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북한의 해외 전투부대 파병 양상이 시기별로 현저한 ‘규모’의 차이를 보이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결정요인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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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2026
학위논문(석사) --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 북한학 , 2026. 1
2026
한국어
북한 해외파병 ; 정권안보 ; 선출인단 이론 ; 베트남 전쟁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충청남도
; 26 cm
지도교수: 유상범
I804:11070-200000940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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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북한의 해외 전투부대 파병 양상이 시기별로 현저한 ‘규모’의 차이를 보이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결정요인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공군 및 심리전 부대 중심의 ‘소규모’ 병력 을 파견하는 데 그쳤으나, 2020년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약 1만 2천 명 이상의 정예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규모’ 참전을 단행했다. 본 연구는 기존 의 선행연구들이 주로 파병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처럼 상이한 파병 ‘규모’를 핵심 종속변수로 설정하여 북한의 대외정책 결정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본 연구는 이론적 분석틀로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Bruce Bueno de Mesquita) 등의 ‘선출인단 이론(Selectorate Theory)’을 원용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지도자의 최우선 목표는 정치적 생존이며, 특히 북한과 같이 지 배연합(W)이 극도로 작고 충성 규범(W/S)이 작은 독재체제는 지도자가 소수 의 핵심 엘리트에게 ‘사적재(private goods)’를 안정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정권 을 유지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 연구는 국제체제의 구조적 압력(가설 1)이나 남북 간 체제 경쟁(가설 2)과 같은 대외적 변수만으로는 상반된 파병 규모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지도자의 ‘정권안보 위협인식’(가설 3)이 높을수록 대규모 파병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핵심 가설을 설정한다. 즉, 내부 자원 의 고갈로 지배연합의 충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정권 생존의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는 외부 자원을 확보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고비용·고 위험의 대규모 군사 개입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제3장의 베트남 전쟁 사례 분석 결과, 1960년대 북한의 파병은 ‘소규모’에 그쳤다. 당시 국제체제는 미소 냉전이 격화된 경직된 양극체제였으며, 남한이 32만 명 이상의 대규모 파병을 단행하며 북한에 심각한 ‘체제 경쟁’ 압박을 가 했다. 이러한 대외적 요인(가설1, 가설2)은 북한이 ‘국제주의적 의무’와 ‘체면 유지’를 위해 파병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지만, 왜 ‘소규모’에 그쳤는지 는 설명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그 원인을 당시 김일성 정권의 ‘낮은 정권안보 위협인식’에서 찾았다. 김일성은 1950년대 연쇄 숙청을 통해 모든 경쟁 파벌을 제거하고 유일지배체제를 공고히 한 상태였고, 후계 문제도 아직 대두되지 않 았다. 또한, 전후 경제 복구의 성공과 안정적인 배급제, 무상교육·의료 등 공 공재가 작동하여 지배연합에 대한 사적재 공급이 원활했고, 반(反)사회주의 현 상도 미미했다. 이처럼 정권안보 위협이 낮았기에 김일성은 체제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도박 대신,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는 상징적·제한 적 파병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제4장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김정은 정권은 수만 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규모’ 파병을 단행했다. 2020년 대의 국제체제는 ‘신냉전’ 구도라 불리기도 하지만 경제적 상호의존성으로 인 해 1960년대보다 덜 경직되어 있으며, 남북관계 역시 ‘적대적 두 국가론’ 하에 긴장이 높지만, 남한의 압도적 우위로 ‘체제 경쟁’은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태 다. 이처럼 대외적 압력이 1960년대보다 심각하지 않음에도 파병 규모가 비약 적으로 커진 이유는, 김정은이 직면한 ‘높은 정권안보 위협인식’ 때문이다. 김 정은은 급작스러운 3대 세습으로 권력 정통성이 취약했으며, 이를 공포정치로 보완하는 과정에서 지배연합의 충성 기반이 항시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 결 정적으로 대북 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라는 ‘삼중고(三重苦)’로 경제가 붕괴 하며 지배연합에 제공할 사적재와 주민 통치를 위한 공공재가 모두 고갈되었 다. 외부 정보 유입으로 인한 ‘반사회주의 현상’ 확산과 불투명한 후계 구도 역시 위협을 가중시켰다. 결국 김정은에게 대규모 파병은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절실한 외부 자원을 확보하고, 외부의 적을 상정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권 생존’ 차원의 필사적인 전략적 선택이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북한의 해외파병 결정 과정에서 국제체제나 남북관 계와 같은 대외적 요인이 파병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제공했다면, 그 구체적 인 ‘규모’를 결정지은 것은 지도자가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과 그로 인한 ‘정권 안보 위협인식’ 수준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정권안보 위협인식이 낮았던 김일성 시기에는 소규모·상징적 파병이, 정권안보 위협인식이 극도로 높았던 김정은 시기에는 대규모·실질적 파병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북한의 대외 군사행동이 국제구조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넘어, 정권의 내재적 취약성과 지도 자의 정치적 생존 논리에 의해 능동적으로 재구성된 전략의 산물임을 시사한 다. 이러한 분석은 향후 대북 정책이 단순한 외부 압박을 넘어, 북한 내부의 사적재 조달 네트워크를 정밀 타격하고 엘리트 및 대중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 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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