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와 한류 = The Gangdong Six Fortresses through the K-Drama <the Korea - Khitan War> and the Korean Wave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7166255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와 한류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의 위치를 정확히 밝히는 것으로 인하여 길이 이름이 영예롭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으 로 이글을 쓴다. 최근에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종영되었다. 그런데 그 무대가 되는 강 동6주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는가가 크게 회자되었다. 특히 사가(史家)들 사 이에 이슈가 되었다. 지금은 K-드라마, K-POP으로부터 K-방역, K-방산에 이 르기까지 전세계에 1.8억의 동호인과 1800여 동호회를 거느린 한류 전성시대 다.1) 한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세계와의 교류가 필수인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그 일원인 <고려 거란 전쟁>과 같은 K-역사드라 마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는 더할 나위 없이 가성비 있는 매체다. 국 가 이미지 향상을 위해 매년 지출하는 홍보비가 엄청난 것을 고려하면 잘 만 든 K-역사드라마는 홍보도 잘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좋은 상품임 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왜곡된 역사를 반영한다면 그 역효과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야기한 강동6주의 정확한 위치 논쟁은 역사 회복은 물론 한류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의 결과 고려는 강동6주를 확보하고, 귀주대첩으로 거란을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공략할 동력을 상실하였고, 송나 라는 공포의 대상인 거란을 굴복시킨 고려를 대등한 차원 이상의 나라로 대접 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이룬 것이다. 고려 는 국난을 승리로 이끈 자신감을 가지고 내치를 정비하고, 대륙과 해양을 통 1) 외교부, KF(한국국제교류재단), 2023 (그림1. 전세계 동호인 및 동호인수, 그림2. 지역별 한류 동호인수 추이) 해 활발하게 세계와 교류하여 세계에 고려(Korea)를 알리게 되었다. 송을 비롯 한 대륙의 사신과 상인 등은 물론이고, 서역에서도 사신과 상인 등이 빈번히 송도, 개경을 드나들었다. 진정한 한류가 시작된 것이다. 강동6주와 관련하여, 기존사학계의 통설2)은‘서북쪽으로 강동6주를 확보하 여 압록강 하류지역까지 진출하였고, 동북쪽은 두만강 이남 지역을 경계로 하 는 강역을 가졌다’는 것이다.3) 『고려사』등의 기록에 의하면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시 서희-소손녕 간의 담판으로, 994년에 여진을 쫓아내고 장흥진(長 興鎭), 귀화진(歸化鎭)과 곽주(郭州), 귀주(龜州)에 성을 쌓았고, 995년에는 역시 여진(女眞)을 쫓아내고 안의진(安義鎭), 흥화진(興化鎭)을 쌓았고 996년에 선주 (宣州), 맹주(孟州)에 성을 쌓아 모두 8개의 성을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 8개의 성 중에서 귀주(龜州), 곽주(郭州), 흥화 진(興化鎭)의 3개 성에 통주(通州), 용주(龍州), 철주(鐵州)를 합하여 강동6주라 부르고 이들이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 일대에 소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동6주의 위치가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부 일대였다는 설에 반하는 논점을 살펴보면, ⓵『고려사』「열전」諸臣 洪儒傳에 보면“홍유(洪儒)【배현경(裴玄慶) 신숭 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의 초명(初名)은 술(術)이고, 의성부(義城 府) 사람이다. 