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는 신학적 논의에서 인간론과 연계되며 또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신학적 논쟁 요소였다. 410년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쟁을 시작은 15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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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 신학과 역사신학 , 2026. 2
2026
한국어
서울
65 ; 26 cm
지도교수: 김요섭
I804:11054-20000095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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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신학적 논의에서 인간론과 연계되며 또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신학적 논쟁 요소였다. 410년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쟁을 시작은 1524년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자유의지 논쟁으로 이어졌다. 에라스무스는 당시 성경 번역과 해석에 인문주의 방법론을 적용했으며 오리겐과 제롬의 신학 그리고 헬라 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던 학자였다. 반면, 루터는 성경의 권위를 세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간의 구원을 강조했던 신학자였다. 이 두 사람의 자유의지 논쟁은 각자 다른 성경해석을 바탕하여 인간론과 구원론이 전개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루터는 교리와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의 개혁을 향하여 나아갔고,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윤리·도덕적 경건의 완성을 주장하는“그리스도 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분야를 제시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이 온전한 자유의지를 시행할 때 경건의 삶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은 구원으로 나아간다. 루터는 인간의 자유는 죄로 인해 파괴되었으므로 죄사함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종교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여 그 은혜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렇듯 구원론적 관점에서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의 계시와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학문적 방법론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질서확립에 무게감을 두었고 자유의 회복이 아니라 더 큰 책임과 의무를 제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세 후기 구원론의 논리에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 차이가 드러난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자유의지 논쟁은 성경에 근거한 신학이 올바른 인간론과 올바른 구원 개념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본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파악한다면 끝내 인간의 윤리·도덕적 책임도 분명히 제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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