삽화 ; 30cm.
단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박성순
참고문헌 :79-83p.
I804:11017-000000203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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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30년대 초 윤봉길 의거를 전후한 시기를 중심으로, 김구와 장제스(蔣介石) 간에 전개된 교섭의 배경과 그 정치적 함의를 분석한다. 특히 중국의 대내외 정세와 여론 변화 속에서 김구가 취한 대응 전략을 재검토한다. 기존 연구가 윤봉길 의거 이후 장제스의 지원을 韓中 연대의 출발점으로 설명해 온 데 반해, 본 논문은 한인애국단의 창설 배경을 검토하여 의거 이전부터 진행된 中國國民黨 내부 세력과 김구 계열 간의 사전 교섭에 주목한다. 본 논문은 김구가 국민당 내 권력 구도와 특무 체계, 특히 CC파와 맺은 접점을 규명한다. 이를 위해 蔣中正日記, 국민당 내부 문건, 특무 관련 자료, 그리고 한국독립운동 관련 1차 사료를 교차 검토하였다. 그 결과, 김구와 장제스의 관계는 단순한 항일 협력을 넘어 장제스의 내부 권력 유지를 위해 형성된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즉, 장제스의 공식적 입장과는 구별되면서도 비공식적 지원을 가능하게 한 “그럴듯한 부인(Plausible Deniability)” 전략의 산물이었음을 밝힌다. 의거 이후 관내 항일의 주요 인사로 부상한 김구는 자신이 획득한 상징성을 정치적·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내 교섭 공간을 확장하고 독자적인 무장 노선을 구축하고자 했음을 논증한다. 과정에서 한국특무대독립군이라는 한인애국단의 확장 조직 편제가 형성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940년대 한국광복군 성립의 인적·조직적 기반으로 기능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1930년대 초 김구–장제스 교섭을 중국국민당 내부 정치와 특무 체제의 맥락 속에 재위치시킴으로써, 김구의 항일 노선과 전략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사건 및 의거 중심의 기존 서술을 넘어, 한중 간 비공식 정치 교섭의 구조와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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