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70년대 동양화 추상과 민예의 관계에 주목하여, 기존 동양화의 추상에 대한 연구가 수묵 중심의 추상에 집중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기존 논의는 ‘서화일치’·‘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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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명지대학교 대학원, 2026
2026
한국어
서울
xi, 231p ; 26 cm
지도교수: 이주현
I804:null-200000948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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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70년대 동양화 추상과 민예의 관계에 주목하여, 기존 동양화의 추상에 대한 연구가 수묵 중심의 추상에 집중한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기존 논의는 ‘서화일치’·‘사의’·‘사생’ 등의 개념 탐색을 통해 동양화 추상의 성격을 규명하였으나, 공예적 정밀성과 물질성을 중시하는 조형적 실험을 주변부로 밀어냈다. 이에 본 연구는 민예의 차용을 동양화 추상의 핵심 양상으로 고찰하며, 문인화·민예·민화를 모두 한국화의 범주 속에 포섭해 간 역사적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화’·‘민예’·‘민화’와 같은 개념이 한국미술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정체성이 아니라 197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형성된 유동적 성격을 지녔음을 밝히고자 했다.
1970년대 동양화단에서는 국전 비구상부문의 신설 이후 추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비재현적 추상과 달리 한국의 비구상 개념은 자연과의 연계, 서정성, 소박함과 같은 미학적 요소를 유지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양화는 기원에서부터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라는 ‘동양화 추상
본질론’과, 동양화 추상과 서양화 추상은 서로 다른 추상이라는 ‘두 개의 추상’론이 등장하였다. 동아시아 고대 조형물에 표현된 기하 문양은 영적인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추상 양식’으로 해석되고,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고대 한자의 독특한 성격은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구상과 추상이 대립하는 서양의 추상과는 다른, 동양의 독자적인 추상론으로 전개되었다. 동시에 자연물의 재현을 배제하지 않는 데에 따른 자연과의 일체감, 근원적인 생명의 표현을 동양화 추상의 가치로 제시하며 나아가 민예 차용의 미학적 정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추상이 한국미술의 고전 및 전통과 결합함으로써 오히려 전위적으로 평가되었던 상황을 배경으로, 전통 공예, 특히 ‘민예’로 정의된 조형물의 미적 감수성이 주목받게 되었고 한국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조형물로 재인식되었다. 김원룡(金元龍, 1922-1993)·최순우(崔淳雨, 1916-1984)·이용희(李用熙, 1917-1997) 등 연구자들은 소박함·비기교·자연스러움 등 한국미술 특질론과 민예를 결합하였고, 그 기원에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정립한 민예론이 자리하였다. 야나기는 민예의 문양을 구체적 자연 형상을 단순화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추상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구상과 추상이 분리되지 않는 민예의 독특한 ‘추상미’, 즉 ‘구추불이(具抽不二)’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민예의 한 부문인 민화를 자연의 내적 생명력과 초월적인 영적 표현으로 해석한 ‘추상적 민화’라는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 동양화 추상의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였다. 전통 민예 그리고 민화에서 현대 추상회화의 조형적 원천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곧 한국의 동양화는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라는 담론의 형성을 촉발하였으며 이는 현대 한국에서의 추상 확산이 단순한 서양 추상미술의 이식이 아니라 한국 추상 전통의 재발견으로 해석하고자 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연구는 1970년대 동양화의 추상이 민예와 결합하는 양상을 미술론으로의 전개, 민예품의 오브제화, 문양 표현의 도입, 그리고 특히 이응노(李應魯, 1904-1989)와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을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의 민예를 차용함으로써 동양화 추상의 세계적 확장을 시도한 양상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특히 마지막 양상의 경우, 서로 다른 국가와 민족의 민예가 한국의 민예와 동일한 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들에게 해당 지역들이 동일한 ‘동양’이라는 미적 권역으로서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 동양화 추상의 국제적 파급력은 이러한 ‘동양’이라는 상상 지리((imagined geographies)의 작동을 전제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이처럼 상상된 ‘동양’ 속에 위치 지어진 다양한 민예 요소의 차용은 박래현과 이응노의 동양화 추상에 보편성을 부여하며 세계 미술로서 확장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즉 민족주의적 미의식에 기반하여 창출된 민예가 동시에 국제적으로 보편적 감수성을 지닌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조형언어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1970년대 동양화 추상은 전통 회화의 현대적 계승을 넘어 동양화의 전통화론·일본 민예론·서구 추상 담론·한국미술의 정체성 담론이 중첩되는 장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단일한 한국적 정체성이 아니라 다층적인 미의식의 결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예의 차용은 동양화 추상의 조형 가능성을 확대하고 ‘세계 미술’로서의 확장성을 부여한 중요한 동력이었으며, 이와 같은 맥락에서 1970년대 동양화 추상의 미술사적 위상은 새롭게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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