궁예(弓裔) 말년에 배현경(裴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 謙)과 함께 기병 장수가 되었는데, 은밀히 모의하여 밤에 태조의 집을 찾아가 서 말하기를, 삼한(三韓)이 분열된 이후 도둑떼들이 다투어 일어났고, 지금은 왕[궁예]이 떨쳐 일어나 크게 호령하여 드디어 초적[草寇]을 섬멸하였으며, 셋 2) 필자는 기존의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편찬해 옹호해 온 강단사학계를 총칭하여 ‘기존사학계’라 부르고 그들의 설을 일컬어 ‘통설’이라 부르기로 한다. 3) <지도, 고려 후기(14세기 말) 공민왕의 영토 수복 후 영토>으로 나누어진 요동[遼左]의 거의 절반을 점거하였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좌(遼左:요동)의 절반을 점거하였다는 사실이다.4) ⓶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943년) 제5조에서“그 다섯 번째로 말하기를, 짐은 삼한(三韓) 산천의 드러나지 않는 도움을 받아 대업을 성취하였다.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니, 사중5)마다 행차하여 100일이 지나도록 머물러 나라의 안녕을 이루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서경이 지금 북한의 평양이라면 가까운 이웃에 서경을 두고 굳이 1년에 100일씩 머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의문이고, ⓷ 성종 원년(982년)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 중 제1조에 “대체로 마헐탄(馬歇灘)을 국경으로 삼는 것은 태조의 뜻이요, 압록강 가의 석성(石城)을 국경으로 삼자는 것은 대조(大朝:景宗)에서 정한 바입니다. 앞으로 두 곳을 전하께서 판단하시어 요해처를 선택하여 국토의 경계로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는데 마헐탄의 위치가 어디인가는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압록강 가의 석성과 관련하여, 압록강을 지금 북한의 압록강이라고 하더라도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11년 전인 982년 이전에 이미 압록강 가의 석성을 국경으로 삼자고 한 것은 이미 압록강 이남이 고려의 영역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⓸ 3차에 걸친 거란의 침략 시 군사 이동 경로, 그리고 평안북도의 지명과 지리를 분석해 보면 평안북도의 서쪽지역이 지명과 지리, 지형, 군사 작전상의 이동 경로와 부합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다. ⓹ 통설에 고려 초기의 영역이 청천강 하구와 원산만을 잇는 선의 이남이라고 하였는데 993년 거란의 침입 이전에 청천강 이북, 압록강 이남 지역을 확보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고려와 거란이 남의 땅에서 전쟁을 했다는 것인데, 남의 땅에서 전쟁을 했다면 필시 그곳의 거주민들과도 싸웠다는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나 그런 기록이 없다. ⓺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지역은 강남이지 강동이 될 수 없다. 단순한 논리지만 너무나 명백한 오류이다. 이상의 논점을 상기해 볼 때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지역에 강동6주가 있었다는 통설은 의문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다행히 일부 선행연구는 이러한 4) 『고려사』 「열전」 권제5 제신, 洪儒【裴玄慶 申崇謙 卜智謙】 洪儒, 初名術,義城府人.弓裔末年, 與裴玄慶·申崇謙·卜智謙, 同爲騎將密謀, 夜詣太祖第, 言曰. “自三韓分裂, 群盜競起, 今王奮臂大呼, 遂夷滅草寇, 三分遼左, 據有大半. 下略” 5) 四仲: 1년 12달 가운데 중춘(仲春)·중하(仲夏)·중추(仲秋)·중동(仲冬).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갈 때를 말한다. 점들을 고려하여 강동6주의 위치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강동6주는 중국 요녕성 요하(遼河) 동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본고는 선행연구와 고려가 인수한 대신라6)의 서북 국경선, 압록강(鴨綠江)과 요수(遼水), 요하(遼河)와 압록강(鴨淥江) 그리고 압록강(鴨綠江), 평양성(平壤城)과 고려의 서경(西京), 외국인이 본 고려 강역(서긍의 고려도경과 허항종의 금국행정록), 요탑의 분포, 거란의 수도 상경임황부(현 파림좌기)의 위치, <고려 거란 전쟁>의 전쟁의 접전 경로와 전선(戰線) 등을『고려사』·『고려사절요』등의 국내 사서와 『요사』·『금사』·『송사』·『원사』·『명사』·『흠정만주원류고』등의 중국 사료를 통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강동6주가 통설의 북한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부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요녕성 요하(遼河) 동쪽의 개원시~철령시-심양시 남쪽을 잇는 선상의 지역에 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귀주(龜州)·곽주(郭州)·흥화진(興化鎭)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었음을 밝혔다. 