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50~60년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외교를 전개하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한국의 입장에서 중화민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50~60년대 한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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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역사교육전공 , 2026. 2
2026
한국어
충청북도
ⅲ, 70 ; 26 cm
지도교수: 이병인
I804:43012-000000043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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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50~60년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외교를 전개하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한국의 입장에서 중화민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50~60년대 한국이 주도했던 반공 전선 및 지역 협력체를 대상으로 그 결성 과정을 검토하고, 그와 함께 당시 한국 정부의 안보 외교 정책과 중화민국과의 관계에 대한 방향성을 고찰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의 안보 외교를 위해 중화민국과 협력하였다. 한국은 태평양동맹을 구상함으로써 중화민국, 필리핀과 함께 정부 차원의 반공 전선 결성을 시도했으나,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구상을 계획한 미국의 비협조와 필리핀의 이탈로 인해 좌절되었다. 이후 한국은 민간 차원의 반공 연맹으로 방향을 선회, 중화민국과 함께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의 설립을 주도했다. 한국은 아시아민족반공연맹 대표단을 전현직 당정 인사로 편성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반공 안보 외교를 주도했고, 중화민국과의 반공 협력 관계 역시 일본 가입 문제로 인한 의견 대립을 봉합하면서 유지해나갔다.
박정희가 실권을 잡은 이후, 한국은 안보 외교에서 이른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려 하였다. 1960년대 한국은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세계반공연맹으로 확장시킴과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이사회 설립을 추진하여 정부 차원에서의 경제사회적 협력체 창설을 도모했다. 반면 중화민국은 중국대표권 문제로 인한 외교적 입지로 인해, 투트랙 전략을 추진했던 한국과 달리 반공 전선의 강화와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예외적으로 1968년 안보적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조약기구를 계획하여 집단안보체제 수립을 도모했다. 이에 대해 중화민국은 초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미국의 소극적 입장에 호응하여 반대 의사를 표시하였다.
한국의 안보 외교는 아시아민족반공연맹 및 세계반공연맹을 통한 민간 차원의 반공 연대와 아시아태평양이사회라는 정부 차원에서의 경제사회적 협력체 운영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표출되었다. 투트랙 전략을 기조로 하는 한국의 안보 외교는 외교적 생존을 위해 군사적 반공 전선을 주장한 중화민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고, 이는 양국 간 협력 관계에 있어서 의견 충돌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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