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구의 설립과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메리놀외방전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1953년, 서울대목구에 속해 있던 충청북도 지역에 메리놀회가 진출하면서 감목대리구가 설치되었고...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7342914
연기 : 대전가톨릭대학교, 2025
2025
한국어
충청남도
; 26 cm
지도교수: 김정환
I804:44022-200000948279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청주교구의 설립과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메리놀외방전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1953년, 서울대목구에 속해 있던 충청북도 지역에 메리놀회가 진출하면서 감목대리구가 설치되었고...
청주교구의 설립과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메리놀외방전교회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1953년, 서울대목구에 속해 있던 충청북도 지역에 메리놀회가 진출하면서 감목대리구가 설치되었고, 이를 계기로 대목구 설립 준비를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1958년 6월 23일 청주대목구(교구)가 설정되었으며, 메리놀회 소속 제임스 파디 주교가 초대 대목구장으로 착좌하였다.
메리놀회는 이미 일제강점기 평양교구에서 선교한 경험이 있었고,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아일랜드계 선교사들이 많아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에 공감하며 효과적으로 사목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 내 설립 선교 단체이기에, 미국 교회의 지원을 받는 데에도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청주교구 사목에 임하면서 메리놀회는 교세 확장뿐 아니라 평신도 운동에도 힘썼다. 특히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한국 최초로 도입하는 등 신심 증진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에도 힘썼다. 또한 병원, 양로원, 보육원 등 사회 사목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더불어 다수의 성당을 새로 건축했는데, 이 성당들은 한양절충(韓洋折衷)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평양교구 내 선교 시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또한 메리놀회 사제들과 함께한 북한 출신 신자들이 청주교구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교구 기틀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임스 파디 주교가 교구 주보를 ‘성가정’으로 정한 것 역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지향을 담은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청주교구에서 메리놀회가 보여준 사목의 특징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북한 선교에 대한 지향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메리놀회 사제들이 청주교구에서 활동하지 않지만, 교구는 여전히 그 유산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오늘날 청주교구는 메리놀회의 공헌을 기억하고, 그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여야 할 것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