이에 더하여 고려-거란 간 전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보주·내원성·흥화진의 상호위치도 명확히 밝혔다. 선행연구가 강동6주의 위치를 개괄적으로 비정하거나 추정했다면, 본고는 각 주(州)와 진(鎭)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는『고려사절요』에 기술된 “압록강 동쪽 280리에 성을 쌓도록 하였다”는 기록과도 부합한다.7)
    본 연구 결과는 향후 현장답사를 통해서 검증될 것이다. 본고가 확인한 강동6주 각 주의 위치는 지리적, 지형적, 군사적, 행정적, 정치적 상황과 견주어 볼 때 합리적으로 부합됨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본 연구의 대상은 서희-소손녕 간의 담판 이후 확보한 8개 지역이 아니라 통설로 명명된 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귀주(龜州)·곽주(郭州)·흥화진(興化鎭)의 초기 설치 위치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연구 범위를 한정하였다.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된 강동6주의 확보와 그 대미를 장식한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고려-거란-송의 동아시아 세력 균형을 잡았고, 그 자신감으로 Korea를 세계에 알리며 대륙과 해양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는, 진정한 한류(Hallyu, the Korean Wave)의 시원이 되었다.
    번역하기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와 한류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의 위치를 정확히 밝히는 것으로 인하여 길이 이름이 영예롭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君子疾...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와 한류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속의 강동6주의 위치를 정확히 밝히는 것으로 인하여 길이 이름이 영예롭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으 로 이글을 쓴다. 최근에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종영되었다. 그런데 그 무대가 되는 강 동6주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는가가 크게 회자되었다. 특히 사가(史家)들 사 이에 이슈가 되었다. 지금은 K-드라마, K-POP으로부터 K-방역, K-방산에 이 르기까지 전세계에 1.8억의 동호인과 1800여 동호회를 거느린 한류 전성시대 다.1) 한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세계와의 교류가 필수인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그 일원인 <고려 거란 전쟁>과 같은 K-역사드라 마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는 더할 나위 없이 가성비 있는 매체다. 국 가 이미지 향상을 위해 매년 지출하는 홍보비가 엄청난 것을 고려하면 잘 만 든 K-역사드라마는 홍보도 잘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좋은 상품임 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왜곡된 역사를 반영한다면 그 역효과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K-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야기한 강동6주의 정확한 위치 논쟁은 역사 회복은 물론 한류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의 결과 고려는 강동6주를 확보하고, 귀주대첩으로 거란을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공략할 동력을 상실하였고, 송나 라는 공포의 대상인 거란을 굴복시킨 고려를 대등한 차원 이상의 나라로 대접 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이룬 것이다. 고려 는 국난을 승리로 이끈 자신감을 가지고 내치를 정비하고, 대륙과 해양을 통 1) 외교부, KF(한국국제교류재단), 2023 (그림1. 전세계 동호인 및 동호인수, 그림2. 지역별 한류 동호인수 추이) 해 활발하게 세계와 교류하여 세계에 고려(Korea)를 알리게 되었다. 