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중고기의 시작인 법흥왕기에 불교의 신성관념인 전륜성왕 의식에 의거하여 성골이 형성되었음을 살펴보고, 중고기 동안 일관적으로 전륜성왕 의식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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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역사교육전공 , 2026. 2
2026
한국어
충청북도
ⅲ, 57 ; 26 cm
지도교수: 송호정
I804:43012-00000004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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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중고기의 시작인 법흥왕기에 불교의 신성관념인 전륜성왕 의식에 의거하여 성골이 형성되었음을 살펴보고, 중고기 동안 일관적으로 전륜성왕 의식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음을 고찰하는 것에 있다.
신라는 상고기의 마지막인 마립간기까지는 6부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중고기의 시작인 법흥왕기에 들어서 그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법흥왕은 6부 합의 체제를 해체하고 이를 일원적 신분제인 골품제로 대체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왕실과 왕실에 협조적인 집단은 골층이 되고, 비협조적이었던 집단은 두품층으로 하여 명확한 계선을 설정하였다.
나아가 골층의 내부에 법흥왕의 직계이며, 왕위를 독점적으로 계승할 성골과 그 밖의 진골층으로 나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법흥왕은 성골 계층의 이념적 토대로 불교의 신성관념인 전륜성왕 의식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흥왕 본인을 당대의 전륜성왕을 성취한 것으로 비추어지도록 노력하였으며, 자신의 직계에서 다음 세대의 전륜성왕이 계속 해서 나오도록 후계자를 지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념을 통해 골품제 최상층에 성골을 형성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진흥왕~선덕왕에 이르는 시기에는 왕들이 모두 성골층에서 탄생하여, 이들이 행한 정치적 행보가 대부분 법흥왕이 도입한 전륜성왕 의식에 의거한 것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이는 대를 이어 한 세기 넘게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사상적 깊이는 더 심화한 것으로 보인다.
진덕왕기는 성골의 구성원이 단절되어 간 시기로서, 법흥왕기에 형성된 성골이 소멸해 가는 시기였다. 더욱이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진덕왕을 옹립한 진골 김춘추가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으며, 성골의 지배 이념인 전륜성왕 의식을 희석해 나갔다. 법흥왕 이래로 추진되어 온 정책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김춘추가 새로이 도입한 유학 이념과 한화 정책만이 시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중대 진골 정권을 준비하는 과도기로서 진덕왕기를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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