송을 비롯 한 대륙의 사신과 상인 등은 물론이고, 서역에서도 사신과 상인 등이 빈번히 송도, 개경을 드나들었다. 진정한 한류가 시작된 것이다. 강동6주와 관련하여, 기존사학계의 통설2)은‘서북쪽으로 강동6주를 확보하 여 압록강 하류지역까지 진출하였고, 동북쪽은 두만강 이남 지역을 경계로 하 는 강역을 가졌다’는 것이다.3) 『고려사』등의 기록에 의하면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시 서희-소손녕 간의 담판으로, 994년에 여진을 쫓아내고 장흥진(長 興鎭), 귀화진(歸化鎭)과 곽주(郭州), 귀주(龜州)에 성을 쌓았고, 995년에는 역시 여진(女眞)을 쫓아내고 안의진(安義鎭), 흥화진(興化鎭)을 쌓았고 996년에 선주 (宣州), 맹주(孟州)에 성을 쌓아 모두 8개의 성을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이 8개의 성 중에서 귀주(龜州), 곽주(郭州), 흥화 진(興化鎭)의 3개 성에 통주(通州), 용주(龍州), 철주(鐵州)를 합하여 강동6주라 부르고 이들이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 일대에 소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동6주의 위치가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부 일대였다는 설에 반하는 논점을 살펴보면, ⓵『고려사』「열전」諸臣 洪儒傳에 보면“홍유(洪儒)【배현경(裴玄慶) 신숭 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의 초명(初名)은 술(術)이고, 의성부(義城 府) 사람이다. 궁예(弓裔) 말년에 배현경(裴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 謙)과 함께 기병 장수가 되었는데, 은밀히 모의하여 밤에 태조의 집을 찾아가 서 말하기를, 삼한(三韓)이 분열된 이후 도둑떼들이 다투어 일어났고, 지금은 왕[궁예]이 떨쳐 일어나 크게 호령하여 드디어 초적[草寇]을 섬멸하였으며, 셋 2) 필자는 기존의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편찬해 옹호해 온 강단사학계를 총칭하여 ‘기존사학계’라 부르고 그들의 설을 일컬어 ‘통설’이라 부르기로 한다. 3) <지도, 고려 후기(14세기 말) 공민왕의 영토 수복 후 영토>으로 나누어진 요동[遼左]의 거의 절반을 점거하였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좌(遼左:요동)의 절반을 점거하였다는 사실이다.4) ⓶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943년) 제5조에서“그 다섯 번째로 말하기를, 짐은 삼한(三韓) 산천의 드러나지 않는 도움을 받아 대업을 성취하였다.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니, 사중5)마다 행차하여 100일이 지나도록 머물러 나라의 안녕을 이루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서경이 지금 북한의 평양이라면 가까운 이웃에 서경을 두고 굳이 1년에 100일씩 머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의문이고, ⓷ 성종 원년(982년)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 중 제1조에 “대체로 마헐탄(馬歇灘)을 국경으로 삼는 것은 태조의 뜻이요, 압록강 가의 석성(石城)을 국경으로 삼자는 것은 대조(大朝:景宗)에서 정한 바입니다. 앞으로 두 곳을 전하께서 판단하시어 요해처를 선택하여 국토의 경계로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는데 마헐탄의 위치가 어디인가는 아직 밝히지 못했으나 압록강 가의 석성과 관련하여, 압록강을 지금 북한의 압록강이라고 하더라도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11년 전인 982년 이전에 이미 압록강 가의 석성을 국경으로 삼자고 한 것은 이미 압록강 이남이 고려의 영역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⓸ 3차에 걸친 거란의 침략 시 군사 이동 경로, 그리고 평안북도의 지명과 지리를 분석해 보면 평안북도의 서쪽지역이 지명과 지리, 지형, 군사 작전상의 이동 경로와 부합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다. ⓹ 통설에 고려 초기의 영역이 청천강 하구와 원산만을 잇는 선의 이남이라고 하였는데 993년 거란의 침입 이전에 청천강 이북, 압록강 이남 지역을 확보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고려와 거란이 남의 땅에서 전쟁을 했다는 것인데, 남의 땅에서 전쟁을 했다면 필시 그곳의 거주민들과도 싸웠다는 기록이 있어야 할 것이나 그런 기록이 없다. ⓺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지역은 강남이지 강동이 될 수 없다. 단순한 논리지만 너무나 명백한 오류이다. 이상의 논점을 상기해 볼 때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쪽지역에 강동6주가 있었다는 통설은 의문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다행히 일부 선행연구는 이러한 4) 『고려사』 「열전」 권제5 제신, 洪儒【裴玄慶 申崇謙 卜智謙】 洪儒, 初名術,義城府人.弓裔末年, 與裴玄慶·申崇謙·卜智謙, 同爲騎將密謀, 夜詣太祖第, 言曰. “自三韓分裂, 群盜競起, 今王奮臂大呼, 遂夷滅草寇, 三分遼左, 據有大半. 下略” 5) 四仲: 1년 12달 가운데 중춘(仲春)·중하(仲夏)·중추(仲秋)·중동(仲冬).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갈 때를 말한다. 점들을 고려하여 강동6주의 위치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강동6주는 중국 요녕성 요하(遼河) 동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본고는 선행연구와 고려가 인수한 대신라6)의 서북 국경선, 압록강(鴨綠江)과 요수(遼水), 요하(遼河)와 압록강(鴨淥江) 그리고 압록강(鴨綠江), 평양성(平壤城)과 고려의 서경(西京), 외국인이 본 고려 강역(서긍의 고려도경과 허항종의 금국행정록), 요탑의 분포, 거란의 수도 상경임황부(현 파림좌기)의 위치, <고려 거란 전쟁>의 전쟁의 접전 경로와 전선(戰線) 등을『고려사』·『고려사절요』등의 국내 사서와 『요사』·『금사』·『송사』·『원사』·『명사』·『흠정만주원류고』등의 중국 사료를 통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강동6주가 통설의 북한 압록강 남쪽 평안북도 서부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요녕성 요하(遼河) 동쪽의 개원시~철령시-심양시 남쪽을 잇는 선상의 지역에 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귀주(龜州)·곽주(郭州)·흥화진(興化鎭)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었음을 밝혔다. 이에 더하여 고려-거란 간 전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보주·내원성·흥화진의 상호위치도 명확히 밝혔다. 선행연구가 강동6주의 위치를 개괄적으로 비정하거나 추정했다면, 본고는 각 주(州)와 진(鎭)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는『고려사절요』에 기술된 “압록강 동쪽 280리에 성을 쌓도록 하였다”는 기록과도 부합한다.7)
    본 연구 결과는 향후 현장답사를 통해서 검증될 것이다. 본고가 확인한 강동6주 각 주의 위치는 지리적, 지형적, 군사적, 행정적, 정치적 상황과 견주어 볼 때 합리적으로 부합됨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본 연구의 대상은 서희-소손녕 간의 담판 이후 확보한 8개 지역이 아니라 통설로 명명된 통주(通州)·용주(龍州)·철주(鐵州)·귀주(龜州)·곽주(郭州)·흥화진(興化鎭)의 초기 설치 위치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연구 범위를 한정하였다.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된 강동6주의 확보와 그 대미를 장식한 귀주대첩으로 고려는 고려-거란-송의 동아시아 세력 균형을 잡았고, 그 자신감으로 Korea를 세계에 알리며 대륙과 해양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는, 진정한 한류(Hallyu, the Korean Wave)의 시원이 되었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문제제기와 연구 목적 1
    • 2. 연구 범위와 방법 3
    • 3. 선행 연구 4
    • Ⅱ. 강동6주 확보 전후의 역사적 배경 고찰 7
    • Ⅰ. 서론 1
    • 1. 문제제기와 연구 목적 1
    • 2. 연구 범위와 방법 3
    • 3. 선행 연구 4
    • Ⅱ. 강동6주 확보 전후의 역사적 배경 고찰 7
    • 1. 대신라의 서북 국경선 8
    • 2. 압록강(鴨綠江)과 요수(遼水), 요하(遼河)와 압록강(鴨淥江) 그리고 압록강(鴨綠江) 14
    • 3. 평양성(平壤城)과 고려의 서경(西京) 29
    • 4. 외국인이 본 고려 강역 39
    • 5. 요탑의 분포 44
    • Ⅲ. 강동6주 44
    • 1. 강동6주 축성 과정 44
    • 2. 강동6주 : 각 주의 위치 62
    • Ⅳ. K-드라마<고려 거란 전쟁>과 한류 82
    • 1.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과 바른 역사 회복의 중요성 82
    • 2. 강동6주와 한류 83
    • 3. 이유있는 한류 85
    • Ⅴ. 결 론 87
    • 참고문헌 90
    • Abstract 97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